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llow Your Heart RAW novel - Chapter (131)
마음이 이끄는 대로-131화(131/134)
#외전 3.
누군가 너에게 달려들 때
#3-1.
이재는 사실 고민이 있었다.
카이엔 왕가는 손이 귀했다.
블 레이크 성을 쓰는 이가 많지는 않았던 것이다.
세상을 살다 보면 개인의 상황을 트집 잡아 공격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하지만 지나보면 그 사람들은 사실 내 인생에 큰 애정과 지속적인 관심은 없다.
이재는 그걸 잘 알고 있었고 거기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누군가 왕에게 말을 얹는 건 싫었다.
분명히 후계 문제로 이러쿵저러쿵 떠들어 대는 사람들이 많을 텐데,왕은 이재에게는 아무런 내색이 없었다.
‘왜 아이가 안 오지.’
생길 때도 된 것 같은데. 확률 이 높은 날짜를 열심히 계산했단 말이야.
아이를 점지해 준다는 삼신할머니께 이유를 물어보고 싶을 지경이었다.
결국 그녀는 고민하다가 왕에게 먼저 말을 꺼냈다.
“로더릭.”
“어,왜.”
“아이 안 낳고 싶어요?”
그러자 잘 준비를 하고 있던 왕이 멈칫하더니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왜. 아이…… 많이 갖고 싶어?”
“그렇긴 한데요. 사실 잘 모르겠어요.”
기대감은 당연히 있었다.
그렇지만 솔직하게 말해서 이재는 조 금 무서운 것도 사실이었다.
그녀 는 부모에 대한 기억이 없었기에 자신감도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혹시라도 아이가 자신 같은 시를 갖게 될까 봐 두렵기도 했다.
자신 마음대로 되는 부분은 아니었지만,아이가 그 눈 때문에 슬퍼한다면 그건 결국 내 잘못인 게 아닐까 싶어서.
“근데 그건 갑자기 왜.”
“갑자기라뇨. 회의할 때 후계 얘기 같은 것도 나올 거 아녜요.”
국왕은 그 말에 살짝 인상을 썼다.
아내의 얼굴에 근심 걱정이 어린 이유를 짐작했기 때문이다.
그는 서늘해진 목소리로 씹어뱉 둣 물었다.
“누구야.”
“네?”
“누가 너한테 그런 얘기를 홀린 거냐고.”
“아니,그런 사람 없는데……”
이재는 부인했으나,그는 그녀가 어디 가서 무슨 소리를 듣고 온 게 분명하다고 확신했다.
귀족들은 국혼 초에도 저런 종류의 화제를 심심치 않게 꺼내곤 했기때문이다.
한번 못 박은 뒤로는 쏙 들어갔는데, 화살이 온화한 아내 쪽으로 향한 건가 싶었다.
왕은 접견록을 다시 들춰 봐야 하나,시녀장에게 확인해야 하나 생각하면서도 점점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그는 일단 아내에게 말했다.
“부인,사람들은 다 부인처럼 고민한 후에 말하는 게 아니야. 누가 지껄이면 그냥 불쌍한 인생 이라서 저런가 보다,하고 무시해”
“………”
“공감 능력이 떨어지나 보다, 하든가. 살면서 그런 무식한 사람 못 봤나? 꽤 있었을 텐데?”
“아니,왜 이렇게 또 화가 나셨지. 원래 남편하고 이런 의논 하는 거잖아요. 전 혹시 무슨 이상이 있는 건 아닌가 걱정도 되고……”
이재는 국왕의 구겨진 얼굴을 어루만졌고,왕은 후우,한숨을 내쉬었다.
당연히 아내한테 뭐라고 하고 있는 게 아니었다.
왕족 에게 후계 문제는 중요했고,의무에 가까웠다.
그렇지만 국왕은 접견장을 부숴 버리고 싶은 충동 또한 참기 어려웠다.
그는 아내가 이런 일로 시무룩해하고,조바심을 갖는 게 속상했다.
왕제야 반역죄로 국법에 의해 처형됐지만,블레이크 성을 가진 다른 친족들이 없는 게 아니었다. 어차피 방법이야 많았다.
“그거 고민한다고 우리 맘대로 되는 거 아니잖아. 네가 이 밤에 속 끓이면,당연히 내 기분도 안 좋지.”
“………”
“그리고 내가 지금 후계자가 필요해서 너랑 사는 줄 알아?”
“………”
“넌 애 없으면 나랑은 안 살 거냐고.”
“무슨 말인지 알았으니까 그만 자요.”
“잠이 참 잘도 오겠다.”
왕은 퉁명스럽게 말하면서도 이재의 몸을 자신 쪽으로 끌어왔다.
그리고 작은 등을 토닥토닥하기 시작했다.
나 있으니까 아무 걱정 말고 자라는 듯이.
이재는 그의 품에 얼굴을 파묻고 몰래 웃었다.
남편이 별일 아니라는 듯 얘기하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기 때문이다.
사실은 든든 하기도 했다.
이재는 가슴팍에 괜히 얼굴을 비볐고,다독이는 손길은 더욱 자상해졌다.
이재는 사실 의원을 자주 찾는 유형의 사람은 아니었다.
퇴마만 아니면 크게 아픈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녀는 자신의 몸 상태 에 대해서 남들보다 잘 파악하는 편이었다. 매일같이 기를 수련하는 사람은 자신의 몸을 구석구석 들여다볼 수밖에 없었다.
가부좌를 튼 이재는 다시 한번 몸 안의 기를 순환시켰다.
그리고 곧 고개를 갸웃했다.
‘확실히 몸이 평소랑 다른 것 같아.’
정확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아까부터 미세하게 이질적인 기운이 느껴졌다.
분명 내가 지니고 있던 것과는 다른 기.
작지만 무시할 수 없는 존재감이 었다.
그녀는 몇 번이나 몸 안의 기를 순환하며 계속 고민했다.
그러다 곧 무언가를 깨달은 둣 눈을 빛냈다.
혹시 아이가 온 건 아닐까
이재의 눈동자는 절반의 기대감과 절반의 불안감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같은 시각,남편 쪽은 서재에 있었다.
국왕의 시종들은 당혹스 러운 기색이었다.
왕의 패턴이 평상시와 달랐기 때문이다.
신혼 초,국왕은 인간 수면초인 왕후 덕택에 소파나 아서의 숲에서 쪽잠을 청하곤 했다.
정말 아무 데서나 왕후 무릎만 있으면 눈을 붙였다.
장소를 가릴 수 없을 만큼 잠이 부족하고 절실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것도 과거의 이야기였다.
왕은 수면 리듬이 완전히 안정된 이후로는 낮잠을 청한 적이 없었다.
그는 언제나 일정하게 아내의 침실에서 밤에 눈을 붙였다.
그런 국왕이 갑자기 서재 소파에 길게 드러눕자,시종장은 조심스럽게 권유했다.
‘페하. 이왕 쉬실 거, 방에 가셔서 편하게 쉬시지요. 왕후 페하도 지금 방에 계신답니다.’
‘잠깐만 눈 붙이고 일어날 거다. 신경 쓰지 마라.’
하지만 잠깐이라던 시간은 점점 길어졌다.
나중에는 낮잠이라고 칭하기 무안해질 정도가 되자,시종들은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밤에 못 주무신 건가? 오늘따라 왕후 페하도 피곤해 보이신다고 하던데.’
‘두 분이 여전히 뜨겁…… 아, 아닙니다.’
국왕이 곤히 잠든 모습을 다소 희한하다는 눈으로 바라본 것은 기사단장도 마찬가지였다.
보고를 위해 찾아왔던 제이드는 시종장이 고개를 젓자,주변을 두리번거 렸다.
국왕을 발견한 그는 목소리를 낮추어 시종장에게 물었다.
“지금 폐하,주무시는 건가?”
“예,이미 꽤 되셨습니다.”
“저렇게 주무시는 건 또 참 오랜만이군.”
“그러게 말입니다.”
결국 기사단장도 다른 시종들처럼 벽에 붙어 서서 왕이 깨기만을 기다렸다. 그도 이후의 일정이 빼곡했지만,그렇다고 감히 왕을 깨울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었다.
방 안은 고요하다 못해 평화로웠다. 잠은 옮겨 다닌다고 하던가.
대기하고 있던 시종들마저 눈꺼풀이 무거워지는 오후였다.
고요한 평화가 깨진 건 국왕이 나지막하게 앓는 소리를 냈을 때 부터였다.
“으음……
수십 개의 눈동자는 동시에 국왕을 향했고,준수한 얼굴은 잠결에 인상을 쓰고 있었다.
사람들은 숨죽인 채 가만히 왕을 관찰했다.
국왕은 또 한동안 잠잠해졌다. 사람들은 안 일어나시네,하며 다시 시선을 돌렸지만 왕은 그 뒤로도 잊을 만하면 신음성을 냈다.
그리고 숨소리와 간헐적으로 홀러나오는 음성은 점점 거칠어졌다.
사실 보통 사람들은 으레 잠자 리에서 겪곤 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성 사람들, 특히 국왕을 보좌 하는 사람들은 이 부분에 상당히
예민했다.
국왕이 겪었던 대다수의 문제가 잠자리,혹은 밤과 연관이 있었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기사단장은 여차하면 바로 왕후 궁에 뛰어가서 왕후를 업고서라도 올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때,국왕은 사실 이상한 꿈을 꾸고 있었다.
그는 사랑스러운 아내와 성안을 거닐고 있었는데,집채만 한 사자 한 마리가 어슬렁어슬렁 성문을 통과했던 것이다.
로더릭은 그 맹수를 유심히 들여다보았지만,이상하게 검을 뽑아 들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때부터 사자는 여기저 기 뛰어다니며 성을 헤집어놓기 시작했다. 자기 덩치에 맞지 않는 나무에 매달리자, 나무는 우지끈 부러졌다.
그렇게 몇 그루를 해 먹은 사자는 호수로 들어가 첨벙 거렸다.
그러자 주변에 살던 다람쥐는 후다닥 도망갔다.
마침내 사자가 성 한복판에 있 는 유서 깊은 석상마저 앞발로 후려치자 로더릭은 인상을 썼다.
‘저게 아주 성을 다 때려 부수고있네.’
이건 패악스럽다고밖에는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지켜만 보고 있던 로더릭이 정말로 당황한 것은 그다음이었다.
그는 주변을 탐색하던 사자의 샛노란 눈이 정확히 왕후를 향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사자가 무서운 속도로 왕후에게 달려들자, 국왕은 얼른 그녀를 자신의 등 뒤로 감추었다.
‘안 돼. 내 아내는 건드리지 마라.’
‘절대 안 된다고.’
사자는 자신을 가로막은 국왕에게 달려들려고 했다.
그 순간 국왕의 귓가에 희미한 음성이 들렸다.
무의식 속에서 꺼내려는 둣, 누군가 몸을 혼드는 것도 같았다.
“폐하. 폐하?”
국왕은 인상을 찌푸리며 어렵사리 눈을 떴다.
눈앞에 있는 건 사자가 아니라 익숙한 얼굴이었다.
기사단장이 무척 걱정스러운 듯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괜찮으십니까?”
“………”
“무례를 용서하십시오. 아무래도 험한 꿈을 꾸시는 것 같아서 깨웠습니다.”
왕이 말이 없자,기사단장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왕후 폐하를 모셔 올까요?”
“……아니,괜찮다. 별일 아니야.”
국왕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훨씬 잠겨 있었다.
그는 주변을 둘러보 았다.
시종들이 하나같이 놀란 얼굴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국왕은 한숨을 쉬면서도 금세 생각에 잠겼다. 오랜만에 꾸는 꿈이었는데 단순히 악몽이라고 하기는 어려웠고, 또 꿈치고는 너무나 생생했다.
‘뭐지,이 이상한 꿈은?’
습관적으로 앞머리를 쓸어 올리던 그는 자신의 이마에 식은땀이 맺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