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llow Your Heart RAW novel - Chapter (48)
마음이 이끄는 대로-48화(48/134)
#48.
자리를 완전히 털고 일어난 이재는 호숫가에 나와 있었다.
정말 하나도 도와주지 않는 소년왕에게 많이 토라진 이재의 얼굴은 뾰로통했다.
“저 아서의 숲에다가 약초 좀 키워도 돼요?”
-그걸 왜 나한테 물어봐.
“그럼 누구한테 물어봐요.”
-왕실 소유니까,현왕한테 물어 보면 되는 거지.
이재는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한다는 둣 입을 삐죽였다.
“저는 그렇게 순진한 사람이 아니거든요. 나 얼뜨기 아니란 말이야!”
-뭐야, 갑자기. 왜 이렇게 화났어?
“안 나게 생겼냐고요. 저 사실엄청 화 잘 내는 사람이에요. 거긴 폐하가 된다고 해도 당신이 안 된다고 하면 안 되는 거잖아요!”
살구색 여우가 두 주먹을 쥐고 쒸익,쒸익 하자 소년왕은 웃으면서 이재 옆에 앉았다.
그가 가까이에 오니까,이재는 금세 홈칫했다.
“가까이 오지 마세요. 지금 굉장히 부담스러워요. 우리 거리를 유지하기로 해요.”
이재는 그의 도옴이 절실했지만, 그는 그녀가 가까이하기에는 너무 대단한 영혼이었다. 그녀는 슬금슬금 거리를 두며 떨어져 앉았다.
-키우는 건 되지. 근데 훼손은 하지 마.
-강이재. 명심해라. 그 기운은 네 힘으로 감당 못해.
“네. 알았어요. 충고해 줘서 고마워요.”
소년왕은 맑게 웃으며,희미한 손으로 그녀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애 많이 쓰네. 힘내라.
그는 백마와 함께 홀연히 사라졌다.
조각을 이은 왕후의 새로운 취미는 성 사람들에게 널리널리 퍼져 나갔다.
이재가 숲의 빈 공 간에 뭘 좀 심어도 되겠냐고 물었을 때, 로더릭은 헛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대로 해라. 뭘 또 그런 걸 물어봐.’
‘왕실 보물이라면서요.’
‘가서 볼 사람이라고 해 봐야 너랑 나밖에 없는 거 아니야? 그렇다고 불을 지르진 말고.’
타인의 시선으로 보았을때,왕후는 굉장히 심심한 인생을 사는 사람이었다. 취미라고 해 봐야 조각과 명상뿐이다.
사실은 나이답지 않게 절제하는 부분이 많았다.
그러니 하고싶은 게 생겼다면 로더릭은 응원해 줄 의사가 충분히 있었다.
다만 하고 싶어 하는 일이 또 노인네 같은 게 웃기긴 했다.
그런데 그를 실소하게 만든 일은 그 뒤에도 일어났다.
“카이엔에 영광을.”
로더릭은 의아한 표정으로 제이 드를 바라보았다.
“폐하,왕후 폐하께서……”
“어,헤일리가 왜.”
“……지금 후원에서 의원이랑 같이 약을 달이고 계신답니다.”
그것도 열심히. 아주 의욕적으로.
로더릭은 이제 웃다 못해 고통 스러운 얼굴을 했다.
보고서에 관 여했던 기사단장도 마찬가지였다.
폐하, 저건 대체 어디서 튀어나 온 취미인 거지요?
저도 이제 미 치겠습니다.
기사단장을 짜증나게 하는 건 따로 있었다.
“그런데 의원 말로는,폐하.”
“뭔데.”
“왕후 폐하가 그쪽 방면에 확실히 지식이 있으시답니다.”
“………….”
“약재 종류에 대해서는 잘 모르시는데,그래도 의견을 교환하는 게…… 된답니다.”
로더릭은 정말 골치가 아파져서 이마를 짚었다.
그는 주변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그간 내 기분이 뭐였는지 이제 조금은 알겠어?
사람들은 모두 국왕의 시선을 회피했다.
“기가 막히는군.”
“왕후는 정말 어디에서 뚝 떨어진 사람인가? 왜 왕후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거지? 요즘은 공작을 불러다가 어떻게 키우면 저렇게 되는 거냐고 묻고 싶을 지경이다.”
그런데 그는 어이가 없는 동시에 걱정 또한 감추지 못했다.
“왕후,혹시 어디 아픈가?”
“……예? 그런 건 아니신 듯한 데.”
“그럼 갑자기 의원이랑 약은 왜 달이는데.”
제이드는 잠시 침묵했다. 그걸 정말 몰라서 묻는 건가 싶었기 때문이다.
왕후는 아무리 던컨이라는 선입견을 갖고 보려 해도 국왕을 걱정하는 게 표가 났다.
게다가 그녀는 아파도 약을 잘 안 먹는 습관이 있었다.
의원의 처방을 무시 하고,쉬면 낫는다고 하는 게 국왕과 아주 똑같은 못돼 먹은 습관이었다.
그렇다면 그 약은 본인을 위한 게 아니라 국왕을 위한 것이 틀림없었다.
기사단장의 표정에서 답을 찾은 로더릭은 혀를 찼다.
“본인은 본인 몸 관리도 제대로 못 하면서 지식만 있으면 뭘 하나? 어처구니가 없군.”
그런데도 그는 재미있어 하는얼굴이었다.
사실은 은근히 기분 이 좋아 보였다.
“왕후한테 가겠다.”
로더릭은 시원한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데보라는 좀 기가 질린 얼굴로 이재를 보고 있었다.
시녀들도 마 찬가지였다. 사람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잘하시네?”
“지금 좀 편안해 보이시는데?”
“바느질도 범상치 않으시더니.”
“어떤 인생을 사셨길래.”
이상하게 왕후는 허드렛일을 할 때,그 재능이 꽃피는 듯했다.
왕후의 시녀들은 다 귀족 출신이었다. 그녀들도 궂은일은 해 본 적이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 보기만 해도 알 수 있는 건,왕후는 확실히 궂은일을 많이 해 본 사 람이었다. 더러운 것에 손을 뻗는 데도 전혀 주저함이 없었던 것이다.
왕후는 아무렇지도 않게 장작을 만졌고, 계속 불을 확인했으며, 심지어 익숙하게 부채질을 하고 있었다.
한편 이재는 지금 굉장히 진지했다.
쭈그리고 앉아 턱을 괸 그녀는 생각했다.
신토불이. 우리의 몸에는 우리 것을. 왕족의 몸에는 왕족의 숲에서 난 약초를.
그녀는 자평했다. 이건 아주 똑똑한 생각이었어.
할매. 예전에 무당이 굿만 하면 되지,이런 것까지 시킨다고 짜증냈던 거 미안해요. 나도 진심이 아니었어요.
왕후가 어떤 실없는 생각에 빠져 있는지 알지 못했던 시녀들은 쭈벳거리며 다가왔다.
“왕후 폐하, 이거 씻을까요?”
“어? 어.”
이재는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왕후 폐하,저건 껍질 다듬으면 되나요?”
“응,아,근데 그거 밑동도 같이 도려내야 해. 독성이 있을 수 있거든.”
옆에 있던 의원은 정말 의아한 눈빛으로 이재를 바라보았다.
대체 왕후 폐하는 그런 걸 왜 아시는 겁니까?
어느 날 갑자기 의원을 찾아온 왕후는 원기를 회복하는 데 좋은 약재들을 물었다. 그러고는 그 약을 지으라고 명하는 게 아니라, 그 약초를 본인이 직접 재배하고 있었다.
카이엔 왕국사 오백 년에서 조경에 취미가 있었던 왕족은 꽤 있었지만,약초를 재배한 왕후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불 앞에서 매운 연기를 마시며 부채질을 하고 있는 왕후도 처음이었다.
이러면 안 되지만,의원도,데보라도 이 상황이 기가 막히기만 했다.
그렇지만 젊은 시녀들은 이상하게 신이 난 것 같았다.
시녀들 주변을 서성이던 이재는 물었다.
“내가 할까?”
“아니요,제가 해 드릴게요. 저 잘할 수 있어요.”
사실은 좀 못 미더워서 왔으나, 그 말에 이재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옹,알지,알지.”
불안한 눈으로 칼질하는 것을 바라보던 이재는 뺨을 긁적이며 불 앞으로 돌아왔다.
그러자 다른 시녀 하나는 좌식에 적합한 낮은의자를 가져왔다.
“왕후 폐하,여기 앉아서 하셔요. 오래 걸릴 것 같은데,다리 아프시겠어요.”
주변이 묘하게 들떠 있는 것을 확인한 이재는 결국 웃음을 홀리고 말았다. 사람들이 좋은 마음으로 함께해 주는 것은 언제나 즐겁고 감사한 일이었다.
국왕이 등장한 것은 이 이상한 판이 정원에서 한창 벌어질 때였다.
“헤일리.”
어? 아직은 오면 안 되는데? 안 끝났는데?
왕후가 국왕과 끓는 약을 번갈 아 보며 난처해하자,이번엔 의원이 나섰다.
“왕후 폐하,말씀 나누십시오. 제 일입니다. 제가 하겠습니다.”
“아니야,내가 할게. 폐하랑 얘기 나누세요.”
로더릭은 정말로 어이가 없었다.
이건 진짜 무슨 취급이지.
그는 의원을 휘,휘 내쫓고 그 냥 이재의 옆에 쭈그리고 앉았다.
사실은 불만 뚫어져라,보고 있는 왕후가 귀여웠다.
얘는 오늘도 참 작고 소중하네.
왕후가 몹시 집중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그는 결국 참지 못하고 말을 걸었다.
“너, 뭐 해. 또 노인네처럼.”
“윽,거기다 대고 말하지 마세요”
부정 탄단 말이야. 이재는 로더릭을 흘겨보았다.
“……그래,알았다.”
끓고 있는 약재를 바라보던 이재는 머뭇거리며 자신의 의자를 밀어주었다.
“됐어. 너 앉아.”
“………”
“뭐 하고 있는 거야?”
“말 시키지 말라니까요?”
“너,나한테 해도 해도 너무한 거 아닌가.”
이재는 못 들은 척 명치에 손가락을 두 개 얹었다.
그리고 몇 가지 기원들을 되뇌었다.
기원을 끝마친 이재는 로더릭을 살짝 흘겨보았다.
이재는 사실 국왕에게 몸에 좋은 걸 먹이고 싶은 게 아니라 팥과 굵은 소금을 뿌리고 싶었다.
마음이야 굴뚝같았으나 아무리 로더릭이 좋은 남편이어도 국왕에게 그런 짓을 하면 모욕죄로 잡혀갈 것 같았다.
그렇다면 그것은 이재의 업보였다.
처음부터 솔직하지 못했으니 거짓말만 늘어 가는 것이다.
이재는 불을 차분히 응시하며 생각에 잠겼고, 로더릭은 그런 그 녀를 감상했다.
그리고 지켜보던 사람들은 모두 알 수 있었다. 국왕의 얼굴에 점점 따뜻한 미소가 번지고 있다는 것을.
약이 다 달여지고 나자,이재는 그걸 살짝 떠서 오랜 시간 쭈그리고 앉아 있던 로더릭에게 내밀었다.
지켜보고있던 국왕은 웃으면서 마시려고 했으나,제지한 것은 제이드였다.
“왕후 폐하,송구합니다.”
“……뭐가?”
“폐하께서도,왕후 폐하께서도 누가 시음하지 않은 걸 드실 수는 없으십니다.”
굉장히 예민하고 어떻게 보면 불신이 서려 있는 말이었다.
시녀들은 일제히 시종들을 노려보았고, 로더릭 또한 제이드를 만류하려 했으나,이재는 깨달음을 얻은 표정을 했다.
“아,그렇겠구나.”
“………”
“그건 너무 옳은 말이에요. 맞는 말이야.”
이재는 누가 말릴 새도 없이 새카만 약을 한 모금 들이켰다.
제이드는 당황해서 입을 벌리고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렇다고 왕후 본인이 직접 시음에 나설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재는 빙긋 웃으며 국왕에게 약을 다시 내밀었다.
로더릭은 그걸 다 마시고,무슨 소굽장난 같은 왕후의 놀이터를 보다가 웃어 버렸다.
그는 이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재밌게 놀아라. 저녁에 보자.”
후원을 떠나며 로더릭은 자신의 친우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웃는 낯으로 입을 뗐다.
“제이드.”
“예,폐하.”
“웬만하면 왕후한테 그런 소리 하지 마라.”
“……예?”
“내가 왕후 편을 들고 싶어서 이런 말을 하는 것 같나? 아니야. 이건 널 위해서 하는 말이다.”
“………….”
“너,두 번 그러면 그땐 왕후한테 미움받을지도 몰라. 왕후는 듣자마자 널 이해하고 고마워한 거야. 뭐,앞으론 왕후 쪽에서 바로 건네는 일이 없겠지만.”
로더릭은 피식 웃으며 걸었다.
“너희도 딱 왕후 반만큼만 눈치가 있어 봐.”
사람들은 국왕의 기분이 왜 저렇게 좋아졌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