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llow Your Heart RAW novel - Chapter (35)
마음이 이끄는 대로-35화(35/134)
#35.
로더릭과 이재는 아침부터 노닥 거리고 있었다.
최근 그에게는 한 가지 즐거움 이 생겼다.
혹시나 해서 ‘나 그만 갈까?’ 물어보던 날,이재가 시무룩한 얼굴을 한 것에서 비롯된 즐거음이었다. 꼭 같이 있고 싶어 하는 것 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헤일리. 오늘 밤엔 내 방에서 잘까 한다.”
그러나 이재도 눈치가 꽤 있는 사람이었다.
그가 장난을 거는 중 이라는 걸 파악한 그녀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예,그러세요.”
로더릭은 인상을 찌푸렸다.
“아,지금 건 좀 상처인데.”
이재를 힐끔 본 그는 그녀가 빙긋 웃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젠 정말 상처받으셨냐고,그런 것도 안 물어보냐.”
“그냥 해 본 소리시잖아요.”
“우리 왕후,발전이 있는 콩알이었네.”
이재는 소리 내어 웃음을 터뜨렸고,로더릭은 그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살구색 털이 몽실몽실한 여우를 끌어안은 채 맞이하는 아침은 무척이나 만족스러웠다.
물론 애로 사항이 있긴 했다. 그들은 한창때의 남녀였다.
붙어 있으면 가끔은 이성이 끊 어질 것 같았던 것이다.
그럴 때면 로더릭은 벌떡 일어 나 자기 방으로 돌아가곤 했다.
하지만 슬프게도 그는 본인 방 에서는 더욱 이성이 끊어지는 사람이었다.
도저히 잠을 못 이룰 것 같아 서 머쑥한 얼굴로 돌아오면,이재는 그가 안쓰러웠다.
그녀가 소파 로 가서 웅크리고 앉아 있으면, 로더릭은 자그마한 여우가 훨씬 불쌍했다.
그는 결국 이재를 번쩍 들어 침대에 옮겨 주고는 본인이 소파 에서 잠을 청하곤 했다.
어쩌다 신혼에 이런 황당한 일 이 일어났는지 모를 일이다.
하지 만 따져 보면 이 결혼도, 그 약속 도 다 로더릭, 본인이 자초한 일 이었다.
그러니 이재가 그의 생각을 알았더라면, 온화한 얼굴로 답해 주었을 것이다.
바로 그런 것이 업보라고.
“이쪽으로 좀 와 봐.”
로더릭은 이재를 다시 쑥 끌고 와 팔베개를 해 주었다.
처음에는 그저 웃음을 홀리던 이재의 표정은 점점 오묘해졌다.
허리에 턱 걸쳐 놓았던 팔이 슬그머니 옴직이더니 옆구리를 쓰다듬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 새 엄지손가락은 갈비뼈의 모양을 확인하듯이 덧그리고 있다.
힐끔 보니 그의 푸른 눈은 즐 거음을 품고 있다. 반응을 기대하 는 얼굴이었고,손은 그 반응에 따라 어디로든 향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폐하,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뭐가.”
“손끝이 아주 많이 불순하잖아요.”
“그런 것도 알아?”
살짝 발끈한 이재는 로더릭을 흘겨보았다.
“제가 무슨 어린애인 줄 아세요?”
“네가 애였으면 이러지도 않아. 나 그 정도로 더러운 놈 아니야.”
“………….”
“헤일리. 싫으면 입을 다물지 말고,차라리 발로 까라.”
이재는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스킨십의 농도가 갈수록 진해지 는 느낌이다.
그는 이제 밖에서도 가끔은 그 녀를 부둥켜안으려고 들었다.
품 에서 벗어나면 싫어했고,어떻게 든 닿아 있고 싶어 했다.
싫은 게 아니었다.
하지만 국왕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
무슨 연유로 그녀와 있으면 마음이 편해지는지, 그가 왜 그녀를 끌어안게 됐는지.
그런데도 괜찮은 걸까.
인간관계에서 솔직함은 이렇게 중요한 거였구나.
생각이 복잡해진 인간 부적이 슬그머니 손을 떼어 내려고 하자, 로더릭은 얼른 손을 치워 주었다.
그는 눈썹 끝을 긁적였다.
아침 부터 너무 변태같이 군 건가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꾸물꾸물 움직이던 그녀 가 자리를 털고 일어나 버리자 로더릭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테이블 앞에 앉아 조각도까지 집 어 들었을 때는 한쪽 눈썹을 치 켜올렸다.
“너 뭐 해.”
“조각이요.”
“아직…… 쉬어야 하지 않나?”
“아니요. 오늘은 산책도 하고, 내일부터는 접견도 할 거예요.”
너무 확고하게 대답하니 로더릭 은 할 말이 없어졌다.
그런데 이재의 상태는 정말로 괜찮아 보였다.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사람처럼 창백했는데,바 로 다음 날부터는 또 혈색이 나 쁘지 않았던 것이다.
로더릭은 왕후의 상태가 이상하 게 기복이 심하다고 생각했다.
그 리고 그건 이재도 왕을 처음 보 았을 때 하던 생각이었다.
강이재는 본인이 회복할 수 있 을 정도로만, 원귀가 자신을 건드릴 수 없을 정도까지만 힘을 쓰 고 있었다.
기라는 건 휴식을 취하면 충분 히 회복할 수 있다. 그러나 기준치 이하로 멸어지면 더 이상 회 복할 수 없다.
면역력이 심하게 떨어진 사람이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는 것과 같 은 이치였다.
“그래도 너무 이른 거 같은데.”
“전혀요. 폐하 때문에 너무 오 래 쉬었어요.”
환자는 제가 아니라 폐하였다고 말할 수 없는 제 심정도 좀 알…… 수가 없는 거였죠?
이재는 피식 웃었다.
로더릭이 몰랐을 뿐이지 그녀는 어젯밤 그가 달고 온 원귀 하나를 없애기까지 했다.
결계를 열어 불러들인 뒤,다시 결계를 닫는 방식이었다.
그것은 뱀 귀신을 없앨 때 터득한 방법으로, 가둬 놓고 한 놈 만 죽어라 패는 잔혹한 전술이었다.
“이번엔 뭘 깎는 건데.”
로더릭은 그녀의 맞은편에 따라 앉으며 물었다.
“지난번에 드린 것보다 센 거.”
“그 말은…… 이번엔 그보다 더한 괴작이 탄생한다는 뜻인가?”
이재는 웃음을 터뜨렸다.
“폐하,자꾸 기대하시네요. 제 취향에 물드셨나 봐요.”
“헤일리. 미안하지만,이건 객관적으로 물들기에는 무리가 있는 취향이야.”
“와. 아침부터 말 되게 예쁘게 하신다.”
“네가 혹시라도 나 없는 데서 상처받을까 봐 언질을 주는 거야.”
그러나 심술궂게 말한 것과는 달리 로더릭은 그녀가 조각하는 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왕후는 단순히 나무토막을 깎고 있을 뿐이다.
나오는 물건들도 하나같이 기괴하기만 하다.
처음에는 그게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참 웃기고 이상한 여자라고.
그런데 로더릭은 요즘 들어 예 전과 다른 감상을 느끼곤 했다.
나무를 깎는 얼굴이 초연하고 묵묵하다. 또 가끔은 이상하게 고독해 보일 때가 있다.
그러니 그는 지금 누군가의 취 향에 물들고 있는 게 아니었다.
그저 사람 하나에게 물들어 가 고 있을 뿐이었다.
오랜만에 방을 벗어난 이재는 상쾌한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그 녀는 마치 물귀신에게 미혹된 사 람처럼 호숫가를 향했다.
로더릭은 이 정도면 왕후가 자 신을 신경 쓰이게 하려고 작정을 했다고 생각했다. 왕후의 시녀들 도 비슷한 생각이었다.
왕후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고 집이 있었다.
국왕이 온갖 싫은 기색,걱정하는 내색을 다 하는데 도 빙긋 웃으며 산책로를 고집했 기 때문이다.
이재는 호숫가에 앉아 한 시간 정도 소년귀를 기다렸으나,주변 은 고요하기만 했다. 어쩌면 소년 귀는 이재의 끈질긴 부탁을 진심 으로 구질구질하다고 생각하는 건지도 모른다.
그녀는 결국 포기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왕후 폐하,들어가시게요?”
“옹. ……아니다. 사관한테나 가 볼까. 괜찮지?”
“예,그럼요.”
어정쩡한 거리에서 대기하던 시 녀장은 내심 안도했다.
그런데 국왕이 왕후의 산책 경로에 치를 떨 만한 상황은 또 한 번 벌어졌다.
이재가 우뚝 서자,시녀들의 시선은 이재를 따라 옴직였다.
사람 들은 당혹스러운 상황에 옹성거 렸다. 훈련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 이었는지, 로렌스가 왕후를 바라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누구보다 당황한 것은 왕후 본인이었다.
“지금 왜…… 이쪽으로 오는 거야?”
“………….”
“응?”
그렇게 물어봐야 시녀들도 몰랐다. 이재의 동공은 여기저기를 방황했다.
마주치면 곤란해진다는 것을 직 감한 그녀는 등을 돌려 자리를 피하려고 했다.
하지만 로렌스도 기사였다.
성큼성큼 걸어 거리를 좁힌 그는 그녀를 불렀다.
“해일리. 잠시만……
그 다급한 부름에 반응한 건 이재가 아니라 시녀장이었다.
“무례하십니다! 어떻게 왕후 폐하의 존함을 함부로 부르십니까? 사적으로 아시는 사이라 해도 이런 건 경우에 어긋납니다.”
이재는 순간 감동을 받아서 울먹울먹했다.
데보라, 고마워.
그동안 확신이 부족했는데 당신은 유능하고,우리는 손발이 잘 맞는 게 분명해요.
로렌스는 실언을 했음올 깨닫고 금세 고개를 숙였다.
“왕후 폐하,제가 불손했습니다. 부디 무례를 용서하십시오.”
“아니,괜찮아,괜찮아요.”
공식 석상도 아니었지만,그녀 는 금세 말을 고쳐 공대를 했다.
어떻게든 거리를 두는 편이 나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잠깐이라도 말씀을 나눌 기회 를 주십시오.”
머뭇거리던 이재는 결국 그를 향해 돌아섰다.
수려하고 선이 고운 외모의 남 자는 한동안 이재를 바라보기만 했다.
“할 말…… 하세요.”
그녀는 꼭 벌을 받는 기분이었다.
가슴은 여전히 시큰거린다. 그런데 자신이 헤일리가 아니라는 게 이렇게 죄책감이 느껴지는 일 일 줄은 몰랐다.
왜냐하면 자신을 바라보는 남자 의 눈이 여전히 애틋했기 때문이다.
쩔쩔매던 이재는 결국 고개를 떨구었다.
“국혼 전날,사고가 있으셨다고 들었습니다.”
왕실과 던컨가에서 추문을 덮으 려고 애썼지만,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이었다.
“혹시 저 때문이셨나요.”
“아니요. 그냥 정말 우연히 일어난 사고였을 뿐이에요. 경은…… 신경 쓰지 않아도 돼요.”
그러나 이재는 헤일리가 떠나면 서 가장 큰 미련을 남긴 것이 로렌스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러니 이 감정만 아직도 풍화되지 못하 고 남아 있는 거였다.
로렌스도 이재의 말을 믿지 않는 눈치였다. 호숫가룰 힐긋 바라 보던 그는 말했다.
“대체 왜 그런 무서운 일을 하셨나요.”
“………….”
“제가 계속 행복을 바라고,기사로나마 곁에서 지켜 드린다 하 지 않았나요.”
시선을 내리깔고 있던 이재는 그 말에 고개를 들었다.
헤일리의 기억에는 없었지만, 그녀의 일기 장에서 확인한 내용이었다.
눈이 마주치자, 다시금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은 통증이 느껴졌다.
하지만 이재는 그것을 꾹 내리 누르며 분명하게 말했다.
“아니요. 경은 그러시면 안 됩 니다.”
“………….”
“두 사람의 인연이…… 이미 오래전에 끝났습니다.”
당신도,헤일리도 미련을 놓아야 한다고. 로렌스가 그러면 해일리는 평안하게 쉴 수 없었다.
그러니 이 감정은 어서 빨리 매듭지어져야만 했다.
하지만 젊은 기사는 하염없이 왕후를 바라보기만 했다.
쓸쓸함이 담긴 얼굴로 희미하게 웃던 그는 말했다.
“그렇다면 왕후 폐하는 지금 왜…… 울고 계신가요.”
이재는 자신이 또 주룩주룩 눈 물을 쏟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고, 몹시 당황했다.
로렌스는 손수건을 바치듯이 내 밀었다. 그의 미소에는 직접 닦아 줄 수 없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마음이 배어났다.
이재는 거절하듯 손사래를 치며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로렌스가 손수건을 쥐여 주기 위해 다시 한번 손을 내밀었지만,
안절부절못하던 이재는 도망치듯 자리를 피해 버렸다.
몇 시간 뒤,이 소식을 고스란히 전해 들은 로더릭은 극도로 언많은 표정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