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llow Your Heart RAW novel - Chapter (27)
마음이 이끄는 대로-27화(27/134)
#27.
이재는 사냥 대회가 끝나고 왕이 오고 있다는 전갈을 받았다.
사람들에게 그의 안위를 묻는 대신,그녀는 직접 밖으로 나갔다.
그저 보기만해도 남들보다는 그의 상태를 상세하게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멀리서 걸어오는 그의 모습을 본 순간, 그녀는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이재도 알고 있었다. 이것은 그냥 그의 운명일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가 무사하다는 사실이 다행스럽게 느껴졌다.
로더릭은 이재가 자신을 보고 감격한 둣 웃고 있자 조금 머쑥해졌다.
눈썹 끝을 긁적이던 그가 물었다.
“잘 지냈어?”
“네.”
“우리 안부를 물으면 안부로 받기로 하지 않았나?”
이재는 웃음을 홀렸다. 굳이 안 물어봐도 잘 지낸 것 같았을 뿐이다.
하지만 그녀는 로더릭의 기가 다소 둔화된 것도 함께 느꼈다. 피로하다는 뜻이다.
“거기서 잠은 좀 주무셨어요?”
그러자 그는 품에서 염주 팔찌를 꺼냈다.
“네 애장품을 누가 홈쳐가기라도 할까 봐 밤새 뜬눈으로 지키고 있었다.”
잘 못 잤다는 얘기를 참 이상하게 하네.
하지만 달아났던 콩팥 하나를 돌려받은 이재는 활짝 웃으며 팔찌를 오른쪽에 끼웠다.
아까보다 훨썬 밝아진 표정을 보고 로더릭은 한쪽 눈썹을 치켜 올렸다.
“넌 어떻게 된 게 나보다 그 팔찌를 더 반가워하는 것 같다.”
“폐하,제가 그걸 누구한테 드렸는지도 같이 생각해 보세요.”
“아,어쨌든 팔찌가 더 반갑다는 건 맞나 보네. 부정을 안 하시네.”
“………”
“일주일 만에 집에 온 남편한테 이런 식으로도 상처를 줄 수가 있나?”
이재가 끝까지 대답을 안 하고 웃음만 홀리자,로더릭도 어이가 없어서 웃었다.
여우가 따로 없네, 진짜.
“폐하.”
“어. 왜.”
“이기셨나요?”
“아니,망했어.”
왕은 참가에만 의의를 두고,왕의 날개가 왕에게 우승을 가져다 주었다.
그러니 사실은 더 명예로운 셈이었지만 로더릭은 괜한 소리를했다.
왕후의 반응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이재는 웃음을 홀렸다.
“그런 건 괜찮아요, 폐하.”
아무도 모르겠지만 사실 당신은 이번에 이긴 거예요. 원귀가 당신을 해하지 못했잖아요.
하지만 로더릭은 퉁명스러웠다.
“뭐가 괜찮나. 한 마리 잡고 개 망신당했는데.”
“그렇지 않아요.”
“………”
“폐하의 인생은…… 겨우 그런 걸로는 망가질 수 없으니까요.”
재 또 사람 미치게 하네.
로더릭은 얼굴을 문지르려다가 지금 자기 손이 더러운 걸 깨닫고 멈추었다.
그는 대신 제이드 쪽으로 손을 내밀었다.
제이드가 건넨 건 고급스러운 천 주머니였다.
그는 거기서 다람쥐를 꺼냈다.
생 동물은 로더릭의 손바닥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본인을 구해 준 사람을 알아보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재는 그걸 보자마자 질겁했다.
“아윽,이게 뭐야.”
“다람쥐. 설마 처음 보나?”
이재는 손사래를 치다가 정색했다.
“자연에 사는 애를 이렇게 데려 오면 어떻게 해요. 환경이 달라지면 죽을지도 몰라요. 사람 손 함부로 타면 다시 돌아가지도 못하잖아요.”
일주일간 야영을 하느라 거지꼴이 된 사람들은 주눅이 들었다.
와,이게 뭐예요? 할 줄 알았던 왕후가 정말 하나도 맞춰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은 놀라울 정도로 상식적인 말이었다.
로더릭은 조금 시큰둥하게 말했다.
“어차피 이건 내가 안 데려왔으면 거기서 죽었어.”
“……왜요?”
“다 철수할 때 덫에 걸린 걸 치료해서 데려온 거야.”
“……그럼 폐하가 살려 준 거예요?”
“그래.”
“정말? 왜?”
사냥을 하러 나간 사람이 뭘 살려서 데려온다는 게 그녀도 선뜻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혹시 다람쥐가 귀여워 보였나?
“그냥 너 보라고.”
그러자 한참 고민하던 이재는 피식 웃었다.
“아아,아내 위해,그 안모자란…… 그거요?”
이재는 뒷말을 삼켰지만,결국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로더릭은 그녀의 동그란 이마를 톡 건드리려다가 자기 손이 더러운 걸 알고 다시 내려놓았다.
그녀는 아까와는 다른 눈으로 다람쥐를 조금 더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그러자 로더릭도 손을 조금 더 가까이로 내밀어 주었다.
왕은 그저 왕후 생각도 좀 나고,보고 즐거워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데려온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강이재였다. 남들과는 시각이 많이 달랐던 것이다.
‘다람쥐야,네가 죽을 팔자였는 데 귀인을 만났구나. 그럼 살아야지.’
그녀의 눈은 한층 더 예리해졌다.
사냥이 왕의 대운을 바꿀 수 없듯이,이런 구명 활동도 왕의 흐름에 영향을 끼치지는 못했다.
그래도 이재는 말했다.
“폐하,좋은 일 하셨네요?”
“뭐,딱히.”
“그래도 잘하신 거예요.”
그러자 로더릭의 표정은 많이 안 좋아졌다.
고맙다는 말 대신 잘했다는 칭찬을 들으니까 뉘앙스가 어딘가 이상했기 때문이다.
이건 대체 무슨 취급이지?
이재는 스스럼없이 잠재적 환자인 자신의 남편에게로 손을 뻗었다.
그러자 로더릭은 황급히 손을 뒤로 물렸다.
“안 돼,무서우면 물기도 해.”
하지만 이재는 다시 손을 뻗었고,의외로 다람쥐는 이재한테 왁왁거리지도,그녀를 어려워하지도 않았다.
그녀가 갖고 있는 정결한 기운이 산의 기운과 비슷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재의 머리위로 올라갔다가 다시 어깨로 내려와 있는 다람쥐를 빤히 보던 로더릭은 말했다.
“걔도 네가 짧긴 짧은가 보다. 정상까지 빨리도 올라가네.”
“저는 폐하한테 좋은 말만 했는 데요. 왜 갑자기 또 시비를 거세요?”
“시비가 아니라 귀여워서 그런다.”
“다람쥐가요?”
아니,네가.
로더릭은 대답하지 않고 잠시 다른 곳을 바라보았다.
그런 왕을 이상하다는 둣 힐끔 거리던 이재는 발걸음을 옮겼다.
다람쥐를 호숫가 근처의 나무에 풀어 주기 위해서였다.
다람쥐를 놓아준 뒤,이재는 시녀들을 불렀다. 음식통과 음식에 관한 걸 설명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로더릭은 기사들과 그 자리에 서서 이재가 올 때까지 계속 기다리고 있었다. 이야기를 조금만 더 나누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후련한 마음으로 다시 돌아오는 이재의 눈에는 이상한 게 보였다.
아까는 보지 못했던 음습한 기운이 로더릭을 향해 스멀스멀 기어 오고 있었다.
헛바닥을 날름거리고 있는 사령, 즉 뱀 귀신이었다.
이재는 그때부터 몸을 바들바들 떨기 시작했다. 굉장히 먼 거리를 빙 돌아온 그녀가 설마, 하는 마음으로 로더릭에게 물었다.
“호,혹시……뱀도 죽인 건……”
“그걸 네가 어떻게 알지?”
로더릭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누가 그런 험한 얘기를 왕후의 귀에 홀렸는지 의아했기 때문이다.
이재는 뒷걸음질 치며 바닥 어딘가를 매우 혐오스럽다는 둣 바라보았다.
몹시 징그러워하는 얼굴이었다.
“헤일리,원래 사냥터에 가면 이런저런 게 다 있다.”
“……이런 거 저런 거 다 죽여도 뱀은 죽이면 안 되죠.”
“아니, 말을 물려고 해서.”
왜 변명을 하고 있는지 자신도 알 수 없었지만,로더릭은 일단 구구절절 설명을 하고 있었다.
아마 이재의 얼굴이 너무 안 좋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창백해진 그녀의 안색은 돌아올 줄 몰랐다.
뱀들은 원래 원한이 많다. 목을 잘라도 머리가 움직인다는 것은 그만큼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시간이 길다는 뜻이다.
그들은 다른 축귀들과 다르게 자신을 죽인 자를 기억하고 있다.
심지어 저건 영물이었다.
하지만 이재의 안색이 창백해진 건 그런 짙은 원한 때문이 아니라, 그녀가 단지 뱀을 징그럽게 여기기 때문이었다. 나물 캐다 뱀을 만난 기억들은 하나같이 끔찍 하기만 했다.
“폐하.”
“응”
“이런 말씀은 죄송하지만,혹시 다른 사람이 죽일 순 없었던 걸까요?”
다른 사람은 다 죽여도,폐하는 지금 그러면 안 되거든요.
그러자 함께 따라나섰던 기사들은 숙연해졌다. 그 상황을 목격하고 반응한 사람이 왕뿐이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건 왕의 말도 아니었다. 불충이었다.
“헤일리. 그러기엔 급박한 상황이었다.”
“………”
“……아니,그럼 뭐,나보고 성 까지 걸어오라는 건지.”
“폐하.”
“이 말씀도 죄송하지만,혹시 걸어오실 순 없었던 걸까요?”
로더릭은 너무 어이가 없어서 웃었다.
“그럼 한 나흘 후쯤 도착했겠군. 왕한테 걸어오라니,너도 말 참 귀엽게 한다.”
“네,죄송해요.”
이재도 상황은 충분히 이해가 됐다.
그녀는 그때부터 사령을 열심히 노려보기 시작했다. 이 정서적 한계를 극복해 보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결국에는 도무지 감당이 안 돼서 얼굴을 감싸 쥐고 말았다.
서양뱀은…… 많이 크구나.
로더릭은 손이 더러운 게 계속 신경이 쓰여서 손가락으로 슬쩍 그녀의 팔목을 떼어 냈다.
“뭐,지금 다시 갔다 와? 그럼 너도 여기서 일주일만 기다리고 있어라. 나 금방 뛰어갔다 올게.”
“아,왜.”
“해일리. 어떻게 해 달라는 건데.”
이재는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차분하게 말하려고 했다.
그렇지만 점차 감정의 고조를 겪고 말았다.
“모르겠어요. 폐하. 그렇지만…… 뱀은 너무 징그러워요. 으아아아,난 너무 싫다고요, 진짜!”
이재가 도망치듯 쌩하니 안으로 들어가 버리자, 로더릭은 너무 황당해서 헛웃음을 지었다.
그는 결국 단전에서부터 끌어 올린 으아아를 보긴 봤다. 그런데 그게 본인 생각보다 큰 충격이었다.
“지금 싫다고 한 거야? 뱀이? 아니면 내가?”
“………”
“꼭 나만 죽인 건 아닐 텐데.왜 나 혼자 저런 말을 들어야 하는 거지?”
“그냥 폐하가 각별하셔서 그런 게 아닐까요.”
“해 달라는 대로 다 했더니만 욕만 먹네.”
제이드가 드물게 위로해 보았지만,로더릭은 쉽사리 회복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