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llow Your Heart RAW novel - Chapter (42)
마음이 이끄는 대로-42화(42/134)
#42.
로더릭과 이재는 높은 단상 위 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왕제의 귀국 축하연을 즐기던 사람들은 그 모습을 힐끔거렸다.
국왕이 왕후에게 쉴 새 없이 귓 속말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왕후는 때로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고, 때로는 맑은 웃음을 터뜨렸다.
대체 무슨 밀담을 저렇게 끊임 없이 나누는 걸까.
친왕파, 반왕파,진영을 가리지 않고 귀족들의 궁금증은 커져만 갔다.
“해일리. 저기 파인만 백작이군.”
“예,그러네요.”
“얼마 전에 백작 부인이랑 별거에 들어갔다더군.”
로더릭은 이재에게 사교계 비화 에 대해 들려주고 있었다.
저이가 공작의 최측근이다,저이가 기사 단의 유망주다, 후작가가 요즘 재 정 상태가 안 좋다, 저 둘이 사귀 는 사이라더라.
고개를 끄덕이며 듣고 있던 이재는 웃음을 머금고 물었다.
“폐하,지금 혹시 수업 시간인가요?”
동글동글한 눈 끝을 접는 게 귀여워서 로더릭은 이재의 의자 등받이에 팔을 걸쳤다. 그러다 슬 쩍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귀족들은 이제 대놓고 그 모습 을 힐끔거리기 시작했다.
사냥 대회 이후,국왕과 왕후가 공식석상에 함께 둥장한 것은 처음이었다.
둘은 지난번처럼 진한 키스를 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사 이는 그때보다도 훨씬 좋아 보였다.
무엇보다 국왕이 왕후한테 시 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단상과 귀족들과의 거리는 멀다. 들을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 그는 굳이 왕후의 귓가에 대고 속삭이고 있었던 것이다. 연애 좀 해 본 사람들이라면 다 아는 뻔 한 수작이었다.
“너,파인만 백작이 투자 좀 해 달라니까 나한테 이른다고 했다면서.”
“그런 것도 들으셨어요?”
“어. 들었지. 우리 왕후,그렇게 안 생겨 가지고 사람을 은근 잘 먹여.”
로더릭은 왕후의 접견록을 일일 이 확인하고 있었다.
그는 왕후가 사교계 전반에 대해서는 확실히 취약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도 신기했던 것은 그녀가 곤란한 상황을 잘 피해 간다는 것이었다.
“제가 그렇게 하면 폐하가 곤란 해지시는 건가요?”
로더릭은 심술궂은 얼굴을 하고 는 검지로 동그란 이마를 톡,건드렸다.
왕후는 가끔 저 말을 안 하면 대화가 진행이 안 되는 사람 같았다.
“아니, 잘했다는 뜻이다.”
“폐하한테 나쁜 역할을 돌리고 싶은 게 아니었어요. 그저 그게 모양새가 낫지 않나 싶어서요.”
왕후인 자신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이쪽으로 몰려오게 된다. 그게 왕한테는 힘이 안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로더릭은 고개를 끄덕였다.
“잘했다니까. 네가 같이 패 주면 난 좋지. 혼자는 외로운 거라며.”
“그럼 앞으로도 제가 몰래몰래 패 드릴게요.”
둘은 킬킬거리며 웃었다.
“파인만 백작은 사실 투자에 감이 없어. 운 좋게 졸부가 된 뒤로 는 손대는 족족 말아먹고 있거든. 넌 그걸 어떻게 알고 쳐냈지?”
“음,글쎄요.”
그냥 그 사람 얼굴에 써 있었어요. 관상이란 그런 거거든요.
난처한 둣 웃는 이재를 바라보던 로더릭은 말을 이었다.
“아무튼 백작 부인은 결국 이혼 할 생각인가 보더군.”
“그래요?”
“응,웃긴 건 백작이 꽤 오래전 부터 정부를 두고 있었다는 점이야.”
이재는 인상을 찌푸렸다.
“바람피우는 남자랑은 살아도 돈 없는 남자랑은 못 산다는 건 가. 우리 왕후께서는 이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
“전자는 정서상 안 맞고,후자는 좀 불편할 것 같은데…… 제가 그중에 꼭 하나를 골라야 하나요?”
로더릭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난 바람도 안 피우고, 돈도 많으니까 넌 아무 걱정 하지 마.”
“폐하랑 결혼하길 참 잘했어요”
“역시 그렇지?”
둘은 동시에 허리를 접으며 웃었다.
로더릭은 귀족들이 왕후와 자신을 힐끔거리고 있다는 사실 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시 선에 아랑곳하지 않고,이재의 뺨에 쪽,입을 맞추었다.
몰래 흠치는 사람 같은 도둑 뽀뽀였다.
“폐하,공식 석상에서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부부끼리 좀 하면 어때. 그게 뭐 큰 흠이 된다고.”
이재는 뺨에 손을 올리고 샐쭉 한 얼굴을 했다.
그런데 사람들의 반응을 살피기 위해 시선을 돌리던 그녀는 갑자기 움찔했다. 벽에 붙어 근무를 서고 있던 로렌스가 그녀를 하염 없이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재의 시선이 향한 곳을 확인 하던 로더릭은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입에서 거친 소리가 튀어 나갈 것 같았다.
“헤일리. 시선 관리 잘해라.”
“………….”
“난 공식 석상이라고 딱히 안 참아.”
“………….”
“네가 또 울면 정말 마음이 상 할 것 같다.”
저 자식이 지난번부터 계속 애 를 흔드네.
로더릭은 사실 로렌스를 파직시켜 버리고 싶었다. 이참에 제3기 사단을 왕제와 함께 서부 국경으 로 보내 버릴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괜한 자존심 때문인지, 그렇게 하기는 싫었다. 아내의 마음에 자신이 없으니,먼저 꼬리를 내리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헤일리. 대답 좀 해라.”
“……안 쳐다볼게요. 걱정하지 마세요.”
이재는 명치에 손을 올린 채 진정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녀는 곧 로더릭의 푸른 눈을 바라보며 괜찮다는 둣 고개를 끄덕였다.
이재의 시선은 다시 파티장을 맴돌았다.
차라리 다른 생각을 하 는 게 나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번에 그녀의 시선이 멈춘 곳은 이 파티의 주인공이었다.
왕의 동생은 왕처럼 흑발에 푸른 눈을 가진 남자였다.
하지만 왕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가진 사내였다. 조금 더 상냥했고,말씨가 부드러웠으며 훨씬 더 선이 가늘었다.
“폐하는 동생분이랑 별로 안 닮으셨네요.”
“년 이 많은 사람들 중에 어떻 게 꼭 집어서 남자들만 보냐.”
“………….”
“솔직히 말해 봐. 너,잘생긴 남자 좋아하지.”
“………….”
“……가끔 정말 이상한 소리 해.”
제 확고한 취향은 잘생긴 남자가 아니라, 얼굴에 대운이 있는 남자예요.
“폐하 동생이잖아요. 처음 말 나눠 봤어요. 무슨 남자예요.”
“그럼 왕제가 여자냐.”
심술궂게 농담을 건넨 그는 이 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에드거는 학자형이야. 나랑은 다르게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쭉 책만 파고 있지.”
이재는 작게 웃었다.
“그 말은 폐하는 책을 싫어하신다는 뜻?”
“몸 쓰는 쪽이 조금 더 적성이라는 뜻.”
“딱 봐도 그래 보여요.”
장수의 골상은 아무나 갖고 태 어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국왕이 검을 들지 않는 것은 곧 그의 운명에 반하는 짓이었다.
“그런데 저런 분을 왜 굳이 국경으로 보내세요. 본인한테 잘 맞는 일 하면서 살게 두시지.”
“………….”
“왕제께선…… 그게 운명인 것 처럼 보이는데요.”
국왕은 조금 퉁명스러운 얼굴을 했다.
왕제는 사실 외국에 나가 연구나 하는 편이 그에게 훨씬 도움 이 됐다.
계승권이 있는 왕족을 보면,허튼 생각을 하는 귀족들이 생기는 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제를 국경 으로 보내는 건 다 장인 때문이었다.
“누구 때문이겠나. 장인은 네 오라비를 서부군 책임자로 올리고 싶어 해. 난 그게 싫은 거고.”
“………….”
“그렇지만 국경에서 잡음이 끊이질 않으니까 전략 책임으로 왕족을 보내는 거야. 뭐, 왕실에서도 이 정도 했으니까 다들 입 다 물란 소리지.”
“………….”
“왕제는 나 대신 희생하는 거다. 상대가 원하는 걸 내어 주기 싫으면 이쪽도 뭔가는 희생해야 하거든.”
“정말 다들 세상을 피곤하게 사 네요.”
로더릭은 피식 웃었다.
“넌 한 번씩 노인처럼 말하더라. 정치란 게 원래 그런 거야.”
샐쭉한 얼굴을 하던 그녀는 다시 물었다.
“저희 아버지는 왜 그렇게 오라버니를 거기 보내고 싶어 하는거예요?”
“내가 너한테 묻고 싶은 말이었다. 네 아버지는 대체 왜 그러는 건가?”
그 집에서 이십일 년을 자라 놓고,네가 나한테 물어보면 어떡 하냐는 뜻이었다. 하지만 이재는 정말 까닭을 몰랐기 때문에 난처한 얼굴로 되물었다.
“그럼 폐하는 왜 반대하시는 건 데요.”
로더릭은 한숨을 쉬듯 웃었다.
새삼 자신의 아내가 가문 일에 정말 아무런 관심이 없다는 것을 재확인했기 때문이다.
“너희 집이 던컨이지 않나. 네 뿌리가 다이몬인 걸 설마 모르나? 거울만 봐도 뭔가 다르다는 걸 알 텐데.”
“………….”
“거울은 정말 아예 안 보나 보군.”
로더릭은 혀를 찼다.
그의 아내는 자신이 어떻게 생겼는지에 대해 자각이 없는 게 분명했다.
수없이 대를 건너오면서 그들이 가진 혈통적 특성은 희미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던컨은 아직도 대륙 내에서 미형만을 배출하기로 이름난 집안이었다.
헤일리는 그 던컨들 중에서도 유독 눈에 띄는 용모를 갖고 있었다. 미인인 것은 둘째 치고,무 슨 돌연변이처럼 이국적인 느낌이 강했던 것이다.
“서부 국경의 혼란은 다이몬 부홍 운동 세력 때문이다. 혹시 모를 위험 요소를 배제하는 건 왕 으로서 너무 당연한 선택 아닌가.”
“………….”
“뭐,다 케케묵은 이야기이긴 하지.”
다이몬 제국이 대륙을 지배했던 건 오백 년 전의 역사였다.
던컨 을 경계하라는 것 또한 사오백 년 전에나 내려오던 훈시다.
반군 들이 실제 다이몬의 후손인지도 명확하지 않다.
그러니 로더릭은 선왕의 의심이 비약이 아닐까 생각해 왔다.
그런데 던컨가에서 이상할 정도 로 물고 늘어지니,의심이 깊어지고 들어주기가 싫은 것이다.
대충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한 이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그녀는 곧 의아한 표정을 지어야 만 했다.
이건 던컨가 출신인 자신과 나 누기에는 좀 민감한 사안이 아닌 가 싶었기 때문이다.
“폐하는 저한테 왜 이런 걸 다 알려 주세요?”
로더릭은 코웃음을 쳤다.
“그래서 뭐,장인한테 쪼르르 가서 말할 건가?”
“………….”
“하고 싶으면 해도 돼. 근데 너,안 할 거잖아.”
“………….”
“내 말이 틀려?”
이재는 잠시 침묵했다.
“……폐하는 저를 안 믿으신다면서 그런 건 또 믿으시네요.”
“나는 그냥 내가 보고 느낀 대 로 말했을 뿐이다.”
이재는 곰곰이 뭔가를 생각했다.
그녀는 국왕이 자신을 의심하면서도,또 신뢰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굉장히 모순적인 상황 이었지만,그녀는 이 상황이 왜 발생했는지를 알고 있었다. 이해 할 수도 있었다.
그리고 로더릭을 바라보던 이재의 얼굴에는 곧 부드러운 미소가 피어났다. 그 얼굴을 바라보던 그 의 명석한 눈동자에도 이채가 떠올랐다.
이유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방금 전, 벽을 넘어 그녀의 손끝을 아주 잠시 스쳤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리 좀 와 봐.”
로더릭은 그녀를 끌어안고,쪽, 쪽 입을 맞추었다.
이재는 버둥거렸지만,로더릭은 몇 번이나 더 입을 맞춘 후에야 떨어졌다.
“너한테 해결해 달라고는 안 할 테니까,넌 그런 거 신경 안 써도 돼.”
움츠리고 있던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지 말고,제가 해야 할 일이 있으면 그냥 말씀하셔도 돼요.”
“나보고 내 아내를 이용하라고?”
“……그 말 되게 오래 담아 두시네.”
로더릭은 피식 웃었다.
“이쯤 하고,에드거랑 식사나 하러 가지.”
그는 이재의 손을 잡고 일으켰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그녀의 어깨를 팔로 감쌌다. 국왕이 눈짓을 하자,귀족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왕제 또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연회장을 나서기 전,로더릭은 마지막으로 로렌스에게 경고성 시선을 던졌다.
계속 그렇 게 아련한 눈빛으로 남의 아내한 테 추파를 던지면, 진짜 쏴 버리 겠다는 경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