Follow Your Heart RAW novel - Chapter (114)
마음이 이끄는 대로-114화(114/134)
#114.
국왕은 이재를 말리려고 했다.
그러나 그녀는 뭐라 말할 새도 없이 화살을 날리고 있었다.
결국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난 그는 자신도 모르게 한 손을 앞 으로 뻗었다.
언제 뒤로 넘어올지 모르는 작은 몸을 받치기 위한 준비 였다.
‘암중모색. 어둠 속에서 끊임없 이 답을 찾는 존재,그들의 이름은 인간.’
‘신이여. 그렇다면 다시 묻겠습니다. 왕제와 일리아스,그들은 지금 모두 카이엔에 있습니까.’
질문에는 연속성이 있었으나, 이재는 말끝을 조금 바꾸었다.
한 명이라도 국경을 넘었을 경우 국 왕이 곤란해진다는 걸 알고 있었 기 때문이다.
그리고 차례로 화살을 날린 그녀는 곧 눈을 가늘게 떴다.
진에 서 조금씩 희미한 빛이 피어나는 게 보인다.
그 은은한 빛은 과녁 을 한 번 감싸고는 주변을 서서 히 밝히고 있었다.
그것만으로 충분한 답이었지만 이재는 말을 잠시 참아야 했다.
지금 극심한 현기중을 느끼고 있 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마치 명상을 할 때처럼 호흡을 조절하며,계속 기를 안정 시키려고 노력했다.
국왕을 비롯 해 지켜보는 사람들이 있는데 또 걱정을 끼칠 순 없었다.
이재는 후우,하고 크게 한 번 숨을 내쉬고는 돌아섰다.
그러자 한 손을 반쯤 올리고 있던 로더릭도 슬그머니 팔을 내렸다.
“폐하,카이엔에 있어요. 제이드,여기 있어.”
국왕은 고개를 끄덕이며,제이드에게 지시했다.
“국경 통제와 검문을 더 강화 해. 특히 서부 국경. 필요한 인력은 얼마든지 요청해도 좋아. 왕제와 일리아스가 카이엔을 빠져나가면 이 계획은 틀어진다.”
“예,폐하. 명심하겠습니다.”
국왕은 이번에는 이재를 물끄러 미 바라보았다.
꽤나 평온한 얼굴이었지만,그의 눈에는 이재가 괜찮은 척하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아무리 침착 하게 굴어도 핏기가 가신 안색까 지 감출 수는 없었던 것이다.
“괜찮아?”
“그럼요.”
이재도 그를 물끄러미 을려다보았다.
“왜 그런 표정을 하세요.”
“내가 뭘.”
그녀는 국왕이 걱정을 할까 봐 괜한 농담을 건넸다.
“혹시 기대하고 계셨나요?”
“그러니까 뭘.”
“약 발라 주려고 기대하셨던 거 아니에요?”
“뭐 그런 걸 기대씩이나.”
로더릭은 잠시 어처구니가 없다는 둣 웃었다.
그는 이 상황에 농 담을 늘어놓는 아내의 심중 정도는 충분히 읽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게 더욱 미안하고 애 잔해서 적당히 맞춰 주기로 했다.
주변을 스옥,둘러보고 허리를 숙인 그는 목소리를 낮추며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
“부인께서 기분만 좋으시다면 야,난 그 정도는 매일 밤 볼 수 있는 거 아닐까?”
그러자 이재는 창백한 몰골을 하고도 웃음을 홀렸다.
그녀도 늘 덤벼 보고는 있었다. 하지만 남편에게 이런 종류의 대화로는 역시 못 이기겠구나,싶었던 것이다.
고개를 절레절레 젓던 이재는 저리 가라고, 그를 슬쩍 밀었다.
그러나 그녀는 마치 벽을 민 듯한 반동을 느끼며 본인 혼자서 만 뒤로 밀려나야 했다.
도리어 놀란 로더릭은 그녀의 등허리를 얼른 붙잡으며 말했다.
“아니,야. 갑자기 이러면 넘어지잖아.”
왕에게도 밀려나는 척하거나 몸에 힘을 뻘 수 있는 시간을 줘야하는거였다.
“이럴 땐 그냥 발로 세게 까라.”
“……또 이상한 소리를 하시네.”
로더릭은 픽 웃으며 이재를 훌쩍 들어 올렸다.
그는 그녀를 한 쪽 어깨에 둘러메고는 기사들에 게 말했다.
“그만 가지.”
이재의 모습은 꼭 빨랫줄에 걸 려 축, 늘어진 옷가지 같았다.
그 러나 사실 몸에 힘이 별로 없었던 그녀는 남편에게 몸을 맡긴 채 그대로 이동했다.
왕후의 접견장은 오랜만에 붐비고 있었다.
이재가 몇 주 만에 접 견 일정을 소화하고 있었기 때문 이었다.
그녀가 요즘 접견장에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는 이유는 하나였다.
곧 있을 전투에 대한 대비였다.
국왕은 이미 정무 회의에서 다이몬 재건 세력을 뿌리 뽑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바 있었다.
그에 따라 그녀의 하루도 눈코 뜰 새 없이 돌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소문에 밝은 유력 귀족들은 이 상황에 왕제가 얽혀 있다는 사실 또한 알고 있었다.
더 많은 정보를 얻기 위해,혹 은 자신의 거취를 결정하기 위해 수많은 귀족들은 접견을 요청했다.
그 명단에는 반왕파 귀족들도 상당수 포함되어 있었으며,던컨 공작 또한 올라 있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왕후 폐하.”
불청객이 둥장하자,시녀들과 기사들은 일제히 싸늘한 시선을 보냈다.
그러나 공작은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는 기색이었다.
그는 언제나처럼 이재만을 주시 하고 있었다.
“오랜만이네요,아버지. 그런데 이번엔 또 어쩐 일이신가요.”
“……오늘은 이 아비가 썩 반갑지 않으신가 봅니다.”
이재는 헛웃음을 홀리면서도 솔 직하게 감탄했다.
세상에는 영안이 없어도 저렇게 남의 속내를 간파하는 데 능한 사람들이 있었다.
공작을 진심으로 반겼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한때 그를 통 해 알고 싶은 게 있었을 뿐이었다.
공작은 민감하게도 그 온도 차이를 첫인사에서 감지한 것이다.
이재가 더 이상 아쉬운 게 없다는 것을.
그녀는 선선히 인정했다.
“솔직히 말하면 그래요. 전 이제 아버지한테 궁금한 게 없거든요.”
당신이 실은 가진 패가 아무것 도 없는 인간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하지만 당신은 그걸 잘 포장 할 줄 알아요.
던컨 공작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침묵이 길어지자 시녀들은 불편한 내색을 감추지 못했지만, 이재는 차분하게 기다릴 뿐이었다.
그리고 오랜 침묵 끝에 던컨 공작은 독대를 요청했다.
“왕후 폐하,긴히 여쭐 게 있습니다. 사람들을 물려 주십시오.”
“그렇게 할게요.”
이재는 고개를 끄덕였다.
기사들과 시녀들이 접견장을 빠져나간 뒤로도 공작은 한참 동안 입을 열지 않았다.
그녀는 공작을 재촉하지 않고,그의 상을 찬찬히 살폈다.
여전히 모호한 얼굴. 하지만 예 전보다는 분명 좋은 쪽으로 변한.
그녀는 공작의 관상이 저렇게 변한 이유를 이제는 알고 있었다.
저건 헤일리가 죽음으로써 그녀가 보았던 한 가지 가능성을 제거한 결과였다.
공작이 카이엔을 배반하고,블레이크 왕가와 던컨가를 파멸로 이끄는 미래.
하지만 그 대가는 왜 당신 딸 혼자서만 떠안아야 했을까.
비감한 기분을 다스리기 힘들어서 이재는 잠시 눈을 감았다.
그 리고 그때, 공작은 입을 열었다.
“헤일리. 얼마 전, 공작저에 일리아스 가문의 후예가 찾아왔었다. 그자가 혹 가문의 능력이 깨어나진 않았냐고 묻더군.”
“………”
“생각지도 못한 말이었지만,난 그게 분명 너라고 생각했다. 물론 지금까지도.”
공작은 종전보다 솔직하게 털어 놓았다.
그 또한 정치적으로 궁지에 몰렸기 때문일 것이다.
이재와 국왕이 모두 예상한 내 용이었지만, 그 순간 공작의 입에서도 그들이 미처 파악하지 못한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그런데 그가 한 가지를 더 물었다. 날 꼭 떠보는 것 같더군.”
“……뭘 물었죠?”
“우리 가문에 혹시 멜런의 피가 흐르냐고 묻더구나.”
이재의 얼굴은 순간적으로 굳어 졌다.
그녀는 그 질문의 의도를 아주 잘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상대는 역시 영능력자의 존재를 의심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쯤이면 확신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일리아스가 날리는 살은 국혼 이후 번번이 실패하고 있었지만, 이재는 여태껏 모든 악귀를 멸한 건 아니었다.
그에게도 상황을 이상하게 생각할 눈과 귀 정도는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아버진 뭐라고 하셨나요?”
“가문에 내려오는 기록에 의하면 우리 던컨은 멜런가와는 혼약을 맺은 적이 없다. 하지만 기록의 정확성은 후대가 장담할 수 없는 문제일 거라고 답했다.”
실로 공작다운 답변이자 처세였다.
그는 모든 것이 불확실한 순간에도 상대가 원하는 답만큼은 쉬이 내어 주지 않았던 것이다.
핵심은 피해 가고,협상할 여지만 남겨 둔 것이다.
그러나 그런 그도 본인이 간구하는 답 앞에서는 자신의 모든 것을 꺼내 보이고 있었다.
공작은 이재에게 요구했다.
“나는 네게 모든 것을 말했다. 이젠 네가 답을 내릴 차례다. 카이엔 왕가는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거냐.”
이재는 잠시 침묵했다. 그녀는 정말로 그 답을 잘 몰랐으니까.
능력과 확신이 부족한 그녀는 늘 반쪽짜리 삶을 살았다.
그러나 불행일까, 다행일까. 그녀에게는 언제나 옳은 조언을 해 주는 사람이 있었다. 사람들은 가끔 그렇게 방향성을 제시해 준다.
그건 하지 마라,이건 해라.
그렇게 하면 실패한다, 이렇게 하면 죽는다.
하지만 여기에는 조언을 해 줄 수 있는 영산할매도 헤일리도 없었다.
그럼 난 대체 어디에서 답을 찾고,어디에 귀를 기울여야 하 지.
그녀의 얼굴에는 곧 묘한 느낌 의 미소가 번져 가기 시작했다.
이재는 결국 자신이 염원하는 미래를 말할 수밖에 없었다. 의지를 갖고.
“아버지,폐하께서는 이 싸움의 승자가 되실 겁니다.”
그게 천기라서가 아니었다.
하늘의 뜻을 거스르고,설령 벼락을 맞아 죽는 한이 있더라도…… 그녀가 꼭 그렇게 만들어 주고 싶어서였다.
“아버지께서 저에게 답을 물으신다면,전 이렇게밖에는 말씀드릴 수가 없습니다.”
이재는 공작이 어떤 인생을 살든 관여하고 싶지 않았다.
국왕의 편에 서 주기를 바라지도 않았다. 언제든 배신할 수 있는 사람이 국왕에게 진정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지도 않았다.
이건 그저 헤일리를 위해 이재가 해 줄 수 있는 최소한이었다.
목숨을 걸고 미래를 바꾸고자 했던 헤일리를 위해 그녀가 해 줄 수 있는 최소한.
“전 아버지가 이 나라 국왕에게 지지를 표하고,여죄를 짓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저는 제 의견을 말씀드렸을 뿐이고,이제 선택은 아버지가 하시는 겁니다.”
이재는 공작을 조용히 바라보았고, 공작은 아직도 진실을 알고 싶은 눈으로 그녀를 올려다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