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llow Your Heart RAW novel - Chapter (36)
마음이 이끄는 대로-36화(36/134)
#36.
“폐하,왕후 폐하께서 로렌스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셨다 합니다.”
로더릭은 눈썹을 치켜올렸다가 곧바로 인상을 구겼다. 진실의 미간이었다.
“어디서. 접견은 내일부터잖아.”
“호숫가에서 우연히 마주치신 모양입니다.”
한숨을 쉰 국왕이 이마를 감싸 쥐자 사람들은 일순간 긴장했다.
“기사단장.”
“예,페하.”
“로렌스는 혹시 왕후의 남편은 곧 국왕이란 걸 모르나?”
지능이 많이 떨어지냐고 묻는 왕의 얼굴에는 불쾌감이 가득했다.
“그 건방진 자식은 왜 쓸데없이 성에 드나드는 건가. 왜 가뜩이나 심란해하는 왕후 마음을 들쑤시는 거냐고.”
좀 어폐가 있는 말이었다. 기사 가 성에서 훈련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고,훈련은 쓸데없는 게 아 니었다.
하지만 친우조차도 그 사실을 바로잡아 주진 못했다.
국왕이 계 속 이마를 감싸 쥐고 있었기 때 문이다.
“그래서 어쨌는데.”
“예?”
“뭐,나눈 얘기가 있을 거 아닌가. 얼굴만 보고 있진 않았을 거 아니야.”
기사단장이 머뭇거리자,로더릭 의 얼굴은 더욱 언짢아졌다.
“기사로서나마 계속 지켜 드리겠다고……”
“하아,이런 미친놈이 진짜.”
로더릭은 기가 막혀서 근래 안 정기에 이르렸던 광증이 재발할 것 같았다.
“언제부터 카이엔 풍기가 이렇 게 문란해진 거지?”
“송구스럽습니다.”
“헤일리는.”
“예?”
제이드는 오늘따라 여러 차례 되묻고 있었다.
“왕후…… 혹시 또 울었나?”
제이드가 침묵으로 긍정하자, 로더릭은 보고 있던 서류를 멀찌감치 툭, 던져 놓았다. 짜증이 턱 끝까지 치민 얼굴이었다.
“그런데 둘의 인연이 이미 끝났다고 말씀하시고,먼저 자리도 피하신 모양입니다.”
“우는 얼굴로 그런 말을 하면 뭐 하나. 그 얼굴로 주룩주룩 울면, 그 새끼는 픽이나 안 흔들리겠다.”
“………….”
“왕후는 가끔 그런 식으로 사람을 돌아 버리게 만든단 말이다.”
뭐 얼마나 절절한 사랑을 했길래 얼굴만 봐도 눈물을 쏟는지, 이젠 화가 날 지경이었다.
로더릭은 역시 그걸 그때 사냥터에서 쏴 버렸어야 했다고 생각했다.
부부 싸움이 터지기 일보 직전의 순간이었다.
국왕은 식사가 준비되는 동안 계속 퉁명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 었다.
이재는 힐끔거리며 그의 안색을 살폈다.
달고 온 원귀는 없었지만, 그녀도 짚이는 구석이 있었다.
이재가 물을 한 모금 마실 때, 턱을 괴고 있던 로더릭은 툭 내 뱉었다.
“너, 계속 그렇게 바람피울 건 가?”
물을 뱉을 뻔한 이재가 얼른 손으로 입을 가리자, 로더릭은 냅 킨을 내밀었다.
“……그게 무슨 이상한 소리예요.”
“왕후가 돼서 신민의 귀감이 되 지는 못할망정,앞장서서 불륜을 하면 되겠냐고.”
이재도 상당히 억울했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오후 내내 벌만 받는 기분이었다.
“제가 무슨 불륜을 했다고 그러 세요. 비약이 너무 심하신 것 같아요.”
“로렌스 만났다면서. 남편 있는 사람이 전 애인을 사석에서 만났는데,그게 바람이 아니라는 건가?”
“………….”
“아니라고?”
“………….”
“정말 이럴래?”
난처해하던 이재는 상황을 설명 하고자 했다.
“그건 저도 죄송한데요,정말 우연하게 마주친 거고 길게 이야 기하지도 않았어요.”
“너 울었다면서.”
“………….”
“거기서 울면 어떡해. 너, 네가 어떻게 생겼는지에 대한 자각이 전혀 없어? 거울은 아예 안 보는거냐고.”
“폐하가 보시기에도 제 얼굴이 박복하단 소리인가요?”
“……얘가 뭐라는 거야,지금.”
이재는 솔직히 억울했다.
그녀 는 본래 자기감정을 꽤나 잘 숨 기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헤일리는 그런 성격이 아니었는지,아니면 죽기 전에 온 통 그 생각뿐이었는지 도무지 수 습이 되질 않았던 것이다.
심지어 로렌스는 이재의 애인도 아니었다.
이재가 제일 억울한 부분은 모함받는 게 아니라,백지에 가까운 본인의 과거였다.
“폐하는 제 마음이 편해질 때까지 재촉 안 한다고 하셨으면서, 왜 저한테 화를 내고 그러세요.”
“난 재촉을 안 한다고 한 거지, 너보고 다시 그리로 가라고는 안 했다.”
“근데 사실 폐하는……”
이재가 말을 하다가 멈추자,로더릭은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해 봐.”
“예전에 그런 거 신경 안 쓴다고 하셨잖아요.”
“……그때랑 지금이랑 상황이 같나? 그래서 네 마음은 아직도 똑같다는 거야?”
“………”
“어?”
로더릭은 이번에야말로 살짝 울컥했다.
그는 왕후에게 호감보다 훨씬 짙은 감정을 갖고 있었고,날이 갈수록 그녀가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아내는 그게 아닌 것 같았다.
그녀는 간혹 뭔가에 정신이 팔려서 다른 곳을 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상심을 유지하려고 애쓰는 사람 같다.
웃긴 건 이 와중에 로더릭이 이재의 접시를 가져갔다는 점이 었다.
그는 고기를 대신 썰어 주면서 엄청 화를 내고 있었다.
좀 열은 받지만,저 콩알을 내가 안 챙기면 누가 챙기겠냐는 기혼자의 마음이었다.
“자꾸 이런 식이면 너도 내가 으아아,하는 거 한 번은 보게 될 거야.”
이재는 자신도 모르게 조금 웃고는 입가를 가렸다. 그걸 본 로더릭은 기가 막힌 듯했다. 접시를 이재에게 다시 밀어 주면서 그가 말했다.
“그래,너라도 재미있으면 됐다.”
“……죄송해요. 그런데 저도 마주치고 싶지 않았어요. 그건 정말 이에요.”
이재는 난처하고 미안해서 시선을 내리깔았다.
로더릭은 이미 울컥해 있었지만, 그 표정을 본 순 간 감정을 꾹 눌렀다.
전에도 느낀 거지만 죄책감을 많이 불러일으키는 표정이었다.
“그래,알았어.”
“………….”
“그런 얼굴 좀 하지 마. 네가 그러면 정말 뭐라도 있었던 것 같잖아.”
“그런 거 아니에요.”
“그래,알았다고. 나도 너한테 까지 화난 건 아니었어.”
이재는 눈가를 조금 찌푸리며 물었다.
“정말요? 그럼 애초에 얘기는 왜 꺼내셨어요.”
“기분이 썩 좋은 것도 아니니까. 어쨌든 네 말을 들어는 봐야 할 거 아냐.”
사실은 그 정도가 아니라 광중 이 올 때와 비슷한 기분을 느꼈다.
하지만 로더릭은 이쯤 하기로 했다. 그도 왜 이러는지 잘 알 수 없었지만, 왕후한테는 진심으로 화를 내는 게 어려웠다.
“일단 먹어.”
“네. 폐하도 드세요.”
둘은 그대로 식사에 집중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세상을 살다 보면 반드시 운수가 나쁜 날이 있기 마련 이다.
이재에게는 오늘이 그런 날 이었다.
그녀의 세 번째 위기는 바로 찾아왔다.
“왜 그래.”
이재가 어딘가를 물끄러미 보고 있자,로더릭은 의아한 둣 물었다.
그녀는 식탁 위에 올라온 요리 하나를 보고 있었다.
에스카르고 와 비슷한 종류로 달팽이 요리였다.
왕의 식탁에 올라왔다는 건 여 기서도 꽤 고급 요리로 취급된다는 뜻이다.
하지만 십여 년을 산에서 산 이재는 기어 다니는 걸 너무 자주 봐서 살짝 거부감이 일었다.
게다가 여기는 달팽이마저도…… 너무 컸다.
그녀의 표정이 점점 떨떠름해지 자, 로더릭은 피식 웃으며 물었다.
“이거 식용이잖아. 설마 안 먹어 본 건가?”
“………”
“네가 식문화에 관심이 없는 건 지, 던컨가가 재정 상태가 안 좋은 건지.”
이재는 고개를 저었다. 헤일리 도 공작가에서 종종 먹었던 것 같긴 했다. 그렇지만 이재도 본인이 쌓아 온 개인의 취향과 기호 가 있는 거였다.
죄송해요. 저는 입맛이 그다지 고급스럽지 못해요. 사실 촌스러워요.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전 정말로 산촌에서 자랐거든요.
꺼림칙해하는 표정이 귀엽기도 하고,웃기기도 했던 로더릭은 접시를 들어 시종에게 건네려고 했다.
“치워라. 우리 왕후께서 거북해 하시는군.”
그런데 이번에 버튼이 늘린 건 뜻밖에도 제이드였다.
그는 본인이 관여한 보고서의 신뢰성이 매일같이 무너지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 때문에 일국의 제1기사단장은 고작 달팽이 몇 마리에 울컥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왕후 폐하,그거 좋아하시는 거 아니셨습니까.”
“응?”
“꽤 좋아하신다고…… 전 분명히 그렇게 들었는데요.”
“누구……한테?”
이재는 의아한 얼굴로 제이드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분위기가 좀 묘하다는 것을 느꼈다.
이런 사소한 식성에 기사단장까지 관심이 있는 게 당 혹스러웠던 것이다.
제지한 건 로더릭이었다. 그는 혀를 차며 말했다.
“제이드. 왕후 지금 식사하는 중이잖나.”
“………”
“방해하지 마라.”
왕은 제이드에게 경고의 눈빛을 보냈다.
그런데 이재는 왕 또한 뭔가를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로더릭은 이재에게 다시 한번 의사를 물었다.
“먹기 싫어?”
“아니요? 좋아하는데요?”
하지만 내심 뜨끔해하는 이재를 유심히 살피던 그의 표정은 말하고 있었다.
얘 또 거짓말하네.
왕은 시종에게 접시를 건넸다.
“그냥 빨리 치워.”
오늘은 왜 이렇게 잘못한 거 하나 없이 벌서는 기분일까.
세 명의 건장한 남자들에게 차례로 두들겨 맞은 이재는 결국 눈칫밥을 먹고 말았다.
식사를 마친 그들은 정원을 잠시 걷다가 안으로 들어왔다.
속이 조금 안 좋았던 이재도 밤공기를쐬니 나아지는 걸 느꼈다.
그녀의 방으로 향하는 복도를 걸으며 로더릭이 물었다.
“몸은 괜찮나? 안 좋으면 며칠 더 쉬고.”
“아니에요. 그런데 폐하.”
“어,왜.”
“오늘은 폐하 방에서 자면 안 될까요?”
이재는 퇴마 의식을 재개할 생 각이었다.
내일 오후부터 접견이 있긴 했지만,많이 쉬었으니 하나정도는 없앨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로더릭은 그다지 내키지 않는 표정을 지었다.
“방 구경이 그걸로는 부족했나? 난 네 방이 더 마음에 드는데.”
“……그러셨어요?”
“응.”
로더릭의 감상은 사실 다 근거 가 있는 것이었다. 훨씬 안전한 곳은 이재의 방이었고,인간 부적이라고 모든 기운을 다 막아 줄 수는 없었다.
이재도 고민이 많아서 슬쩍 물어나 보았다.
“그럼 페하는 제 방에서 주무실 래요? 전 그 방이 좋아요.”
“……같이 자기 싫다는 말을 이렇게 참신한 방식으로 할 수가 있네.”
이재는 픽 웃으면서도 부인하지 않았다.
솔직하게 그녀는 로더릭이 없는 쪽이 편하긴 했다. 퇴마 중에 그 가 깰까 봐 늘 조마조마했고,그러다 보면 집중력이 흐트러졌기 때문이다.
“헤일리. 내가 오늘 싫은 소리 좀 했다고,이런 걸로 복수하는 건 너무 치사하다고 생각하지 않 나?”
“복수라뇨. 그런 거 아니에요. 그리고 딱히 싫은 소리로 듣지도 않았어요.”
“그럼 내가 네 말을 어떻게 받 아들여야 되는데.”
그녀가 다시 입을 다물자,그는답답한 둣 머리를 쓸어 올렸다.
“그러지 말고 좀 재워 줘라. 난 네가 없으면 정말로 잠이 안 와서 그래.”
“………”
“정 싫으면 바람피운 벌이라고 생각하든지.”
이렇게까지 말하면서 로더릭은 자존심이 좀 상하는 기분을 느꼈다. 하지만 단어 선택이 굉장히 이상하게 들렸던 그녀는 웃음을 홀리며 말했다.
“폐하,그게 어떻게 벌이에요.”
“뭐가.”
“벌이란 건 절대 그렇게 따뜻하 지 않아요.”
로더릭은 그 말에 잠시 허공을 바라보았다.
그는 하아, 한숨을 쉬고는 눈가를 문질렀다.
“……너 솔직히 일부러 이러는 거지.”
그는 자신을 쥐었다 폈다 농락 하는 살구색 여우의 어깨를 벽쪽으로 살짝 밀었다. 그리고 곧바 로 허리를 숙였다.
로더릭은 갸름한 턱을 깨물었다 가 달래 주듯 할았다. 입술을 통 째로 베어 물자, 이재의 입술은 그 안으로 사라져서 보이지 않았다.
맛있는 음식을 먹는 사람처럼 정신을 못 차리는 국왕을 보며, 시종들은 생각했다.
키스를 하시는 게 아니라 왕후 폐하를 거의 잡수시는구나.
체급 차이가 심한 탓에 로더릭에게 가려진 이재는 잘 보이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허리를 매만지던 로더릭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금방 떨어졌다. 이성이 끊어질 것 같은 신호를 느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더 하면 키스에서 끝 낼 자신이 없었다.
“오늘은 내가 안 되겠다. 너 그 냥 빨리 들어가.”
로더릭은 이재를 막무가내로 방에 욱여넣고,문을 닫아 버렸다.
순식간에 혼자 남게 된 그녀는 황당하단 얼굴을 했다.
이 상황은 계획과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오늘은 뒤로 넘어져도 착실하게 코가 깨지는 날이었다.
그렇지만 이상하게 나쁜 마무리 는 아니라는 기분이 들었다.
그 방에서 혼자 잘 국왕이 좀 걱정 되긴 했지만, 하루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난감해하며 입술을 깨물던 그녀 는 곧 명치에 두 손가락을 얹었다.
“상서로운 별,높은 곳에서 인간의 밤을 비추고. 눈부신 서광은 언제나 인간의 아침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다.”
이재는 빙긋 웃었다.
곁에 있어 주진 못하더라도 이 작은 기원이 오늘 밤은 그를 지킬 수 있기를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