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llow Your Heart RAW novel - Chapter (58)
마음이 이끄는 대로-58화(58/134)
#58.
로더릭은 잠이 잘 깨지 않는지, 마른세수를 몇 번 하며 말했다.
“미리 말해 두는데,오늘도 내가 더 놀랐다.”
국왕의 목소리는 몹시 잠겨 있었다.
“물을 왜 그러고 마셔?”
“……보셨어요?”
“………….”
“딸꾹질이 나서요.”
딸꾹질은 어느새 멈춰 있었다. 다만 물을 마셔서인지,너무 놀라서인지를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을 뿐이다.
“근데 왜 그러고 마시냐고.”
“……이거 모르세요?”
“사람이 그러는 건 처음 보는 데.”
“새가 그렇게 쪼아 먹는 건 본 것 같기도 하고.”
그는 본인이 말하고도 어이가 없었는지,머리를 쓸어 올리며 픽,웃었다.
그런데 그는 곧 이상한 물건이 방 한편에 놓여 있는 것을 목격 했다.
3분의 1쯤 비어 있는 술병 과 술잔이었다. 그는 고개를 기못 거리면서도, 미심쩍은 얼굴로 물었다.
“너,혹시 술 마셨어?”
이재는 어색하게 웃으며 침대로 가려고 했지만, 그는 완전히 잠이 깨버렸는지 침대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로더릭은 술병을 빠르게 훌으며 그녀에게 성큼성큼 다가왔다.
이재는 반사적으로 상체를 뒤로 쭉 뺐지만,그는 개의치 않고 얼굴을 들이밀었다.
뒷걸음질 치던 그녀가 비틀거리자, 그는 재빨리 등을 받치며 지탱해 주었다.
하지만 이미 한쪽 눈썹을 치켜올린 채였다.
“진짜 마셨네.”
“……네.”
로더릭은 조금 어이가 없으면서 도 의아했다.
“근데 혼자 마셨어?”
“……네.”
“이 시간에?”
“……네.”
“바닥에서?”
“………….”
“안주도 없이?”
할 말이 없어진 그녀는 입을 다물었고, 그는 그녀의 얼굴 근처에서 계속 냄새를 맡았다. 그다지 많이 마시진 않은 것 같았다.
하지만 이재의 얼굴은 서서히 달아오르고 있었다.
그는 일단 그녀를 데리고 침대로 왔다.
그 와중에도 취기가 올라오는지,그녀 는 몸을 조금씩 비틀거렸다.
침대에 이재를 앉힌 로더릭은 턱을 괸 채,그녀의 얼굴을 빤히들여다봤다.
그녀는 이미 목까지 벌게져 있었고,그는 생각할수록 황당하기만 했다.
“해일리.”
“네.”
“그럼 뭐라도 같이 먹으면서 마시던가.”
어떤 무당이 퇴마를 안주를 먹으면서 하나요.
“식사도 새 모이만큼밖에 안 하는 게 어디서 이런 못된 건 배웠지.”
우리 영산할매한테요. 업계 톱 티어신데요.
“근데 너, 술 못 마시지 않았나?”
보고서의 신뢰도는 이미 바닥에 떨어지다 못해 지하를 뚫고 있었지만,로더릭은 분명 그렇게 읽은 기억이 있었다.
그리고 이재는 그 순간,뒤늦게도 깨달음의 종소리가 울리는 것을 들었다.
그런 것까지 미처 따 져 볼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는 게 문제의 시작이었다.
“아,그냥 안 마시는 거였나?”
“제가 술을…… 안 마시는군요?”
“어쩌냐.”
“………….”
“얘,많이 취했네.”
하지만 이재는 점점 좌절하는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박복한 인생이라지만,무속인이 술 두어 잔도 못 마시 면 어떡하라는 거죠? 아무리 불 공평한 인생이어도,무구도 없는 판에 이런 핸디캡까지 주면 어떡 하냐고요.
전 영혼 하나에게 손을 내밀었 을 뿐인데,왜 이런 불행한 사실을 깨달아야 하는 건가요.
이재가 울상을 지으며,고개를 떨구자 로더릭은 헛웃음을 지었다.
왕후는 원래도 시무룩한 얼굴을 가끔 하긴 했다.
그런데 지금은 그게 훨씬 솔직하게 드러나서,토 라진 어린애 같았기 때문이다. 너도 삐치긴 하는구나.
그녀가 점점 알딸딸해지고 있다 는 걸 눈치챈 그는 평소보다 부드립게 물었다.
“갑자기 먹어 보고 싶어졌어?”
“네.”
“그럼 나랑 같이 마시면 되지, 왜 새벽에 혼자 이래. 사람 맘 안 좋게.”
“………….”
“몰래 마실 필요는 없는데. 이게 뭐라고.”
이재는 고개를 여러 번 끄덕였다.
그걸 물끄러미 바라보던 로더릭 은 침대에서 일어나 물을 따라 왔다.
그리고 그녀의 열 오른 뺨 에 두어 번 대어 주고는 건넸다.
그녀는 다행히 이번에는 새가 아니라 사람처럼 마셨고,로더릭은 빈 물잔을 받아서 협탁 위에 올려놓았다.
“뭐,다른 고민이라도 있어서 그래?”
로더릭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지난번에 로렌스를 보고 도망갔다더니,갑자기 생각이 났나. 그게 이유라면 그도 좀 짜증이 날 것 같았다. 로더릭은 차라리 다른 이유를 찾기로 했다.
“아까 내가 너무 짐승같이 굴어서 싫었어?”
계속 대답을 거부하던 이재는 그 말에는 확실하게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그런 거 아니에요.”
“그럼 왜 그랬어. 응?”
눈을 내리깔고 있던 이재는 갑자기 두 손바닥을 펼쳤다.
그리고 오랜만에 손금을 들여다봤다.
“왜. 거기 뭐 있어?”
“여기 미래가 있어요.”
“근데 어쩌죠?”
“뭐가.”
“한 치 앞도 보이질 않아. 칠흑 같은 미래야.”
“……너,어떡하냐,정말.”
로더릭은 결국 너무 웃겨서 이마를 감싸 쥔 채 웃고 말았다.
이재는 너무하다는 둣,새초롬 한 얼굴로 항의했다.
“왜 웃으세요? 저는 지금 굉장히 진지한데요.”
로더릭은 계속 큭큭대며 말했다.
“그걸 몰라서 묻나? 진지하니까웃는 거다.”
이재는 시무룩한 얼굴로 눈을 내리깔며 말했다.
“폐하,근데 저 지금 졸려요.”
로더릭은 그녀를 그대로 침대에 눕히고,이불을 덮어 주었다.
“그래,일단은 자고,넌 두고 보자.”
“음,아니야. 두고 보자는 사람은 안 무서워.”
“아,그러시군. 용감도 하셔라.”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뜰 테니까요. 전 괜찮아요. 제 걱정은 하지 마세요.”
로더릭은 너무 기가 막혔다.
하지만 웅크리고 있던 이재는 꾸물꾸물하더니 그의 어깨 밑으 로 파고들었다.
그녀가 척,하니 가슴팍에 팔을 올려놓자 로더릭은 눈썹 끝을 긁적였다.
“정말 다방면으로 미치게 하 네.”
그는 이재를 같이 끌어안고 등을 쓸었다.
왕후궁 분위기는 살짝 싸늘했다.
아침 일찍 나온 로더릭은 복도 에서 사람들의 얼굴을 훌었고,기 사단장은 알아서 자진 신고했다.
제이드는 역시 시녀장을 불렀어 야만 했다고 자책했다.
하지만 감각을 넘어서 왕후에게는 잘해 주고 싶은 뭔가가 있었다.
차마 사람들 밑에서 면박을 줄 수는 없어서 국왕은 제이드를 끌고 반대쪽 복도로 갔다.
“년 왕후가 술을 먹겠다고 하면, 나를 깨우든가.”
“죄송합니다.”
“그것도 아니면 너라도 같이 마셔 줬어야지.”
“………….”
“그 새벽에 왕후 혼자 술을 먹게 만들면 어떻게 하나?”
근데 그거 폐하도 예전에 종종하시던 짓인데요.
아니, 그리고 상식적으로 부부 침실에 제가 한밤중에 어떻게 들어가지요?
하지만 로더릭은 굉장히 짜증이 난 얼굴이었다.
“왕후한테 있었던 사고를 이제와서 내 입으로 다시 한번 언급 해야 하나?”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로더릭은 한숨을 쉬며 머리를 쓸어 올렸다.
“왜 달라던가?”
“……그냥 잠이 안 오신다고.”
“잠이 안 온대?”
국왕은 사실 왕후가 그런가 보다, 라는 생각은 계속하고 있었다.
깨어 있는 모습을 두세 번쯤 보았고,그는 그런 일을 남들보다 는 많이 겪어 보았기 때문이다.
그가 짜증이 나는 건 왕후가 그걸 견딜 수 있는 체력이 전혀 안 되어 보인다는 것이었다.
“너흰 뭐라고 했는데. 안 말렸어?”
로더릭은 그때부터 대화 내용을 취조하기 시작했다.
“많이 힘드시냐고……”
“혹시 무리가…… 밤에……”
“그때 마침 시녀장이 교대하고 없어서 말입니다.”
로더릭은 너무 어이가 없어서 허공을 보며 하, 웃었다.
이미 한 두 번 친우에게 받은 직접적인 비난이 있었고,그도 듣는 귀가 많았다.
“이런,씨. 이것들이 왕후한테 까지……”
그는 발로 제이드의 정강이를 걷어차는 시눙을 하다가 내렸다.
“무슨 오해들을 하고 있는지는 잘 알겠는데, 설마 그랬어도 왕후 성격에 너희같이 시커먼 놈들한테 퍽이나 말하겠다.”
“………….”
“얘네 완전히 미쳤네?”
아니, 솔직히 완전히 결백하진 않으시잖아요. 저희도 간밤엔 그 럴 수밖에 없었던 시각적 증거가 있었습니다. 게다가 그 위치는 뭔가 연상되는…… 아, 아닙니다—.
성 내에는 이미 오래전부터 그런 소문이 파다하게 퍼진 상태였다.
왕후가 국왕이랑 함께 침실에 들어가면 다음 날 맥을 못 춘다고. 심지어 국왕이 왕후 침실에서 자고 싶어 하니까,그럼 자긴 국왕의 방에서 자도 되겠냐고 물었다고.
하지만 괜히 그런 얘기를 해서 국왕의 심사를 긁을 필요는 없었다.
제이드는 현명하게 말을 돌렸다.
“그런데 왕후 폐하가 페하는 자상하시고, 하나하나 다 배려해 주는 좋은 사람이라고 하셨습니다.”
로더릭은 한쪽 눈썹을 치켜올렸다. 조금 침묵하던 그는 말했다.
“……술 파티를 한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맞는 말로 파티를 하셨네.”
퉁명스러운 말투였으나,국왕은 확실히 기분이 조금 나아진 것 같았다.
사실은 뿌듯해 보였다.
“아무튼,그런 얘기 하지 마라.”
“……예.”
“넌 너희가 웃으면 좀 괜찮아 보이는 줄 알지.”
“………….”
“사람들 눈에는 아무리 상냥하게 웃어도 너희 같은 놈들은 다 무서워. 왕후는 처음엔 나도 무서워했어.”
제이드는 이번에야말로 국왕의 말을 반박하고 싶어졌다.
“저희 하나도 안 어려워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오히려 좋아하시는 것 같던데요.”
그런데 왕후는 정말로 들어가기 전에 말을 하나하나 다 붙여주고 들어갔다. 심지어 제일 덩치가 좋은 기사한테 아주 좋은 콧대라고,만나는 여자는 있냐는 얘기를 하고 들어갔다.
저흰 왕후 폐하가 걔를 좋아하시는 줄 알았습니다? 솔직히 아직도 의심됩니다.
로더릭은 다시 한번 발을 들어 올렸고,이번에는 진심을 느낀 제이드는 슬쩍 피했다.
이재는 얼굴 여기저기가 불긋해 진 채 곤히 자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벽에 붙어 서서 고개를 조아리고 있었고,그녀는 눈을 뜨 자마자 흠칫했다.
국왕이 팔짱을 낀 채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해일리.”
“………….”
“네 말대로 방금 전에 오늘의 태양이 떴다.”
“………….”
“이젠 코피로도 모자라서 술병 까지 나냐?”
“고작 서너 잔에 그렇게 될 거라곤 저는 상상도…….”
민망해하는 얼굴에 국왕은 픽, 웃었다. 그는 의자를 쭉 끌어와 앉았다.
“기억은 나?”
“그럼요. 죄송해요.”
“그건 됐고. 얘기 좀 하자.”
이재는 상당한 압박감을 느꼈지만,그는 딱히 화가 난 눈치는 아니었다.
“갑자기 왜 마셨는데. 평소엔 마시지도 않는다면서.”
“………….”
“너의 한계를 시험해 보고 싶었나?”
“……그랬나 봐요. 저 좀 추했죠”
그는 고개를 저으며 태연하게 말했다.
“내가 미쳤구나 했다. 그게 귀여우면 어쩌자는 건지.”
한때 자신의 광중을 함구하던 로더릭은 스스럼없이 자신이 미쳤음을 인정했다. 그리고 인정하니까 매우 편했다.
괜히 찔린 이재는 그가 비꼬지도 않았는데 사과했다.
“죄송해요.”
“방금 내가 한 말 못 들었나?”
그는 열꽃이 돋은 것 같은 그 녀의 얼굴을 손등으로 살살 쓸며 말했다.
“근데 헤일리. 내가 원래 이런 거 말리는 편은 아닌데,앞으론 마시지 마. 이 정도면 너는 체질에 안 받는 거야.”
“……네. 그렇더라고요.”
이재는 수긍하둣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무속인으로서 크나큰 약점을 안게 된 그녀는 우울한 기색으로 호두턱을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