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llow Your Heart RAW novel - Chapter (32)
마음이 이끄는 대로-32화(32/134)
#32.
그는 이재의 옆에 나란히 앉으며 말했다.
“걱정 좀 시키지 마라.”
“딱히. 괜한 걱정.”
로더릭은 어이가 없어서 이재의 이마를 검지로 톡, 건드렸다.
“왕후궁 앞에 호수 하나 파 줘?”
“그건 또 무슨 소리예요.”
그는 이재의 몸을 위아래로 훌더니 말했다.
“네 무릎 깊이로 하나 파 줄게. 그럼 내 마음도 편하고,너도 멀리까지 안 나와도 되니까 편하고.”
“제 무릎이면 그게 웅덩이지, 호수예요?”
“아,너도 네가 짧다는 건 인정 하나 보네.”
이재는 살짝 발끈할 뻔했다.
그러나 때마침 주변을 기웃거리던 다람쥐가 나무에서 내려와 이재의 몸을 타고 놀았다. 로더릭의 말처럼 짧긴 짧았는지 정상까지는 금방이었다.
“육,머리는 안 돼! 감고 나왔단 말이야.”
이재가 허둥지둥 머리를 더듬자,피식 웃던 로더릭은 그녀의 정수리에서 다람쥐를 잡아 바닥에 풀어놓았다.
그리고 짧은 시간 다람쥐가 헤집어 놓은 살구색 머 리칼을 정돈해 주었다.
“잰 구해 준 나보다 네가 더 좋은가 보다.”
왕이 너무 즐거워하는 얼굴이라, 이재는 창피해졌다.
이번에는 그녀가 조금 불퉁하게 말했다.
“근데 폐하는 왜 제 말을 안 믿으세요?”
안 죽는다고 누차 말했는데, 왜 쓸데없는 걱정을 하냐는 뜻이었다.
로더릭도 잠시 생각에 잠겼다.
예전처럼 네가 던컨이니까,하 는 식의 말은 나오지 않았다.
“글쎄.”
“………”
“네가 가끔 거짓말을 하는 것 같아서.”
“………”
“부정을 안 하면 어떡해?”
로더릭은 어이가 없어서 웃었다. 저런 면이 오히려 더 이상하다는 것이다.
그는 입을 다물어 버린 이재를 무릎으로 툭 건드렸다.
“헤일리”
“네”
“너 노래 잘해?”
“노래요? 그건 갑자기 왜요?”
“좀 불러보라고”
이재는 인상을 썼다.
“그게 무슨 소리예요?”
“그냥 아무거나 흥얼거려 봐. 듣고싶다 ”
“뭐예요,그게. 싫어요. 잘하지 도 못하고,남 앞에서 부르는 것도 안 좋아해요.”
로더릭은 그 길로 시선을 돌려 제이드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뭐? 노래를 흥얼거리는 버릇이 있어?
제이드는 딴청을 피우며 시선을 피했고,로더릭은 혀를 찼다.
그런 로더릭을 이상하게 바라보던 이재는 말했다.
“폐하는 잘하세요? 저 말고 폐하가 불러 보세요. 제가 잘 들어 드릴게요.”
“왕한테 노래나 시키고,너도 하는 짓이 갈수록 귀여워진다.”
“폐하는 저한테 시키셨잖아요. 이런 거 너무 불공평하지 않아요?”
“억울하면 네가 왕 하든지.”
“저는 그냥 왕 안 하고,계속 억울하게 살려고요. 이게 적성에 맞아요.”
이재가 금세 말을 바꾸고 배시시 웃자,그도 어처구니가 없어서 따라 웃었다.
마음속에는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들이 있다.
그렇지만 함께 있거나 왕후가 천연덕스럽게 말을 받아 주면,그것들이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도 사실이었다.
“나도 모르겠다. 그냥 오늘 치 뽀뽀나 하자.”
“혹시 맡겨 놓으셨어요?”
“그랬나 봐.”
그는 웃고 있는 이재의 뺨을 잡았다. 천천히 다가오던 로더릭의 입술은 손가락 한 마디의 거리를 앞두고 멈추었다.
이재의 눈동자가 눈꺼풀 아래로 사라지자, 그는 기다렸다는 둣 입술을 베어 물었다.
키스는 이제까지보다 동물적이었다.
그는 이재의 작은 입술을 통째 로 입안에 넣고,우물거렸다.
로더릭이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깨물기 시작하자, 이재는 가늘게 떨리는 손으로 그의 소매를 붙잡았다. 그러자 곧바로 혀가 입안으로 들어왔다.
입안 구석구석을 할던 그는 더 깊은 곳을 찾기라도 하는 사람처럼 상체를 기울였다. 계속 밀고 들어오는 몸짓에 그녀는 밀려났다.
하지만 상체를 살짝 뒤로 물리 면서도,이재는 그의 소매를 놓지 않았다.
그러니 그를 붙잡고 싶은 것인지,이 상황에서 도망치고 싶은 것인지는 그녀도 잘 모르겠다.
이런 키스는 정사와 다름없지 않을까 넘겨짚었던 날이 있었다.
그러나 그보다 더한 세계가 있다. 그렇다면 이 이상의 세계도 틀림 없이 있을 것이다. 이재는 알고 싶었다.
그녀는 로더릭의 어깨에 작은 손을 올렸다.
그리고 적극적으로 혀를 섞기 시작했다.
거기서 신호 를 받은 로더릭도 더욱 농밀하게 혀를 섞으며 몰아붙였다.
이재가 화단에 반쯤 드러누울 지경이 되자, 로더릭은 그녀의 등을 끌어안고 지지했다.
위에서 덮치둣이 입술을 삼키면서 그는 이재의 등과 허리를 매만졌다.
그리고 넘어오는 타액을 다 감 당하지 못한 그녀가 뭔가를 삼키는 소리를 내자,그의 커다란 손은 등줄기 아래로 내려가려고 했다.
“아,안 돼……. 잠깐만요…… ”
“………”
“하아,하아……”
깜짝 놀란 이재가 그의 손을 덤석 잡으며 얼굴을 뗐다.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로더릭의 푸른 눈에 흥분감이 가득했다.
그는 잠시 이재를 외면하다가 드러눕기 일보 직전인 그녀의 겨드랑이에 손을 끼워 반듯하게 앉혀 주었다.
“미안,해일리. 안 그럴게.”
“………”
“계속하자.”
“………”
“응?”
이재가 고개를 끄덕이자,그는 다시 한번 그녀의 입술을 베어 물었다.
그러나 입맞춤은 아까보다 훨씬 조심스러웠고,그걸 고스란히 느끼고 있던 이재 또한 입술을 한 번 쪽,맞추고 얼른 키스를 끝내 버렸다.
둘 다 조금만 더 하면 이성을 잃겠구나, 하는 자각들이 있었던 것이다.
잠시 얼굴을 감싸 쥐고 있던 이재는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모두 다른 곳을 보며 모르는 척해 주고 있었지만, 얼굴이 붉은 것까지 감출 수는 없었다.
이재는 민망해서 고개를 숙였다.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한 거지.
그걸 뭐라고 생각했는지,로더릭이 물었다.
“괜찮아?”
“………….”
“놀랐지.”
그의 푸른 눈동자가 끊임없이 이재의 안색을 살피고 있었다.
이 재는 쑥스럽게 웃으며 고개를 저 었다.
“아니요,제가 좀……”
“좀 뭐.”
이재는 머뭇머뭇하며 고민하다 가 말했다.
“공격적이었던 것 같아요.”
“어? 어.”
로더릭은 이마를 짚었다가 결국 참지 못하고 웃었다.
“아니야,그렇지는 않았어. 물론 그래도 되고.”
이어 눈썹 끝을 긁적이던 그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일어날 수 있어?”
몸에 힘이 쭉 빠진 기분이긴 했지만,일어나지도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렇지만 로더릭은 굳 이 먼저 일어나서 손을 내밀었다.
웃음을 홀린 그녀는 그의 손을 잡고 일어났다.
하지만 일어난 뒤 에는 어김없이 손을 떼어 냈다.
로더릭은 갑자기 한숨이 나올 것 같은 기분이었다.
방금 전까지 좋은 분위기로 키 스한 것 같은데, 왜 또 떼어 내는 걸까.
그는 그녀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그러자 이재가 힐끔 올려다보는 게 느껴졌지만 그는 모르는 척하고 걸음을 옮겼다.
이재가 걸음을 맞추자,그는 픽 웃었다.
차마 이것까지 떼어내지는 못하겠는 모양이었다.
“저녁이나 같이하지.”
“그래요.”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아니요. 다 괜찮아요.”
둘은 그 말을 끝으로 한동안 침묵했다. 이상하게 어색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어색함이 설렘과 미묘하게 닮아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로더릭은 그녀의 어깨를 조금 더 자기 쪽으로 끌어당겼다.
“폐하.”
“왜.”
“이렇게 걷다간 허리가 왼쪽으로 굽을 것 같아요.”
“좀 가까이서 걷자.”
“그럼 차라리 손을 잡아요.”
“그건 이미 늦었어.”
하지만 로더릭은 어깨에서 손을 내렸다. 그리고 손을 슬쩍 내밀었다.
그 손을 잡으며 이재는 미소 지었다. 말은 저렇게 해도 어지간 한 건 다 화답해 주는구나 싶었기 때문이다.
“폐하는 오늘 어디서 주무실 거 예요?”
“왜?”
듣기에 따라 의미심장한 질문이었다. 로더릭의 귀에도 살짝 그렇게 들렸지만, 왕후가 아직 그럴 마음이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네 방에서 자면…… 안 되는 건가?”
이재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소년귀에게 다시 한번 부탁해 보는 것은 그녀의 버킷리스트 두 번째 항목이었다.
그게 실패로 돌아가자,다른 거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제가 폐하 방으로 가도 되나요?”
현장 답사가 필요했다. 단지 그 뿐이었다.
하지만 뒤따르던 시종들과 시녀 들은 의미심장한 시선을 주고받았다.
이쯤 되자,로더릭도 그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기 힘들어 졌다.
“헤일리.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그 말은……”
“아니에요!”
“나 아직 아무 말 안 했다.”
이재가 펄쩍 뛰자, 그는 바로 물러섰다.
“그냥 방 구경하고 싶어서요. 그래도 되나요?”
“안 될 게 있나. 근데 구경할 만한 건 없을 텐데. 전에 한 번 보지 않았나?”
“그땐 경황이 없어서 자세히 못 봤어요.”
“그래,하고 싶은 대로 해. 올 때마다 그렇게 일일이 허락 구할 필요는없어.”
“네,정말 감사해요.”
비로소 첫걸음을 내딛은 이재는 입술을 살짝 깨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국왕과 식사를 한 뒤,이재는 서재에서 부적을 몇 장 썼다. 호랑이 굴에 들어가는데,아무런 준 비도 안 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부적을 품속에 숨긴 그녀는 방 을 나서기 전, 자신의 팔찌 상태를 살폈다.
“다른 무구가 있으면 좋을 텐데.”
좀 아쉽긴 했지만,여기선 이걸 로 만족해야 했다.
그녀가 국왕의 방문을 열고 빼꼼 고개를 내밀었을 때, 그는 이제 막 씻고 나온 듯했다. 머리칼이 조금 젖어 있었기 때문이다.
“뭘 그러고 서 있어. 들어와.”
“실례 좀 할게요.”
그는 수건을 들고 있는 시종들을 손짓으로 내쫓았다.
이재는 엉거주춤 그의 침대에 앉았다. 하지만 어색해하던 것과는 달리 그녀의 눈은 금세 날카 로워졌다.
중무장한 그녀가 들어서자 방 안을 누비던 원귀들은 모두 구석으로 붙었다. 얼핏 봐도 숫자가 열댓은 되어 보였다.
이재는 이번에는 방 구석구석을 훌었다. 원귀들 때문에 역한 기분을 지울 수는 없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터나 기운 자체가 나쁜 방은 아니었다.
문제는 역시 방이 아니라 국왕 그 자체인가.
한편 온통 정신이 팔려서 사위를 두리번거리는 이재를 보며,로더릭은 헛웃음을 홀렸다. 그녀가 자신에게는 눈길 한 번 안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얘 진짜 방 구경만 하러 왔네.
“뭐,재미있는 거라도 있나?”
그제야 이재는 로더릭을 바라보 았다.
그런데 로더릭은 고개를 살짝 갸웃하며 눈을 가늘게 떴다.
그녀의 얼굴이 갑자기 창백해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착각 인가.
“아니요. 그냥 생각대로네요.”
“그래? 우리 왕후는 뭘 갖다 놔야 자주 와 주시려나.”
이재는 피식 웃으며 이번에는 침대 주변을 훌어보았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이 깎았던 천하대장 군과 지하여장군을 발견했다. 흉물스럽네, 사양하고 싶네 하더니 침대맡에 고이 둔 모양이었다.
갑자기 심각해진 이재는 호두턱을 만들고 금이 간 조각상들을 집어 들었다.
장승 친구들아,못 본 사이 왜 이렇게 못생겨졌니. 무슨 일이 있었던 거니.
나라를 잃은 듯 조각상을 들여다보던 이재는 몹시 슬퍼하며 로더릭에게 말했다.
“어쩌죠? 세월을 정통으로 맞아 버렸어요.”
로더릭은 이마를 짚은 채로 또 웃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