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llow Your Heart RAW novel - Chapter (25)
마음이 이끄는 대로-25화(25/134)
#6장. 아내 말을 잘 들으면
#25.
새벽같이 일어난 이재는 가부좌 를 틀었다. 이전 생에서는 매일같이 하던 명상이었다.
본인 기와 정신을 맑게 하는 데 이것만 한 것은 없었다.
성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할까 봐 한동안 소홀히 했지만,왕도 데보라도 별다른 말은 없었다.
그래서 요즘 그녀는 꽤 자주 명상에 빠지곤 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눈을 뜬 이재는 또 혼잣말을 했다.
상황이 여의치 않을 때마다 나 오는 자기 합리화였다.
“그래. 결혼 한 달 만에 과부가 될 순 없지.”
이미 고아로 태어나 영안을 가졌다.
그런데 신을 둥에 업지 못해 여기에도 저기에도 섞이지 못하 는 인생을 살았다.
단명해서 처음 만난 남자랑 결 혼까지 했는데, 저기까지 가면 그 녀는 너무 크게 좌절할 것 같았다.
본인 입으로 당위가 있으면 이 기라고 했으니,그녀도 그 말에 대한 책임을 지고 싶었다.
결심한 이재는 우묵한 그릇에 맑은 물을 떠 놓았다.
무속인들에게는 부적 외에도 각 자 그들만의 무기가 있다.
그걸 무구라고 한다.
부채를 쓰는 사람이 있고,오색 깃발을 쓰는 사람도 있으며,방울 을 쓰는 사람도 있다.
그렇다면 염주 팔찌와 활은 이재의 무구였다.
무속인이 자신의 무구를 내어 준 건 사실 다 준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 의미를 알아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건 솔직히 조금 서러운 일이었다.
그건 심장까지는 아니어도 콩팥 하나 정도는 잠시 내어 준 것이란 뜻이다. 적어도 닭다리 두 개를 다 양보하는 것과는 비할 수 도 없이 고귀한 마음이었다.
이미 왕에게 팔찌를 건넨 이재 는 맑은 물 앞에서 잠시 심호흡 을 했다.
그녀는 부적 두 장을 물 위에 서 태웠다.
이어 명치에 검지와 중지를 올린 그녀가 진언을 읊조 렸다.
눈앞에 원귀가 보이지 않았기에 진언은 예전보다는 온화하고 넓 었다.
그저 왕에게 힘을 실어 주기 위한 진언이었다.
“간기인물,불세지재.”
“인세에는 가끔 거대한 기운을 가진 자가 태어난다.”
“그가 어디에 있든,무엇을 하 든, 너희가 감히 대운을 둥에 업고 태어난 인간을 해할 수는 없 을 것이다.”
조금 숨이 가빠 왔지만,이상하게 참을 만했다.
할매. 혹독한 환경이야말로 실력 상승의 밑거름이었나 봐요.
역시 인생은 이론이 아니라 실 전인 거죠.
이재는 잿물을 창밖으로 쏟아 버리고,밭은기침을 두어 번 했다.
그리고 그대로 침대 위에 털썩 드러누워 버렸다.
오늘따라 로더릭은 조금 퉁명스 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활시위를 퉁,퉁 튕기던 그가 말했다.
“저걸 그냥 쏴 버릴까?”
그러자 왕의 시선이 향한 곳을 확인한 제이드는 홈칫했다.
언제 부터 그들 앞에 있었는지 왕이 로렌스의 등을 보고 있었다.
이번엔 아무런 전조도 없었는데, 이렇게 갑자기 광증이 찾아온 건가?
이제까지 이런 패턴은 없었는데?
“페하……”
“어. 진정해. 그냥 해 본 소리 였어.”
국왕은 전적이 너무 많아서 이런 식의 농담을 하면 섬쩟해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의 안색을 살피던 제이드는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그래도 뭐,그냥 순수한 관계 였답니다. 던컨 공작이 워낙 득달 같이 반대하고 감시해서요.”
육체관계를 언급하고 있는 것을 눈치챈 로더릭은 한쪽 눈썹을 치켜올렸다.
“너는 왜 저급하게 그런 것까지 들추고 다녀. 결혼하기 전 일이고 왕후도 사생활이 있는데.”
“……저도 지금 몹시 같은 생각입니다.”
결혼 전 일이고,사생활인데 폐하는 아까부터 왜 그렇게 짜증이 나신 거지요?
더구나 국혼 나흘 전,헤일리에게 네가 마음속에 어떤 사내를 품었든 관심 없다고 말한 것은 국왕 본인이었다.
“공작이 반대한 건 너무나 당연 한 일이다. 그는 집안에 딸이 태어났을 때부터 왕후로 추대할 생 각을 했을 테니까.”
그래서 설마 내가 지금 그걸 고맙게 여겨야 하는 상황이 되어 가는 건가?
몹시 인상을 쓰던 로더릭은 갑 자기 생각이 나서 물었다.
“제이드. 로렌스가 헤일리를 찼다고 했었지? 그렇게 읽은 것 같은데.”
“예. 국혼 이야기가 수면 위로 떠오른 뒤로는 큰 부담이 됐는지, 먼저 정리하자고 했답니다.”
“로렌스가 감히 헤일리를 찰 주제가 되나?”
“네?”
제이드는 이번에는 너무 황당해서 되물었다.
하지만 왕은 진심인 것 같았다.
“이른 나이에 기사가 되었다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지 않나. 성격도,얼굴도…… 뭐,객관적으 로 집안도 왕후가 훨씬 낫잖아.”
“…로렌스는 카이엔에서 손꼽 히는 검술 실력자입니다. 검 끝의 정교함만 따지면 폐하랑 저보다 훨씬 낫습니다. 앞으로 더욱 장래 가 촉망되고요. 폐하도 동의하신 적이 있지 않습니까. 지금… 조 금 이성적이지 못하십니다.”
이런 것도 친구니까 해 줄 수 있는 말이었다. 제이드는 말을 이었다.
“……그렇다고 계속 밀회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 아닙니까. 저는 적절한 시점에 잘 정리한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로더릭도 알고 있었다.
하 지만 그는 뭔가가 계속 마음에 안 드는 표정이었다.
“내 말은 차도 헤일리가 차야 지, 왜 로렌스가 차난 말이다. 게 다가 왕후는 그날…… 조금도 정리가 안 된 얼굴이지 않았나.”
결국 로더릭이 거슬리는 지점은 그 부분이었다.
왕후는 대체로 침착하게 행동하 는 사람이었다. 가끔 입을 다물지 언정 한 번도 우는 것을 보인 적 은 없었다.
그런 사람이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몸을 파르르 떨었다.
급기야는 눈물까지 주룩주룩 쏟 으니까 사냥하는 내내 신경이 쓰였던 것이다.
‘지금 저 때문에 곤란해지신 거죠?’
그런데 그녀가 눈물을 쏟으며 미안하다고 했을 때…… 그는 그 녀를 끌어안고 키스하고 싶었다. 실제로 어느 순간 그러고 있었다.
한편 날이 갈수록 정신없이 빠져드는 로더릭을 보며 제이드는말했다.
“왕후 폐하와 많이 가까워지셨나 봅니다. …..그분이 그렇게 마음에 드십니까?”
“글쎄.”
로더릭은 긍정도 부정도 아닌 불분명한 대답을 흘렸다.
하지만 그는 어느새 말고삐에 매어진 손수건을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그건 제이드에게 긍정보다 더한 대답으로 들렸다.
‘알면 알수록 이상한 여자야.’
“마음을 좀 내어 준 것 같다가도, 또 그게 전혀 아닌 것 같기도 하고.”
“………….”
“뭘 숨기는 건 확실해. 그건 내가 장담하지. 그런데 또…… 이상하게 솔직해.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왕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하자 제이드는 그를 힐끔 바라보았다.
“그럼 한번 밀어도 보고 그러십시오. 그래야 서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떠볼 수 있는 거 아닙니 까. 아실 만한 분이 왜 그러십니까. 제가 보기에 폐하는 지금…… 혼자 너무 티가 많이 나십니다.”
제이드의 생각에는 상대의 마음을 이 정도로 궁금해한다는 건 이미 말릴 대로 말린 거였다.
왜냐하면 왕후는 왕의 마음을 이렇게까지 궁금해하지 않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국왕이 왕후를 찾는 횟수에 비해 왕후가 먼저 왕을 찾 았던 횟수는 손꼽을 정도였다. 차를 청한 두 번이 다였나.
하지만 그들이 몰랐을 뿐이지, 그건 모두 로더릭에게 가장 도움 이 필요한 순간들이었다.
제이드의 훈수에 로더릭은 코웃음을 쳤다.
“너희들은 잘 모르나 본데,왕후는 그런 식으로 밀어 보면 카이엔 국경까지 밀려날 사람이다. 그 앤 내가 자기를 의심하는 걸 알아.”
생각할수록 이상한 게 한두 가 지가 아니었다.
“아무리 봐도 가문 일에 관심이 없는 것 같지 않나. 오히려 이건 싫어하는 거에 가까운데.”
“원망하는 마음이 있는 건 당연 하시지 않습니까. 공작이 어떤 아버지였는지는 저도 잘 알겠던데요.”
“왕후는 왕실에 기댈 사람 하나 없이 들어왔는데, 그게 가능한 건가? 애초에 가문에 순종적이라고 보고했던 건 너희들이다.”
“………….”
“하지만 그녀는 이미 두 번이나 자기 아버지를 물 먹였어. 그것도 아무 망설임 없이.”
제이드는 왕의 의견에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했다.
“보고서가 다소 잘못되었다는 건 저도 잘 알겠습니다. 다시 제대로 된 조사를 지시했습니다.”
하지만 로더릭은 짜증스럽다는 듯 말했다.
“그걸 이제 알아채면 어떡하나. 너희도 눈치가 왕후 반만큼만 있어 봐라. 왕후 눈치가 어느 정도로 빠른 줄 아나?”
“………….”
“헤일리는 내 얼굴만 봐도 내가 잠을 잤는지 못 잤는지 바로 알아. 어느 정도냐면 못 잤다고 말 했을 때,그게 거짓말인 걸 안다.”
물론 강이재는 눈치가 꽤 있는 편이었지만, 이 부분은 그래서 아는 게 아니었다.
오늘도 이렇게 오해는 깊어져 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오해 때문에 괜한 욕을 먹은 제이드는 로더릭을 복잡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가끔씩 침대를 같이 쓰는 부부랑 완전 타인인 자신이 같을 수는 없었다.
그도 왕만큼 왕후랑 대화를 나누고,침대까지 같이 썼다면 충분 히 파악할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제이드는 입을 다물었다.
왕이 아직도 로렌스의 둥을 불쾌한 듯 노려보며 활시위를 튕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왕은 제이드와 경합을 벌일 수 있는 얼마 안 되는 상대였다.
괜히 침대 어쩌고 했다가 왕의 광증이 자신을 향하면 그도 곤란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