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llow Your Heart RAW novel - Chapter (47)
마음이 이끄는 대로-47화(47/134)
#9장. 흘러가는 강물처럼
#47.
왕제는 국경에 파견되자마자 보 란 둣이 승전 소식을 보내왔다.
그러나 본거지를 찾지 못했으니, 안심은 어렵다는 첨언 또한 잊지 않았다.
나쁘지 않은 소식이었지만,귀족들이란 없는 문제도 만드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오늘도 왕후의 건강을 문제 삼았다.
“왕후 폐하는 좀 괜찮으십니 까?”
“회복 중이다. 그대가 진심으로 걱정해 준 덕에 조만간 쾌차하겠군.”
국왕이 심드렁하게 비꼬자,말을 꺼낸 귀족은 뜨끔하여 입을 다물었다.
로더릭은 턱을 괸 채 던컨 공작을 바라보았다
이십여 년을 키워 온 아버지라면 딸의 지병에 대해 알고있을 것이 분명했다.
로더릭은 몹시 아이러니한 상황에 빠지고 말았다.
그는 장인에게 물어보고 싶었다. 아내가 걱정됐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국혼 전, 딸의 지병을 감추었다는 것은 큰 죄가 된다.
질문 자체가 공작에 대한 공격이었던 것이다.
평소 같았으면 신경 쓰지 않고 물었겠지만, 오히려 이용하려 들었겠지만, 로더릭은 그럴 수가 없었다.
자칫하면 왕후까지 곤경에 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페하,좋은 소식은 없으십니까?”
“무슨 소식.”
“후사를 보셔야 하지 않습니까.”
명백한 공격이자,압박이었다.
그런데 사실은 친왕파 진영에서도 궁금해하는 사안이었다.
왕후 가 생각보다 몸이 약한 듯하니, 아이를 제대로 낳을 순 있는 건지 걱정되었던 것이다.
“왕후 나이가 이제 겨우 스물하나다. 왕후도 나도 아직 젊은데, 뭐가 그리 조급한 건지.”
로더릭은 적당히 대꾸하고,이번에도 던컨 공작을 바라보았다.
딸이 인신공격을 받고 있는데, 그게 또 국왕에 대한 공격이었기 때문에 그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않고 그냥 가만히 있었다.
‘저런 것도 아비라고……’
하긴. 그렇게 모질게 때리는 아버지한테 뭘 바라겠냐 싶어서 경멸감이 일었다. 저런 아버지 밑에 그런 좋은 성품을 가진 딸이 있다는 게 이해되지 않았다.
성직자 같은 아내가 저주를 퍼부을 정도면,어떤 아버지였을지는 안 봐도 원했다.
“너희 말야. 나를 공격하는 건 괜찮은데, 가만히 있는 왕후까지 걸고넘어지진 마.”
“………”
“그거 굉장히 유치하고 추해.”
“………”
“더 할 말 없으면,나 간다.”
회의장을 나선 국왕의 얼굴에는 짜증이 가득했다.
그는 왕후를 편 히 쉬게 해 주고 싶어서 몇 번 드나들어도 금세 밖으로 나오곤 했다.
창백한 얼굴을 보면,가서 말을 걸고 싶은 것도 꾹 눌러 참게 되었다.
사람들은 참 희한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왕후가 회복되는데,국왕은 안색이 나빠져 간다.
이것은 질량 보존의 법칙이었다.
둘의 건강 상태는 언제부턴가 반비례하며,총량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제는 주변 사람들이 나서서 권유했다.
“폐하,왕후 폐하한테 안 가십니까.”
“왕후 뭐 하는데.”
“일어나셔서 명상도 하시고, 책이랑 일기장도 좀 보셨답니다. 안색도 좋으시다고 시녀들도 한결 같이 말했습니다.”
“더 편히 쉬게 놔둬. 괜히 다른 일에 신경 쓰게 하지 마라.”
로더릭은 그대로 본인 서재로 향했다.
하지만 이마를 짚은 국왕이 한 숨을 서른 번 정도 쉬었을 때, 시종장은 기사단장에게 속삭였다.
“지금이야말로 왕후 폐하를 투입해야 할 적기입니다. 제 경험상 여기서 더 늦으면 위험합니다.”
“당장 왕후궁에 기별을 넣도록 하지. 아니, 내가 직접 다녀와야겠어.”
제이드는 바로 발걸음을 옮겼다.
기사단장이 이재를 방문했을 때, 그녀는 함의 정령이랑 수다를 떨고있었다. 이재가 의아한 표정으로 용건을묻자,제이드는 멋쩍은 둣 머리를 긁적였다.
그가 느끼기에도 상황이 좀 이상했기 때문이다.
“저,왕후 폐하. 그, 아직도 몸이 많이 안 좋으십니까.”
분노를 조절하지 못한 대가는 컸다.
열심히 퇴마를 했는데,헛 수고가 되어 버리니까 으아아 하는 마음을 참기 힘들었던 것이다. 그 결과는 고스란히 몸으로 되돌아왔다.
“괜찮은데. 왜?”
“폐하가 좀 기분이 저조하신 것 같아서,같이 차라도 한잔 해 주시면 좋지 않을까 싶어서……. 송구합니다. 저도 제가 무례한 것은 압니다.”
그 정도만 말해도 이재는 충분히 알아들었다.
그리고 제이드를 좀 애잔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그에게 동질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응,가면 되지. 나 옷만 좀 갈아입을게. 먼저 가 있어도 돼.”
“아니요. 제가 직접 모시겠습니다. 밖에서 대기하고 있겠습니다”
기사단장이 문을 닫고 나가자, 이재는 함을 열어 여러 장의 부적들 중 몇 장을 골랐다. 함의 정령은 못마땅한 기색이었다.
-내 거 뺏어 가지 마!
“내가 여기에 보관했다고,이게 다 네 건 아니야.”
“………”
“에휴,저 욕심쟁이. 너 그러다 큰코다친다.”
-코가 없다니까!
정령이 빽! 외치고 토라져 버리자, 이재는 바쁜 와중에도 어이가 없어서 피식 웃었다.
이재는 옷을 갈아입지 않고 부적만 챙겨서 나왔다.
제이드는 그게 좀 이상했지만, 정중하게 허리를 숙였다.
묘하게 고맙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 기 때문이다.
그는 귀신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으나,카이엔이 낳은 불세출의 기사였다. 국왕은 실수처럼 홀리듯이 말했지만, 가끔 공기가 다르다는 것을 이제는 제이드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근데 폐하 많이 안 좋으셔?”
“그런 것은 아닌데,어제부터 기분이 많이 안 좋으셔서……. 시종장 말로는 잠도 못 주무신 것 같다고…. 하아. 사실 이젠 왜 저러시는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리 친구여도, 신분 차이가 있는지라 왕이 미치기 일보 직전인 것 같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었다.
제이드는 하소연을 하듯 한 숨만 푹푹 쉬었다.
“폐하는 그럴 수밖에 없으셔서 그래. 조금만 이해해 드려. 그래 도 폐하한텐 제이드밖에 없잖아.”
이재는 선선한 얼굴이었고,복 도를 걷는 내내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렇지만 국왕의 서재에 도착했을 때,그녀는 얼굴을 와락,일그 러뜨리고 말았다.
‘저걸 참고 있었단 말이야? 그럼 내 방에라도 왔어야지. 눈치가 귀신같이 좋으면서 갑자기 또 왜 이러는 거야?’
이재가 들어서자 로더릭은 씨익 웃었다.
“헤일리.”
“………”
“어쩐 일이야. 몸은 괜찮은 건가?”
로더릭은 자리에서 일어서며 그 녀를 반겼다.
사실 국왕의 상태는 그렇게 최악은 아니었다.
이재가 울컥한 것은 단지 그녀의 온도가 올라갔기 때문이다.
그리고 국왕은 그녀가 다가오기도 전에 이미 기분이 상쾌해졌다.
그의 온도 또한 올라갔기 때문이다.
“폐하,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하지만 왕후가 다소 싸늘한 말투로 묻자 사람들은 당황했다.
로더릭도 조금 난처해했다.
“지금 뭐 하시냐고요.”
“……뭐가.”
입술을 깨물고 있던 그녀는 왕에게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몇 가지 주문을 되뇐 뒤,그녀는 로더릭의 손목을 붙잡고 소파로 이끌었다.
“이쪽으로 오세요.”
“뭐 하다 왔어? 식사는 했나?”
로더릭은 이재의 입술 끝을 쓸 어내렸다. 그만 깨물라는 뜻이었다.
왜인지 모르지만 왕후는 지금 잔뜩 화가 나 있었다. 내가 이렇게 힘든데,그 정도 부탁도 안 들어주냐는 원망 때문이었다.
“폐하,제가 숲에 가라고 했잖아요. 제가…… 부탁했잖아요.”
“어,갔는데.”
“언제 갔는데요.”
“잊그저께였나.”
“또?”
“엊그제 갔다고.”
이재는 평정심을 찾기 위해 크게 심호흡을 했다. 하지만 실패했다.
“매일 갔어야지! 제가 가 달라고…… 했잖아요?”
사람들은 몹시 당황했다.
왕후의 태도가 너무 공격적이었기 때문이다.
과연 진압조가 맞는 것일까,하는 의심 때문에 시종들은 왕후의 시녀들을 노려보았다.
폐하는 지금 저런 식으로 대하면 안 되는 상태인데? 사실 회의 끝나고 뭘 던지셨어.
하지만 다소 날이 서 있었던 로더릭은 이재를 보자마자 무척 온순해졌다.
“매일 가라는 건지는 몰랐어. 내 콩알,왜 이렇게 화를 내지?”
그리고 욱했던 이재가 화를 내지는 못하고,눈물을 글썽거리자 그는 최고치로 순해지고 말았다.
“어…… 갑자기 왜 또 울려고 하지.”
“………”
“지금 갈까? 가자,그럼.”
이재는 고개를 저으며,자신의 무릎을 툭,툭 쳤다.
“일단 누워요.”
“……식사는 했어?”
며칠 잠을 설쳤지만,그는 오랜 만에 왕후와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는 아직도 좀 토라진 것 같았다.
“제가 알아서 잘 챙겨 먹을게요. 저 아직 피곤하니까 그냥 빨리 누우세요.”
“난 잠보다 너랑 얘기가 하고 싶은데.”
“……누워서 하세요.”
“근데 네가 피곤한데, 눕는 건 왜 내가 누워야 하는 거지?”
굉장히 타당한 의문이었다.
이재는 갑자기 할 말이 없어져서 그냥 그의 이마를 잡고 내리눌러 버렸다.
로더릭은 여전히 궁금중들을 떨 쳐 내지 못한 얼굴이었지만,이재가 하는 대로 내버려 두었다.
그녀가 걸음 한 것만으로 충분히 좋았기 때문이다.
이재는 그의 몸과 얼굴 여기저 기를 늘러 가며 빠른 속도로 기를 열어 주었다. 가만히 그 손길 을 받고 있던 로더릭은 그녀를 불렀다.
“해일리.”
“네.”
“이제 몸 괜찮은 거 맞지?”
“……네. 폐하는요?”
“나야 괜찮지.”
괜찮긴 뭐가 괜찮아, 이 바보야.
당신이야말로 나한테는 솔직하게 말해도 돼.
이재는 그가 안쓰러워서 하염없이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입술을 내리눌렀다.
입술이 맞닿은 채로 로더릭은 기분 좋은 웃음을 홀렸다.
“자꾸 이러면 곤란한데. 더 반하라고 이러는 건가.”
“……너무 그러지는 마시고요.”
‘아,왜 또. 서운하게.”
“………”
“이제 그만 좀 밀어내라. 내가 결혼할 때 많이 잘못했다는 건 알고 있으니까 좀 봐줘.”
그러자 이재는 멈칫하며 손을 멈추었다. 그녀는 좀 오묘한 얼굴이었다.
“저한테 잘못했다고 생각하세요?”
“ 응”
“뭘?”
로더릭은 대답하지 않았지만, 곰곰이 생각하던 그녀는 이내 작은 소리로 웃었다. 그의 생각을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국혼을 받아들이거나,여기서 죽거나,왕관을 쓰고 죽거나.
이재는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폐하는 사람한테 정말로 선택권이 있다고 생각하세요?”
태어난 환경,괴로운 풍경을 보여 주는 눈, 죽음의 순간에 이르기까지.
인생의 가장 중요한 순간마다 그녀에게 선택권이 있었던 적은 원래 없었다. 그에 비하면 아주 화려한 선택지였다.
“그런 건 나한테 잘못도 아니야.”
“그러니까 폐하도 그만 잊어버려요. 알았죠?”
그녀는 다시 로더릭의 몸을 꾹, 꾹 누르며 기를 열어 갔다.
로더 릭은 그녀의 손등을 몇 번 어루만졌다.
그리고 마침내 국왕이 잠들었을 때, 어디선가 탄식 같은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잔다. 세상에 또 자네.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
이재는 당연하다는 얼굴이었고, 시종장은 두 번 다시 같은 실수를 하지 않았다.
로더릭에게 담요 를 덮어 준 그는 시녀장에게 또 한 장의 담요를 건넸다.
이미 유사한 상황에서 우위를 점한 데보라는 아주 도도하고 우아한 표정으로 이재의 몸을 담요 로 감쌌다.
이재는 손짓으로 시종장을 불렀다.
“폐하,얼마나 못 주무셨어?”
“………”
“그래도 여쭤보지 그랬어. 그런다고 자기 고충을 얘기할 사람이 아닌 건 나도 아는데.”
작은 던컨은 결혼한 지 불과 두 달이 되었을 뿐이다.
그런데도 그녀가 너무 정확하게 국왕에 대 해 이야기하자,시종들은 조금 무 안한 얼굴을 했다.
국왕은 좀 퉁명스럽긴 해도 농담도 좋아하고, 꽤 진솔한 편이었다.
자존심을 크게 내세우는 사람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본인이 지고 있는 무게만큼은 함구하며 떠 안는 경향이 있었다.
국왕이란 남 들 앞에서 무너지면 안 되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사실은 그런 부분이 이재와 결이 맞았고, 그녀의 감정을 계속 건드리고 있었다.
이재는 이번에는 기사단장을 바 라보았다.
“폐하가 많이 고단해 보이면, 나한테 꼭 얘기해 줘. 오늘처럼.”
제이드는 마치 여우 귀신에게 홀린 사람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이재는 국왕의 머리칼을 대신 쓸어 넘겨 주었다.
그가 자주 하 는 습관이었다.
그녀는 한숨을 쉬며 넋두리를 하듯 말했다.
“이런 말은 좀 불경스럽지만, 어떤 사람도…… 신은 아닌 거잖아.”
“………”
“폐하는 사실 누구보다 참고, 최선을 다하고 계셔.”
근데 이 사람은 이걸 딱히 원 망할 생각은 없는 거야.
그리고 사실은 그게 이 사람이 몇 년간 원귀에게 무너지지 않을 수 있었던 힘의 원천이야.
평범한 사람들은 보통 아플 땐 이럴 수 없거든. 다 남을 탓하거나 주저앉게 되어 있어.
“무게를 조금만 나눠 줘.”
국왕 측 사람들은 고개를 숙였다.
왕후는 지금 굉장히 초연한 태도였다. 그렇지만 그러한 태도로 본인이 부인할 수 없는 친왕파 거두임을 뽐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녀들은 새침하고도 의기양양한 얼굴로 시종들을 바라보았다.
거봐,우리 왕후 폐하는 진압조가 맞으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