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llow Your Heart RAW novel - Chapter (24)
마음이 이끄는 대로-24화(24/134)
#24.
로더릭은 그 뒤로도 이재에게 계속 말을 걸었다.
시비와 수작,그 중간 어디쯤엔 가 있는 말들이었다.
사람들은 왕이 관심 있는 여자 아이를 놀리고, 반응을 살피는 남자아이 같다고 생각했다.
다소 심술궂었지만 즐거워 보였기 때문이다.
“헤일리,뭐 잡아다 줄까.”
“왜 지난번부터 자꾸 뭘 잡아다 준다고 하시는 거예요? 저 그런 거 딱히 관심 없는데.”
산에서 나물 캐다가 뱀 같은 거 만나면 얼마나 무서운지 알기 나 해요?
하지만 로더릭은 이해가 잘 안 간다는 얼굴이었다.
“사냥 나갔다가 아내한테 빈손으로 오는…… 그런 모자란 자식도 있나?”
“그럼 폐하는 안 모자란 자식이에요?”
픽 웃은 로더릭은 이재의 이마 를 검지로 톡 쳤다.
“야. 그렇게 은근슬쩍 욕하면 내가 모를 줄 알았냐?”
이재는 어깨를 움츠리며 웃었다.
로더릭은 그런 이재를 유심히 보다가 신중하게 물었다.
“그럼 넌 내가 이겼으면 좋겠 나?”
물론 이재는 그가 승리하기를 바랐다. 원귀들과의 이 고독한 싸움에서.
하지만 그가 묻고 있는 것은 분명 그녀의 생각과는 다른 의미일 것이다.
“뭘 이겨요?”
“대회는 원래 경쟁이잖아.”
“아아.”
또 그들끼리의 숭부와 미묘한 기 싸움이 있는 모양이었다.
이재는 굉장히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국왕은 원래 사냥 정도로 업보 를 쌓을 만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수많은 사람의 목숨 줄을 쥐고 있었고,그 자체로 너무 큰 흐름을 타고 태어났기 때문이다.
제왕의 자리가 바다라면,사냥 정도는 도랑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원귀에 시달리고 있는 이상,이런 무의미한 살생은 지금 그에게 좋을 것이 없었다.
이걸 어떻게 말해야 하나.
이재가 입술 끝을 살짝 깨물자, 로더릭의 눈빛도 예리해졌다.
“……폐하,솔직하게 말씀드려 도 되나요?”
“어,해 봐.”
“전 자존심에 금이 가지 않을 정도로만 살살 하시라고 하고 싶은데요.”
“응.”
“그렇게는 말 안 할래요.”
“뭐야,왜.”
“폐하는 왕좌에 앉아 계시니까요. 폐하께도 분명 폐하의 당위가 있겠죠. 저는 그런 복잡한 것까지는 잘 모르잖아요.”
“………….”
“그러니 제가 드릴 수 있는 답변은 그저 다치지 말고 건강하게 돌아오시라는 것뿐입니다.”
말을 마친 이재는 희미하게 웃어 보였고,로더릭은 참 알 수 없 다는 눈으로 그녀를 보고 있었다.
그 순간이었다.
준비가 끝나 가는 사람들이 한 층 더 소란해지자 이재는 무심결 에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어딘가를 확인하고 멈칫 했다.
왕후의 반응이 하도 이상해서 로더릭도 그곳을 향해 시선을 돌 렸다.
그는 혀를 찼다.
그곳에 헤일리의 옛 애인이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로렌스.”
이재는 그 수려한 외모의 남자 를 보고 심장이 쿵,하고 내려앉는 기분을 느꼈다.
이것은 분명 헤일리의 기억이다.
하지만 설사 이 불완전한 기억 속에 로렌스가 없었다한들,이재가 그를 몰라보았을까?
너무 강한 원한이 원귀를 만들 둣, 너무 짙은 감정은 아직도 헤 일리의 육신을 떠나지 못하고 있
“헤일리. 너 괜찮은 건가?”
왕후의 눈동자가 심각할 정도로 흔들리자, 로더릭은 곧바로 말에서 내렸다.
그리고 이재의 눈에서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눈물이 몇 줄기 홀러 내렸다.
사람들이 웅성대는 소리가 들리 자, 이재는 뒤늦게 자신이 이래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 지만 쏟아지는 눈물의 양은 갈수록 많아진다.
그녀는 서둘러 옷소매를 확인하 듯 손으로 매만지며 고개를 숙였 고,로더릭도 바로 그녀를 가리고 섰다.
“헤일리.”
“………….”
“나를 봐.”
하지만 아직도 뚝뚝 떨어지는 눈물을 통제할 수 없었던 이재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녀는 몸을 가늘게 떨면서 말했다.
“제가 너무 큰 실수를……. 죄송합니다.”
“………….”
“지금 저 때문에 곤란해지신 거죠? 정말 죄송합니다.”
그런 그녀를 보며 로더릭은 이 제까지와는 또 다른 감상에 젖었다.
착잡했다. 그녀가 거듭 사과하는 게 마음이 쓰렸던 것이다.
넌 무슨 그렇게 큰 죄를 지었다고,울면서도 사과가 제일 먼저 나오냐.
그는 이재의 어깨를 가볍게 끌 어안았다.
그리고 웃음기 어린 어조로 말했다.
“괜찮아. 한 열세 명 정도밖에 못 본 것 같아. 너도 선방했다.”
“………….”
“우리 왕후,보기보다 순발력이 있네.”
아직 글썽거리던 이재는 왕의 농담에 그만 웃음이 터져서 이잇,하며 입술을 깨물었다.
“제가 우는 걸 열세 명이나 봤는데,그게 어떻게 괜찮다는 거예 요? 폐하 가끔 말 이상하게 해요.”
“넌 그거 듣고 웃음 터졌으니까 내 말엔 문제가 없지 싶다.”
로더릭은 자신의 가슴팍에 얼굴을 파묻고 있는 이재에게 말했다.
“내 옷에 눈물 닦아. 코는 풀지 말…… 봐줬다. 그래,그냥 코도 닦아라.”
“……콧물은 안 나왔어요.”
피식 웃던 그는 꼬물꼬물 음직이던 게 멈추자 말했다.
“다 닦았어?”
“네.”
“그래,그럼 이제 고개 들면 돼.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웃으면서.”
얼굴에 열을 좀 식힌 이재는 힐끔 눈부터 들었다.
그리고 그녀가 민망한 듯 웃자 로더릭은 픽,웃었다.
“울다 웃으면 어디에 뭐 그런 말이 있던데.”
로더릭은 눈으로 그녀를 슬쩍 훌으며 말을 이었다.
“나는 죽기 전에 확인은 해 볼 수 있는 건가.”
이재는 어이가 없어서 그를 홀 겨보았다.
“세상에 사람이 이렇게까지 변태였다니……
“폐하랑 결혼하길 정말 잘했어요.”
이번엔 로더릭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 농담 하는 거 보니까 좀 살 만한가 보네.”
그러나 이재는 다시 한번 사과 했다.
왕실에는 국혼을 둘러싼 추문이 많았고, 던컨가와 왕가의 혼인은 그 자체로 큰 관심사였다.
물론 사랑 없는 정략혼과 이정도의 치정극은 너무 혼해 빠진 것이었다.
하지만 이곳은 공식 석상이었으며 자신은 왕후였다.
“죄송해요. 제가 너무 크게 실수한 것 같아요. 그리고 제 말 별로 신뢰는 안 가시겠지만…… 저도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에요.”
“그래. 괜찮다니까. 얘 또 사람 같은 말 여러 번 하게 하네.”
하지만 왕후의 표정에서 그늘과 죄책감이 가시지 않자,그는 웃음을 홀리며 허리를 숙였다.
“헤일리. 그럼 사람들한테 더 큰 화젯거리를 만들어 줘야겠어.”
로더릭은 그녀의 양 뺨을 잡았다.
그의 얼굴이 점점 다가오자 이 재는 눈을 깜빡거리며 목을 움츠 렸다. 키스하기 직전의 자세였기 때문이다.
“다 나와 네 아버지의 책임이다. 그건 나도 인정해. 하지만 너도 오늘은 손톱만큼은 책임이 있 으니까 같이 협조 좀 하자?”
그렇게 말하고 왕은 속으로 생각했다.
어째 좀 치사한 핑계 같다고.
하지만 이재가 작게 고개를 끄덕이자,그는 곧바로 부드럽게 입술을 묻었다.
이번에는 아까보다 훨씬 많은, 그러니까 이곳에 모여든 모든 인원들이 그 광경을 힐끔거리고 있었다.
국왕과 작은 던컨이 결혼 한 달 만에 저렇게 다정해질 수 있다는 것에 그들은 다소 놀라는 중이었다.
로더릭은 새가 쪼듯 촉,촉 그렇게 입술만을 몇 번 맞대고 떨어지려고 했다.
그러나 한번 숨결을 느끼니까 그대로 떨어지기가 너무 아쉬워서.
그는 그녀의 목덜미를 부드럽게 감쌌다.
입술을 열고 혀를 얽자 이재는 조금 움찔했다.
로더릭도 잠시 멈 추었지만 이내 이재가 등을 작게 쓸며 보내는 신호에 웃음을 홀렸다.
로더릭은 그녀의 입안 여기저기 를 두드렸다.
그들은 서로의 타액 을 조금씩 섞고,혀끝으로 서로의 혀를 긁듯이 할았다.
격렬하지는 않지만 기분이 좋아 지는 키스.
이재의 뺨을 톡 두드린 그는 다시 말에 올라타며 순순히 인정 했다.
“사실 핑계야.”
“………….”
“그냥 내가 하고 싶었다고.”
“………….”
“나 간다.”
이재는 멀어지는 그의 모습을 멍하니 보고 있었다.
왕을 따르는 사람들이 뒤를 힐 끔거리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남아 있는 사람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얼굴을 붉히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로더릭은 괜찮다고 말했지만, 이재는 사실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그는 그냥 아무것도 따지지 않고, 바로 그녀를 감싸 준 것이다.
무척 미안하고 고마운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이 감정은 헤일리가 남긴 유산이 아니라,온전히 이재 만의 것이었다.
“폐하!”
사람이 말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는 없었다.
자신을 부르는 외침에 로더릭이 뒤를 돌아봤을 때 왕후는 열심히 달려오고 있었다.
로더릭은 좀 신기한 기분이었다.
평생 무슨 신관이나 학자처럼 걸어 다닐 것 같던 여자가 뛰는 모습을 처음 보았기 때문이다.
그는 눈썹 끝을 조금 긁다가 가까이로 말을 몰았다.
왜.
왕이 입 모양으로 묻자 머뭇머 뭇하던 그녀는 오른팔에서 무언 가를 됐다. 그가 준 금붙이보다 더 아끼는 제 투박한 나무 팔찌였다.
이재는 말고삐를 잡은 로더릭의 손을 조심스럽게 끌어와 염주 팔찌를 쥐여 주었다.
로더릭은 하,웃으며 머리를 쓸어 올렸다. 좀 미치겠다는 얼굴이었다.
“네가 아끼는 거 또 털어 주는 거야? 그럼 너한테는 뭐가 남아.”
왕후는 새벽같이 일어나면 잠시 명상을 하다가 틈틈이 뭔가를 만들곤 했다.
로더릭은 종종 그녀가 오랜 시 간 집중하면서 허리 한번 굽히지 않고,날카로운 눈을 유지하는 것에 혀를 내두를 때가 있었다.
그럴 때 말을 걸면 가끔 난처 한 얼굴을 하면서 눈치를 보았기때문이다.
그런데 그렇게 열심히 만든 걸 희한하게도 자꾸만 자기한테 준다.
“우리 왕후는 너무 욕심이 없네.”
“그래도 이건 다녀오시면 다시 주셨으면 좋겠어요.”
“아,그런 거였어?”
그건 제가 제일 아끼는 아이템 이란 말이에요.
사실 폐하는 갖고 계셔 봤자 활용은 못해요.
“그런데 지금 이거 나 왜 주는 거야?”
로더릭은 정말로 이해할 수가 없어서 물었다.
“제가 지금…… 이것 말고는 더 해 드릴 게 없어서요.”
그 순간 이재만 볼 수 있지만, 서로 마주 보고 있느라 이재도 보지 못한 게 있었다.
그녀의 마음에서 비롯된 영험한 빛은 왕의 손 위에 있는 팔찌를 한 번 감싸고 사라졌다.
로더릭은 웃음을 홀렸다.
무슨 말인지 대충 이해했기 때 문이다. 뭔가를 주고 싶긴 한데, 다른 게 없으니까 자기가 제일 아끼는 걸 빼서 주는 것이다.
손수건을 여러 장 준 것도,이걸 빼 주는 것도 결국에는 많이 걱정하고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래,대여 너무 고맙네.”
왕은 기분 좋게 웃으며 이재의 어깨를 한 번 그러쥐었다.
살구색 머리칼도 한 번 쓸어 보았다.
그러자 입술이 다시 한번 눈에 들 어왔지만, 그는 애써 외면했다.
“나 갈게. 너도 조심해서 들어 가라.”
그는 다시 말을 몰아 이번에는 정말 깊은 숲속으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