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llow Your Heart RAW novel - Chapter (46)
마음이 이끄는 대로-46화(46/134)
#46.
국왕은 일상적인 아침을 맞이하 둣 눈을 떴다. 그러나 그는 곧 뭔 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아야만 했다.
왕후가 자신을 감싸듯이 끌어안 고 있었다. 얘가 왜 이러고 자는 거지?
목 주변에서는 무언가 축축한 것이 느껴졌다. 비릿한 냄새가 난
다는 것을 감지한 로더릭은 그녀 의 몸을 바로 누였다.
이재가 어마어마한 양의 코피를 쏟고 있었다.
“시종장!”
깜짝 놀라 달려온 사람들의 눈 이 커졌다.
“의원을 불러라, 빨리!”
소리를 치면서도 그는 반사적으 로 이재의 왼쪽 가슴에 손을 얹 었다. 심장은 쿵, 쿵 뛰고 있었다.
진료를 보는 의원은 무척이나 심각한 얼굴이었다. 그의 의료 지 식에 위배되는 상황이었기 때문 이다. 왕후는 이렇게 몸이 약한 사람이 아닌데. 갑자기 이럴 이유 도, 딱히 문제도 없는데.
“왕후 폐하.”
그는 좀 이상하다는 둣 이재를 불렀다. 대답이 없었지만, 그는 어깨를 살짝 흔들었다.
“왕후 폐하?”
로더릭이 사나운 표정으로 제지
하려 했으나,그녀는 거짓말처럼 눈을 떴다.
“어, 어? 나 불렀어?”
“나,늦잠 잤나?”
이재는 주변을 둘러봤다. 사람 들이 심각한 얼굴로 그녀를 둘러 싸고 있었다. 이재는 곧 상황을 깨달았다. 아아,그랬지.
“조금 더 자고 싶은데요.”
“……헤일리.”
로더릭은 매달리고,애원하는
목소리로 그녀를 불렀다.
왕후가 피를 주룩주룩 쏟고 있 을 때,그는 독살을 의심했다. 왕 실에선 빈번한 일이었고,그렇게 죽은 사람들은 너무나도 많았다. 그의 정혼녀들은 아예 왕실에 발 도 디디지 못하고 죽었다.
그런데 넌 왜 이렇게 아무렇지 도 않은 얼굴이야.
열심히 닦았지만, 아직도 핏자 국이 남아 있어 그는 엄지로 그 녀의 얼굴을 문질렀다.
“헤일리.”
하지만 그녀는 그의 부름에 대 답하지 않고 또 어딘가를 보고 있다.
이재는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원귀들이 벽에 잘 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염라상은 역시 아주 강한 아이 였어.
하지만 이재는 자신의 몸이 현 재 만신창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뒤늦게 로더릭을
바라보았다.
“폐하.”
“옹,나 어떻게 할까.”
로더릭은 말만 하라는 듯 그녀 의 얼굴에 귀를 가져다 댔다.
“저 좀 제 방에……. 죄송해
요.”
“……거기 가고 싶어?”
“네,혼자는 못 가겠어요. 미안 해요.”
“아니야,뭐가. 가면 되지.”
로더릭은 정말 큰 이상이 없다 는 의원을 노려보다가,또 심란해 하다가,그녀를 안아 올렸다. 복 도를 걸어가며 그는 물었다.
“어떡하면 좋지. 피가 너무 많 이 났는데.”
“저,피 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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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 저 혹시 피 토했나요?”
“……정말 왜 이래. 응?”
이재는 의아하게 로더릭을 바라 보다가 그의 목덜미에 핏자국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간 신히 손을 들어 그걸 문질렀다.
“폐하도 혹시 피나셨어요? 그러 면 안 되는데?”
이 사람 센데? 심지어 내가 안 고 잤단 말이야.
이재는 아랫입술을 깨물며 그의 목덜미를 계속 더듬었고,로더릭 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아니,이건 네가 코피를 홀려 서 그래. 너무 걱정했어.”
“아,입이 아니라 코에서 난 거
구나.”
“……헤일리.”
로더릭은 어찌할 바를 모르면서 도 이재의 방까지 왔다. 그사이 이재는 어설프게 잠이 들어 있었다. 그녀를 침대 위에 내려놓고 국왕은 말했다.
“다 나가 있어라. 왕후와 할 말 이 있다.”
이번에는 시종장도,시녀장도 끼지 못했다. 입을 델 수 있는 사 람이 자신뿐이라는 것을 깨달은
제이드는 한 걸음 다가섰다.
“폐하.”
“왜.”
“외람된 말씀인 건 알지만…… 왕후 폐하 좀 쉬게 놔두십시오.”
로더릭은 의아한 둣 주변을 둘 러보았다. 그런데 그들은 모두 같 은 얼굴을 하며 기사단장의 말에 공감하고 있었다.
“그냥 봐도 두 분은 체급이 다 롭니다. 폐하와 체력이 절대 같지 않습니다.”
야,,
무슨 의미인지 깨달은 로더릭이 미간을 좁혔으나,제이드는 고개 를 저었다.
“이렇게 하시면 안 됩니다.”
“왕후 폐하는 지금 솔직히 너무 불쌍해 보이십니다.”
국왕과 같이 잘 때마다 왕후의 얼굴은 헬쑥해졌다. 아침마다 남 편은 산뜻한 얼굴로 나오는데,아 내는 왜 창백한 얼굴을 하고 있
는지는 뻔했다.
보는 눈이 많아 어릴 때처럼 할 수는 없었고,제이드는 표정으 로만 친우에게 말했다.
너 진짜 짐승이었냐?
사람이 다 눈이 있고,나도 남 자니까 네 마음은 알겠는데, 좀 적당히 하라고.
아무리 신혼이어도 그렇지,어떻게 자기 아내를 코피까지 쏟게 만들어?
국왕은 주변을 또 한 번 둘러봤는데, 그들은 시선을 피하면서 도 기사단장의 간언에 동의하는 얼굴이었다. 다 국왕을 엄청난 짐승 보듯이 보고 있었다.
로더릭은 뭔가를 말하려다가 허공을 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굉장히 인내하는 얼굴이었다.
“그래. 나만 개새끼였다.”
“………….”
“아주 나만 죽일 놈인 걸로 하자.”
“………….”
“씨. 그런 거 아니니까 다 꺼져.”
로더릭은 손짓으로 그들을 쫓아 내고 문을 광,닫아 버렸다.
어설프게 잠이 들었던 이재는 그가 이마를 살살 쓸어 주자 눈을 떴다.
“괜찮아?”
“네.”
“헤일리. 너랑 나밖에 없어.”
“이제 아무도 없어.”
“……응.”
로더릭은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몰라서 망설였다.
하지만 자 신이 조금 더 다가가야 한다는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헤일리. 나한테는 솔직히 말해도 돼.”
“뭘요?”
“너,정확히 어디가 아픈 거 야?”
“………….”
“그걸 알아야 내가 널 보호해 줄 수 있다.”
로더릭은 그녀를 안심시키듯 계 속 쓰다듬었다.
“왕족의 지병은 약점이니까. 말 하지 못하는 네 심정은 이해해. 그렇지만 나도 뭔가를 알아야 방 어할 수 있는 거잖아. 그래야 네 편에서 싸워 줄 수 있는 거다.”
힘이 다 빠진 이재는 갑자기 눈물이 나올 것 같은 기분이 되었다.
눈가를 가리고 있던 그녀는 이를 악물었다. 이재의 말투는 꼭 따지는 것처럼 매서웠다.
“페하가 왜 내 편에서 싸워 줘요?”
“………….”
“왜 당신이 제 편에서 싸워 주냐고요.”
차가운 말이었다.
하지만 로더릭의 눈에는 그녀가 수없이 상처 받고 있는 게 보였다. 눈물이 고인 눈동자가 너무…… 슬퍼 보였다.
“난 이상한 사람이에요. 다르다고요. 폐하도 사실 그렇게 생각하잖아요.”
“………….”
“폐하도 힘들 텐데, 굳이 저까 지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마세요. 난 그런 거 필요 없어.”
또 상처받기도 싫고,내 시야 때문에 당신의 세상까지 망가지는 걸 볼 자신도 없어요. 계속 이 정도 거리에 서 있을 수 있게 절 흔들지 말아 주세요.
제가 뭘 보는지 알게 되면,당신도 제가 소름 끼칠지 몰라요.
제가 어떻게 태어났는지 알게 되면,당신도 무심결에 저를 더럽다고 여길지 몰라요.
전 두 번 다시 이유 없는 돌맹이를 맞고 싶지 않아요.
사람이 사람을 도와주는 것은 쉽지만,그 사람과 나란히 손을 잡는 것은 어려워요.
말을 들어 주는 것은 쉽지만, 눈을 마주 보는 것은 꺼려져요.
그래서 저는 제 나름의 방법을 배웠을 뿐이에요.
로더릭은 한참 동안 그녀를 바 라보기만 했다.
그는 곧 그녀가 깨물고 있는 입술을 부드럽게 떼어 냈다.
“그런 말이 어디 있어.”
“………….”
“헤일리,넌 내 아내잖아. 내가 네 남편이라고. 그럼 넌 누구한테 의지할 건데.”
“난 너 충분히 지켜 줄 수 있어.”
“이상하지 않아. 그냥 궁금해서,자꾸 알고 싶어서 그랬어. 상처받았다면 사과할게.”
위악을 부리며 짐짓 강한 체하 던 그녀의 얼굴은 순간적으로 허물어 졌다.
이재는 사실 그를 만나고,조금 씩 깨닫고 있었다. 그토록 갈구해 왔던 애정에는 고통이 수반된다는 것을.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결국 나쁜 마음이 아니라, 좋은 마음이었다는 것도.
이재는 손을 이불에 몇 번이나 닦았다.
그녀가 주저하며 손을 내 밀자,로더릭은 얼른 그 떨리는 손을 잡았다.
“대체 왜 저한테 이렇게 잘해 주시는 거예요?”
“……나도 모르겠어. 그냥 네가 좋아.”
울먹거리던 그녀는 진정하려고 애를 쓰다가 말했다.
망설이던 그녀의 눈동자에 어떤 결심이 서는 것이 로더릭에게는 보였다.
“폐하. 그럼 제 말을 잘 들어 주세요.”
“응”
이재는 그들을 감싸고 있는 결 계를 둘러보았다.
결계는 아직 건재했으나,그녀는 그걸 유지하는 데도 힘을 쏟고 있었다.
괜찮은 것,평범한 인생,멀쩡한 하루를 살아가는 것,그것 자체가 인간에 게는 힘을 쏟는 일이었다.
이재는 목소리에 기를 실었다.
“폐하. 죽은 자들의 목소리에 더 이상 귀를 기울이시면 안 돼요.”
그녀의 말을 정확히 이해할 수 는 없었다.
하지만 로더릭은 그 순간,가슴 깊은 곳에서 비롯되는 울림을 느꼈다.
이재의 말은 계속 됐다.
“그들은 당신을 시기하고 질투할 뿐입니다. 이유는 너무 간단해 요. 그냥 당신이……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생과 그들에게는 없는 당신의 아침을.
그게 너무 찬란하기 때문에.
이재는 목소리에 계속해서 힘을 실었다.
“당신이 지금 겪는 고통은 결코 당신의 잘못이 아닙니다.”
“………….”
“수긍하지 마세요.”
이재는 말을 내뱉고 좀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남 얘기라고 너무 쉽게 말하고 있는 건가,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순간, 오백 년의 업보가 그녀에게 떨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재는 턱,하고 내려앉은 무게에 숨을 헐떡이면서도 그의 손을 놓지 않았다. 지지 않으려고 오히려 꽉 쥐었다.
“폐하는 망가진 사람이 아니에요”
“헤일리.”
“잊지 마세요. 당신 인생은 겨우 이런 걸로 망가지지 않아요.”
그녀는 눈물을 쏟았다.
“그러니까 포기하지 말아요. 잘못된다는 소리 하지 말고요.”
“………….”
“폐하만 포기하지 않으면…… 저는 끝까지 해볼 거예요.”
당신이 말하지 않는 고통이 나한테는 너무 잘 보여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이 참고 견디고 있다는 점은 나를 아프게 해요.
그러니 내가 도와줄게요.
저는 많이 미력하지만,조금 초라하지만.
내가 당신의 편이 되고 친구가 되어 줄게요. 당신의 싸움이 고독하지 않도록. 당신이 이 싸움의 끝에선 승리할 수 있도록.
눈물을 홀리던 그녀는 황급히 그의 손을 뿌리치고 허공으로 손을 뻗었다.
감정이 넘실거리는 것처럼 결계도 흔들리고 있었다.
‘어떤 순간에도 변하지 않을…… 사람의 믿음. 그리고 의지.’
이재는 그 순간 우욱,하며 밀려오는 구토감을 참았다.
“왜 이러는 거야!”
로더릭은 어쩔 줄 몰라 하며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의원과 사 람들을 불러오기 위해서였지만, 이재는 그의 손을 붙잡았다.
“폐하,한 가지만 부탁드릴게 요. 제가,하아. 가끔 오늘처럼 아플 수가 있어요.”
“……어디가 아픈 건데.”
“………”
“헤일리,제발.”
이재는 쓴웃음을 지었다.
“가끔 어지럽고 메스꺼운 거예요. 큰 문제 아니에요. 그리고 저는 쉬면 금방 괜찮아져요. 이건 정말이야.”
“………”
“제 말 아시겠어요?”
“……응.”
“하지만 제가 몸이 안 좋을 때, 폐하는 아서의 숲으로 가셔야만 합니다.”
그녀는 로더릭을 잡은 자신의 손에 힘을 주었다.
“아서의 숲이요. 꼭이에요.”
당신은 거기에만 가도 살 수 있어.
로더릭은 안절부절못했지만,이재는 초조한 사람처럼 계속 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결국 여러 번 고개를 끄덕였고, 그걸 확인한 이재는 그대로 정신을 잃듯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