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llow Your Heart RAW novel - Chapter (52)
마음이 이끄는 대로-52화(52/134)
#52.
마차에서 내린 이재는 신전 건물을 훌고 있었다.
역시 헤일리의 기억 덕분에 낯설진 않았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헤일리가 보지 못 했던 것들이 보였다.
이재의 얼굴은 흐려졌다.
“헤일리.”
“네?”
로더릭은 뚱한 얼굴을 하고 있 었다.
“네가 오고 싶다고 해서 난 일정 다 빼고 왔는데,그런 표정이면 내가 너무 허무하잖나.”
“자꾸 제 표정을 읽으려고 하지 마세요.”
“그럼 왜 그런지나 말을 해 주든가.”
이재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신전 꼭대기에 커다란 악귀가 앉아 있다고,제 입으로 어떻게 말하나요.
국왕에게 말을 하고 못하고를 떠나서,이 정도면 사회 혼란을 야기시킬 만한 문제였다.
“안 내키면 돌아가고.”
“아니에요. 들어가요.”
신관들이 사는 곳에 버젓이 사악한 것들이 맴돌고 있다면,특수한 힘을 가진 이는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재는 신관들을 만나보기로 했다.
기원을 꼭 힘만으로 하는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국왕과 왕후가 방문한다는 소식에 성직자들 몇몇은 미리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이재는 그들의 면면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집중하는 그녀의 눈 에서 안광이 번뜩였다.
영험한 사람들은 관상과 인상이 남다르다.
영산할매만 해도 왼쪽 얼굴은 호랑이였다. 오른쪽 얼굴은 또 이리였다.
정면에서 봤을 때는 말로 단정 지을 수 없는 비범한 상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딱히 그런 느낌을 주는 사람은 없어서 이재는 흐릿한 미소를 지었다.
이 세계에는 설마 영안을 가진 사람이 없는 건가. 그럴 리는 없을 텐데.
그녀는 신관들에게 말했다.
“저,폐하를 위해 누가 기도 좀 해 줄 수 있을까요.”
갑작스러운 말에 로더릭은 별로 내키지 않는 얼굴을 했다.
광중이 생긴 이래,그도 이것저것 시도해 보지 않은 게 아니었다.
하지만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사실 지난번에 이재가 내민 약도 그녀가 직접 달인 게 아니라면 굳이 먹지 않았을 것이다.
이번에도 왕후의 성의를 무시할 수가 없어 그는 좀 퉁명스러운 얼굴로 한 걸음 나섰다.
신관은 성직자다운 온화한 표정 으로 물었다.
“어떤 기도를 해 드릴까요,폐하.”
“그냥 아무거나 해.”
그러자 이재는 손사래를 치며 신관에게 말했다.
“폐하의 건강을 빌어 주세요. 그리고 평온한 일상과 내면의 평화를 기도해 주세요.”
로더릭은 이재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는 신관의 기도보다는 왕후 가 방금 한 말이 자신의 평화에 훨씬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신관에게 그렇게 하라 고,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신관은 국왕에게 깊숙이 허리를 숙였다.
그리고 다소 긴장된 얼굴 로 국왕의 손을 잡았다.
신관의 입 모양은 쉴 새 없이 움직였다. 그가 어떤 말을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이재는 경건한 마음으로 함께 손을 모았다.
건강하기를. 평화롭기를. 언제 나 행복하기를.
그리고 긴 기도가 끝났을 때, 머리를 쓸어 올린 로더릭은 신관들을 훌어보며 말했다.
“누가 우리 왕후를 위해서도 기도 좀 해.”
이재는 으악,하는 마음으로 그의 옷을 잡아당겼다.
왜,입으로 묻던 로더릭은 그녀 를 향해 몸을 기울여 주었다.
이재가 속닥거렸다.
“신의 사제한테 그렇게 명령조로 말하면 신께서 절 얼마나 예쁘게 보실까요.”
하아, 하며 머리를 다시 한번 쓸어 올린 로더릭은 말했다.
“누가 우리 왕후를 위해서 기도 를 좀 해 주십사 간곡히 부탁을…… 이씨. 무릎이라도 꿇을까?”
신관들도 사람이었다. 어디선가 큽, 하고 웃음을 참는 불손한 소리가 들렸지만, 국왕도 농담이었던지라 피식 웃었다.
이재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서자 로더릭은 말했다.
“내 아내가 손톱만큼도 외로워 하지 않게 빌어 줘.”
이재는 순간 생각지도 못한 감 정 때문에 잠시 고개를 숙였다.
그녀가 힐끔 그를 올려다보았을 때, 로더릭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 였다.
이재는 신관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신관은 정중하게 고개 를 숙이고는 그녀의 손끝을 잡았다.
그녀는 무형의 힘을 보고 느낄 수 있는 사람이었다.
눈앞에는 아 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손끝에도 아무런 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신관의 기도에는 아무 힘이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방금 전 자신이 국왕으로부터 큰 기도를 받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은 국왕의 말에 진심이 깃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온몸을 따뜻한 기운이 훌고 지나갔고, 그 기운은 기도가 끝난 뒤에도 한동안 사라지지 않았다.
기도가 끝난 뒤,국왕과 이재는 각각 꽤 큰 액수의 기부금을 쾌척했다.
신전을 나서는 그들을 사 람들이 힐긋거렸다.
평소보다는 검소한 옷차림을 하 고 조용히 나왔지만,그들이 신도 사이에 섞일 수는 없었다. 사실은 저 젊은 남녀가 국왕 부부라는 소문이 돌았는지 사람들이 점차 몰려들고 있었다.
하지만 무장한 기사들 때문에 아주 먼발치에서 바라만 볼 뿐이었다.
그러나 어린아이들은 어른들의 그런 복잡한 사정에 대해 잘 모 르는 법이다. 저 잘생긴 남자가 국왕 폐하라는 이야기를 듣고, 아이 하나가 신나게 뛰어들었다. 머 리를 양 갈래로 묶은 여자아이였다.
“폐하아아!”
기사들이 삼엄하게 국왕 앞을 막아섰지만, 로더릭은 그들을 물렸다.
기사들을 보고 쭈벳쭈뼛하 던 아이는 로더릭이 고개를 끄덕이자,해맑게 웃었다. 그리고 국왕의 다리에 매달렸다.
그걸 보고 제이드는 떨떠름하게 생각했다.
애들도 잘생긴 건 다 아는구나. 근데 왜 왕후 폐하께서는 모르시는 거지?
다리에 매미처럼 붙어있는 생명체를 보고 피식,웃던 로더릭은 그대로 아이를 안아 올렸다. 그리고 다소 심술궂게 물었다.
“네가 페하가 뭔지는 알아?”
이번에는 이재가 생각했다.
저 사람은 어떻게 된 게 애한테도 말투가 똑같네.
그러나 아이는 배시시 웃으며, 모른다고 고개를 저었다.
그래서 이재도 기사들도 조금 웃었다.
뒤늦게 달려온 아이의 어머니는 어찌할 줄 모르고,벌벌 떨며 무릎을 꿇었다.
이재가 그쪽을 힐끔 바라보자,제이드는 조용히 아이의 어머니를 일으켜 세웠다.
그 사정을 모르는 꼬마 아이는 그저 잘생겨서 좋았는지,로더릭 의 목에 양팔로 매달렸다. 그 와 중에 아이가 들고 있던 인형은바닥에 툭, 떨어졌다.
로더릭은 이재에게 말했다.
“얘,내가 마음에 드나 봐.”
“그런가 봐요.”
“넌 질투도 안 하냐?”
“애한테 못하는 말이 없네요.”
“왜. 난 아까 조금 짜증 났는데. 애들 금방 큰다는 말 모르나?”
“……아무래도 기도가 부족했나봐요.”
이재는 심각한 얼굴로 생각했다.
폐하가 아무래도 마차에서부터 계속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아.
역시 성 밖으로 나와선 안 됐던 걸까?
그녀의 떨떠름한 표정을 보고 로더릭은 피식 웃었다.
국왕은 아이를 머리 위로 번쩍 들었다가 내려 주었다. 그리고 바닥에 떨어 진 인형을 툭,툭 털어 다시 안겨 주었다.
“자,이제 엄마한테 가. 인형이랑 놀아.”
그러나 아이는 몸을 배배 꼬며 망설였다.
로더릭은 쭈그리고 앉아서 눈높이를 맞춰 주었다.
그러 자 아이는 들고 있던 인형을 로더릭에게 내밀었다.
“폐하,선물이야.”
로더릭은 좀 난감했는지,눈썹 끝을 긁적였다.
그도 그럴 것이 꼭 끌어안고 있던 게 아이의 애착 인형이 분명했다.
받자니 소중한 걸 갈취하는 것 같았고,필요 는 더더욱 없었고,그렇다고 거절 하자니 애가 상처를 받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걸 보고 있던 이재는 로더릭에게 다가가서 귓가에 속삭였다.
“받으시고 새 인형을 하나 사 주세요.”
로더릭은 이재를 보며 웃었다.
“우리 왕후는 현명하기까지 하네.”
국왕은 꼬마 아가씨에게 두 손바닥을 내밀었다.
그러자 아이는 그 위에 인형을 올려놓고,부끄러운 둣 엄마에게 달려가 버렸다.
아이가 엄마 등 뒤에 숨어 고 개만 빼꼼 내밀자, 이재는 웃어 주었다.
로더릭은 그런 이재를 물 끄러미 바라보다가 둥 뒤에서 슬쩍 끌어안았다.
그러고는 장난스 럽게 그녀의 정수리에 턱을 얹었다.
시종이 새 인형을 사 올 때까지 국왕의 일행은 계속 신전에 머물렀다.
아이에게 새 인형이 전달되고,아이 어머니가 코가 땅에 닿도록 허리를 굽히는 것을 본 뒤에야 그들은 밖으로 나섰다.
이재는 기분이 한결 가벼웠지만,로더릭은 나오면서부터는 좀 난감한 얼굴이었다.
그의 손에 처치 곤란의 인형이 들려 있었기 때문이다.
고민하던 그는 곧 해답을 얻었다.
귀여운 것은 전부 왕후를 주자.
“자,갖고 놀아.”
그는 이재의 품에 인형을 안겨 주었다.
사람들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
왕후의 표정은 좀 전의 국왕보다도 훨씬 불편해 보였던 것이다.
인형의 귀여움에 아무런 감흥도 느끼지 못하는 얼굴이었다.
제이드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니,그 괴상망측한 조각상은 끼고 돌면서, 인형을 보고는 왜 그런 표정밖에 짓지 못하시는 거지요. 객관적으로 이쪽이 훨씬 대중적이고 귀여운데요.
“제가 인형이나 갖고 놀 나이로 보이세요?”
“그럼 내가 들고 있어야겠냐?”
“안 될 건 뭐죠?”
“네가 들어야 사람들도 시각적으로 안정감을 느낄걸. 내가 들면 변태 같아.”
그러니까 그건 귀여운 네가 드는 게 옳아.
하지만 이재는 선뜻 이해가 안 간다는 얼굴이었다.
“왜요? 폐하도 귀여우신데?”
로더릭은 너무 어이가 없어서 하,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아,그래. 칭찬 너무 고맙네.”
그는 계속 어이가 없었는지 피 식피식 웃었다.
잠시 기억을 더듬 던 로더릭은 말했다.
“그런 말은 열 살 때 이후로는 처음 듣는데.”
“그래요?”
“누구한테 들었는데요?”
“뭐,배 아파 낳은 자식은 다 예쁜 법 아니겠나.”
그러자 이재는 살짝 어깨를 으쏙했다. 그건 아닐걸요?
그걸 예민하게 느낀 로더릭은 빠르게 말을 돌렸다.
“그런데 모후께서도 어릴 때를 제외하고는 그런 말씀은 한 번도 안 하셨어.”
“정말요? 왜 그러셨지?”
사람들은 저걸 이해 못하는 왕후가 정말로 이상했다.
이미 여러 번 느낀 바 있었던 로더릭은 한 숨을 쉬며 말했다.
“넌 거울만 안 보는 게 아니라 나도 잘 안 쳐다보는 건가?”
“내 키랑 덩치가 잘 안 보여? 내 별명이 뭔지 모르냐고.”
이재는 눈을 깜빡깜빡하며 그를 바라보다가 입을 다물어 버렸다.
국왕은 그녀가 수긍이 잘 안 될 때도 입을 다문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는 체념했다.
“그래,귀엽다고 치자.”
“네. 역시 그렇죠. 마음의 눈으로 보면 다 보여요.”
“아, 이렇게까지 필사적으로 칭찬해 주시고, 너무 고맙네.”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로더릭은 마차로 향하는 내내 이재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어색해하며 인형을 들고 있는 모습이 몹시 귀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