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llow Your Heart RAW novel - Chapter (43)
마음이 이끄는 대로-43화(43/134)
#43.
왕족들 간의 식사 자리는 꽤 편안한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왕제의 태도가 시종일관 온화했기 때문이다.
왕후도 그가 궁금했는 지 계속 힐끔거리고 있었다.
그녀의 반응을 확인한 국왕은 피식,웃을 수밖에 없었다.
“왕후 폐하, 듣던 대로 미인이시네요.”
왕제가 건넨 건 인사로 쓸 법 한 의례적인 칭찬이었다.
이재 또 한 좋은 말로 화답하려고 했으나, 먼저 입을 땐 건 로더릭이었다.
“사실 그게 내 불만이야.”
그녀와 에드거가 동시에 바라보았지만,턱을 괸 국왕은 태연하기만 했다.
“누가 왕후를 꼬여 낼까 봐,혼자 전전긍긍하는 삶을 살고 있지. 난 사실 얘한테는 화도 잘 못 내겠거든.”
“폐하,지금 뭐 하는……”
이재가 그만하라는 둣 제지했으 나,국왕은 말을 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우리 왕후께선 정말로 마음이 알뜰하시다는 거야.”
“………….”
“물론 나한테까지 알뜰하게 군다는 문제가 있긴 한데. 뭐,그 정도는 사소한 거지.”
“에드거,아름다운 아내를 얻은 남자의 삶이란 결국 이런 거다.”
로더릭은 그러니까 너희는 결혼 하지 마라, 같은 소리를 했다.
물론 곧이곧대로 듣는 사람은 아무 도 없었다.
말문이 턱 막혔던 이재는 입 모양으로 물었다.
폐하,지금 대체 뭐 하시는 거 예요?
로더릭 또한 입 모양으로 대답 했다.
왜. 내가 뭐.
그들이 하는 모습을 멀찌감치서 바라보던 기사단장은 생각했다.
왜 두 분께서는 손님을 앞에 모셔두고, 두 분끼리만 이야기하시는 거지요?
그러나 국왕의 오랜 벗은 그가 왜 저러는지도 대충 알고 있었다.
국왕은 지금 아닌 척 왕후 자랑을 하고 있는 것뿐이었다.
그것도 자기 면을 깎아서 아내 얼굴에 열심히 금칠을 해 주고 있었다.
왕제는 조금 민망한 둣 웃었으나 그 후에는 훨씬 더 당황해야 만 했다.
식사를 시작하려는 왕후의 접시로, 국왕이 손을 뻗었기 때문이다.
“줘 봐. 해 줄게.”
요즘 들어 매번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동석한 사람은 왕의 형제 였다.
눈치가 보였던 이재는 접시를 바싹 자기 쪽으로 끌어왔다.
“괜찮아요. 제가 할게요.”
하지만 국왕은 계속 손을 내밀고 있었다.
“줘,빨리.”
“………….”
“내가 지금 팔이 안 닿아서 이 러고 있겠냐.”
결국 접시를 건네받은 국왕이 먹기 좋게 식사를 썰어 주자,왕제는 굉장히 오묘한 표정을 지었다.
형님이 원래 저렇게 매너가 좋 은 남자였나?
왕후를 대하는 태도가 퍽 자상했다.
이재는 왕제가 점점 이상한 눈초리로 로더릭을 보고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아까보다 어색해진 미소로 권했다.
“왕제께서도 식사 계속하세요.”
그러자 조금 멈칫하던 에드거는 이내 상냥하게 웃었다.
“왕후 폐하.”
“네?”
“그냥 에드거라고 편하게 부르 십시오.”
“에이,그래도 그럴 수는 없죠”
두 사람이 다시 좋은 분위기를 연출하자,로더릭은 피식 웃었다.
그러나 그는 점점 묘한 감상에 빠지고 말았다.
문득 자신과 왕후 의 처음은 어땠지? 하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첫 만남은 아마도 왕후의 데뷔 탕트에서였을 것이다.
하지만 딱 히 인상적인 기억은 남아 있지 않아서 로더릭은 아쉬웠다.
자신은 왜 그때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누어 보지 않았을까. 분명 던컨이라서 그랬겠지.
그러지 말고 조금 더 말을 걸어 보았더라면…… 왕후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지금보다 더 많이 알 수 있었을 텐데.
그는 아쉬워서 눈썹 끝을 긁적였다.
“왕제께서는 어떤 공부를 하던 중이셨어요?”
“고고학과 역사학,철학 등에 대해 연구하고 있습니다.”
“관심 분야가 되게 다양하신가 봐요.”
“관심사만 다양하고 성과는 없는 별 볼 일 없는 학자죠.”
계속 대화를 듣고 있던 로더릭은 적당히 끼어들며,이번에는 동생의 면을 세워 주었다.
“겸손이 지나치군.”
이재 또한 웃으며 말을 보탰다.
사실은 그녀와 관심사가 비슷했기 때문이다.
무속인들 중에 철학과 사학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다 돌팔이였다.
지류는 본류를 이길 수 없 고, 세계의 거대한 흐름에 영향받 지 않는 인간은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영산할매는 한의학에도 조예가 있는 사람이었다.
“굉장히 재미있을 것 같아요. 저도 배워 보고 싶네요.”
그러자 이재를 빤히 바라보던 로더릭은 말했다.
“그럼 해. 하면 되는 거잖아.”
“……그래도 되는 거였나요?”
“그래. 남편도,처가도 돈만 많은데 넌 뭐가 걱정이야.”
“………….”
“누가 말린 적 있나.”
물론 말린 적은 없었다.
하지만 읽지도 못하는 책을 빌려 간 것을 의심한 적은 있다.
이재는 진심으로 기쁜 얼굴을 했다.
자신의 버킷리스트 다섯 번 째 항목,‘카이엔 왕국사 파악’의 실현이 임박했다는 것을 직감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기회를 봐서 국왕에게 왕족들의 문자도 알려 달라고 해 볼 요량이었다.
사실 시간 낭비이긴 했다. 이재 에게는 함의 정령이라는 고성능 리더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어지 간한 인공지능 부럽지 않았다.
왕제는 말을 이었다.
“사실 연구는 핑계고,전 그냥 여기저기 떠돌아다녔습니다. 형님께 짐을 다 떠넘긴 못난 아우죠.”
딱히 반박할 생각은 안 드는지 로더릭은 픽 웃었다.
하지만 이재 는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부럽네요.”
“뭐가 말입니까.”
“사실은 저도 여기저기 다녀 보고 싶었거든요. 발길이 닿는 대로 떠돌아다니고 싶었어요.”
하지만 그러지는 못했어요. 왜냐하면 저는 제 운명을 어느 정 도 알고 있었거든요.
그 삶이 옳았는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이재가 조금 씁쓸한 얼굴을 하자, 로더릭은 이번에는 한숨을 쉬었다.
그러면서도 왕후가 왕실이 답답하긴 한가 보다 생각하고 있 었다.
“헤일리. 그 얼굴 좀 하지 마라.”
“뭐가요.”
“그런 얼굴 해도 그건 안 돼.”
“뭐가 안 된다는 거예요?”
“갈 거면 나중에 양위라도 하고, 나랑 같이 가야지. 지난번부 터 자꾸 어딜 혼자 간다는 거야.”
말을 하면서 로더릭은 깨달았다.
자신은 왕후가 없으면 잠을 못 자는 게 아니었다.
왕후가 없으면 그냥 아무것도 안 되는 수준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일단 옆에 없으면 공기부터 기 분 나빴다.
“저도 당장 어딜 가겠다는 건 아니었는데요.”
“아,언젠가 하긴 하겠다는 거네. 그럼 의지의 표명이었네.”
“………….”
“나중에 나랑 같이 가.”
“………….”
“일단은 신전부터 같이 가고.”
하지만 이재가 확답을 하지 않자, 로더릭은 동생을 바라보며 말 했다.
“이렇게 표현이 알뜰하다고.”
왕제는 기사단장이 느꼈던 감정 을 그대로 느끼고 있었다.
식사는 셋이 하고 있는데, 형님 내외는 자신을 반찬으로 놓고,계속 둘에게 필요한 대화를 하고 있었다.
미인이라고 칭찬했더니,국왕은 자꾸 한눈을 판다고 불만을 표출 한다.
연구 중이라고 말하니,왕후는 은근슬쩍 욕심을 내비친다.
국왕 은 또 잘 보이고 싶어서 마음껏 하라고 했다가 여행은 같이 가자 고 한다.
왕제가 연관되어 있긴 한데,왕제는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는 이야기들이었다. 이쯤 되면 왕제는 중간에 껴서 이용을 당하는 중이었다.
조금 답답한 듯 머리를 쓸어 올린 국왕은 말했다.
“일단 그거나 더 먹어.”
“네가 에드거랑 대화하는 게 즐 겁다는 건 알겠는데,떠드느라 식사를 남기면 난 챙겨준 보람이 없잖나.”
“네,알았어요.”
이재는 평상시 식사도 무슨 무소유를 추구하는 성직자처럼 했다.
극도로 심심한 입맛을 갖고 있었지만, 그래도 로더릭이 챙겨 주면 이것저것 손을 대긴 했다. 차마 그의 성의를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억지로 먹진 말고.”
“……먹으라는 거예요,그만 먹으라는 거예요.”
대체 어쩌라는 거죠?
“사실 나도 잘 몰라.”
불과 삼 분 전까지 티격태격하던 둘은 동시에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에드거는 결국 난감한 얼굴로 주변 반응을 살폈다.
국왕의 건강이 여러모로 안 좋다고 들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몸은 예전보다도 건강해 보였 고,마음 또한 편안한 듯하다.
그는 단지 왕후에게 굉장히 빠진 것처럼 보였을 뿐이었다.
식사가 마무리되고,이재는 조금 아쉬워했다.
왕제와의 대화가 상당히 즐거웠기 때문이다.
그걸 본 국왕은 피식,웃으며 티타임을 제의했다.
그가 왕후를 참 알 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건,어떨 땐 또 사람을 좋아하고 그리워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국왕의 시종들이 차를 내오자, 그는 다시 에드거에게 말했다. 당부였다.
“이번엔 네가 나 대신 고생 좀 해라.”
“예,형님.”
“나도 유감스럽게 생각해. 하지만 잠잠해지면 좋아하던 일도 다시 시작할 수 있을 테니, 애 좀 써 봐.”
“예,염려하지 마십시오.”
그런데 로더릭은 이재가 아까부터 다른 곳을 힐끔거리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아쉬워하는 것 같아서 자리를 마련했더니 또 어딜 보는 걸까.
그녀는 벽에 붙어서 대기 중인 사람들을 보고 있었다.
그들 중에 낯선 얼굴이 있었기 때문이다. 고 민하던 이재는 깨달았다.
“아,외국분이시구나.”
역시 양인들도 국적에 따라서는 미묘한 차이가 있는 거군요?
이재가 동의를 구하듯 로더릭을 바라보자,그는 좀 기가 막혔다.
거울은 안 들여다봐도 또 그런 관심은 있는 모양이었다.
물론 이재는 국왕의 말처럼 거울을 안 보는 것도 아니었다.
외모를 보는 관점이 남들과 다르고, 외모 말고 다른 걸 볼 때가 많았 을 뿐이었다.
“유학하며 알게 된 제 벗입니다. 저를 옆에서 여러 번 도와줬습니다.”
왕제가 그를 소개하자,남자는 고개를 숙여 보였다.
카이엔 기사 들의 경례와는 달랐지만,절도 있 는 동작은 그가 꽤 숙련된 무도 인임을 보여 주었다.
이재는 순수하게 감탄했으나, 로더릭은 무언가 마음에 안 드는눈치였다.
“나는 왕제와 나눌 말이 있다. 1기사단을 제외하고는 다 나가 있어라.”
그러자 제이드와 기사 두엇,시종장을 제외한 사람들은 방을 빠져나갔다. 이재 또한 옷자락을 정 리하며 일어나려 했다.
하지만 로 더릭은 이재의 손목을 덥석 잡았다.
“어디 가. 넌 내 옆에 붙어 있 어야지.”
“……제가 왜요?”
난 기사단도 시종장도 아닌데?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나누시려 는 거 아니었나요?
인상을 쓰던 국왕은 적당한 핑곗거리를 찾아냈다.
“넌 왕족이잖아. 내가 연회장에 서 했던 말을 잊었나?”
그는 왕후가 공작한테는 물론이고,어디 가서 떠들고 다닐 사람 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았다. 오히려 너무할 정도로 입이 무거울 때가 있었다.
결국, 이재가 어정쩡하게 옆에 앉자 그는 그녀의 어깨를 당겨 안았다.
“에드거.”
“예,형님.”
“기사 백, 병사 천을 내어 줄 테니 국경까지 안전하게 가라. 자유롭게 사는 건 좋은데,매번 그렇게 사람 두엇만 대동하고 다니면 어떡하나.”
국왕은 신중한 태도로 말을 이었다.
“오해할까 봐 말해 두지만,난 너를 죽으라고 거기 보내는 게 아니야. 적당한 전공을 세웠다 싶으면 몸 사리고 돌아와.”
“………….”
“네가 카이엔 왕족이라는 걸 한 순간도 잊지 마라. 내가 잘못되면…… 이 나라는 네가 책임져야 하니까.”
이재는 움찔했다. 뒷말이 뼈 있게 들린 건 그녀뿐만이 아닌 둣했다.
“폐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 말씀은 거두어 주십시오.”
여기저기서 원성이 자자했다. 하지만 로더릭은 관심조차 두지 않았다.
이건 국왕이 계승권을 가 진 왕족에게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이었다.
그러니 시커먼 사내놈들이야 송구해하든, 통곡을 하든 신경쓸 바 아니었다.
하지만 로더릭에게 살구색 여우 만큼은 달랐다.
너무 작고 소중했 던 것이다.
이재는 국왕을 빤히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녀의 눈동자에 서운함 과 항의가 섞여 있는 것을 발견 한 로더릭은 멈칫했다.
그는 결국 모든 사람들을 제쳐두고,심지어 당사자인 동생마저도 방치한 채,이재에게만 해명했다.
“넌 또 표정이 왜 그래.”
“………….”
“그냥 몸조심하라는 뜻이야.”
“………….”
“우리 콩알,평상시에는 잘만 알아들으면서 지금은 왜 눈치가 없지?”
로더릭은 한참 아래에 있는 그 녀의 정수리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동그란 이마에 입술을 갖다 댔다. 신경 쓰지 말라는 뜻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