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llow Your Heart RAW novel - Chapter (133)
마음이 이끄는 대로-133화(133/134)
#3-3.
왕후가 회임을 했다는 사실은 머지않아 성 사람들과 귀족 사교계에 널리 퍼져 나갔다.
왕후에게 어른스러운 속내가 있다는 건 다들 알고 있었다.
심한 경우 노인네 같을 때도 있었다.
그렇지만 임신 소식을 듣는 순간 사람들이 하는 생각은 또 달랐다.
‘이거 애가 애를 낳는 거 아닌가.’
‘폐하 체격을 생각하면 보통 아기가 태어날 것 같지는 않은데.’
‘왜 다들 그렇게만 생각하지? 외탁을 할 수도 있는 거잖나.’
국왕도 점점 비슷한 고민을 하 기 시작했다.
꿈대로라면 콩알이 사자를 낳는다는 건데,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그리고 국왕은 이 상황을 틈타 자신의 숙원을 풀었다.
그는 어느 날 회의 중에 말했다.
“다들 들었겠지만,왕실에 모처럼 좋은 소식이 있어.”
“폐하,인사가 늦었지만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고맙군. 그래서 말인데 그대들이 협조를 좀 해야 할 게 있다.”
“………”
“앞으로 왕후가 안정을 좀 취해야 할 것 같아서.”
회의장에 둘러앉은 귀족들의 눈 에는 의문이 들어찼다.
국왕의 말 은 특별히 이상할 게 없었고,상식적이었다.
다만 그의 눈빛이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국왕은 서슬 퍼런 눈을 하면서 도 별거 아니라는 둣 툭,내뱉었다.
“왕후의 접견은 당분간 중단할 거야. 이미 잡혀 있는 것도 다 취소하겠다.”
이재는 하루 한두 건 정도 소화하는 건 기분 전환에도 좋지 않을까 했다.
하지만 국왕은 이 부분만큼은 양보할 수 없었다.
“또 안부 같은 거 전한답시고, 서신으로 쓸데없는 거 물어보든가.”
사람들은 뒤늦게 말속에 뼈가 있음을 깨닫고,고개를 조아렸다.
“급한 용건 있으면 차라리 나한테 찾아오든지.”
국왕은 인정을 베풀었지만,저 맹수 같은 왕에게 고작 고민 상담이나 늘어놓겠다고 찾아갈 귀족은 당연히 한 명도 없었다.
귀족들을 바라보는 왕의 표정은 전에 없이 상쾌해 보였다.
이재는 순조롭게 달수를 채워 갔다.
문이 닮도록 드나들며 재미있어 할 만한 것을 갖다주는 국왕은 정성이었다. 데보라와 시녀들은 보다 세세한 부분까지 완벽을 기했다.
임신 초기 몇몇 음식을 거북해 하긴 했지만, 이재는 그 시기도 비교적 잘 넘겼다.
그러나 늘 좋은 날만 있는 것 은 아니었다.
문제는 오히려 산달이 가까워질수록 불거졌다.
이렇 게 다 지나갔구나 했던 입덧이 그 무렵 지독하게 찾아왔던 것이다.
혼치 않은 경우라 왕후궁에는 비상이 걸렸지만, 이재는 그때 공기에서도 냄새가 난다고 생각했다.
숨 쉬는 것도 괴로운데,음식이 들어갈 리가 없었다.
도무지 식사를 하지 못하니 보고 있는 국왕도 괴로운 건 마찬 가지였다.
억지로 먹인다고 되는 게 아니라는 건 들어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내가 자꾸만 야위어가니 그는 계속 다른 음식을 들 고 와 권할 수밖에 없었다.
하루는 그런 일이 있었다.
‘이재. 이거 한번 먹어 봐. 이것도 안 내켜?’
‘아기 생각하면 먹고 싶은데, 잘 안 넘어가요.’
그때 국왕은 좀 괴로운 얼굴을 했다.
‘이런 말 해도 될지 모르겠는 데…… 내 말 혹시라도 너무 서 운하게 듣진 말고.’
‘네?’
‘아기도 아기지만, 난 네가 널 생각해서 먹었으면 좋겠다.’
그녀는 왕이 입에 넣어 주는 대로 최대한 받아먹었으나,결국 음식을 게워 내고 말았다.
국왕은 미안해하는 이재에게 괜찮다며,한참이나 도닥여 주고 나왔다.
그렇지만 밖에서는 하루 종일 까칠했고,한숨만 푹푹 쉬었다.
결국 그날은 왕 앞에서 아무도 왕후와 아기 얘기를 꺼낼 수 없었다.
성 사람들은 걱정을 하면서도 내심 궁금해했다.
얼마나 성을 요란하게 뒤집어 놓을 아이가 태어나길래 이렇게 사람들을 애타게 하나.
태평한 궁금중이었다. 그때까지 만 해도 상황이 거기서 더 심각 해질 거라고 생각한 사람들은 없 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정일이 가까워질수록 이재의 상태는 더욱 나빠지기만 했다.
이재는 태어날 아이가 비범한 기운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언제 부턴가 느끼고 있었다.
처음에는 정말 손톱만큼 작은 기운이었지만,시간이 지날수록 그 기운이 강대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태아의 기운은 아직 다듬어지지 도, 정형화되어 있지도 않았다.
문제는 이재 또한 특유의 기를 가진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태아가 통제하지 못하는 기들은 이런 형태로, 또 저런 형태로 이 재의 기와 충돌하고는 했다.
평소라면 그녀는 그 기운들을 부드럽게 조화시키고 잠재울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한동안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한 그녀는 진언 한 마디 제대로 옮지 못했고, 아무 때나 뛰쳐나오는 기를 다스릴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
의원은 매일같이 왕후궁을 드나 들었다. 그는 왕후의 상태가 왜 이 정도로까지 나빠지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국왕에게만큼은 그 이유가 보였다.
왕은 정말 뭐라도 해 보고 싶었다.
그러나 감히 아내 몸에 손을 댈 수가 없었다.
쇠약해진 몸 에 함부로 또 다른 기를 쏟아부었다가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 도 예측할 수 없었다.
애초에 국 왕은 자신의 기를 이재처럼 치유의 목적으로 다루지 못했다.
그리고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예정일을 앞둔 그녀가 고열에 시달리기 시작하자, 국왕은 깊은 절 망감을 느꼈다.
국왕은 강제로라도 약재를 먹이려고 했다.
그러나 이재는 성인 몸에도 독한 약초는 아기한테는 치명적인 거라고 최대한 물수건 같은 것에만 의존하려고 했다.
결국 그녀는 최악의 몸 상태로 출산을 앞둬야만 했다.
의원은 몹 시 송구해하면서도 위험할 수도 있다는 말을 국왕에게 올릴 수밖 에 없었다.
국왕은 아내의 말은 전적으로 신뢰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생각까지 들려고 했다.
사자가 아내에게 달려든 건 이런 상황을 예지한 게 아닐까. 아내에게 버거울 거라고. 위험할 거라고.
혹시 아내가 잘못되면…… 난 어떡하지.
이재의 얼굴에는 아직 열꽃의 혼적이 남아 있었다.
제대로 먹지 못한 얼굴은 야위었고,팔뚝은 앙상하기만 했다.
국왕은 침대에 누워 있는 그녀를 하염없이 내려다 보았다.
그런데 그 형편없는 얼굴을 하 고도 이재는 말했다. 아까 전부터 산통이 있었는데도 담담하게 웃으면서.
“별일 아니에요. 다른 사람도 다 해요. 로더릭이랑 나도 다 이렇게 태어났을 거예요.”
그러자 내내 참고 있던 그는 이를 악물었다. 눈물이 날 것 같은 기분이었다.
“누군가가 했다고…… 이게 별 일 아닌 게 되는 건 아니잖나!”
아내는 언제나 별 게 아니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그게 정말로 별 게 아니었던 적이 있기는 한가?
그는 너무 괴로워서 버럭,외쳤 다가 자신은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는 이 재의 손을 붙잡고 고개를 숙였다.
“미안해. 이재. 내가 나쁜 자식이야. 내가……”
“………”
“잘못은 다 나한테 있다.”
로더릭은 자신이 파렴치한이 된 기분을 지우기 어려웠다.
두 사람이 아이를 계획하고 관 계를 가지면, 아이가 올 거라는 건 누구나 예상하고 기대하는 수 순이었다.
그 순간이 고통스럽다는 것도, 어떤 사람에게는 죽을 각오가 필 요하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자기 아내가 다 죽어 가는 얼굴을 하니, 그는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이기적인 인간이 된 것 같았다.
이게 어떻게 숭고한 행위인 걸까. 사람이 저렇게나 아픈데. 다 죽어 가는 얼굴을 하고 있는데.
우리가 같이 만든 결과인데, 왜 너만 이렇게 죽을 고생을 해야 해. 숭고하다면서 뭐가 이렇게 불공평하냐고.
끊임없이 미안하다고 말하던 그는 어느새 얼굴을 가린 이재의 손을 떼어 냈다.
그런데 계속 희미하게 웃고 있던 이재는 갑자기 주룩주룩 울고 있었다.
“내 아이예요. 우리 아이라고요.”
“………”
“로더릭. 이런 걸로 저한테 사과하지 마세요. 사람이 태어나는 건 미안해야 할 일이 아니잖아요.”
“………”
“저는 제 아이가 저보다는 축복받으면서 태어났으면 좋겠단 말이에요!”
이재는 말하면서 울컥했고,당황한 로더릭은 서둘러 아내의 눈물을 홈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뜻 아닌 거 알잖아. 나는 네가 정말로 소중하니까…… 그래서 그래. 울지 마. 나,정말 가슴 찢어질 것 같아.”
“그럼 로더릭도 웃어 줘요.”
언제나처럼 농담을 걸어 주고, 별일 아니라는 것처럼 가벼운 말들을 던져 주세요.
이 사람이 가진 좋은 기운을 전달받고 싶었다.
그래서 그녀는 다시 한번 먼저 희미하게 웃어 주었다.
“혹시 제가 부르면 와 줘야 해요? 어디 가면 진짜 배신이야. 다들 그건 평생짜리라고 했어요.”
“당연하지. 계속 여기서 기다릴 게. 내가 빌고 있을게. 괜찮을 거다. 우리 부인은 재주도 많고 똑 똑해서 뭐든 다 잘하잖아.”
국왕은 아내의 말에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사실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잘 몰랐다.
어느 정도 준비가 갖춰지자,사람들은 국왕에게 이제 그만 나갈 것을 권유했다.
하지만 왕은 몸이 굳은 사람처럼 우두커니 서 있었고, 그런 그의 등을 떠민 것은 기사단장이었다.
그리고 문이 닫혔을 때부터 국왕의 표정은 더욱 처참해졌다. 여기서부터는 정말 해 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걸 실감했기 때문이다.
간헐적인 비명 소리는 선명하게 귓가에 와서 꽂혔다. 꾹 눌러 참는 걸 잘하는 사람이란 걸 알기 때문에 그게 더욱 고통스럽게 느껴졌다.
“어,어떡해.”
“……폐하.”
“……제이드. 어떡하난 말이다.”
“폐하,옆에서 많은 이들이 돕고 있습니다. 반드시 괜찮으실 겁니다.”
“결국 나는 아무것도 해 줄 수가 없잖아. 대신해 줄 수도 없고, 같이해 줄 수 있는 것도 없다.”
“………”
“사랑한다면서,난 어떻게 이렇 게 무능할 수가 있냐는 말이다.”
국왕은 사실 제이드에게 이재가 못 버티면 어떡하냐고 묻고 싶었다. 죽으면 어떡하냐고.
그러나 말을 함부로 뱉으면 그 대로 일어난다는 아내의 이야기가 떠올라서 그저 떨리는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는 것밖에는 할 수가 없었다.
꼬박 하루를 채운 난산이었다. 왕후가 어찌나 고생을 했는지 그 과정을 함께하던 이들은 모두 다 진이 빠질 지경이었다.
산고를 치르며 이재는 이미 수 없이 울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드라운 천에 감싸인 아이를 보며 또 한 번 눈물을 글썽였다.
세상 무수한 생명들이 이렇게 태어났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열화와 같은 기쁨과 열화와 같은 슬픔으로.
어느 누구도 선뜻 감수할 수 없는 희생과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이재는 가끔 생각했었다.
사람은 그럴듯한 위치에 서면 자기가 처음부터 완성품이었던 것처럼 생각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고.
그게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외면하고 싶어진다고.
우리의 인생이 타인들의 희생 없이는 바로 세워지지 않는다는 건 불편한 진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를 가만히 보고 있으니 그녀는 다른 생각도 들었다.
네가 세상에 나올 무렵 나는 사실 많이 힘들었지만,네가 그건 몰랐으면 좋겠다고. 나는 그 불편 한 진실을 굳이 알려 주고 싶지않다고. 어떤 희생은 분명 보답을 바라고 한 게 아닐 테니까.
그러니 막대한 부담감을 얹어서 생명의 앞길을 막는 대신 그녀는 언제나처럼 기원하고 싶었다.
넌 그저 행복해지라고. 너의 인생을 마음껏 살라고.
이재가 아기를 바라보면서 미소를 지을 때였다.
정리를 끝낸 시녀들은 국왕을 불러왔다.
그녀는 하루 사이 얼굴이 심하게 상한 듯한 남편을 보며 동의를 구했다.
“로더릭이 왜 사자 꿈을 꿨는지 알 것 같아요. 왜 다 때려 부쉈는지도 알 거 같죠?”
방 안에는 황금빛이 맴돌고 있었다.
갓 태어난 아기가 뿜어내기 힘든 뚜렷한 기운이었다.
복중의 아기와 함께 그 강대한 기운이 빠져나가자,이재의 안색도 한결 편안하게 안정되어 있었다.
“아이 건강하대요.”
“………”
“제가 여기 와서 적어도 두 사 람에게는 확실히 기여한 것 같아요.”
한 사람은 살렸고, 한 사람은 태어나게 했으니까.
“이 정도면 저도 가치 있는 인 이라는 거죠.”
하지만 그중 한 사람인 남편 쪽은 살아났다기보단 밤새 저승을 끝에서 끝까지 뒤지고 온 얼굴이었다.
사실 원귀에 시달릴 때 에도 저 정도로 낯빛이 나쁜 적은 없었다.
“알았으니까,아직 말 그만…… 미안해……”
국왕은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이재는 진작 다 끝났으니까 그만 좀 하라며 웃었고,로더릭은 부여잡은 작은 손을 끌어와 자신의 얼굴을 파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