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llow Your Heart RAW novel - Chapter (118)
마음이 이끄는 대로-118화(118/134)
#118.
사람들은 맹렬한 기세로 말을 몰고 있었다.
1,3기사단이 선두에서 움직이고 있었고,언제나처럼 국왕의 흑마가 그 중앙에서 달리고 있었다.
보급품을 실은 중앙군 일부는 조금 떨어진 후미에서 기사단의 뒤를 따랐다.
그리고 리버턴 영지 경계에 도 달한 국왕은 잠시 병사들을 멈춰 세웠다.
이미 수일 전에 와서 대 기하고 있던 2기사단의 보고를 받기 위해서였다.
“카이엔에 영광을.”
로더릭은 고개를 짧게 끄덕였고, 이재는 그저 미소만 지어 보였다.
보고는 신속하게 이어졌다.
“최대한 조심스럽게 음직이느라 저희도 중앙군도 수색은 거의 못했습니다. 다만 리버턴 백작과 의 논한 결과,병력이 숨어 있을 만한 장소는 딱히 안 보입니다. 그 런 움직임도 포착된 적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자 국왕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백작 쪽을 향했다.
리버턴 백작은 얼굴이 귀신처럼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그는 이게 얼마나 중차대한 문제인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왕제가 적국의 후예,그것도 재 건군의 수장으로 추정되는 자와 내통한 사건이었다.
국왕은 국경 을 통제할 만큼 이 문제를 심각 하게 다루고 있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들이 숨어든 곳이 자신의 영지라는 것이다.
그 것도 한 번도 중요하게 여겨본 적 없는 빈민가가 거론되고 있었다.
까딱하면 모든 걸 함께 뒤집어 쓸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폐하,정말 송구합니다. 모두 제 불찰입니다.”
하지만 국왕은 그건 크게 관심 없다는 얼굴이었다.
“그 얘기는 좀 나중에 하지. 난 그대 말고도 책임을 묻고 싶은 자가 항상 차고 넘친다.”
“………”
“문책받고 싶으면,순서부터 기 다리든가.”
퉁명스럽게 말한 국왕은 한동안 리버턴의 상세한 지도를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백작과 기사들에게 의견을 물었다.
“추정되는 은거지는?”
기사단이 머뭇거리는 사이,영 지 내 사정에 훨씬 밝은 백작이 다시 조심스럽게 나섰다. 뭐라도 만회해 보기 위함이었다.
그는 지도 위를 두어 군데 가리켰다.
모두 벨파스턴과는 위치 상으로는 거리가 있는 곳이었다.
“폐하,제가 추측하기로는 이곳과 이곳 정도입니다. 벨파스턴 거리는 병력이 소규모라도 진입했다고 보기에는 너무 협소하고, 활용할 만한 구조물이 부족한 곳입 니다.”
지도를 바라보던 국왕의 푸른 눈동자는 생각에 잠겼다.
그도 백 작의 말이 무슨 뜻인지 정도는 이해하고 있었다.
객기가 아니고서야 혈혈단신으로 수도 부근에 잠입했을 리는 없다는 뜻이었다.
고민은 깊어졌지만,왕은 벨파스턴 거리가 확실하다는 생각까지 지울 수는 없었다.
“아니,벨파스턴이 맞을 거다. 우선 그쪽으로 가지.”
꼭 이재가 전해 준 말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는 영지에 진입한 이후,기이한 감각을 느꼈던 것이다.
이젠 뭔가가 느껴지다 못해,누군가 자신을 끌어당기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착각마저 든다.
그는 자연스럽게 이재를 바라보았지만,어떠한 말도 쉽사리 꺼낼수없었다.
이재. 이 느낌은 대체 뭐지.
너는 항상…… 이런 기분을 느껴 온 건가.
영지 깊숙이 진입한 국왕의 병 사들은 벨파스턴을 넓게 둘러싸고 점점 포위망을 좁혀 가는 중 이었다.
여태까지 맹렬하게 달려온 것과 달리 말들은 터덕터덕, 느리지만 신중한 속도로 걷고 있었다. 수색을 위해서였다.
그래서 왕의 앞에 앉아 있는 이재 또한 주변을 더 면밀히 살펴볼 수 있었다.
‘벨파스턴이 이런 곳이구나.’
헤일리로서는 들어 본 적조차 없었던 곳이기 때문일까.
무척 낯 설고 생경한 풍경이었다.
사위를 천천히 둘러보던 이재의 시선은 갑자기 길 오른편에 머물 렸다.
그쪽에 공동묘지처럼 보이 는 장소가 있었기 때문이다.
“벨파스턴 거리 공동묘지. 입구에서 세 번째……”
이재는 곧바로 눈을 감고,짧은 진언을 읊조렸다.
그 언젠가 인연 을 맺은 영가의 깊은 안식을 기원하는 언령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눈을 뜬 그녀 는 국왕처럼 확신했다.
왕제와 일리아스가 이곳 어딘가에 있다.
이재는 그들이 굳이 벨파스턴에 은거한 진짜 이유를 짐작할 수있었다.
이곳에는 무수한 망자들의 원한과 비탄이 서려 있었다.
그만큼 귀기가 강하다는 뜻이다.
초혼 의식을 하기에는 더할 나 위 없는 장소였다.
아니나 다를까. 원귀들은 벌써 부터 기사들 옆을 음험하게 서성이거나,그들의 위에서 무언가를 속삭이고는 했다.
악한 말이었고, 그 광경은 사실 이재에게는 지옥도나 다름없었다.
원귀들이 몰려드는 곳을 보고 있노라면, 그녀는 알 수 있었기때문이다.
여기 있는 사람 중에 누가 마음이 힘들고 아픈가를.
이재는 기사 한 명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당신은 그런데도 복도에서 저를 마주할 때마다 웃었던 거군요.
그렇게 웃기 위해 얼마나 많은 슬픔을 참았던 건가요.
아랫입술을 질끈 깨문 그녀는 화살을 활시위에 걸었다.
상황이 심각해질 때마다, 틈틈이 사람들을 도와주기 위해서였다.
그녀는 거리가 가까워지는 순간 만을 노렸다.
그러나 번번이 화살 촉을 다시 아래로 향해야만 했다.
다름 아닌 국왕 때문이었다.
“저기,폐하.”
“왜.”
“……됐어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국왕은 지금 움직일 때마다 거의 혼자서 바다를 가르는 기적을 보여 주고 있었다.
그가 가까이 가면 원귀들이 뿔뿔이 흩어지곤 했던 것이다.
사실은 성검이 아니라 귀기로 자극했어야 했던 걸까.
이재는 국왕의 기운이 또 갑자기 사납게 들끓기 시작하는 것을 느끼고 있 었다.
국왕은 여러모로 의아한 표정이 었지만,왕가에 대한 부분은 이재도 딱히 아는 바가 없었다.
그리고 같은 상황은 몇 번이나 반복됐다.
본연의 기운으로 원귀 들을 내쫓고 있으니 거기까지는 나쁘지 않은 현상이었으나,그들은 새로운 목표를 찾아 계속 자리를 옮겨 다녔다.
이재는 결국 어쩔 수 없이 입 을 뗐다.
“폐하.”
“왜 그러는데. 불렀으면 그냥 말을 해라.”
“정말 죄송하지만요. 잠깐만 후방에 가 계시면 안 될까요?”
“뭐?”
“저기 뒤로요.”
이재는 손가락으로 끝을 가리켰다.
국왕은 황당할 따름이었지만, 이유가 있을 거란 걸 잘 알기에 그녀에게 물었다.
“이건 또 무슨 취급이지. 이런 거라면 차라리 환자 대우를 해 줄 때가 나았다.”
“사실 폐하 때문에 이제는 조준이 안 될 정도라서 그래요.”
“………”
“전 빠르게 음직이는 건,잘 못 맞춘단 말이에요.”
이재가 자신의 약점까지 고백하 며 솔직하게 설명하자,국왕은 눈썹 끝을 긁적였다.
그리고 그때였다.
이재와 국왕의 시선은 동시에 허공 어딘가를 향했다.
두 사람 다 그저 그런 영가들과는 다른 짙고 음습한 기운을 느꼈기 때문 이다.
눈이 시뻘건 악귀는 가까이 다 가오지는 못했다.
하지만 다른 원 귀들처럼 멀어지지도 않았다.
그가 입을 쩍 벌리자, 찐득하고 검은 액체가 입가를 타고 주르륵 쏟아졌다.
악귀가 서늘하게 말했다.
-이리로 와.
-나를 따라와.
이재는 그 음산한 목소리에 얼굴을 굳혔다.
“폐하,우리를 부르고 있어요.”
하지만 그녀는 로더릭에게 말을 전하기가 무섭게,약간의 망설임이 피어나는 것을 느꼈다.
혹시 나는 지금 저걸 멸해야 하는 게 아닐까. 정말 따라가도 되는 걸까. 저쪽이 믿는 구석은 뭘까.
이재는 자신도 모르게 또 소년 왕을 찾았다.
하지만 수호귀는 훨씬 전부터 자신의 후손에게서 멀어져 무표정한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먼발치에서 방관하는 사람처럼.
그리고 선택은 국왕 쪽에서 했다.
그는 무서운 얼굴로 말고삐를 내리쳤다.
아무것도 볼 수 없었지만,조금씩 멀어져 가는 기운을 느꼈던 것이다.
왕의 표정과 태도에서 무언가를 느낀 기사들의 태세 또한 순식간에 돌변했다.
그리고 이재는 조금 신기한 광경을 보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기백을 가지고 눈빛을 달리하자,무리 주변을 서성이던 원귀들은 쉽사리 접근하지 못했던 것이다.
진짜 기세라는 건 이런 거구나.
국왕은 자신도 알지 못하는 무언가를 계속 주시하며 말을 몰았다.
그리고 어느새 1기사단은 대오를 갖추어 국왕과 왕후를 호위 했다.
한참을 달린 후였다.
모든 이들의 눈에는 다 쓰러져 가는 고택이 한 채 보였다.
주변 풍경은 더없이 황량했고,사람들 의 발자취가 오래전 끊긴 장소는 과거 그 자체였다.
국왕은 그 앞에서 말을 멈춰 세웠다.
“잠깐 기다려라.”
“폐하,여기입니까?”
“그래. 아직 가까이 다가가지 마라.”
국왕이 사람들을 제지한 건 동태를 살필 목적도 있었지만,범상치 않은 기운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재는 누구보다 구체적 인 정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을씨년스러운 저택은 마치 들어 오라는 둣 문이 반쯤 열려 있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바람에 삐거덕거리는 문 앞에서는 지금 삿되고 불온한 일이 벌어지는 중 이었다.
흙바닥에서는 주먹만 한 검은 원이 생겨났다.
그 검은 원은 마치 회오리가 일어나듯 아주 조금씩 자신의 영역을 넓혀 갔다.
이재는 그게 무엇인지 한눈에 알아보았다.
‘일리아스. 당신…… 귀문을 열었구나. 이 근처에 있는 거야.’
저것은 영가를 하나둘 불러내는 단순한 소환술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귀문이라는 건 그들의 세계와 우리의 세계가 연결되는 통로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강력한 살일수록 실패할 경우 시전자는 큰 책임을 지기 마련이다.
이재는 일리아스가 지금 이 순간을 위해 힘을 아껴 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저 정도 일을 벌였다면,상대는 목숨을 걸었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조금씩 열리는 귀문을 통해 어느덧 시커먼 악귀들이 머리를 내밀려고 악을 쓰고 있었다.
너무나 흉측한 광경이었지만, 이재는 생각했다.
저 귀문을 닫을 수 있을까,그런 것을 지금 고민하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무조건 닫아야 했기 때문이다.
‘일리아스. 이게 당신의 승부수인 건가요. 하지만 사력은 당신만 다하고 있는 게 아닙니다. 사실은 저도 이 일에…… 제 인생과 목숨을 걸었어요.’
왕성을 떠나올 때부터 계속 초연한 얼굴이었던 이재의 눈은 매서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