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llow Your Heart RAW novel - Chapter (129)
마음이 이끄는 대로-129화(129/134)
#2-3.
이재는 새벽같이 일어나 명상을 하는 중이었다.
한발 늦게 눈을 뜬 왕은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생각했다.
요즘 확실히 왕후가 이상하다고.
이미 기사단장에게 확인은 끝마 친 후였다.
사적인 고민이 있었고, 왕후는 별다른 말 없이 바닥에 뭔가를 써 주었다는 것이다.
그것도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왕후의 말에는 거짓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왕은 감이 좋은 사람이었다.
이재가 뭔가를 감추고 있다는 느낌을 지우기는 어려웠다.
마음 상한 게 있는 것 같지는 않은데, 묘하게 평소와 다른 부분이 있었다.
국왕은 아내의 동선을 무척 잘 알고 있었다.
일을 할 때는 서재와 접견장. 쉬고 싶을 때는 호숫가. 약초를 돌볼 때는 아서의 숲.
후원은 이재가 약을 달이거나 활을 쏘기 위해 찾는 곳이었다.
최근 이재는 틈날 때마다 후원에서 살고 있었다. 어느 정도였냐면 빠지지 않고 하던 새벽 명상도 거르고 후원에 가 있곤 했다.
왕이 눈을 뜨면 옆자리가 비어있기 일쑤였다.
같이 자자고 하면 읽을 책이 있다고 서재로 가 버렸고, 너무 오지 않아 데리러 가면 서재에 없었다. 그때도 그녀는 후원에 있었다.
사실은 그 점이 가장 이상했다.
그가 후원까지 찾아가면 그곳에는 약을 달인 흔적도 없었고,과녁도 말끔했기 때문이다.
이재만 후원 한복판에 가만히 서 있었을 뿐이다.
마치 그가 올 것을 알고 있었다는 둣이 미소 지으며.
‘부인,뭐 해?’
‘그냥 쉬고 있었는데요?’
‘이 새벽에?’
‘방에서 나랑 같이 쉴 수는 없건가?’
나랑 같이 오면 되잖아.
‘야. 나 싫어?’
그는 정무를 제외한 모든 시간을 아내와 함께하고자 했다.
그런 데 그녀는 도통 방에 붙어 있지 않았다.
같이 있고 싶은 마음이 안 느껴졌던 것이다.
나중에는 어떤 느낌까지 들었냐면 아내가 자신을 피해 다니는 것 같았다.
그 결과 그는 요즘 아내가 다 른 사내놈과 인사를 나누는 것만 봐도 짜증이 날 지경이었다.
엊그제 또 옆에 없길래 문을 열었는 데, 기사단장과 소곤거리는 것을 봤을 때는 폭발할 뻔했다.
넌 무슨 좋은 이야기이길래 네 남편 놔두고 다른 남자랑 놀고 있냐고.
하지만 그러한 짜증이 가신 뒤에 고개를 드는 건 늘 불안감이 었다.
국왕은 턱을 된 채, 계속 이재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옆에는 똑 같은 자세로 가부좌를 틀고 있는 함의 정령이 있었다.
그는 갑자기 그 정령에게 물어 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내 아내, 요즘 대체 왜 저러는거냐고.
그리고 왕의 시선을 느낀 함의 정령은 눈에 띄게 움칠했다.
머뭇 거리던 정령은 주눅이 들어서는 자신의 집으로 기어들어 갔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왕이 다시 이재에게 시선을 돌렸을 때였다. 그녀 역시 정령을 바라보다가 왕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폐하.”
“…….명상은 다 했어?”
마음속에는 불만이 있었지만, 정말 오랜만에 함께 맞이하는 새벽이었다. 왕은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그러나 다시 한번 함 쪽을 힐끔거린 이재는 왕에게 물었다.
그가 예상하지 못한 질문이었다.
“정령은 왜 자꾸 노려보시는 거예요?”
“어?”
국왕은 저게 무슨 뜻이지,한참 동안 생각했다.
그는 황당하다는 둣 되물었다.
“내가 언제.”
물론 둘만의 시간을 방해받고 싶지 않아서 가만히 바라본 적이 몇 번 있긴 했다.
그렇지만 노려 본 적은 없었다. 적어도 방금 전 만큼은 결코 아니었다.
얘가 지금 사람이 얼마나 참고 있는 줄은 모르고,이상한 소리를 하네.
기가 막혀서 헛웃음을 흘리던 왕은 조금씩 미간을 좁혔다.
“너,혹시 그것 때문에 화난 건가?”
“……네?”
“쟤가 너한테 그런 식으로 일러 바쳤어?”
“네? 아니,뭐… 그렇진 않은데요. 아무튼 겁주지 마세요. 안쓰럽잖아요.”
로더릭은 더욱 기가 막힐 따름이었다.
너무 억울했던 그는 적어도 이 부분은 아내에게 해명하고 싶었다.
넌 아니겠지만 사람들은 원래 대부분 나를 무서워한다고.
“이재. 넌 내가 저런 거한테 겁이나 줄 만큼 한심해 보여?”
이재는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뭔가 더욱 답답해진 로더릭은 머리를 거칠게 쓸어 넘겼다.
안 되겠다,싶었던 그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의 표정이 좋지 않자,이재는 당혹스러운 둣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로더릭은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나가자.”
“네?”
“바람 쐬면서 나랑 얘기 좀 해.”
그는 이재가 움직이기 전에 먼 저 손을 찾아 쥐었다.
그리고 그 녀를 침대 밖으로 이끌었다.
국왕과 이재는 왕후궁 주변을 잠시 거닐었다.
왕이 한동안 말이 없었기 때문에 그녀는 그저 눈치만 보고 있었다.
이상하게 어색했 지만,두 사람은 손을 꼭 잡고 있 었다.
성안에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분수를 만드는 작업은 시일이 오래 걸렸다.
수로를 연결해서 물 을 끌어와야 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아직 가늠할 수 있는 건 위치나 크기 정도였다.
왕과 이재는 투박하게 파헤쳐진 땅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재도 왕이 그녀를 위해 분수를 만들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사실 그녀는 웅덩이를 파 주느니,호수를 파 주느니 하는 게 장난인 줄로만 알았었다.
농담으 로 이해한 건 비단 왕의 시종들 만이 아니었다는 뜻이다.
국왕은 이재를 그쪽으로 이끌었다.
그는 감색 상의를 벗어 바닥에 깔고 그녀를 위에 앉혔다.
그러고는 옆에 앉아 턱을 괴고 이재를 빤히 바라보기만 했다.
한참의 시간이 흘렀을 것이다. 국왕은 턱짓으로 뒤에 서 있는 사람들을 물리더니 그녀를 자신 쪽으로 비스듬히 돌려 앉혔다.
이재의 구두를 손수 벗겨 준 그는 그녀의 발목을 다시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마치 물가에 맨 발을 담그둣이.
텅 빈 흙구덩이가에 앉아 발을 대롱거리고 있는 이재는 황당할 따름이었다.
“뭐 하시는 거죠,지금?”
하지만 옆에 나란히 앉은 국왕은 태연한 표정이었다.
“시원해?”
“그래야 하는…… 건가요?”
그러자 국왕은 픽 웃더니 검집에서 검을 뽑았다.
머지않아 날카로운 검 끝에는 푸른 기운이 물방울처럼 맺히기 시작했다.
그가 텅 빈 곳을 향하여 기를 쏟아붓자,그 공간에는 서서히 푸른 기운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푸른 기운은 마치 물처럼 차오르더니 그녀의 발목 부근에서 넘실거렸다.
“그럼 이제는 좀 시원한가?”
비로소 왕의 의도를 알게 된 이재는 웃음을 흘렸다.
그녀도 동참하기 위해 손을 뻗어 기를 불 어넣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푸른 기운에 반짝임이 더해졌다. 마치 햇빛을 받은 호수처럼.
둘은 한동안 그 광경을 바라보았고,로더릭은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아 자신에게 기대게 했다.
살구색 머리칼을 부드럽게 쓰다듬던 그는 물었다.
“부인. 요즘 무슨 일 있어?”
“………”
“혹시 내가 널 서운하게 한 게 있는 건가?”
“……뭐가요?”
“그냥. 좀 이상한 것 같아서 불안하네.”
이재는 로더릭을 빤히 바라보았다.
눈을 깜빡이던 그녀는 곧 허물어지둣 웃어 버렸다.
뒤늦게 남편이 왜 저런 표정을 하고 있는지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재는 요즘 공식 일정을 제외한 대부분의 시간을 후원에 있는 창고에서 보내고 있었다. 사실 왕이 잠든 사이 몰래 갔다 온 적도 있었다.
이 성의 주인은 국왕이었고,곳 곳에는 왕의 눈과 귀가 있었다.
이재가 의존할 수 있는 건 데보라와 부적값을 지워 둔 기사단장 정도였다.
완전 범죄를 꿈꾸는 건 어려웠기에 그녀도 서둘렀는데,그는 그게 더욱 이상하게 느껴진 모양이 었다.
사실 왕이 알아보려고만 들었다면, 어떻게든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그저 그가 택한 것이 이런 방법이었을 뿐이다.
이재는 빙긋 웃으며 물었다.
“왜 그런 생각을 하셨어요? 아닌데요.”
네가 이상하게 뭔가를 감추는 것 같고, 방에서도 쪽잠만 자고 획 나가 버리니까.
사실 거슬리는 점은 몇 가지 더 있었지만, 그는 눈썹 끝을 긁적이다가 물었다.
“그럼 혹시 나한테 요즘 마음이 좀…… 식었어?”
국왕은 이번에는 정말 말도 안 되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이재는 크게 웃음을 터뜨렸고,왕은 한동 안 말이 없었다.
대답을 정확하게 이해한 그는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그것만 아니면 다른 건 다 됐어.”
“로더릭. 오해했어요?”
“그래. 사실 좀 서운할 뻔했잖아.”
“………”
“너,나 버리기만 해.”
진짜 지옥 끝까지 쫓아갈 생각이었다.
이제 보이는 것도 있는데 못할 것도 없었다.
왕은 아내가 그럴 리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괜한 소리를 했고, 이재는 고개를 저었다.
“로더릭, 저는 그 말 안 좋아해요. 아시잖아요.”
미소 짓던 이재는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려놓고 몸을 기울였다.
작은 몸이 가슴팍에 바싹 붙어 오자,그는 온몸이 다 녹아내리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재는 턱을 살짝 치켜들었고, 그는 고개를 숙여 입술을 맞댔다.
그녀는 그의 입술을 두어 번 물었다가 놓았다.
초옥, 초옥 하는 소리가 울리자 그는 입술을 열어 주었지만, 그 이상은 아무것 도 하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키스를 받기만 했다.
살랑이는 봄바람 같은 그녀의 키스를 느끼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재가 입술을 떼어 내자,로더릭은 이마를 매만지며 머리를 여러 번 쓸어 올렸다. 그는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어떡하지.”
“뭐가요.”
“화가 다 풀린 것 같아.”
그녀는 웃음을 터뜨렸다. 화가 나 있긴 하셨군요?
이재는 왕에게 미안해서 그의 뺨과 입술에 몇 번 더 입을 맞추 었다.
이어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그의 감색 상의를 이두지게 팡, 팡 털었다. 로더릭은 의아한 눈이었으나,이재는 손을 척 내밀었다.
“로더릭,사실 저 자랑하고 싶은 거 있어요.”
“뭔데?”
제가 오랜만에 이 세상에 선보이는 야심작이에요.
대답 없이 웃기만 하던 이재는 빨리 일어나라며 손을 흔들었다.
국왕이 손가락을 가볍게 그러쥐고 일어나자,그녀는 그를 자신의 후원으로 이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