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llow Your Heart RAW novel - Chapter (12)
마음이 이끄는 대로-12화(12/134)
#12.
“네?”
사람들이 부적을 마주한 원령귀처럼 흩어지는 모습을 보고 있던 이재는 되물었다.
자다 깬 로더릭은 평소보다 약간 더 퉁명스러웠다.
“옆으로 좀 가 보라고.”
“………”
방에 가서 편하게 자라고 하고 싶었지만, 그러기에 이재는 그의 침실 상황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로더릭은 그곳에서 악몽을 꾸면 그나마 다행이었다. 잠도 들지 못 할 확률이 훨씬 높았다.
왕후의 표정을 뭐라고 해석했는 지 그는 드물게도 자신의 말을 여러 번 반복했다.
“아무 짓 안 할 테니까 침대 좀 빌려줘라. 진짜로 잠을 못 자서 그래.”
로더릭은 오빠 믿지 같은 소리를 했다.
다른 사람이 말했으면 비웃었겠지만,이재는 그게 진짜라는 걸 알고 있어서 아무 말도 못 했다.
잠시 왕의 안색과 기운을 살피던 그녀는 살짝 옆으로 물러났다.
그러자 그는 기다렸다는 둣 그 녀가 내어 준 자리로 올라왔다.
건장한 사내의 무게감 때문에 침 대가 크게 한 번 출렁거렸다.
로더릭은 눕자마자 눈부터 감았지만,이재는 말똥말똥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결혼한 지 한 달이 다 되어 가지만 그와 한 침대에 누운 건 이번이 딱 두 번째였다. 의식을 안 하는 게 힘들었다.
어쩐지 잠이 오지 않아서 옆을 힐끔거리던 그녀는 모로 돌아누웠다.
그리고 자신이 베고 있던 베개 를 그쪽으로 슬금슬금 밀었다.
그러자 그는 눈을 감은 채로 얼굴을 찡그리며 웃었다.
“됐으니까 너 베라.”
“전 다리 밑에 하나 더 있어요.”
그제야 그는 머리를 살짝 들어 주었다.
목적한 바를 달성하고도 잠이 오지 않아서 계속 로더릭을 바라보던 이재는 물었다.
“정인 있는 아내 손수건은 안 받아도,침대에 같이 눕는 건 괜찮으세요?”
그는 이번에는 정말 황당했는지 눈가를 가리면서 소리 내어 웃었다.
“귀엽긴 한데,너도 남편한테 그렇게 당당하게 할 말은 아니지 싶다.”
“네,역시 그렇죠. 죄송해요.”
아무리 고민해 봐도 지난번에 절 비꼬신 것 같아서요.
궁금해서 저도 아주 살짝 까불어만 봤어요.
“말 안 걸게요. 이제 진짜 주무세요.”
이재는 꾸물꾸물 이불을 끌어 올리며 잠을 청했다.
사실 그녀도 몸 상태가 몹시 안 좋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녀가 잠에 빠질락 말락 할 때쯤 로더릭은 말했다.
“그때 그건 미안하다. 일부러 찢은 건 아니야. 신뢰는 안 가겠지만.”
“………”
“내가 또 난폭하게 굴면 참지 말고 언제든 제이드나 사람들을 불러라.”
이재는 한참 뒤에야 그게 무슨 말인지를 알아들었다.
로더릭은 첫날밤에 있었던 일을 말하고 있 었다.
당혹스러워서 잠이 달아나는 기분이었다.
“……그거 페하가 그런 거 아니에요.”
“………”
‘진짜 아니에요.”
“………”
“……아닌데.”
그는 한참 동안 대답이 없었다. 하지만 그녀가 계속 자신을 보고 있는 것은 느꼈는지 까딱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으니까 자.”
역시 믿는 눈치는 아니었다.
왕이 조금 안되었다는 기분과 불편한 마음을 감출 수 없어 이재는 잠이 들 때까지 몇 번이고 그를 힐끔거렸다.
그 뒤로 한 시간쯤 흘렀을까.
이재는 갑갑한 기분에 눈을 떴다. 그리고 움찔했다.
조금 떨어진 곳에 반듯하게 누워 있던 로더릭은 어느새 몸을 틀어 자신에게 엉겨 붙어 있었다. 그리고 장소가 소파가 아니라 침대였기 때문에 자세는 예전보다 훨씬 깊었다.
그들은 마주 보고 있었는데,그는 한쪽 팔로 이재의 머리를 감싸 안고 다른 팔로는 등을 끌어 안고 있었다.
역시 남자가 오빠 믿지,라고 했을 때는 한 번쯤은 깊게 의심해 보아야 하는 것이다.
한참 동안 얼어 있던 이재는 우선은 참아보기로 했다.
저 사람 몸도 다 살겠다고 저 러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로더릭은 이재와 가까이 있으면 태생적으로 가지고 있는 기가 활발해졌다. 부적 때문일 수도 있 고, 이재가 기를 정결히 하는 일을 소홀히 하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난감한 상황인 건 맞아서 이재는 눈을 감고 양을 셌다.
다시 잠들어야 이상한 생각을 좀 덜 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머리에는 자꾸만 더운 숨이 닿았고, 그는 계속 이재를
깊게 안으려고만 들었다.
바른 생각. 착한 생각.
이재야, 이 사람은 환자다. 남편이기도 하지만 일단은 환자야.
몸과 마음이 아직은 많이 아픈 사람이잖아. 그럼 가엾게 여겨야지.
심신을 수양하는 구도자의 마음으로 스스로를 설득하던 이재는 그가 다리를 얽어오자 건전한 생각에 조금씩 한계를 맞기 시작했다.
처녀 귀신의 한,윤택한 사후 생활.
지금인가? 지금이 바로 그때인 가? 아,아닌 것 같아.
그리고 둥을 감싸고 있던 그의 손은 둥줄기를 더듬다가 조금씩 아래로 내려왔다.
“으으..”
오싹한 기분이 들어서 그녀는 몸을 바르르 떨며 움츠렸다.
로더릭의 손은 엉덩이 조금 위에서 멈추었다. 아주 위태로운 위치였다.
거,거긴 아니야! 거기는 부적 없어요!
부적은 품 안에 있단 말이에요.
그렇다고 가슴을 만지라는 건 아니지만,허락 없이 더 내려오면 나도 가만히 안 있을 거야!
안절부절못하던 이재는 결국 움직였다.
“폐하, 조금만 떨어져요……. 제발요.”
우리가 부부이기는 하지만 아직 만난 지 얼마 안 된 사이잖아요?
그리고 사람끼리는 원래 적당한 거리감이 필요한 거랬어요.
그녀는 두 팔로 그의 상체를 밀며 엉덩이를 뒤로 빼려고 했다.
그게 화근이었다.
잠시 떨어지는가 싶었던 로더릭은 오히려 모로 자고있던 몸을 이재 쪽으로 뒤집었다.
그러자 단단한 몸이 가슴을 짓늘러 와 이재는 윽,하는 소리를 냈다.
대체 왜 이렇게 체격이 좋아?!
반쯤 깔린 그녀는 그를 살짝 꼬집었다. 하지만 인간 수면초, 인간 부적이라는 청량함을 품에 안은 로더릭은 몹시 만족스러운 것 같았다.
그에게서는 오히려 으음,하는 나른하고 기분 좋은 음성이 홀러 나왔다.
“으으……. 거기다 대고 숨 좀 쉬지 마요.”
맹수에게 포획된 먹잇감의 기분은 이런 것일까.
그가 다리를 제대로 얽으며 더 파고들 구석을 찾자 이재도 더는 참지못했다. 온몸을 훌고 지나가 는 낯선 감각에 몸이 자꾸만 파 들파들 떨려왔기 때문이다. 서로의 민감한 부분들이 너무 빈틈없이 닿아 있었다.
이재는 하는 수 없이 주먹을 쥐고 그의 등을 팡팡, 때렸다.
“숨 막혀요. 저 좀 놔주세요! 자세 너무 이상하단 말이에요!”
그러자 로더릭이 파란 눈을 떴다. 그는 한동안 잠에 취한 눈을 했다.
그러나 잠시 뒤,상황 파악이 되고부터는 그도 조금 놀란 것 같았다.
얼굴이 시뻘게진 왕후가 자신한테 거의 반쯤 깔려 있었다.
게다가 그녀는 눈물까지 글썽거리고 있었다.
“아니,그게 아니라 너무……”
횡설수설하는 왕후의 모습에 당 황한 그는 재빨리 몸을 일으켰다.
이재가 반사적으로 이불을 목 끝까지 끌어 올렸지만,그는 오히려 그녀가 덮고 있던 이불을 획 들췄다.
“악! 왜 이러는 거예요……”
이재는 화들짝 놀랐지만,그녀의 옷차림이 이번에는 멀쩡하다는 것을 확인한 그는 다시 고이 이불을 덮어 줬다.
로더릭은 침대가에 앉아 잠시 얼굴을 문질렀다.
그리고 이재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본인 의도와 상관없이 심하게 거머리 짓을 한 그는 어딘가 난감한 표정이었다.
그는 천천히 손을 뻗어 그녀의 어깨를 한 번 쥐고,살구색 머리를 살짝 쓰다듬었다.
그게 나름의 사과였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한참 뒤였다.
“미안”
“………”
“헤일리,미안하다. 많이 놀랐나?”
그녀가 불쌍한 얼굴로 이불을 끌어 올리는 것을 본 로더릭은 바로 침대에서 일어났다.
“……내가 지금 바로 나갈 테니 편히 있어라.”
남녀가 한 방에 가까워질 수 있는 첫날밤이라는 치트키를 허무하게 날려 버린 바 있는 부부는 조금 깊은 자세 정도로도 당황스러워했다.
그리고 로더릭은 본인 말처럼 바로 나가지는 못했다. 이상하게 발길이 멸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강압적으로 군 기억은 없었다.
그는 오히려 지금 몸 상태가 이상할 정도로 가뿐했다.
하지만 원래 본인의 정신 상태에 대해 걸리는 부분도 많고,치한을 만난 것 같은 왕후의 표정도 걸렸던 로더릭은 눈썹 끝을 긁적였다.
그는 이재의 이마를 조심스럽게 쓸었다.
“해일리.”
“………”
“대답 좀 해라. 이제 나랑 말 안 하려고?”
“………”
“혹시 지금 나 무서워서 그래?”
“……아니요, 그런 게 아니라.”
당신도 일부러 그런 건 아닌 거 아는데,저도 당황스러워서요.
그가 평소보다 훨씬 자상하고 조심스러운 태도로 나오자,이재는 이상하게 부끄럽고 창피해졌다.
그녀는 뭐가 잘못됐는지,지금 왜 이런 기분인지도 모른 채 이불만 만지작거렸다.
그러자 난감한 표정으로 이재를 보고 있던 로더릭은 그대로 자리를 피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