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llow Your Heart RAW novel - Chapter (15)
마음이 이끄는 대로-15화(15/134)
#4장. 수면 베개
#15.
「다이몬력 497년,다이몬 제국 의 폭정은 심해졌다.
인근 국가들은 전쟁 준비에 착 수했으며,
제국에는 크고 작은 민란이 일어났다.
이것이 바로 3년 전쟁의 기원이다.
성검의 주인.
소년왕 아서 룩스 블레어크의 어린 시절에 대해서는 알려져 있지 않다.
그는 신성한 힘을 바탕으로 연합국을 이끌고 삿된 것들을 물리쳤으며,
패색이 짙어짐에 따라 다이몬의 가문들은 하나둘 분열하기 시작 했다.
그들의 일부는 카이엔 건국 후, 카이엔 귀족 사회의 기원이 된다.
– 카이엔 왕국사 19페이지 중 에서」
“다이몬 재건 운동은 어떻게 되어 가나.”
“완전히 진압되었습니다.”
로더릭은 고개를 저었다.
“우리는 언제나 그들이 완전히 진압되었다고 말해왔다. 하지만 그들은 결국 몇 년째 진압되지 않았어.”
“………”
“자만하지 말고 반드시 싹을 잘라.”
“예,폐하.”
옛 다이몬 수도가 있던 땅에서 일어난 다이몬 부흥 운동은 몇 년째 카이엔의 골칫거리였다.
선왕은 그들이 모두 진압되었다 고 생각하고 눈을 감았다.
하지만 그들은 로더릭이 즉위하자마자 다시금 활개를 치기 시작했다.
왕이 인상을 쓰며 이마를 짚자, 친왕파 귀족들은 조금씩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근래 이상하게 잠잠하기는 했지만 저건 일종의 전조가 되곤 했기 때문이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카이엔 왕국군은 강하지 않습니까.”
누군가가 왕의 심기를 고려하는 발언을 했다.
그때 왕의 장인,던컨 공작 또 한 입을 열었다.
“폐하,알버트 던컨을 서부 국경 경비 대장으로 복직시켜 주십시오.”
헤일리의 오라비로 던컨가 장남을 말하는 것이었다.
왕은 자신의 장인에게 서늘한시선을 보냈다.
하지만 던컨 공작 은 멈추지 않았다.
“그는 뚜렷한 이유 없이 좌천되 었습니다. 그게 벌써 삼 년입니다. 왕후 폐하의 오라비가 겨우 부대장이라니, 이건 왕후 폐하와 카이엔의 명예와도 직결되는 일입니다.”
“카이엔은 남진 정책을 시도하고 있다. 남부군 부대장이 어째서 좌천이란 말인가? 선왕께서는 현명한 판단을 했고,지금 네가 하고 있는 발언은 선왕과 왕실에 대한 모독이다.”
그러나 왕가가 유독 던컨가에 박하게 구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 내막을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러니 이건 반왕파 수장에 대한 견제처럼 보이곤 했다.
왕은 오늘도 자기 처가에 가차 없었다.
“던컨 공작. 너는 왕후의 명예 말고 네 목숨이나 조금 더 신경 써야 할 것이다.”
“………”
“알겠는가? 나는 네가 왕후의 아비라 해도 봐주지 않는다.”
싸늘하게 일갈한 왕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오늘도 귀족들과 기싸움을 한 로더릭의 발걸음이 향한 곳은 왕후 처소였다.
참 이상한 일이지만 국왕은 큰 던컨 때문에 기분이 상하면 작은 던컨을 찾아가곤 했다.
그보다 더 이상한 일은 기분이 좋아도 작은 던컨을 찾아가곤 했다는 것이다. 가끔은 잠을 못 자도 걸음 하곤 했다.
이쯤 되니 국왕의 사람들은 모두 알게 되었다.
그냥 내키시면 아무 때나 가는 거였구나? 우리도 괜히 패턴을 고민했네.
이재의 방에 예고 없이 들이닥 친 로더릭은 오늘도 툭 내뱉었다.
“네 아비가 또 미쳐 날뛰고 있다.”
왕이 오전을 여는 인사를 하자 이재는 픽 웃었다.
“해일리. 네가 웃으면 내가 뭐가 되지?”
“그럼 화를 내요? 폐하도 웃을 거 알고 하신 말이잖아요. 오늘은 또 뭐라는데요.”
“네 오라비를 복직시켜 달라고 하더군. 내가 참 대단한 처가를 얻었어.”
복직? 어디로?
기억에 없는 이야기가 나오자 그녀는 입을 다물었다. 나중에 헤일리의 일기장을 찾아봐야지,생각하다가 이재는 얕은 한숨을 쉬었다.
일기장을 떠올리면 언제부턴가 가슴이 아주 갑갑해져 오는 것이 수양이 부족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재의 한숨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그는 말을 멈추었다.
로더릭이 신중한 눈빛으로 물었다.
“내 말 불쾌해?”
듣고 있던 사람들은 조금 난감 한 표정이었다.
이것은 물론 정치였다. 하지만 시대를 막론하고 부모와 형제를 욕보이는 것은 계급장 떼고 싸우 자는 신호였다.
불쾌하지 않으면 그것도 조금은 이상했다.
그러나 왕후는 픽 웃으며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딱히. 크게 관심 없어요.”
그리고 그녀는 왕이 오기 전부터 깎고 있던 것을 계속해서 깎았다.
이번엔 지하여장군이었다.
로더릭은 그런 이재를 짙푸른 눈빛으로 응시했다.
호기심과 의심이 깃든 표정이었다.
“왜?”
“저희 집이 별로 좋은 분위기가 아니었다는 건 그때 아셨다면서요. 다 보셨잖아요.”
제이드는 허리를 곳곳이 세우고 조각에 몰두하는 왕후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예쁜 백치라고 조롱받던 헤일리 던컨은 예쁘기는 정말 엄청나게 예뻤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어리숙한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
왕이 어떤 말을 해도 별반 타격을 입지 않고 차분히 대응했던 것이다.
온화하고 순한 태도였지만 묘하게 초연해 보이기도 했다.
제이드는 왕후가 마냥 순진한 사람은 아니라는 국왕의 말을 이제 조금씩 이해하고 있었다.
그녀는 그야말로 던컨이었다.
핏줄이 진하긴 진하구나.
문제는 국왕이 왕후를 경계하면서도 이상한 호감을 갖고있다는 점이었다.
“헤일리.”
“네.”
“너도 사람이 기껏 와서 말을 붙이면 눈 정도는 좀 마주쳐라.”
이재는 조금 멈칫하며 그를 바라보았다.
“손 벨까 봐 그래요. 제가 이걸 얼마나 비굴하게 받았는데……다치면 위험하다고 또 뺏어 가실 거잖아요.”
“……안 가져가. 나도 그 정도로 치사하진 않아.”
“진짜죠? 약속하신 거예요. 이거 저한테 굉장히 중요한 거란 말이에요.”
로더릭은 픽 웃었다.
“그래. 그런데 저게 대체 어떤 면에서 중요한 건지,너도 좀 모두가 이해할 수 있게 설명을 해 줬으면 좋겠는데.”
왕의 말은 다소 심술궂었다.
하지만 이 순간 이재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왕의 말에 극심히 공감했다.
이재의 방 안에 놓여 있던 조각상은 어느새 완성되어 눈, 코, 입을 모두 갖추고 있었다.
왕후의 시녀들은 뒤늦게 그게 자신이 생각하던 용도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그들은 머릿속도 썩고, 처세는 더 썩은 성 사람들이었다.
마치 그런 생각은 전혀 한 적이 없다는 둣 고고하게 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전히 용도에 의문이 있는 건 사실이었다.
완성품은 도무지 심미적인 장식품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이번에도 괴작의 탄 생이었다.
“이번엔 뭘 만드는 건데.”
“그냥 저거랑 비슷한 거예요.”
“……저게 두 개씩이나 있어야하나?”
“깎고 있으면 마음을 다스리는 데 도움이 돼요. 정신을 집중할 수있거든요.”
그러니 사실 이렇게 산만한 대화를 하면서 조각할 만한 물건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재는 그에게 말을 그만 시키라고 하지는 못했다. 그녀도 그가 자신을 툭,툭 건드리는 게 싫지 않았으니까.
한편 이재가 조각상에 눈을 파고 있는 것을 물끄러미 보고 있던 로더릭은 말했다.
“참 네 나이 같으면서 네 나이 같지 않은 취미다.”
왕이 아까 전부터 계속 시비를 걸자 이재도 응수했다.
“폐하도 폐하 나이 같지 않으세요.”
“내가? 어떤 부분이?”
“훨씬 젊어 보이세요. 저보다 여덟 살이나 많아 보이진 않으시네요.”
말을 내뱉고 자신이 정말 못된 걸로 놀렸구나,느낀 그녀는 고개를 푹 숙이고 웃음을 터뜨렸다.
들썩이는 등허리를 보고 있던 로더릭은 기가 막힌 듯했다.
그는 왕후가 다칠까 봐 칼 든 손을 바깥쪽으로 살짝 끌어오며 말했다.
“네가 생각해도 네가 망발을 했지? 왕을 놀려?”
순식간에 사람을 물 먹인 그녀는 인정하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네,죄송해요.”
홈,홈 헛기침을 하며 표정을 수습한 이재는 그에게 막 완성된 지하여장군을 내밀었다.
“이거 폐하 거예요. 갖고 가세요.”
이재가 자신의 손에 조각상을 쥐여 주자 로더릭은 한쪽 눈썹을 치켜올렸다.
“……글쎄. 정중하게 사양하고 싶은데. 흉물스러워.”
미완성일 때가 차라리 나았다고 생각될 정도였다.
그러자 그녀는 희미하게 웃었다.
“알아요. 이건 예쁜 모양이라서 드리는 게 아니에요. 그냥 정성이 들어갔으니까 드리는 거예요.”
거절할 수 없는 말이었다.
“정인 있는 아내한테 선물 같은 거 받아 봤자……”
“예,그 정도로 싫으시면 다시 주시고요.”
이재는 고개를 끄덕이며 조각상 을 가져갔다.
“다시 줘 봐.”
“………”
“너도 장난인 거 알잖아. 그냥 줘.”
이재가 다시 건네자 로더릭은 희한하다는 표정으로 그걸 들여다보고 있었다.
“폐하,그거 침대맡에 놓으세요.”
“이걸?”
“많이 이상하게 생겼죠? 악운과 악몽을 쫓아 달라는 의미예요. 그래서 무섭게 생긴 거예요.”
“………”
“좀 잘 주무셨으면 싶어서 만들어 봤어요.”
“………”
“너무 보기 싫으시면,눈에 잘 안 닿는 곳에 놓으셔도 되고요.”
악몽에서 지켜주기는커녕 오던 잠도 깨울 것 같은 얼굴이었다.
왜인지 로더릭이 점점 인상을 쓰기시작하자, 이재는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그는 이런 미약한 거라도 방에 놓아두어야 했다.
“폐하,저는 이런 말을 별로 좋아하진 않는데요. 그래도 해도 되나요?”
“……해 봐.”
“아주 가끔은 타인의 진심 어린 기원이 폐하를 지킬 때도 있을 거예요.”
우리는 단지 그걸 얻기가 힘들 뿐이에요. 그 사실은 우리의 인생을 더욱 힘들게 만들고,저를 슬프게 하곤 했습니다.
그러자 한동안 인상을 찌푸리고 있던 로더릭은 얼굴을 문지르며 말했다.
“그만해라.”
“네?”
“그렇게까지 말 안 해도 가져갈 거야. 내가 설마 정말 사양할 생각으로 그랬겠나?”
확실한 긍정의 대답을 들은 이재는 빙긋 웃으며 자신의 침대맡에 있는 천하대장군도 내밀었다.
“그럼 이것도 가져가요.”
“……나 다 줘? 네 취미라며.”
“혼자는 외롭잖아요. 그러니까 둘 다 가져가세요.”
“………”
“제 건 나중에 다시 깎으면 되니까요. 취미잖아요.”
로더릭은 한동안 그 애들 장난감처럼 생긴 조각상을 만지작거렸다.
계속 보다 보니 무섭게 생겼다기보단 우스꽝스럽고 익살스러운 얼굴인 것 같았다.
그리고 그는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 간다.”
로더릭은 다소 무뚝뚝하게 내뱉 고 방을 나섰다.
왕이 대화를 하다 말고 뜬금없 이 사라져 버리자,사람들은 의아 해했다.
그러나 오랜 친구인 제이드만큼은 왕이 왜 저러는지 알 것 같았다.
그는 지금 조금 머쑥해하고있었다.
왕이 사라진 방향을 빤히 바라보던 이재는 곧 그쪽에서 시선을 거두고 무언가를 찾기 시작했다.
테이블 아래에서 새 나무토막을 발견한 이재는 다시 묵묵이 장승을 조각했다. 왕이 왜 저러나 싶었지만 이렇든 저렇든 가져갔으면 된 거였다.
사람들은 그런 이재를 기묘한 시선으로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