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llow Your Heart RAW novel - Chapter (28)
마음이 이끄는 대로-28화(28/134)
#28.
사냥에서 돌아온 뒤,로더릭은 한동안 왕후 방 출입을 삼갔다.
뱀이 싫다는 건지,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 있냐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상처가 참 잔잔하게 오래갔다.
게다가 다른 남자 때문에 너무 서럽게 우는 것을 보고나니,다 소 조심스러워졌던 것이다.
자기 아내인데 어쩌다가 침대도 같이 못 쓰는 사이가 되었는지는 모를 일이다.
하지만 강요는 하고 싶지 않았다. 이 결혼에 대한 책임이 공작과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인정한 바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로더릭의 불면중은 심화됐고,심기 또한 날이 갈수록 예민해져 갔다. 쪽잠을 잔 그는 이마를 짚었다.
광증이 발병할 때쯤의 전조 증상이었다.
아침 일찍 국왕의 방 앞에 도 착한 제이드는 시종장에게 물었다.
“폐하는 좀 어떠신가?”
“잘 못 주무십니다. 사실 기분도 좋지 않으신 것 같습니다.”
제이드가 심각한 얼굴을 하자, 시종장은 조심스럽게 건의했다.
“왕후 폐하를 투입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 조금만 더 추이를 지켜보도록 하지.”
그들은 진압조의 투입 시기를 조율했고, 지금 매우 진심이었다.
국왕의 방 안에 들어간 제이드는 친우의 안색을 살폈다.
다소 유보적인 입장을 취했던 제이드도 국왕의 얼굴을 보고는 시종장과 같은 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폐하,그러지 말고 왕후 폐하께 가 보시는 게 어떨까요.”
정말 이상한 일이지만,사람들도 현상을 있는그대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왕은 왕후와 있을 때는 잠도 잘 자고,마음 또한 편안해 보였던 것이다.
하지만 로더릭은 인상을 찌푸렸다.
“싫대잖냐.”
“그게…… 폐하께 그랬다기보다는 뱀을 잡는 행위가 징그럽다는 거 아니었을까요? 사실 기사들 중에도 그렇게 생각하는 놈들은 꽤 많습니다.”
“뱀 하나 못 잡는 놈들이 카이엔 기사라니 자랑이다. 그건 기사 단장인 너도 책임이 있는 거야.”
로더릭은 한심하다는 둣 혀를 찼다.
국왕이 버틴 것은 딱 나흘이었다.
세상에는 종종 본인의 건강을 과신하고, 병원을 불신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도 죽을 둣이 아프면,누가 뜯어말려도 의사를 찾게 되는 것이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이 패턴에 길들여진 로더릭 환자는 알아서 병원을 찾아갔다.
국왕이 오고 있다는 기별을 들은 이재는 좀 반가워서 그를 맞이했다.
그리고 이재의 방에 들어선 로더릭은 이번에는 인상을 쓰지 않았다. 그저 얼굴을 문지르며 헛웃음을 홀렸다.
‘또 공기가 달라.’
가끔 들리던 섬뜩한 음성도 들리지 않았다.
원귀와 사령이 방 안까지 들어오진 못했기 때문이었다.
국왕은 자신이 진짜로 미쳐 가고 있음을 실감했다.
그런데 어차피 미칠 거라면 다른 방향보다는 이 방향이 나았다.
이렇게 미치면 적어도 인명 피해는 없었기 때문이다.
다만 왕후를 조금 귀찮게 하고 있을 뿐이었다.
“오셨어요?”
“그래.”
로더릭은 소파에 앉으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넌 어떻게 한 번을 안 들여다 보냐.”
“………”
“나 너 없으면 못 자는 거 알 잖아.”
왕은 본인이 말하고도 고개를 살짝 갸웃했다.
무심결에 한 말인데,뱉고 보니 확실히 그런 것 같 았기 때문이다.
내가 정말 왕후 없으면 못 자는 건가?
“저도 뵙고 싶긴 했어요.”
“그래?”
“네. 조금 걱정이 돼서요.”
“뭐가?”
당신이 오늘 밤에도 나쁜 꿈에 시달릴까 봐. 혼자 괴로울까 봐.
이재는 대답 없이 웃음만 홀렸지만,로더릭은 꽤 기분이 좋아졌다.
“그럼 너도 가끔 오고 그래라. 베개는 안 들고 와도 돼. 내 방에도 두 개 있다.”
이재는 자신의 버킷리스트를 떠 올렸다.
그리고 ‘1번 폐하의 침실에 가 볼 것’ 항목의 실현이 임박했음을 깨달았다.
이재를 소파에 끌어다 앉힌 로더릭은 익숙하게 무릎을 베고 누웠다.
사냥 대회 때부터 계속 잠을 설친 그는 그녀의 손을 자신 의 얼굴로 가져왔다.
“그것 좀 해 줘.”
“………”
“좀 만져 줘 봐.”
이재는 웃음을 홀렸다.
덩치는 큰데 이번에도 이상하게 귀엽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말랑한 손끝으로 자신의 머리를 여기저기 누르기 시작하자, 로더릭은 또 같은 느낌을 받 았다.
믿을 수 없이 몸이 가벼워지고 날카로웠던 심기가 편안해진다.
로더릭은 짙푸른 눈으로 이재를 응시했다.
그는 열심히 움직이고 있는 이 재의 손을 잡았다.
“해일리,너 혹시 의술이라도 배운 건가? 아니면 신전 다녔어? 신관 같은 거 지망한 건가?”
로더릭은 국왕이었고,남들보다 카이엔 왕국사에 대해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신민들은 그저 신화인 줄 알지만, 대륙에는 확실히 그런 신비한 힘이 존재했었다. 하지만 완전히 사라진 것 또한 사백 년이 다 되어 간다.
이재는 애매하게 대답했다.
“그런 적은 없는데요. 뭐,비숫 하다고 볼 수도 있겠네요. 괜찮기를 기원하는 마음은 사실 비슷할 테니까요.”
“농담이 아니라 너랑 있으면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이야. 왜 그런 거지?”
진심으로 이유가 궁금하다는 표정.
사람들은 왕이 오늘도 어김없이 수작을 걸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재는 그의 의문이 타당하다는 것을 안다.
그녀는 변명하거나 인정하는 대신 다른 말을 했다.
“폐하,그럼 저를 이용하세요.”
“이용해?”
“네,잠이 잘 안 오시면 베개로 도 쓰시고. 이불은 저도 아직 좀 거리감이 있는데.”
“아,이불도 가능성은 열어 두 는 건가. 그래도 부부인데 이용하라는 말은 너무 차갑네. 같이 있으면…… 나만 마음이 편안한 건가.”
이재는 고개를 저었다.
“저도 폐하랑 이야기하면 즐거워요. 재미있어요.”
물끄러미 이재를 보고 있던 로더릭은 갑작스레 물었다.
“그럼 키스 한 번 더 해 볼래?”
그녀는 움찔하다가 그를 흘겨보 았다.
“폐하가 주물러 달라고 하셔서, 저 지금 땀까지 홀리면서 열심히 하고 있는 거 안 보이세요? 사람이 이렇게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그런 말을 하면 어떻게 해요.”
“농담이었어. 부부끼리 이 정도 농담도 못하나?”
그러나 사실은 전혀 농담이 아 니었던 로더릭은 이내 불퉁하게 말했다.
“그래도 너무 그렇게 단칼에 거절하면 남자들도 상처받아. 남편한테 여지라도 좀 줘라.”
“……상처받으셨어요?”
“……그냥 해 본 소리야.”
이재는 무척 고민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망설이다가 허리를 숙였다.
촉,촉,양쪽 뺨에 차례대로 뽀 쁘한 그녀가 떨어지려고 하자,이 번에는 로더릭이 몸을 일으켰다.
그는 이재를 소파에 획 눕히고 양 손목을 잡았다.
“넌 여우가 분명해. 꼬리 있어? 옷 속을 못 봐서 확인할 방도가 없네. 아,첫날밤에 살짝 본 것도 같고.”
그의 손이 엉덩이 쪽으로 향하자 이재는 몸을 뒤틀며 웃었다.
“아,왜 이러세요, 장난치지 마세요.”
“왜. 또 으아아 할 건가? 귀엽기는 하더라만.”
그는 왕후의 고운 뺨을 살짝 꼬집고 놔주었다.
“헤일리. 한 번만 더 해 보자.”
“………”
“확인하고 싶다.”
“……뭐를요.”
그때 그 기분이 뭐였는지.
왜 네가 우는데, 나는 너에게 키스하고 싶었는지.
이재는 눈을 감았다.
왕족들이 소파에 엉겨 붙어서 진한 키스 신을 펼치자 사람들은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지난번과 달리 아무리 기다려도 끝날 기미가 없자,그들은 슬금슬금 방을 빠져나갔다.
그때 잠시 떨어진 로더릭은 말했다.
‘헤일리. 깍지 좀 껴 봐.”
“………….”
“내 손이 내 의지와 상관없이 여기저기 배회하려고 한다.”
그는 이재의 몸을 힐끔 훌었다.
“세상에. 사람이 이렇게까지 변태였다니.”
“역시 결혼하기 잘했지?”
금세 자신의 발언을 복제한 로더릭 때문에 이재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는 로더릭의 손을 잡았다.
“폐하는 손잡아 달라는 말도 참 특이하게 하시네요.”
“다 개수작이지 뭐. 손잡으려면 무슨 말인들 못하나.”
사실은 왕후가 매번 자신의 손을 떼어 내는 게 조금 거슬렸던 그는 피식 웃었다.
그리고 다시 입술을 묻었다.
서로의 타액이 오가고 또 홀러 내린다. 사냥을 가기 전 나누었던 키스가 신사적이었다면 이런 키스는 조금 더 본능적이고 게걸스러웠다.
질척한 소리가 오가고,그가 자신의 혀를 빨아들이자,이재는 몸이 조금 떠ㄹ려 왔다. 이런 키스는 정사나 다름없지 않을까.
경험이 없어서 확신할 수는 없 었지만 그녀는 그렇게 넘겨짚었다.
자신이 너무 물고 빨아 대서 퉁퉁 부은 왕후의 입술을 로더릭은 만지작거렸다.
왕은 그때 그 기분이 뭐였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자신의 마음에 호감 이상의 감정이 시작되었음을.
그리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꽤 자라나 버렸다는 것을.
그는 몸을 일으켜 이재를 안아 올렸다.
왕이 자신을 침대 위에 올려놓고, 또 따라 올라오자 이재는 조금 움찔했다.
키스 후에 침대로 왔다면 그다음 단계가 뭔지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로더릭은 이재에게 물었다.
“헤일리. 로렌스 많이 좋아했어?”
“………”
“멀리서 보기만 해도 눈물 날 만큼?”
“그랬나 봐요.”
이재는 마음이 또 시큰거리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선선히 헤일리의 감정을 인정했다. 그리고 동시에 부정했다.
“그렇지만 폐하,다 지난 일이에요. 감정은 언젠가는 흩어지는 게 순리니까요.”
“………”
“그러니 이것도 금세 흘러갈 겁니다.”
로더릭은 그런 왕후를 빤히 바 라보았다.
그의 아내는 가끔 선문답 같은 말을 한다. 하지만 그녀의 말에는 때로 이상한 힘이 있었다.
사람들은 이게 느껴지지 않는 걸까.
“그렇다면 나도 재촉은 안 하겠다. 대신 확실하게는 해야 해.”
“뭐를요?”
“로렌스 그만 잊고,확실하게 정리하라고.”
“………”
“관계는 네 마음이 좀 편해지면 그때 하자.”
“……되게 좋은 남편이었네.”
얼결에 한 결혼치고는 나름 성공적인 것 같았다.
이번 생은 어쩌면 완전 박복까지는 아닌지도 모르겠다고,이재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가 또 이승과 저승 정도의 거리를 두고 침대에 눕자 로더릭은 내심 서운했다.
“헤일리.”
“왜요?”
“또 팔베개 해 줄까.”
이재는 고개를 저었다.
“무겁잖아요. 괜찮아요.”
“네 그 콩알만 한 머리통이 무거우면,난 검은 어떻게 들겠나.”
“그래도 그렇게 자면 근육이 눌려서 안 좋대요.”
로더릭은 인상을 찌푸렸다.
“몰라서 그러는 거야,싫다는 말을 돌려서 하는 거야.”
“네?”
“이쪽으로 좀 오라고 나도 핑계 한번 대 보는 거잖아.”
이재는 웃음을 홀리며, 주섬주섬 자리를 옮겼다.
그녀는 로더릭의 팔 아래 자리를 잡았지만, 그는 이재를 쑥 끌어 올려 머리 밑에 팔을 집어넣 었다.
“내가 앞으로도 종종 이럴 것 같으니까, 너도 이참에 편한 자세 잡아 봐.”
이재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머뭇거리던 그녀는 로더릭을 등지고 모로 눕는 것을 택했다.
이재의 둥에 붙어 조금 더 안 정적인 자세를 잡은 그도 그녀의 허리를 슬쩍 감쌌다.
이재는 살짝 인상을 썼다.
허리라는 곳은 손이 위로도 아 래로도 내려갈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내하던 그녀는 한쪽 다리마저 올라오자 더 는 참지 못했다. 죽부인이 된 기 분이었다.
“그래도 다리는 내려놓으셨으면 좋겠어요.”
“자다 보면 어차피 올릴 텐데 꼭 그래야 하나?”
“그런 말로 정당화하지 마세요. 무거워요. 그리고 저도 적응 기간은 필요한 거거든요.”
농담처럼 말했지만,그녀의 얼굴에는 어색함 외에도 약간의 쓸쓸함 또한 있어 보였다.
그녀도 왕이 자신과 자꾸 거리를 좁히려 한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다.
“넌 내가 아직도 그렇게 불편하고 어색해?”
“아뇨,꼭 그렇다기보다는……”
당신도 이러다가 어느 날 갑자 기, 저를 싫어하면 저는 어떻게 하죠.
그러니까 너무 잘해 주려고 애 쓰실 필요는 없어요. 저는 정말로 괜찮고,그 편이 훨씬 익숙하거든요.
그녀가 뭔가를 말할 듯하다가 머뭇거리자,로더릭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되물었다.
“그렇다기보다는?”
하지만 이재는 결국 입을 다물었다.
자신의 불운한 과거에서 비롯된 감정을 그에게까지 전가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것은 때로 상대에게 부담만 된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야. 왜 또 말을 하다가 말아. 그거 사람 미치게 만드는 거 모르나?”
로더릭은 궁금하고 얄미워서 돌아 버리겠다는 얼굴로 이재를 쿡쿡 찔렀다.
오늘도 던컨가에 내려오는 것으로 의심되는 가문의 비기, 사람 긁는 각종 기술에 감탄하는 중이었다.
그는 좀처럼 포기를 못하고 이 재를 자꾸만 건드렸다.
결국 웃는 게 괴로울 지경이 된 이재는 말 했다.
“죄송해요,진짜 죄송하다고요. 정말로 하려던 말을 잊어버렸어요.”
“그래? 그럼 너도 벌이니까,달게 받자?”
심술궂게 말한 로더릭은 슬쩍 다리를 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