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llow Your Heart RAW novel - Chapter (45)
마음이 이끄는 대로-45화(45/134)
#45.
왕제의 출정을 배응한 뒤,이재 는 두어 건의 접견을 소화했다.
그 뒤로는 계속 방에 틀어박혀 해가 질 때까지 부적만 썼다.
결 전의 날이 머지않았기 때문이다.
열댓에 달하던 원귀는 어느덧 다섯까지 줄어 있었다.
그동안 야금야금 박멸한 덕이었다.
이 속도면 늦어도 사나흘 안에는 모조리 퇴마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뒤, 이재는 방 안에 결계를 만들어 줄 생각이었다.
장소가 국 왕의 방이기에 쉽지는 않을 테지만,무수한 밤을 보내며 그녀는 부적을 숨길 만한 위치를 끊임없 이 고민했다.
액자. 책장과 장식장의 뒤편. 침대 밑. 결계의 모양,방향.
“왕후 폐하,페하께서 오고 계십니다.”
데보라는 말을 전하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뭐,얼마나 먼 거 리라고 일을 마친 국왕이 데리러 왔기 때문이다.
이재는 서둘러 부적을 품 안에 집어넣었고,로더릭은 웃음 띤 얼굴로 들어왔다.
“헤일리. 뭐 하고 있었어.”
“그냥 있었어요.”
“말이라도 좀 기다렸다고 하지 그래.”
이재는 웃음을 흘렸다. 아침에 국왕을 보고,오후에 또 봐도 그녀는 반가웠다. 그러니 그냥 기다렸다고 말해 주면 된다.
하지만 왜 얌체같이 그게 안 되는 걸까.
국왕도 장난기가 좀 있는 사람이기 때문일까.
“그런 건 괜한 인사치레.”
그러자,조금 못마땅한 표정을 짓던 로더릭은 이재의 뺨에 쪽, 입올 맞추었다.
“안부를 물으면 안부로 받고, 키스를 하면 키스로 받는 건 상호 간의 예의 아닌가?”
“후자는 아닌 것 같은데요.”
“역시 안 속네.”
로더릭은 피식,웃으며 손을 내 밀었다.
그리고 손을 잡고 일어난 이재의 어깨에 익숙하게 팔을 둘 렸다.
복도를 걸으며,둘은 계속 대화를 주고받았다.
국왕의 기분은 좋아 보였고,이재 또한 그의 말을 듣고 있는 게 즐거웠다.
하지만 문제는 국왕의 방문을 열었을 때 일어났다.
“우욱……. 욱.”
“헤일리?”
마음의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던 이재는 헛구역질을 하며 입을 틀어막았다. 그러자 사위는 정적에 잠겼다.
이재는 믿을 수 없다는 둣,황망한 눈으로 방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시종들이 수군대는 목 소리는 국왕의 귀에까지 닿았다.
“세상에……. 설마 회임을 하신
건가?”
“벌써?”
“벌써는 아니지.”
“시기상으로 언제였던 거지?”
로더릭은 황당한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
시종장과 시녀장의 기대 어린 눈빛을 확인한 그는 딱 잘라 말했다.
“아니다.”
“그런 거 아니라고.”
국왕의 시종들과 왕후의 시녀들 은 언제나처럼 기 싸움을 했다.
경력이야 다 근소한 차이였다.
다만 그들 중 데보라를 누를 수 있 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을 뿐이다.
결국, 기 싸움에서 밀린 시종장 은 곤란한 역할을 떠맡았다.
“폐하,어떤 방법을 취하셨는지 는 잘 모르나,확률이라는 것은 늘 있는 것으로……
“내가 그런 것도 모르는 어린애 인가? 아니라고 말했잖나.”
확률도 뭔가를 했을 때나 있는 거였다. 왜인지 모르게 한껏 열이 받은 국왕은 말했다.
“필요하면 부를 테니 일단 밖에 있어라.”
“………….”
“이씨. 그런 거 아니니까 다 닥치고 꺼지라고.”
로더릭은 이재를 안으로 들이고 곧바로 문을 닫았다.
“헤일리.”
왕후는 어딘가 넋이 나가 있었다. 우두커니 서 있는 이재를 보며 로더릭은 곤혹스러워했다.
“체한 건가?”
“………….”
“갑자기 왜 이러지?”
“………….”
“지금 의원 불러올까?”
로더릭은 왕후가 의원에게 진찰 받는 걸 꺼린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녀는 약마저도 필요 없다는 말을 간혹 하곤 했다.
국왕은 왕후가 지병을 숨기고 있다고 의심
한 지 오래였다.
이재는 이번에도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거 아네요.”
“……헤일리.”
“정말 괜찮아요.”
하지만 이재의 낯빛은 파리했 고, 여전히 정신을 못 차리고 있 었다. 로더릭이 억지로라도 의원 을 불러야 하나 고민할 때,그녀 는 비틀거리며 국왕의 침대 쪽으 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재는 지금 굉장히 큰 절망감을 느끼고 있었다.
분명 다섯밖에 남지 않았었다. 결계를 친 적이 없고,방 주인이 국왕이니 원귀가 더 들어올 수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원귀의 숫자는 원상 복 귀 수준도 아니었고,스물에 가까이 불어나 있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인 거지?
“헤일리,정말 괜찮은 거〇竹”
“……네. 괜찮아요.”
이재는 건성으로 대답하며 침대 맡에 손을 뻗었다.
그녀는 심하게 벌어진 천하대장 군과 두 동강이 나 버린 지하여 장군을 망연자실하게 바라보았다.
이재보다 늦게 그것을 발견한 로더릭은 당황했다. 그의 예상 범 위에 전혀 없었던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잠시 후,그는 훨씬 더 당황해야만 했다. 왕후가 갑자기 눈물을 글썽거리고 있었다.
“어…… 왜 울지.”
“어떡하지. 미안해.”
로더릭은 전에 없이 난처해져서 눈썹 끝을 긁적였다.
이게 왕후한테 그 정도로 소중 한 거였나. 그렇게 소중한 거면 왜 간직하지 않고, 날 줬지.
그는 반 이상 벌어진 천하대장 군, 헤일리를 이재의 손에서 가져 갔다.
“그냥 금이 좀 갔을 뿐이다.”
“헤일리,별거 아니야. 이 정도 는 괜찮아.”
“가루가 돼도 계속 소중히 여길 테니까 그렇게 속상해하지 마.”
이재는 그 말에 더욱 울컥한 얼굴을 했다.
폐하,그럼 이재는요. 이재는 이미 너무 망가져 버렸잖아요. 나 는 어떻게 해요.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두 동강
이 난 지하여장군을 그의 손에 얹어 놓았다.
로더릭은 묘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왕후는 혹시 지난번 에 이게 서운했던 건가?
그럴 사람이 아닌데,생각하면 서도 그는 말했다.
“물론 이것도. 너무 당연한 거 아닌가.”
‘해일리.”
“난 네 정성과 기원을 받은 거 니까,모양은 어떻든 상관없어.”
로더릭은 손안의 조각상들을 꼭 쥐었다.
고개를 끄덕인 이재는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 두 눈을 꼭 감고,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도 알고 있었다. 장승이야 또 깎으면 되고,원귀야 다시 없 애면 된다. 평정심을 잃어버리면 될 일도 어그러지고 만다.
그렇지만 이제까지 고생한 게
무위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 또 한 참기 어려웠다.
대체 왜 이러는 거야. 나는 어 디까지 해야 하는 거냐고.
그녀의 얼굴이 좀처럼 풀릴 기 미가 없자,로더릭은 한층 더 초 조해졌다. 어떻게 해 주면 되겠냐 고 물어보고 싶었다.
잠시 후,눈을 뜬 이재는 염라 상의 모습을 확인하고는 다시 침 대로 돌아왔다. 그나마 염라상의 상태라도 괜찮아서 다행이었다.
“폐하,괜찮아요. 저 안 아파 요.”
아까보다 훨씬 침착해진 얼굴이 었다. 하지만 안색은 여전히 좋지 않아서,로더릭은 걱정스러운 기 색을 감추지 못했다.
“헤일리. 나한테는 솔직하게 말 해 줘도 돼. 나도 너한테 해가 갈 일은 하지 않아.”
‘너,정말 괜찮은 거 맞아?” ‘……그럼요.”
이재는 희미하게 웃어 보이며, 침대에 누웠다.
“그냥 좀 피곤했나 봐요. 원래 사람은 별거 아닌 것 가지고 예 민할 때가 있는 거잖아요.”
“그니까 빨리 자야겠어요. 폐하 도 얼른 주무세요.”
로더릭은 한참 동안 그녀를 바 라보기만 했다. 그는 속으로 생각 했다.
거짓말.
하지만 이재가 눈을 감아 버리 자, 어쩌지 못하고 그녀의 옆에 따라 누웠다. 당연한 말이지만, 마음이 몹시 불편했던 로더릭은 쉽사리 잠을 이루지 못했다.
평상심을 잃고, 괴로워하던 왕 후의 얼굴이 계속 아른거렸다.
한참이 흐른 뒤, 그는 이재의 쇄골께를 토닥였다. 위로하듯 조 심스럽고, 다정한 손길이었다.
그녀는 속에서 울컥하고 뭔가가 치미는 것을 느꼈다. 눈물이 나올
것 같은 기분을 간신히 억누르며, 이재는 그가 잠들기만을 애타게 기다렸다.
언제부턴가 국왕이 잠들길 기다 리는 것조차 그녀에게는 하나의 싸움이 되어 간다. 이재는 그 싸 움에서는 항상 손쉽게 승리했다.
저 광경을 볼 수 있는 자,그 누구도 잠을 이룰 수 없으리라.
이재는 로더릭의 눈가를 조심스 럽게 쓸어 보았다. 곤히 잠든 그
는 미동이 없었지만,그녀는 손끝 이 자꾸만 떨려 와서 얼른 떼어 냈다. 로더릭의 품에서 빠져나온 이재는 방 한가운데에 털썩 주저 앉았다. 그리고 원귀들을 하염없 이 바라보았다.
그래, 내 인생이 이렇게 평탄할 리는 없는 거지.
그렇지만 저 사람은 아니잖아. 세상이 저 사람한테는 왜 이러는 거지. 누가 이 방에 살이라도 날 리는 건가.
머리를 감싸 쥔 채 고뇌하던
그녀의 눈에서는 결국 참았던 눈 물이 뚝, 뚝 떨어졌다. 이재는 잠 들어 있는 로더릭을 바라보았다.
내가 잘못되면.
‘나도 너한테 해가 갈 일은 하 지 않아.’
페하, 그러니까 저한테 잘해 주 지 말라고 했잖아요.
사실 저한테 이렇게까지 말을 많이 걸어 준 사람은…… 당신밖 에 없단 말이에요.
그런데 당신이 잘못되면 저는
앞으로 어떻게 해요. 내가 어떻게 그걸 보고만 있어요.
이재는 흐느끼며 바닥에 엎드렸다.
발길이 닿는 대로,마음이 가는 대로 떠돌아다녀 보고 싶었다고 했나.
하지만 그녀는 이미 오랜 시간 황량한 풍경을 걸어온 여행자였다.
물을 염원하며 사막을 걷다가 호수를 만나면 빠져들고 만다. 갈
급하고,구걸하던 자신이 초라하 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이러면 위험할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든다.
이성은 늘 말했다. 이것은 신기 루야. 여기까지만 하라고. 더 빠 져들면 죽는다고.
그러면서도 그녀는 자꾸만 국왕 에게로 향하는 자신의 마음 을…… 막을 수 없었다.
얼굴을 감싸 쥐고 오랜 시간 훌쩍이던 그녀는 손등으로 눈물 을 닦으며 일어섰다.
머지않아 날은 밝아 올 것이고, 국왕은 예전처럼 잠이 부족한 사 람이 아니었다.
더는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이재는 침대가로 다가가 촛대를 가져왔다. 눈물을 주룩주룩 홀리 며 그녀는 부적을 몇 장 불태웠다. 그리고 원귀들을 매서운 눈으 로 쏘아보았다.
“단이감행귀신피지.”
“뜻한 바를 과감하게 결단하라.
삿된 것들이 피해 가리라.”
눈가를 몇 번 더 흠친 뒤, 그녀 는 다시 옮조렸다.
“백전불굴,견인불발.”
“결코 흔들리지 않을…… 사람 의 마음.”
그리고 나의 마음.
심호흡을 하며 자신을 다스린 이재는 손을 넓게 뻗고 기운을 모았다.
하나의 강력한 원귀보다 여럿의 잡귀를 멸하기 위한 주문이었다.
“지류는 필연적으로 수없이 꺾 일 것이다. 그렇다 할지라도 그들 은 언젠가 바다를 만난다.”
“너희의 어두움이 때로 우리를 힘들게 할지라도, 천리는 지엄하 며 인간은 어둠 앞에 무릎 꿇지 않으리라.”
손끝에는 기가 아직도 남아 있 었지만,그녀는 쿨럭거리며 힘을 거두었다.
이재는 혼란스러운 눈으로 원귀 들을 살폈다. 사라진 것은 다섯인
가? 여섯인가?
거의 처음 수준으로 되돌렸지 만, 서 있는 것도 힘들어서 그녀 는 털썩 주저앉았다.
“하아,하아……
토할 것처럼 기침을 하던 이재 는 으혹,하며 울음을 터뜨렸다. 바닥에는 그녀가 뚝,뚝 홀린 눈 물 자국이 남았다.
이재는 그것을 너무나 지우고 싶어서 손바닥으로 수없이 문질 렸다. 슬픔과 좌절의 혼적은 한순
간에 마르지는 않았지만,이재는 자신에게 끊임없이 말했다.
“아무렇지도 않아. 나는 애도 아니고,충분한 힘이 있어. 난 안 울 거야.”
그녀는 침대까지 엉금엉금 기어 서 다가갔다. 그리고 바들바들 떨 리는 손으로 침대를 부여잡고 올 라왔다. 겨우 그의 곁으로 온 이 재는 로더릭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괜찮죠? 꼭…… 괜찮아야 해
그녀는 쓰러지듯 누우며,로더 릭을 원귀에게서 가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