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llow Your Heart RAW novel - Chapter (63)
마음이 이끄는 대로-63화(63/134)
#63.
이재를 왕후궁으로 데리고 온 국왕은 그녀를 침대 위에 끌어 앉혔다.
로더릭은 한동안 다 죽여 버리 고 싶다는 얼굴로 팔짱을 끼고 있었다.
이재는 잔뜩 기가 죽어서 그를 힐끔거렸다.
그리고 마침내 로더릭이 그녀를 바라보았을 때,그의 눈에는 불만 과 책망이 가득했다.
안 그러기로 했잖아. 정리하기 로 했잖아. 그럼 너도 노력하기로 한 거잖아.
나를 좋아한다면서. 아직도 나 보다는 그 자식이 좋은 건가?
로더릭은 화를 삭이기 위해 깊 은 한숨을 쉬었다.
“표정 보니까 너도 잘못한 건 아나 보네.”
“내가 너보고 방에서 쉬라고 했 지, 전 애인이나 만나고 오라고 했나?”
“남편 있는 여자가 다른 남자한 테 손목이나 잡히고,잘하는 짓이다.”
그런 식으로 말하면,이재도 할 말이 있었다.
“제가 잡은 건 아니지 않나요. 저는 그냥 얘기만 하고 싶었을 뿐인데요.”
“그럼 뺨이라도 세게 갈겼어야지! 손대지 말라고 소리를 질러야지!”
“아,아니,뭘 그렇게까지……”
로더릭은 진짜 욱해서 이를 악 물었다.
“너, 지금 내 앞에서 그 자식 편드는 건가?”
“………”
“기사라고 붙여 놓은 놈들은 대체 뭘 하고 있었던 건지.”
로더릭은 후,숨을 쉬며 머리를 쓸어 올렸다.
“그래서 넌 무슨 얘기가 그렇게 하고 싶었는데.”
“뭐가요?”
“그 자식이랑 무슨 얘기 했냐고.”
이재는 잠시 고민했지만,여기 서 없는 말을 지어낼 수도 없었다.
그녀는 조금 체념한 것 같은 얼굴로 로더릭을 바라보았다.
“그냥 물어보고 싶었어요.”
“………”
“……내가 어떤 사람이었냐고요.”
무슨 시인도 안 쓸 것 같은 표현에 로더릭은 또 살짝 울컥했다.
절절함이 가득 차다 못해 줄줄 흘러넘치고 있었다.
“아주 세기의 사랑 중이셨나 보네. 아,또 속에서 너무 올라…”
그런데 로더릭은 말을 하다 말 고 조금 멈칫했다.
그의 뇌리에 순간적으로 한 가지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왕후가 가끔 이상한 게 혹시 기억이 잘 안 나서 저러는 건가 싶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제 그건 순간의 직관이라기보단, 지속적인 경험의 누적이었다.
왕후는 결혼을 기점으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다시피 한 것 같다.
다른 건 몰라도 그것만큼은 확실했다. 더 확인하는 게 무의미 할 만큼.
저건 혹시 강에 빠진 충격인가?
그런데 기억을 좀 잃었다고,저렇게 사소한 습관 하나하나까지 다 바뀔 수 있는 건가.
로더릭은 심각한 얼굴이었고, 이재도 눈을 내리깐 채 생각에 잠겨있었다. 둘은 그렇게 잠시간 침묵하며,때때로 서로의 반응을 살폈다.
그녀가 한 말이 그만큼 진실에 근접해 있었기 때문이다.
이재는 곧 말을 이었다.
“그리고 이제 그만하고,경의 인생을 살라는 얘기를 하고 싶었어요. 폐하가 중간에 오셔서 잘 전달이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로더릭은 그 말에 한쪽 눈썹을 치켜올렸다.
“……그래서 내 탓이다?”
“………”
“너 사람 참 이상한 데서 서운하게 한다.”
그런 의도는 아니었기 때문에 이재는 좀 난처해졌다.
그녀는 뺨을 긁적이며 말했다.
“그런 뜻은 아니었어요. 죄송해요. 제 말은 저도 잘 얘기하려고 했다고요. 끝난 일에 연연하지 말라고 하려던 거예요.”
“너는 사내놈들 마음을 그렇게 몰라? 그렇게 말해 봐야 미련만 깊어지는 거 모르나?”
로더릭도 아내의 의도는 충분히 이해했다.
그러나 그는 왕후의 의 도가 설득력을 얻기에는 그녀가 습관적으로 짓는 표정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저 서글프고도 덤덤한 미소로, 경의 인생을 사세요,하면 자신이 듣는 남자여도 돌아 버릴 것 같았다.
그러자 이번엔 이재도 깊은 한 숨을 쉬었다.
그럼 저는 어떡하면 좋을까요. 당신이 알던 헤일리는 죽었다고 말하면,그걸 믿겠어요?
대부분은 왕후가 왕실 생활이 너무 힘들어서 돌아 버렸구나,하며 안타까워할 거예요.
아니,차라리 그런 식으로 미친 사람처럼 보여서 정이 떨어지게 하는 방법을 한번 써 볼까요? 어? 괜찮은데요?
이재가 한숨을 쉬며 아예 고개 를 돌려 버리자,로더릭은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를 외면하는 그녀의 옆얼굴에 갑자기 지친 기색이 어렸기 때문이다.
분명 뭔가를 버거워하는 얼굴이다.
그걸 보니 착잡하고 초조 해서 로더릭은 그녀의 손을 가볍 게 흔들었다.
“해일리,내가 누구보다 잘해 주겠다고 했잖아. 이런 일로 나 마음 상하게 하지 마라.”
“네. 무슨 말인지 잘 알아요. 그리고 믿으실 순 없겠지만,사실 저는 이미 잊었어요. 정말이에요.”
로더릭은 솔직히 완전히 믿을 수는 없었다.
인정하고 싶진 않았지만,사람 마음은 그렇게 몇 달 만에 사그라드는 게 아니었다. 특히나 아내는 누굴 쉽게 잊고,지우는 사람이 아니었다.
하지만 저런 확답을 들으니 마음이 한결 놓이는 것도 사실이었다.
“너,내가 지금 그놈 하나 어떻 게 못해서 이러고 있는 줄 알아? 네가 울까 봐 참는 거야.”
“………”
“근데 계속 이런 식으로 나오면…… 성에 피바람 부는 꼴 보 게 될 거야. 물론 로렌스도 파직이다. 이른바 피의 숙청이지.”
“폐하,그렇게 하시면 폭군이에요.”
그러자 로더릭은 픽 웃었다. 그는 사실 그런 평가가 전혀 무섭지 않았다.
“내가 그 소리를 몇 번이나 들어 봤을 것 같나? 이미 지겨울 만큼 들었는데, 한두 번 더 듣는 게 대수인가?”
하지만 이재는 고개를 여러 번 저었다.
“폐하. 사람들이 뭐라고 수군대든,폐하가 그 말을 몇 번 들었든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요.”
“………”
“정말로 중요한 건 폐하가 폭군이 아니고,저는 그 사실을 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런 행동도 하시면 안 돼요. 제가 항상 폐하를 믿어 드릴게요.”
“……말은 진짜.”
불만스럽게 중얼거리면서도 로더릭은 맥이 풀리고 말았다.
그는 결국 오늘도 왕후에게 화 한 번 제대로 내 보지 못했다.
아내랑 대화를 나누면 점점 마음이 풀어져 버린다는 게 문제였다.
또 듣다 보면 수긍이 간다는 것도 문제였다.
그중에서도 특히 큰 문제는 그가 아내를 상대로는 전혀 이기고 싶지 않다는 거였다.
그러니 부부 싸음이 일어날 법 하다 가도 푸시식, 식을 수밖에.
그의 아내는 조곤조곤 말하면서 상대의 전투력을 약화시키는 재주가 있었다.
로더릭은 이재의 연약한 어깨와 차분한 눈동자를 바라보다가 한숨을 쉬었다.
그래, 저렇게 착하고 조그마한 아내랑 싸워서 뭐 하냐. 열심히 이겨 먹어 봐야 최선을 다해 모자란 놈이 되는 거지.
“헤일리.”
“네.”
“아까 많이 놀랐나?”
“뭐가요?”
“너 보는 앞에서까지 검을 뽑을 생각은 아니었어. 나도 잠깐 눈이 뒤집혀서 그래.”
이재는 아아,하며 고개를 저었다.
그녀 눈앞에서 피를 본 게 조 금 신경이 쓰이는 모양이었다.
“내 옷에 눈물 닦아.”
“저 안 우는데요.”
“아까는 울었잖아.”
“딱히 그런 것도 아닌데.”
“어쨌든.”
그러자 이재는 아무 의미 없이 그의 가슴팍에 얼굴을 비볐다.
그 래서 국왕 마음이 나아진다면 얼 마든지 해 줄 수 있었다.
이재도 본의 아니게 미안한 건 사실이었고, 그가 뭔가를 양보했다는 걸 느꼈기 때문이다.
로더릭은 이재의 동그란 뒤통수를 어루만졌다.
“다 닦았어?”
“네.”
“코도 풀어라. 흥,해.”
“콧물은 진짜 안 나왔는데요. 왜 맨날 나한테 코를 풀라고 하지.”
로더릭은 그냥 이재의 뒤통수를 잡고 가슴팍에 꾹꾹 눌렀다.
그녀가 대충 얼굴을 문대다가 그를 밀어내자,로더릭은 그대로 침대에 누워 버렸다.
그리고 의아한 둣 보고 있는 이재에게 말했다.
“이제 너도 해라.”
“뭐를요?”
“나 삐친 것도 풀어 줘야지. 나도 너 달래 줬잖아.”
“아까 그게…… 달래 주신 건가요?”
언제 달래 주셨죠? 전 처음부 터 지금까지 계속 혼만 난 것 같은데요.
“눈물 닦아 주고, 코 닦게 해 줬으면 그게 달래 준 거지. 품을 내어 줬으면 남자 순정은 다 준 거다.”
“아닌 것 같은데요. 방금 그건 확실히 혼났을 때의 그 기분이에요.”
하지만 이재는 그래 놓고도 한 동안 몹시 진지하게 고민했다.
어 떻게 풀어 주지. 그녀는 물었다.
“그럼 가슴 만지실래요?”
저도 이제 가슴까지는 괜찮을 것 같은데.
순간 웃음이 터질 것 같은 기분에 로더릭은 입안을 살짝 깨물었다.
이재는 로더릭의 반응을 살폈다.
역시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닌가,싶었던 그녀는 중얼거리듯 말했다.
“이상하네요. 이건 만고불변이라고 했는데.”
“넌 대체 그런 이상한 얘기들은 다 어디서 듣고 오는 거냐?”
로더릭은 결국 눈가를 가리며 웃었다.
씨. 이 상황에 웃음이 터진 변 태같은 내 자신한테 짜증이 나려고 하네.
이미 풀렸다는 것을 확신한 이재는 빙긋 웃었다.
그리고 엉금엉금 기어서 그의 몸 위로 올라갔다.
로더릭은 좋으면서도 괜히 튕겼다.
“어떻게 이렇게 겁도 없이 남자 몸에 올라와서 앉아? 이러면 우리에겐 아주 위험하고 곤란한 상황이 펼쳐진다는 거 모르나?”
그런데 로더릭은 이재를 자기 몸 위에 앉히는 걸 좋아하긴 했다.
그녀가 자신을 무서워하지 않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요즘은 이재도 그의 가슴팍에 손을 얹고, 그를 위에서 내려다보는 걸 좀 재미있어 하는 것 같았다.
“뭐가 위험해요. 폐하는 제가 싫다고 하면 아무것도 안 하잖아요.”
그러자 로더릭은 조금 오묘한 표정을 지었다.
본인 입으로 한 말이긴 한데,진정성을 인정해 준 것도 고마운데 묘하게 기쁘지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재는 그렇게 손쉽게 그의 손발을 봉쇄했다.
웃음을 흘리던 그녀는 그의 얼굴 여기저기에 입을 맞췄다.
하늘에서 뽀뽀의 단비가 내리는 중이었다.
간지럽고 귀여운 비를 맞던 로더릭이 이재의 손을 잡았다.
“부인”
“네?”
“지금도 너무 좋긴 한데, 이왕이면 조금 더 부부다운 뽀뽀를 해 줘.”
“……부부다운이요?”
“왜 좀 진하고 야한 거 있잖아.”
이재는 새초롬한 얼굴을 했다.
“요구 조건이 되게 많으시네요. 그리고 이미 눈치채셨겠지만,사실 제가 이런 쪽에 그다지 소질이 없는 것 같아요.”
“아니야. 우리 왕후는 발전이 있는 콩알이니까 키스도,더한 것도 다 척척 할 수 있을 거야. 우리 자신감을 가지자.”
소리 내어 웃던 이재는 결국 조금 더 질척하게 혀를 얽었다.
그녀가 한참이나 키스를 하다가 떨어지려 했지만,로더릭은 작은 어깨를 붙잡았다.
“어디 가. 계속해.”
“아직도 화난 게 안 풀리셨어요?”
“어. 덜 풀렸어.”
“풀린 것 같은데? 폐하 한참 전부터 눈이 계속 웃고 있어요.”
로더릭은 중얼거렸다. 여우가 눈치는 있어 가지고.
“그래도 멀었어. 그만하라고 할 때까지 계속해.”
로더릭은 그 뒤로도 더 해 줘, 계속해 줘,라는 말을 반복했다.
그녀의 몸을 만지작거리다가도 그녀가 멈추면 뭐 해? 키스 안 하고,하면서 심술궂게 웃었다.
이재는 점점 입술이 없어질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입을 잘못 놀리면,결국엔 입이 없어지는구나. 그녀는 다시는 로렌스와 말도 섞지 않겠다고 자기반성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