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llow Your Heart RAW novel - Chapter (62)
마음이 이끄는 대로-62화(62/134)
#62.
로더릭은 이재를 방에 데려다주며, 침대에 눕혔다.
이재가 일어나려고 들었지만, 그는 손가락으 로 이마를 꾹 눌렀다.
“그냥 누워.”
“왜요?”
“좀 더 자라.”
“다 잤는데.”
이재는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가웃거렸다.
그녀가 다시 한번 일 어나려고 들자,그는 이번에는 어 깨를 꾹 눌렀다.
하지만 이재는 오뚝이처럼 또 한 번 일어났다.
로더릭은 결국 침대로 올라왔다. 그리고 이재를 꼭 끌어안으며 눕혔다.
“콩알. 오늘 뭐 할 거야.”
“책 좀 읽고,접견도 하고.”
“접견은 취소해.”
이재는 힐끔거리며 로더릭의 눈치를 살폈다.
그의 태도가 너무 이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로더릭은 그렇게 하라는 둣 고개를 끄덕였다.
이재의 안색은 좋지 않았고,그는 확인해 보고 싶은 부분들이 있었다.
“사전에 약속한 건데 어떻게 그래요.”
“며칠 미루면,그사이 누가 숨이라도 넘어가나?”
“………….”
“그 정도로 급한 거면,편지로 적어서 날리라고 하든지. 아니면 내가 대신 만나 줘?”
“그 사람들이 과연 그걸 좋아할까요?”
“하수네. 바로 그 점을 노리는 거지. 아무튼 넌 좀 더 자.”
이재의 얼굴을 계속 들여다보던 로더릭은 그녀를 소중하게 끌어 안았다.
그리고 이재의 표정은 점차 불편해졌다. 로더릭이 그녀의 엉덩이를 토닥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애도 아니고 이게 뭐 하시는 거죠?
“왜 엉덩이를 토닥토닥하세요?”
“싫어? 고양이들은 이렇게 하면 좋아한다던데.”
이재는 정말 황당해서 웃음을 홀렸다.
“폐하.”
“응.”
“고양이는 그냥 고양이고요,여우는 사실 개과예요. 폐하는 제가 고양이라는 거예요,아니면 여우 라는 거예요.”
“그렇다면 다람쥐라는 거야.”
로더릭은 아무 소리나 내뱉었다.
“근데 요즘 보니까 희한하게 꼬리가 없는 것 같더라고.”
그가 골을 슬쩍 쓸자,이재는 윽, 하며 눈을 흘겼다.
“그렇게 만지는 건 싫어요.”
“왜. 어디 숨겼나 나도 좀 찾아보자.”
“아니,사람이라니까.”
로더릭은 픽,웃었다.
“내가 그걸 몰라서 이러고 있겠냐? 너 어떻게든 건드려 보고 싶어서 수 쓰는 거지. 나도 나름 피 눈물 쏟으며 노력 중이다.”
이재의 등을 두어 번 어루만진 그는 곧 침대에서 일어섰다.
“아무튼 오늘은 일정 다 취소하 고 쉬어. 안색이 안 좋다.”
“내 말 알아들었어?”
이재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끄덕 했다.
“나 갔다 올게.”
그녀의 빨에 입을 맞춘 로더릭은 방을 빠져나갔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로더릭의 뒷 모습을 바라보던 이재는 이내 빙긋 웃었다. 자신을 제일 걱정해 주는 사람도, 가장 신경 써 주는 사람도 국왕이었다.
하루 종일 일기장과 역사서를 정독한 이재는 호숫가에 나와 있었다.
그녀는 골똘한 생각에 잠겼다. 국왕이 숲에서 홀린 말 때문이었다.
‘서부 국경이 혼란스럽다. 잠깐이지만 군영이 뚫릴 뻔했다는군.’
그녀는 이제껏 원귀를 떼어 내 기만 하면 왕의 대운이 트이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면 곧 카이 엔 국운도 안정되는 거라고.
그런데 반대로 카이엔 국운이 흔들리면, 왕의 대운은 어떻게 되 는 걸까.
이재는 슬픈 얼굴로 소년왕을 바라보았다.
“제가 이제 이런 것까지 신경 써야 하나요.”
-뭐가.
“국경이 계속 공격받고 있다면서요. 왜 그 사람 주변엔 자꾸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거죠?”
소년왕은 피식 웃었다.
-뭘 물어봐. 너도 지금이 큰 물줄기가 바뀌는 시점인 것쯤은 알잖아. 난세는 원래 혼란스러운 법이다.
소년왕은 어깨를 으쪽하며 말했다.
-그럼 네가 난세의 영웅이 되어 보든지. 멋진 일이잖아?
“전 그런 거 관심 없네요.”
-그래?
“저 같은 사람들은 원래 그런 거창한 뜻을 품고 이 일을 하는게 아니에요.”
그냥 누가 아픈 게 싫을 뿐인 거죠.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던 이재는 정면을 보고는 더욱 슬픈 얼굴을 했다.
로렌스가 걸어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근데 저 사람도 골상은 좋구나. 국왕이나 제이드만큼 못할 뿐이지. 걸음걸이가 호전적이기보단 차분한 성정의 사람이었다.
그리고 자신이 이 상황에 또 사람의 상을 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은 이재는 상심했다.
“전 정말 운이 지지리도 없는 것 같아요. 당장 오늘 나한테 닥칠 일도 모르면서,무슨 남을 돕겠다고. 그렇지 않나요?”
소년왕은 피식,웃었다.
-뭐,그렇게까지 비관할 건 아니고. 사랑에는 장작도 필요한가 보다,그 정도로 생각해라.
“그건 또 무슨 소리예요.”
그는 대답 없이 웃기만 했다.
그리고 기운 내라며, 그녀의 등을 한 번 툭 치고는 사라졌다.
왕후의 시녀들은 왕후의 반응을 살폈다.
그리고 달릴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왕후는 평소 행동거지가 무척이나 차분했다.
하지만 순발력이 없는 사람은 아니었다.
언제 또 갑자기 다다다, 뛰쳐나갈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이재는 그가 다가오는 것을 물끄러미 보고 있기만 했다.
그녀는 지금 몹시 고민 중이었다.
세상에는 결자해지라는 말이 있다.
매듭은 묶은 자가 풀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헤일리가 그 매듭을 제 대로 풀지 않고 떠났기 때문에 저 사람은 과거에 멈춰 있고,이 재가 그 짐을 떠안은 것이다.
‘이것은 불운했던 헤일리의 인생과 박복한 내 운명의 합작일까.’
이재는 심각한 얼굴로 호수를 노려보다가 다시 로렌스를 바라보기를 반복했다. 그녀는 결국 깊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나 잠깐만 저 사람하고 할 말 이 있어서 그러는데,자리 좀 비켜 줄래?”
데보라는 이재의 눈을 보며 미세하게 고개를 저었다.
지금 그 판단은 너무 위험했기 때문이다.
국왕은 현재 온 신경이 왕후를 향해 곤두서 있는 상태였다.
요 며칠 왕후 안색이 좀 안 좋다는 이유로 의원을 부른 것은 물론, 공식 일정까지 나서서 취소해 버렸다.
그건 사실 강가에 다녀온 뒤, 이재가 몸을 사리지 않기로 결심한 결과였다. 점점 기를 회복하는 데 무리가 따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국왕은 원래도 왕후에게 굉장히 많은 관심을 가진 사람이었다.
기사들은 지금 두어 시간에 한 번꼴로 이재의 상태를 보고하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기사 하나는 이 상황을 보고하기 위해 조용히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데보라는 계속해서 안 된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었지만,이재는 괜찮다는 둣 고개를 끄덕였다.
“별 얘기 아니야. 그냥 좀 물어 볼 게 있어서 그래. 아닌 건 아니 라고 말하고.”
그래야 저 사람도 짐을 털어 내고 미래를 살 거 아니야.
몇 걸음 떨어진 곳에 서 있던 로렌스는 이재가 빤히 바라보자, 미소를 지었다. 다정하고 따뜻한 느낌의 미소였다. 이재는 옆자리 를툭,툭 두드렸다.
“앉으실래요? 저랑 잠깐 얘기 좀 해요.”
“그래도 되겠습니까.”
“안 될 게 뭐가 있겠어요.”
그러나 이재가 한숨을 푹,쉬었기 때문에 로렌스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러면서도 이재와 조금 떨어진 곳에 나란히 앉았다.
“건강은 좀 괜찮으십니까. 접견을 또 취소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크게 나쁜 곳은 없어요.”
“예전엔 이렇게 아프지 않으셨는데. 왕실 생활이 많이 고되신가요.”
이재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그녀는 사실 헤일리의 혼이 완전히 떠났다는 것을 안 뒤,로렌스에게 물어보고 싶은 게 있었다.
헤일리가 가진 삼 년의 공백. 그녀의 이상한 일기장.
누가 보는 게 걱정됐냐는 국왕의 말.
헤일리는 실제로 맑은 성품의 사람이었던 것 같긴 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백치라고 조롱받을 정도의 사람도 아닌 것 같았다.
헤일리. 너는 대체 누구니. 너 한테 무슨 일이 있었던 거니.
“경께서 아는 저는 어떤 사람이었나요.”
“제가 아는 모든 사람 중에 가장 현명하고…… 따뜻한 사람입니다.”
이재는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그랬나요.”
그 말을 저 대신 헤일리가 들을 수 있었다면,얼마나 좋았을까요.
이재의 씁쓸한 얼굴을 뻔히 바 라보던 로렌스는 말했다.
“왕후 폐하,전에 한 약속을 지 킬 수 있게 해 주십시오.”
“뭐를 말씀인가요.”
“3기사단을 탈단하고, 왕후 폐하께 서약을 바치겠습니다. 평생 곁에서 행복을 빌고, 당신의 날개 가 되어 드리겠습니다.”
역사상 왕후를 흠모하고,서약 을 바친 기사들은 많았다.
많은 검을 소유했다는 건 가끔 왕후의 권력과 명예가 되기도 했다.
하지 만 이재는 쓴웃음을 지으며,고개 를 저었다.
헤일리는 저런 약속을 했으면 죽지나 말지.
대체 왜 지킬 수도 없는 약속을 해 버린 걸까.
“그럼 경의 인생은 어떻게 되나요.”
“전 왕후 폐하만 건강하고 행복 하시면 그걸로 족합니다.”
“아니요,저 때문에 당신 인생을 희생하지는 마세요.”
“………”
“전 그런 것을 바란 적도 없고, 지금와서 경이 그렇게 하시면 폐하도 경도 저도 다 불행해집니다.”
그리고 헤일리도.
“왕후 폐하.”
로렌스는 안타까워하며,이재의 손목을 슬며시 잡았다.
이재도 그가 가여워서 마음이 아렸다.
하지만 그녀는 눈물을 글썽거리면서도 그러면 안 된다고, 거듭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그때였다. 예리한 검 끝이 로렌스의 목으로 향했다.
당황한 이재가 검을 따라 고개를 들었을 때, 국왕은 싸늘하게 식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감정 한 톨 없어 보였지만,사실 그의 속마음은 시커멓게 들끓었다.
그러나 이 상황에서도 그 분노 가 왕후를 향하지 않는 건,그는 따져 물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로더릭은 자신에게 자격이 부족 하다고 생각했다.
이제 와서 왜 이 남자를 좋아 하냐고 물을 수는 없다.
이 사람을 사랑했던 게 먼저였기 때문이다.
그럼 이 결혼을 왜 했냐고 물을 수도 없다. 국혼을 강요한 것은 자신과 공작이었기 때문이다.
할 수 있는 거라곤 고작,왜 아직까지 정리를 못하냐는 원망 정도였다.
하지만 그 원망 또한 내 뱉는 순간 자신은 보잘것없는 남자가 되고 말 것이다.
로더릭은 서늘한 얼굴로 칼을 목에 더욱 가까이 가져다 댔다.
날카로운 검 끝이 살갗을 누르자, 선혈이 배어 나오기 시작했다.
너 무 놀란 이재는 왕을 말렸다.
“폐,폐하. 그런 거 아니에요. 이러면 안 돼요. 하지 마세요.”
로더릭은 그녀의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로렌스만 살기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로렌스 어바인.”
왕은 말을 고르고 골랐다.
“왕후는 카이엔에서 가장 고귀한 사람이다.”
“………”
“그러니까 내 아내는 누구든 마음에 품을 수 있다.”
“………”
“하지만 너는 아니잖아. 너에게는 그럴 자격이 없다. 내 아내한테서 그 손 떼.”
이재의 손목을 잡고 있던 로렌 스는 천천히 손을 뗐다.
로더릭은 너,나중에 꼭 두고 보자,하는 얼굴로 로렌스를 노려보다가 이재를 잡고 일어섰다.
그는 이재를 끌고 몇 걸음 걷다가,그녀의 눈가에서 희미한 눈물 자국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 순간 억눌렀던 부아가 폭발하는 것을 느꼈다.
“뚝 그쳐! 넌 뭘 그렇게 잘했다고 울고 있어.”
거센 분노를 참지 못한 국왕은 이재를 세워 두고 다시 로렌스에게 성큼성큼 걸어갔다.
“너,왕후 또 한 번 울리면,난 너한테 왕이 아니다. 그땐 장갑을 집어 던질 줄 알아.”
카이엔에서 장갑올 던진다는 건 결투의 의미였다.
국왕은 지금 직위, 신분 다 떼고 붙자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국왕은 몇 분 안에 어디 한 군데 정도는 부러뜨릴 자신도 있었다.
그가 참고 있는 건 그런 식으로 하면 왕후가 옛 애인을 더 못 잊고,처지를 서러워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머리를 거칠게 쓸어 올리며 돌 아온 국왕은 다시 이재의 손목을 잡고 질질 끌고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