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llow Your Heart RAW novel - Chapter (61)
마음이 이끄는 대로-61화(61/134)
#61.
「497년 1월 8일 자꾸만 이상한 꿈을 꾼다. 무섭다.
그렇지만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을 거다.」
이재는 오늘도 헤일리의 일기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얼마 전부터 한 가지 의구심을 품고 있었다.
국왕이 무심코 홀린 말이 머릿속에 남았기 때문이다.
‘누가 홈쳐볼까 봐 걱정이라도 됐던 건가?’
정말 그런 건가? 그럼 일기는 대체 뭐 하러 쓰지? 이재는 고개를 갸웃했다.
던컨 공작은 딸의 일기쯤은 죄책감 없이 홈쳐볼 수 있는 사람같았다.
하지만 또 그 정도로 한 가해 보이지도 않았다.
이재는 이번에는 다른 일기장을 펼쳤다. 헤일리는 죽기 한 달 전 쯤부터는 거의 일기를 쓰지 않았다. 이건 그나마 마지막 무렵의 일기였다.
「499년 3월 14일
어떤 형태로든 로렌스와 함께하고 싶다.
왕후와 기사로라도 괜찮다.
노력해도 바뀌지 않는 미래가 괴롭다.
나는 죽고 싶지 않다.」
헤일리의 일기장 마지막 권은 괴롭다,죽고 싶지 않다 같은 말로 도배되어 있다.
볼 때마다 영 마음이 안 좋아서 이재는 한숨을 쉬었다.
그때,데보라가 이재에게 알렸다.
“왕후 폐하,폐하께서 정무 마치고 침실로 가셨답니다. 기다리고 계십니다.”
“어,알았어.”
이재는 습관적으로 팔찌 상태를 확인하며 방을 나섰다.
국왕은 며칠 만에 자신의 침실에 와 있었다.
아침에 왕후가 오늘은 국왕의 침실에서 자고싶다고 이야기했기 때문이다.
왕후를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로더릭은 어지간한 건 하고 싶은대로 해, 하며 들어주는 편이었다.
그녀가 바라는 게 딱히 많은 사람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권세 가에서 자랐는데도 검소하기 짝이 없었다.
그런데 그게 궁상맞아 보이는 게 아니라,굉장히 정결해 보였다.
나무를 깎을 때도 느꼈지만,약초 재배도 마찬가지였다.
로더릭은 약초 키우기가 그렇게 경건한 취미인지 처음 알게 되었다.
그때,시종들이 기별하는 소리 가 들리고 이재는 빼꼼 살구색 머리칼을 들이밀었다. 그녀가 눈 인사부터 하자,로더릭은 웃었다.
“적당히 하고 빨리 들어와. 지금 나랑 내외하나?”
이재는 웃음을 홀리며 방 안으 로 들어왔다.
그런데 그때, 로더릭에게는 기묘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왕후 가 방에 들어서며 한쪽 벽면을 빠르게 훌고 있었다.
왜 자꾸 저쪽을 바라보는 걸까. 아무것도 없는데.
그는 정말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왕후는 또 이상한 짓을 했다.
책장으로 가 조각상을 여기저기 들여다보는 것이다.
그녀는 이 방에 오면 항상 저 행동을 반복했다.
“친구랑 인사라도 하는 거야?”
“네,다행히 잘 있네요. 역시 강한 아이예요.”
로더릭은 어이가 없어서 웃음을 홀렸다.
“왜 웃어요. 제 인생의 역작이란 말이에요.”
“언젠가 네 작품 세계를 인정받는 날이 오기를 내가 진심으로 기원하겠다.”
이재는 피식 웃으며 침대가로 왔다.
로더릭은 그녀의 허리를 덤석 끌어안아 침대에 앉혔지만,이재는 손을 뻗었다. 그녀는 이번에 는 두 동강이 난 지하여장군,이재를 들고 로더릭에게 말했다.
“폐하,이것 좀 버리세요.”
“……싫어.”
“이런 게 바로 흉물이에요. 폐하가 안 버리면 제가 버릴 거예요.”
그러자 로더릭은 드물게도 악력 을 행사했다.
그는 이재의 손목을 꽉 잡고, 손가락을 하나하나 폈다.
그리고 손쉽게 조각상을 가져 와 다시 침대맡에 두었다.
“네가 선물한 순간 이미 내 거다. 왜 내 물건을 내 허락도 없이 네 마음대로 하려고 하나?”
“저건 이제 쓸모없어요.”
“왜 쓸모가 없어.”
“망가져 버렸잖아요. 다시 더 좋은 걸로 깎아 드릴게요.”
아내의 말이 딱히 틀렸다고 볼 순 없었지만, 로더릭은 괜히 마음이 좀 이상했다. 그는 풍성한 머 리카락을 쓰다듬었다.
“네가 나한테 처음 준 거다. ……안 버릴게.”
그러자 로더릭의 눈에는 이재가 어쩔 줄 몰라 하며 옷자락을 음켜쥐는 게 보였다.
아,쟤는 정말 왜 이렇게 사람 마음을 울렁거리게 하지.
로더릭은 그녀의 뺨에 입을 맞 추며 말했다.
“자,그럼 이제 할 일 하자.”
“무슨 할 일이요?”
그는 정말 몰라서 묻냐는 둣 웃었다.
그러자 말뜻을 이해한 이재는 그의 어깨를 짚고 입술에 쪽, 쪽 거렸다.
로더릭은 좋으면 서도 괜히 핀잔을 주었다.
“너, 나이가 몇 살인데 자꾸 이렇게 어린애 같은 뽀뽀로 때울 거야?”
“애 취급할 때는 언제고.”
“난 그런 적 없다니까.”
이재는 결국 그의 입술을 열며 눈을 내리깔았다.
속눈썹이 파르 르, 떨리는 게 예뻤다.
그녀가 하는 키스의 시작은 언제나 조심스 럽다.
서툴다는 생각도 들고,정직하 다는 느낌도 든다.
그런데 로더릭은 솔직히 그녀가 주도하는 키스가 훨씬 좋았다.
그렇게 키스를 받다 보면 먼저 이성을 잃게 되는 건 언제나 그 쪽이었다.
로더릭은 그녀를 들어 자신의 허벅지 위에 앉혔다.
다리를 양쪽 으로 벌리고 앉으며 이재는 화들짝 놀랐지만,그러면서도 등 뒤를 바라보았다. 원귀를 둥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로더릭은 정말로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왕후가 또 그쪽을 본다. 경계하 둣이.
저기에 무슨 문제가 있어서 이러는 걸까.
“나한테 집중 좀 하자.”
그는 장난스럽게 이재의 엉덩이 를 움켜쥐었다. 그러자 이재는 옴찔 놀라면서도 웃었다.
“거침이 없으시네요.”
“원래 한 발자국 내딛기가 어렵지, 한번 나간 진도에 후퇴는 없는 거야.”
“와,무섭네.”
“무서워하진 말고. 네가 싫으면 안 하니까.”
이재는 웃으면서 괜찮다고 고개 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의 양어깨 에 손을 올리고 다시 입을 맞추 었다.
그녀가 시작한 키스의 주도권은 다시 로더릭에게로 넘어왔다.
그 는 입술과 입안의 점막을 할는 것만으로는 너무 부족해서 그녀의 온 얼굴에 키스를 퍼부었다.
뺨을 할으니까 간지러웠는지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는 게 보인다.
턱을 살짝 깨무니까,한쪽 눈을 찡그리는 게 보인다.
그는 이재의 목덜미에서 숨을 쉬며 키스 마크를 새겼다.
가느다란 목을 타인에게 내어 준 이재 는 흐으, 하는 소리를 홀렸다.
괴로운 것 같기도,좋은 것 같기도 한 음성이었다.
그 세세한 반응 하나하나에 감각이 곤두선다.
로더릭이 계속 몰아붙이자,어 느새 그녀의 몸은 반쯤 기울었다.
그가 둥을 단단히 지탱하고 있었지만,불안했는지 양팔로 목에 매달린다.
그 작은 움직임에도 정말 미치겠어서 로더릭은 더욱 거칠게 입 안에 혀를 섞었다. 마치 어린 짐 승을 잡아먹는 것 같은 키스였다.
빈틈없이 서로를 꼭 끌어안고 있느라,그녀의 가슴은 그에게 밀착되어 있었다. 맞닿은 하반신으로 그의 성난 신체가 느껴진다.
그렇지만 이재는 자신이 끌어안고 있는 맹수가 무섭지는 않았다.
인지하지도 못한 사이 그녀는 침대에 완전히 누워 있었다.
로더 릭은 그녀를 양팔 사이에 두고 내려다보고 있었다.
“하아……. 헤일리……”
“응?”
푸른 눈에서는 정제되지 못한 욕망이 뚝뚝 떨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녀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고개라 도 작게 끄덕여 주기를 기다리며 계속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눈에서 약간의 망설임을 읽은 그는 이마를 한 번 쓸어 주고는 갑자기 욕실로 향했다.
이재는 뒤늦게 자신도 그 못지 않게 가쁜 숨을 쉬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만약 여기가 국왕의 방이 아니라, 조금만 더 안전한 곳이었더라면.
이재도 사람과 사랑을 나누어 보고 싶었다.
그녀는 침대 시트에 뺨을 비비 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하지만 그가 뭘 하러 갔는지 알 것 같아서,고장 난 것처럼 뛰는 심장은 좀처럼 진정되지 않았다.
로더릭은 살구색 여우를 품에 안은 채,눈을 떴다.
그녀는 그의 팔을 벤 채,곤히 잠들어 있었다.
한참을 바라보았으나,이재는 숨 만 새근새근 쉬었다.
항상 그보다 먼저 일어나 있던
그의 아내는 언제부턴가 늦잠을 자기 시작했다.
요즘은 낮에 쪽잠 도 자는 모양이었다. 밤중에 깨어 있는 모습을 종종 보였으며,얼굴 또한 창백하기만 하다.
로더릭은 근심 어린 얼굴로 그 녀를 들여다보았다.
관자놀이에 몇 번이나 입을 맞춘 그는 조용한 음성으로 말했다.
“시종장,밖에 있나.”
그러자 침실 안에 들어온 시종 장은 홈칫,놀랐다. 국왕과 왕후 둘 다 깨어 있는 줄 알고 들어왔는데,왕후가 아직 잠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국왕은 곤히 잠든 왕후를 소중하게 끌어안고 있었다.
로더릭은 소란스럽게 하지 말라 는 의도로 입술에 손가락올 갖다 댔다.
그러자 시종장은 고개를 조 아렸다.
“지금 바로 의원을 불러와라.”
시종장은 발소리를 죽이며 방을 빠져 나갔다.
아침부터 불려 온 의원 또한 시종장과 같은 반응을 보였다.
부부 사이가 좋다는 소문은 들었지만,저렇게 다정한 자세로 있을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국왕은 말 없이 이쪽으로 오라는 턱짓을 했다.
“진찰해 봐라.”
“어떤 분을……”
로더릭이 인상을 쓰자,의원은 홈칫 놀랐다.
로더릭은 진찰을 위해 허리를 끌어안고 있던 손을 풀었지만,그녀가 깰까 봐 팔베개는 계속해 주었다.
의원은 조금 난감해했다.
그도 이런 상태에서 진찰을 해 본 적 은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왕후의 목에는 간밤의 자국이 여기저 기 흩뿌려져 있었다. 몹시 민망했 으나,국왕의 눈빛을 견디지 못한 그는 이재의 상태를 살피기 시작 했다.
잠시 후, 의원은 한 걸음 물러 섰다.
하지만 로더릭은 또 한 번 인상을 썼다.
“더 자세히 봐.”
어쩔 수 없이 의원은 조금 더 이재를 살폈다. 그 와중에도 이재는 눈을 뜨지 못했다.
왕후는 원래 굉장히 기민한 사람인데,요즘 왜 이러는 걸까. 내 여우,왜 이렇게 시름시름 앓지.
로더릭은 너무 안쓰러워서 계속 그녀의 이마를 쓸었다.
“심박이 조금 느리긴 한데,이 정도면 큰 문제 없습니다.”
하지만 로더릭은 고개를 저었다.
“체온이 낮아.”
“……예?”
“몸이 차다고.”
그러자 의원은 난감해하며 대답 했다.
“아침에 이 정도 체온 변화는 일반적인 일입니다.”
“아니. 다른 때보다 훨씬 차다.”
“………….”
“남편인 내가 그걸 모를 것 같나?”
왕후는 이 방에만 오면 아침마다 항상 몸이 서늘했다.
그건 사실 밤새 지독한 음기와 싸운 결과였다.
하지만 특별한 이상 징후를 발견하지 못한 의원은 본인의 말을 반복하기만 했다.
“내가 종종 이렇게 아침마다 부르겠다.”
“예,폐하.”
“너,그 입단속 잘해.”
“……명심하겠습니다.”
“가 봐.”
의원이 나가자 로더릭은 다시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으며 얼굴 여기저기에 입을 맞추었다.
보고 있기 부끄러웠던 시종장은 고개 를 숙이며 함께 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로더릭은 다시 말했다.
“제이드 좀 불러와 봐.”
잠시 뒤 불려온 기사단장도 흠칫하며 똑같은 반응을 반복했다.
아침부터 사람들이 연달아 얼굴을 붉히고 있었으나 오로지 국왕만 태연했다.
안겨 있는 왕후는 이 상황을 모른 채,평온한 얼굴 로 잠들어 있다.
“제이드. 공작가 주치의를 매수 할 수 있을까?”
“……왕후 폐하가 어디 많이 안 좋으신 겁니까.”
로더릭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글쎄. 모르지.”
“………….”
“그러니 난 꼭 확인을 해 봐야 겠다.”
“……노력해 보겠습니다.”
“공작 귀에 안 들어가게 잘해.”
“예,페하.”
“나가 봐.”
사람들이 빠져나간 침실에는 두 사람만이 남았다.
아직도 잠들어 있는 왕후를 하 염없이 바라보던 로더릭은 그녀를 조금 더 꼭 끌어안았다.
그런 데도 이재는 쉽사리 일어나지 않았다.
로더릭의 걱정이 더욱 깊어질 때쯤,이재는 깜빡거리며 눈을 떴다.
옴찔, 놀란 그녀는 자신을 끌어 안고 있는 사람보다 다른 곳을 먼저 바라보았다. 로더릭은 고스란히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또 저기를 보네.’
안도와 같은 한숨을 쉰 그녀는 뒤늦게 그를 힐끔 바라보았다.
“잘 잤어?”
“네.”
“거짓말.”
“네?”
“거짓말이라고.”
그녀가 눈을 동그랗게 뜨자,로 더릭은 피식 웃었다.
그는 그녀의 뺨과 콧대에 입을 맞추었다.
“그냥 해 본 소리야. 신경 쓰지 마라.”
“저 또 늦잠 잤나 봐요.”
“그러게. 우리 여우,왜 그러래?”
“그럴 수도 있지. 되게 무안 주시네.”
이재가 우물쭈물하며 말하자, 그는 자상하게 물었다.
“네 방으로 가서 쉴 거지?”
“네.”
“데려다줄게.”
“아뇨,혼자 가도 돼요. 가서 일 보세요.”
하지만 그는 들은 척도 안 하 고 일어나서 손을 내밀었다.
그의 직감은 점점 더 구체화되고 있었다.
왕후는 한 번씩 이 방에 와서 자겠다고 고집을 부린다.
처음에는 여기서 혼자 자겠다는 말까지 하길래,이 방을 유독 좋아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그녀는 이 방에 오면 뭔가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리고 아침이 되면 기다렸다는 둣 자기 방으로 돌아 갔다.
심지어 몸이 안 좋아서 거동이 어려울 때마저 방에 데려다 달라는 말을 했다. 그건 어딜 봐도 좋아서 여기 오는 사람의 태도가 아니었다.
그리고 로더릭은 사실 그 느낌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분명 다른 공기.
퍼즐은 한두 개만 더 있으면, 완성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그 핵심적인 조각을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다.
그가 깊은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이재는 말을 걸었다.
“폐하.”
“응? 왜?”
“제가 혹시 늦잠을 자면 저 신경 쓰지 말고 일 보러 가셔도 돼요. 기다리실 필요 없어요. 아, 깨우셔도 되고요.”
참 담백하고 차분한 말이었다. 하지만 그는 한숨 같은 웃음을 홀렸다.
“헤일리.”
“네?”
“너는 내가 별로 의지가 안 되나 보다. 많이 서운해지네.”
“그게 무슨 말이에요.”
“나,너 두고 어디 안 가.”
이렇게 창백하게 질려 있는 너를 내버려 두고 내가 어딜 가겠어.
그는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녀의 머리칼을 부드럽게 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