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llow Your Heart RAW novel - Chapter (55)
마음이 이끄는 대로-55화(55/134)
#10장. 우리의 밤은 나의 밤보다
#55.
「6대 왕 재위 기간 중, 멜런과 러셀은 사병을 키우고 반역을 꾀했다.
왕국군은 그들을 제압하였고 4대 왕,라이언 블레이크가 실시한 혼인 정책은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한때 다이몬 황가와 함께 대륙을 지배하던 다섯 귀족 가문.
일리아스,슈미트는 자취를 감추었고,
멜런,러셀은 멸문하였으며 대륙에는 던컨만이 남았다.
– 카이엔 왕국사 81페이지 중에서」
이재는 아침부터 침대에 엎드려 역사서를 읽고 있었다.
로더릭은 한쪽 턱을 관 채,그 모습을 바라 보다가 말했다.
“너 그렇게 엎드려서 읽으면 허리 다 나간다.”
조각을 할 때는 그렇게 꼿꼿한 자세로 앉더니,일기장이나 책을 볼 땐 저 모양이었다.
그녀는 편안해 보였지만 국왕은 혀를 찼다.
“남자도 여자도 허리가 중요한 거야.”
“……변태.”
“그걸 그렇게 듣는 게 더 변태 같은 거 아닌가?”
곰곰이 생각하던 이재는 수긍했다.
그런 의도가 아니셨군요? 저도 성에 살다 보니, 머릿속이 점점 썩고 있나 봐요.
산에 살 때는 저도 나름 건전한 사람이었는데요.
“듣고 보니 그렇네요. 제가 잠시 불순했어요. 점점 속세의 때가 타고 있나 봐요.”
또 노인네처럼 말하는 아내 때문에 그는 눈가를 가리며 웃었다.
“사실 그 의도 맞아. 아내가 생각이 이렇게 불순하다니,나도 결혼을 참 잘한 것 같아서 아침부터 행복하네.”
로더릭은 이재를 일으켰다.
그리고 베개를 세운 뒤,침대 헤드에 바싹 붙였다.
“소파 가서 앉을 거 아니면,기대기라도 해. 허리 망가진다.”
국왕은 다시 누웠다. 하지만 혼자 누워 있으려니,영 심심했던 그는 결국 이재의 옆에 나란히 앉았다.
그리고 그녀가 읽고 있는 페이지를 같이 들여다보았다.
방해하거나 귀찮게 하고 싶진 않은데, 그는 아내만 보면 말을 붙이고 싶어서 입이 근질근질했다.
“어떻게 보면,왕후가 가져야 할 교양이긴 한데.”
“네.”
“이거 대체 왜 읽는 건가?”
이재는 픽,웃었다.
“제가 바로 그 교양이 좀 부족 해서요.”
이건 기억이 일부 날아가서 그런 걸까요. 헤일리가 관심이 없었던 걸까요,아니면 정말 예쁜 백치여서 그랬던 걸까요.
“폐하.”
“………….”
“멜런가랑 러셀가에서 반란을 일으켰어요?”
“정확히 말하면 반란을 꾀하던 단계에서 숙청당한 거지. 세상에는 너랑 다르게 입이 가벼운 사람들이 많고,왕실에는 매일같이 투서가 날아들거든.”
이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던컨가랑 왕실은 그때부터 사이가 안 좋아진 건가요?”
“뭐,요주의 대상이 되었다고 볼 수는 있겠지.”
로더릭은 짧게 고개를 끄덕였으 나,거기에는 조금 더 복잡한 내막이 존재하고 있었다.
성검을 다룰 수 있는 능력이 사라진 뒤,블레이크 왕가는 노골적으로 다이몬 출신들을 요직에서 배제해 왔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신비한 힘을 잃어버린 그들도 입지에 큰 불안을 느꼈음이 틀림없다.
왕후가 왕국사는 물론이고,가문의 역사에도 정말 아무 지식이 없다는 걸 확인한 로더릭은 픽, 웃었다.
그래, 한창 놀았을 나이이긴 하지.
근데 넌 더 놀아도 괜찮은데. 너처럼 작고 몸이 약한 콩알은 더 일찍 자고 더 늦게 일어나도 돼.
“오늘은 뭐 하고 놀 거야?”
“음,일기도 좀 쓰고.”
하지만 로더릭은 이재가 말과는 달리 성에 와서 일기를 쓴 적이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녀는 항상 고민하는 얼굴로 일기장을 들여다볼 뿐이다.
이재는 대수롭지 않게 말을 이 었다.
“오후에는 산책도 좀 나가고.”
로더릭은 이제 포기한 듯 웃었다. 조금 더 절박했던 이재의 승리였다.
“하루라도 거길 안 가면 엉덩이에 뿔이라도 나는 건가?”
“그럴 리가요.”
“아,말 나온 김에 오랜만에 꼬리 얼마나 자랐나 확인 좀 할까?”
종종 장난을 쳐 왔듯,그의 손은 이재의 등 뒤로 향했다. 그러 나 움찔하며 일어나려던 그녀는 피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그의 손끝은 그녀의 엉덩이를 살짝 스쳤고,잠깐이었지만 너무 생생한 윤곽을 느낀 로더릭은 굉장히 당황하고 말았다.
“어…… 미안.”
“………….”
“그러려던 건 아닌데,난 당연 히 피할 줄 알고. ……미안해.”
로더릭은 난처한 둣 목 뒤를 긁적였다.
그러자 이재는 또 그가 조금 귀여워서 웃음을 홀렸다.
“뭐,저도 엉덩이 정도는 괜찮을 것 같은데요.”
“……그렇게 내가 듣고 싶은 말 을 해 주면,나도 네 말 진심으로 들을 거야.”
이재는 아예 웃음을 터뜨렸다.
“근데 폐하,되게 잘 참으시네요.”
“뭐가.”
“남자들은 가끔 참기 힘들다고 하던데. 자제하기 힘들다고.”
멈칫하던 로더릭은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어디서 또 그런 거지 같은 소리를 듣고 온 건지. 누구냐? 너 한테 그런 소리 한 놈은.”
가서 아주 가운데를 발로 부숴 버리게.
이재의 말이 조금 기가 막혔던 로더릭은 하, 헛웃음을 짓다가 말했다.
“안 참으면 뭐. 지들이 어쩔 건데.”
“………….”
“상대가 안 내킨다고 하는데, 억지로라도 할 건가?”
“………….”
“그런 새끼들 있으면,방에 가 둬 놓고 며칠만 먼지 나게 패 봐 라. 아주 잘 참는 놈으로 거듭날 거다”
로더릭은 머리를 쓸어 올렸다. 그는 말을 하면서 좀 짜증이 난 것 같은 눈치였다.
애매한 표정으로 웃던 이재는 물었다.
“근데 왜 갑자기 이렇게 화가 나셨죠?”
“네가 지금 바보 같은 소리를 했잖아! 정신 멀쩡하게 박힌 놈들은 절대 안 그래.”
“………….”
“날 그런 놈들이랑 한데 묶지마. 그럼 나도 자존심 상해.”
“………….”
“얘,이상한 놈이랑 결혼했으면 진짜 큰일났을 애네.”
이재는 픽, 웃었다. 화내면서 말을 다정하게 하는 재주가 있으셨네.
“맘에 있는 사람이랑 하고 싶은 마음이야 다 똑같지. 근데 그건 내 사정이니까 넌 그런 것까지 신경 쓰지 마라. 그럼 내가 너무 모자란 놈이 되잖나. 넌 그냥 네가 하고 싶은지,안 하고 싶은지 만 잘 생각해 보고 재깍재깍 말 해 주면 돼.”
“………….”
“헤일리. 알아들었어?”
“네.”
이재는 빙긋 웃었고,로더릭은 한숨을 쉬었다.
실컷 말하고 나니 또 여우의 잔꾀에 홀라당 넘어갔다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은근한 기대감도 함께 피어나고 있었다.
서로 마음도 어느 정도 확인했고, 아내는 확실히 예전보단 스킨십에 스스럼이 없다. 마음을 계속 열어 주는 것 같다.
그렇다면 머지않은 미래에 그런 날도 오지 않을까.
하지만 신혼에 수절하는 남편의 고통은 그리 쉽게 끝나지않을 예정이었다.
오전 내내 일기장과 역사서를 들여다보던 이재는 호숫가에 나왔다.
그녀는 소년왕과 이야기를 나누는 게 갈수록 편해지고 있었다.
이재는 원래 비밀이 많은 사람이 었고,인외 존재 앞에서는 굳이 자신을 감출 필요가 없었기 때문 이다.
가끔은 친구에게 속마음을 털어 놓으면 이런 기분일까, 생각하기 도 했다.
하지만 나이가 오백 살이 넘은 친구라니.
이재, 정신 차리자. 이런 상황 에 익숙해지면 아주 곤란해.
“헤일리는 왜 수살귀가 안 되고 성불한 걸까요?”
-몰라서 묻나? 내가 전에 했던 말 잊었어?
강한 원한을 품은 자 원귀가 되고,원대한 이상을 품은 자 법칙을 깬다.
하지만 이재는 새초롬하게 소년 왕을 흘겨보았다.
“이런 말씀 죄송한데요.”
-응,뭐.
“제가 알면 굳이 물어봤겠어요? 갠 아주 한을 주걱째로 퍼먹은 것 같던데요.”
소년왕은 피식,웃으며 그녀의 옆에 앉았다.
-뭐, 개인적인 회한보다 더 중요한 게 있었나 보지.
“그러니까 그게 뭔데요.”
소년왕은 어깨를 으쓱해 보였고, 살짝 삐친 그녀는 나뭇가지로 팔괘를 그렸다.
-넌 근데 그런 건 대체 어디서 배운 거냐?
-난 처음 보는 형태들인데.
“제가 당대 최고의 영 능력자의 부엌데기였어요. 이런 잔재주보다 부엌일을 더 많이 배웠다는 게 저의 슬픔이긴 한데요.”
소년왕과 이재는 계속 시답잖은 소리를 주고받았다.
소년왕은 딱 히 도와주는 게 없어도 그녀에게 는 의지가 됐다.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존재란 그런 것이다.
그러니 인간은 신이 대답해 주 지 않더라도,그를 찾는 거겠지.
그리고 그때,먼 곳을 바라보던 소년왕이 말했다.
-강이재. 저기 로렌스 온다.
그쪽을 바라본 이재는 움찔했다.
아니, 왜 저렇게 또 아련하게 보는 거야.
이재는 심장께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 그녀의 반응을 확인한 소년왕은 말했다.
-흔들리지 마. 그거,네 마음 아니니까 착각하지도 말고.
“저도 알아요.”
-강이재. 네 남편은 네가 생각 하는 것 이상으로 좋은 놈이야.
-상심할라. 남자 순정에 상처주면 그거 굉장히 오래간다.
그러자 조금 기가 막혔던 이재는 그를 힐끔 보며 말했다.
“제가 살던 곳에는 이런 말이있어요. 묘아동노서.”
“고양이 쥐 생각해 준다.”
무슨 말인지 이해한 둣 그는 픽, 웃었다. 하지만 이재는 두 주 먹을 불끈 쥐고 그를 흘겨보았다.
“후손 상심할 것까지 걱정이 됐으면,발 벗고 도와줬어야죠. 지금 아주 가식적이었어요. 좀 인간 애를 가져 보세요.”
-난 인간이 아닌데,어떻게 그런 인간적인 감정을 가지나?
“와. 너무 유치하시네. 저같이 미천한 인간의 말꼬리나 잡으시고, 너무 대단하시네.”
-어쩌냐. 너,말투가 갈수록 로더릭처럼 돼 간다.
-아무튼 강이재.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난 로더릭을 많이 아껴.
이재도 사실 조금은 느끼고 있었다.
오히려 그런 것 같으니까, 자꾸 구질구질하게 질척거리고 있는 것이다.
“그런 희망을 주는 게 더 나빠요. 그럼 저도 애원하고 싶어지잖아요.”
-난 매달리는 여자 별로 안 좋 아하는데.
그 말에 이재는 우엑,하는 얼굴을 했다.
-근데 널 보면 로더릭 마음을 참 잘 알겠어. 이런 게 바로 우연히 만난 취향이라는 건가.
“절대 꿈도 꾸시지 마세요. 저 는 남편 놔두고 바람피우고 그런 사람 아니에요. 사람이 도덕과 의리가 있는 거죠.”
-사랑은 없고?
-이제 부인은 못하네? 난 또 환자를 긍홀히 여기는 의원의 마음인 줄 알았지.
참 귀엽게 논다는 듯 웃던 소년왕은 어깨를 으쓱해 보이곤,그 대로 사라졌다.
허공만 노려보던 이재는 곧이어 로렌스 쪽을 바라보았다.
그녀도 마음속에 고민이 많았다.
당신이 알던 헤일리는 죽었다고 알려 줄 수도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평범한 인간은 그런 사 실을 받아들일 수 없다.
그런 세 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그 사람의 인생도 망가지고 만다.
몹시 고민하던 이재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사람들은 수군거 리며 왕후의 행동을 주목했다.
그런데 이재는 갑자기 로렌스를 둥진 채, 쌩하니 도망을 가 버렸다.
말 걸지 말아 달라는 강력한 신호였다.
시녀들과 기사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왕후가 좁은 보폭으로 다다다,뛰어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허둥지둥 하며 왕후를 따라 뛰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