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llow Your Heart RAW novel - Chapter (130)
마음이 이끄는 대로-130화(130/134)
#2-4.
강이재의 괴작을 사전에 확인한 건 데보라와 제이드뿐이었다.
그리고 세 사람의 의견은 엇갈렸다.
‘놀라실 것 같습니다.’
‘그래도 좋아하시긴 할 겁니다. 정성이 들어갔지 않습니까?’
‘웃으실걸? 물론 좋아도 하실 거야.’
후원에 도착한 국왕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후원 가장자리에 굉장히 공격적인 조각상이 한 쌍 서 있었기 때문이다.
강이재가 심혈을 기울였던 초기 작들의 확대 버전이었다.
왕은 마른세수를 하며 한숨만 푹,푹 쉬었다.
그리고 이재의 예상은 적중했다.
이마를 감싸 쥔 왕이 곧 어깨를 떨며 웃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흘러나온 목소리는 괴로워서 신음하는 것 같았다.
“부인……. 이게 대체 무슨 짓이야.”
“로더릭이 지난번에 공방에서 사 준 조각도들로 깎은 거예요.”
조각도를 선물해 준 소중한 마음에 화답하지 않을 수가 없잖아요. 오는 게 있으면 가는 것도 있 는 게 세상 이치예요.
그래서 전에 얘기하신 대로 제 작품 세계를 마음껏 펼쳐 보았습 니다.
“사실 조각도로 안 되는 부분이 있어서 망치질도 했어요.”
이재는 빙긋 웃으며 말했고,계속 몸을 들썩이던 왕은 이제 아예 얼굴을 가려 버렸다.
“나 지금 너무 힘드니까 너도 조금만 참았다 얘기하자.”
이재는 고개를 끄덕였지만,왕은 멈추지 않는 웃음 때문에 한 동안 괴로워했다.
그는 비로소 자신이 글래스딘 영지에서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깨달았다.
내가 얘한테 대체 뭘 사 준 거야.
왕이 웃음을 간신히 누른 건 그로부터 한참 후였다.
그는 비로 소 장승을 찬찬히 감상할 수 있 었다.
조각상은 아내의 키보다 조금 컸는데,얼굴만큼은 방에 있는 것들과 닮아 있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훨씬 웃기고 정감이 담긴 것처럼 느껴졌다.
이건 익숙해져서인 걸까,조각 한 이의 마음이 한결 평온해져서 인 걸까, 아니면 바라보는 이의 시선이 달라져서인가.
그는 이재에게 간단히 자신의 감상을 전달했다.
“멋진 친구네.”
“역시 그렇죠?”
“그래. 그런데 우리 콩알, 이번에는 마음을 너무… 크게 쓰신 거 아닌가?”
이런 건 좀 알뜰해져도 괜찮을 것 같은데. 이상한 부분에 손이 크지 싶었다.
하지만 이건 이재가 아는 평균 보다는 작은 축에 속했고, 그녀는 자세한 설명 대신 농담으로 받았다.
“크니까 더 귀엽지 않나요?”
“글쎄. 크니까 확실히 더 웃기긴 하네.”
“그렇다면 성공이에요. 반쯤은 폐하 보고 웃으라고 만든 거거든요”
“그랬어?”
이재는 고개를 끄덕였고,웃느라 반쯤은 이성의 끈을 놓쳤던 로더릭은 뒤늦게 깨달았다.
왕후 는 이걸 만든다고 굴속에 드나드는 여우처럼 후원에 왔다갔다 했던 것이다.
“넌 그걸 지금 말하면 어떡해.”
“폐하,누구든 야심작을 미완성인 상태로 공개하고 싶진 않은 거예요.”
“다른 사람들은 봤을 거 아냐. 이 무거운 걸 너 혼자 여기 파묻진 않았을 테고……”
말을 내뱉으며 국왕은 또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곧바로 뒤에 서 있는 자신의 친우를 노려보았다.
어쩐지. 근데 넌 어떻게 이런 얘기를 안 해?
사실 아내가 다른 남자랑 속닥 거리는 게 무척 거슬렸던 그는 슬쩍 발을 들어 올렸고, 제이드는 시선을 피하며 딴청을 피웠다.
이재는 웃으며 그런 왕의 소매를 붙잡고 흔들었다.
“옮길 때도 제이드가 도와줬어요. 사실 제가 좀 괴롭혔어요.”
부적 한 장 쓰고 진언을 옮어준 대가치고는 너무 많이 부려먹은 것 같았다. 이재는 내심 미안해하고 있었지만,왕은 잘했다는 둣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훌륭한 일을 했네.’
“몇 대 좀 때리기도 하지 그랬어? 기사단장은 평생 누구한테 검으로는 져 본 적이 없는 놈이거든.”
듣고 있던 제이드는 조금 억울 했다.
왕가의 기운이 깨어나기 전에야 그랬지만, 그는 요즘 왕에게도 대련으로 매번 패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전에도 체술로는 왕에게 이겨 본 적이 거의 없었다.
그리고 지켜보던 사람들은 다소 신기한 기분이었다.
조각상은 한없이 무서울 뿐이었는데,남편은 남편이었는지 마음에 든 기색이 역력했기 때문이다. 조각상을 유심히 들여다보는 푸른 눈은 따뜻 했고,사람 만지듯이 어루만지는 손길은 다정하기만 했다.
국왕은 무척 재미있어하며 말했다.
“이재. 그럼 이거 나 주면 안 되는 건가? 내 방 앞에 세우고 싶은데.”
“로더릭 거예요. 원래 그쪽에 세우려고 했는데, 로더릭은 어차피 제 방에서 자니까요.”
국왕은 네 말이 맞다는 둣 고 개를 끄덕였지만,이재는 새침하게 덧붙였다.
“혹시 각방 쓰게 되면 그땐 옮겨 드릴게요.”
우리에겐 제이드가 있잖아요? 제이드가 또 도와줄 거예요.
“아,무서우니까 그런 농담은 하지 말고.”
로더릭은 이재를 꼭 끌어안았지만,픽 웃은 그녀는 품 안에서 꾸물꾸물하더니 빠져나왔다.
그녀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갑자기 어딘 가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이재가 향한 곳은 창고이자 그녀의 작업실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그곳에서 나온 그녀의 손에는 조각도가 한 자루 들려 있었다.
국왕은 몹시 의아한 둣 이재를 바라보았고, 한번 웃어 준 그녀는 장승 앞에 쭈그리고 앉았다.
아직 끝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녀에게는 가장 중요한 작업이 남아있었다.
이재는 나란히 서 있는 장승들에게 별명을 새겨 주었다.
한쪽 하단에는 로더릭. 나머지 한쪽에는 이재.
허리를 굽힌 채 자신의 이름이 새겨지는 걸 들여다보던 로더릭은 애매한 얼굴이었다.
“……부인.”
“네.”
“그 정도까지 바란 적은…… 아니야. 고맙네.”
국왕은 한동안 이마를 매만졌다.
이렇게까지 날 생각하고 있는 건 너무 고마운데, 또 고맙다는 말이 바로 나오기는 힘든 생김새였다.
국왕은 조각상과 자신 사이에는 아직도 낯가림이 남아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결국 이번에도 눈가를 가리고 웃어 버렸다.
일찌감치 회의를 끝낸 국왕은 방에서 왕후가 오기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그때였다.
함의 정령은 집 밖으로 슬그머니 나오려다가 왕을 보고는 후다닥,숨어 버렸다.
그걸 물끄러미 보고 있던 왕은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였다가 침대에서 일어섰다.
그는 낡은 나무 함을 검지로 톡,쳤다.
하지만 한참을 기다려도 돌아오는 반응은 없었다.
왕은 결국 함 뚜껑을 열었고, 순식간에 집 지붕이 날아간 정령은 몸을 옹크린 채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국왕은 몹시 인상을 썼다.
대체 내가 뭘 어쨌다고 떠는 건지.
그리고 왕이 인상을 찌푸리자, 정령은 아까보다 더욱 몸을 옹크렸다.
한숨을 쉰 그는 입을 열었다.
“야.”
-……..
“너 말이야.”
동그란 눈을 이리저리 굴리던 정령은 최대한 귀여운 표정을 지 으며 말했다.
-응? 나아?
하지만 국왕의 반응은 생각보다 까칠했다.
“말이 많이 짧네.”
“………”
“그래,그건 네 맘대로 하기로 하고.”
“………”
“좀 나와 봐.”
나무 함에서 둥을 돌린 국왕은 성큼성큼 걸어 침대로 돌아왔다.
곧이어 함의 정령이 엉금엉금 침대 위로 올라오자,그는 턱을 괸 채 유심히 정령을 관찰했다.
“너, 이 방 밖으로도 나갈 수 있는 건가?”
국왕이 말을 걸었지만,정령은 눈치만 보면서 바로 대답하지 못 했다.
국왕은 깊은 한숨을 쉬었다. 내가 지금 누구랑 얘기하는 건가 싶었다.
그는 사실 시야가 열린 뒤로도 인간 외의 존재와는 대화를 나눠 본 적이 없었다. 아내가 그래 왔던것과는 달리 그는 그럴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왕은 이번만큼은 인내심을 발휘하며 다시 한번 물었다.
“혹시 내 말 안 들렸나? 나 여 러 번 묻는 거 싫어해.”
-……나갈 수는 있는데,멀리 갈 순 없어. 빨리 돌아와야 해. 저기가 내 집이거든.
정령은 통통한 손가락으로 나무 함을 가리켰고,그걸 보고 있던 국왕은 픽 웃었다.
정령이 자기 집이라고 말한 함은 사실 다 허물어져 갈 것 같은 외양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국왕은 그 집이 어떤 면에서는 튼튼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내가 부적으로 보수하고, 틈틈이 기를 불어넣은 결과일 것이다.
쪼끄마한 게 참 여기저기 힘을 쓰고 다니는구나, 싶어서 그는 얕은 한숨을 내쉬었다.
“너 말이야.”
-나?
“그래,너.”
-………..
“앞으로 왕후한테 누가 수작 부리면 나한테 얘기하기로 하자. 왕후가 지난번처럼 이상한 일 꾸미면 그것도 얘기해.”
-……….
“혹시 위험한 일 생기면,그건 무조건 바로 나를 찾아오고.”
-………….
“알아들었어? 아, 그리고 지금 한 얘긴 왕후한테 하지 마라.”
국왕은 지금 팔뚝만한 정령에게 이상한 청탁을 넣고 있었다.
그리고 말을 마친 그는 가만히 정령의 반응을 관찰했다.
이재는 국왕에게 말한 적이 있다. 걔는 그냥 어린아이처럼 순진한 영이라고.
그러나 그녀가 잊었을 뿐이지, 함의 정령은 첫 만남에서도 귀여운 외모로 부적을 갈취한 바 있었다.
정령은 왕의 청탁에 바로 조건을 내걸었다.
-그러면 앞으로는 나 안 노려 볼 거야?
그러자 제법 풀어진 표정을 하고 있던 로더릭은 대번에 인상을 굳혔다.
역시 너였구나.
“……네가 일러바친 게 맞네.”
찔끔한 정령은 다시 몸을 옹크렸으나,눈치를 보면서도 포기하지 않았다. 엉덩이를 조금씩 뒤로 빼면서도 물었던 것이다.
-너도 이재처럼 나랑 놀아 줄 거야?
“뭐?”
-그럼 우리도 친구가 되는 거냐고!
국왕은 어처구니가 없어서 헛웃음을 홀렸다.
왕한테 뭐,이딴 게 다 있나 싶었다.
하지만 그는 결국 고개를 짧게 까딱였다.
아내의 안위가 달려 있다면 그에게 원래부터 밑지는 거래란 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아……. 그래, 그렇다고 치자.”
같이 놀아 줄 수 있는 새로운 사람을 발견한 정령은 금세 좋아라, 했다.
그 모습은 순수한 것 같기도 했고, 어찌 보면 영악한 것 같기도 했다.
여전히 기가 차긴 했지만,솔직 하게 말해서 국왕은 만족스러웠다.
어쨌든 그도 손쉽게 원하는 바를 달성했으니까.
왕성은 결국 온갖 청탁과 은밀한 대화가 난무하는 공간이었다.
그리고 지금 거기에 한몫하고 있는 건,아내 몰래 파수꾼을 심어 놓은 이 성의 주인. 국왕도 마찬가지 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