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llow Your Heart RAW novel - Chapter (64)
마음이 이끄는 대로-64화(64/134)
#64.
국왕과 기사들은 지하 감옥에 내려와 있었다.
죄수를 수감하기 위한 장소는 아니었다.
왕실에서 다소 과격한 일을 벌일 때,남들의 눈을 피하기 위한 곳이었다.
국왕은 팔짱을 낀 채,벌벌 떨고 있는 공작가 주치의를 응시했다.
“기사단장.”
“예,폐하.”
“난 매수를 하라고 했지,이런 거친 방식으로 끌고 오라고 한 적은 없는 것 같은데.”
그러자 제이드는 뺨을 긁적였다.
“아무래도 서재 같은 곳에서는 남들 눈을 피하기가 어렵지 않겠습니까?”
틀린 말은 아니라서 국왕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저도 막무가내로 끌고 온 게 아니라, 사정을 잘 설명하고 조용히 데려온 겁니다.”
“근데 왜 저렇게 떨어.”
제이드는 그걸 몰라서 묻느냐는 둣 로더릭을 바라봤다.
그의 눈에 는 약간의 원망도 묻어 있었다. 폐하께서 직접 말씀하셨지 않습니까? 저희 같은 놈들은 아무리 상냥하게 웃어도 사람들 눈에는 무섭다고요.
한숨을 쉰 로더릭은 던컨가 주치의에게 한 발자국 더 다가갔다.
“떨지 마라. 몇 가지 물어볼 게 있어서 부른 것뿐이니.”
“……예,폐하.”
“하지만 네가 여기를 나간 뒤, 그 입을 어떻게 놀리느냐에 따라 떨 일이 생길지도 모르지.”
로더릭은 피식, 웃었고 주치의는 그때부터 더욱 심하게 떨기 시작했다.
제이드는 떨떠름한 얼굴로 국왕을 보다가 이내 시선을 떨구었다.
지금 사람들 눈에 누가 가장 무서운지 국왕은 잘 모르는 것 같았다.
“내가 궁금한 건 아주 사소한 거다.”
“……예,폐,폐하.”
“너도 공작이 널 지켜 줄 만큼 의리 있는 인간이 아니라는 건 잘 알 거야. 부디 이 사소한 일때문에 네 목숨을 버리진 않길 바라겠다.”
“명심하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로더릭은 말했다.
“왕후의 건강 상태에 대해 아는 대로 전부 말해 봐라.”
그러자 의원은 당황한 얼굴로 국왕을 바라보았다.
그는 여기 왔을 때,위험한 사주를 받을 거라 짐작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던컨가 일원들에 대한 독살 같은 것들 말이다.
그런데 국왕의 질문은 어찌 보면 사소했고, 어찌 보면 또 굉장히 민감했다.
의원은 횡설수설하면서도 살기 위해 아는 대로 답변하기 시작했다.
“트,특별히 말씀드릴 만한 사항은…… 없습니다. 겉보기와는 다르게 체력도 좋으시고,매우 건강한 분이십니다. 사, 사실은 공작가 사람들이 대체로 다 그렇습니다.”
“그래?”
잠시 턱을 매만지던 로더릭은 다시 물었다.
“다른 지병은 없다는 뜻이지? 대답 잘해야 할 거야. 국왕에게 거짓을 고하면 넌 아예 떨 일 자체가 없어질 거다.”
떨기도 전에 죽는다는 뜻이었다. 의원은 쉴 새 없이 머리를 조아렸다.
“제,제가 알기로 그런 중상은 전혀 없습니다.”
“갑자기 어지럼중을 호소하거나,코피를 쏟거나 한 적은 없었나?”
“……예. 적어도 제가 주치의로 진찰하는 동안에는 없었습니다.”
“불면증을 호소한 적은? 중간에 자꾸 깬다거나.”
“그런 날도 있으셨을지 모르지만,저에게 따로 언질하신 적은 없습니다.”
“체온이 심하게 떨어진 적은.”
“그런 적도 없으셨습니다.”
기사들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저렇게 늘어놓고 보니까, 왕후가 굉장한 합병중 환자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저걸 하나하 나 외고 있는 국왕이 신기할 뿐 이었다.
하지만 로더릭은 아직 끝나지 않은 둣,더 고민했다.
턱을 매만지던 그가 물었다.
“갑자기 헛구역질을 한다거나 그런 적은 없던가?”
그러자 고개를 조아리고 있던 의원은 멈칫하더니 눈을 굴리기 시작했다.
의원이 계속 눈치를 살피자,로더릭은 고개를 짧게 까딱했다.
“괜찮으니까 말해 봐.”
“폐하. 그,그건 회임한 여성의 전형적인 중상으로……”
그러자 계속 냉정한 표정을 짓고있던 로더릭은 순간적으로 인상을 구겼다. 갑자기 몹시 짜증이 올라온 얼굴이었다. 그는 제이드에게 턱짓했다.
“보내라.”
“……예?”
“그만 보내라고. 더 듣고 싶지도 않아졌다.”
로더릭은 설명하기도 귀찮다는 듯 내뱉었다.
그러고는 떨고 있는 의원을 지나쳐 걸음을 옮겼다.
로더릭은 원래 의원과 신관들을 그다지 신뢰하지 않았다. 아무도 그의 병증을 낫게 하지도, 이해하 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자신을 괜 찮게 만든 건 오로지 왕후뿐이었다.
그는 삭막한 느낌의 계단을 오 르며 뒤따르는 제이드에게 말했다.
“즉위 이래 의원들은 늘 못 믿을 작자라고 생각해 왔는데.”
“………”
“요즘만큼 신뢰가 안 가기도 처음이다.”
로더릭은 여전히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의 머릿속은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제이드.”
“예,폐하.”
“호프만 백작가 둘째가 왕후와 친분이 있었다고 했나?”
“예,그렇습니다.”
“말투가 좀 달라진 것 같다고 했다고?”
“……예. 분명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조만간 내가 보잔다고 해.”
지하 감옥을 빠져나온 로더릭은 무심결에 어깨를 몇 번 털었다.
미묘하게 불쾌한 느낌이 있었던 것이다.
“백작가 차녀까지 저런 식으로 끌고 오진 말고.”
“……예.”
“그쪽에서 접견을 요청하면 내가 수락하는 방식으로 해.”
“예,알겠습니다.”
“내가 또 폭군 소리를 들으면 곤란하잖나.”
“그런 거 별로 신경 안 쓰시지 않습니까.”
로더릭은 피식 웃었다.
“난 그런데,우리 왕후가 속으로 맘 아파해.”
제이드는 이 기분을 어쩌지 못 하고 좀 떨떠름한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
기사들도 맙소사,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늦은 밤, 이재는 방 안에서 일 기장을 보고 있었다.
명상도,조각도 필요 없었다. 수양은 이 일기장 하나면 충분한 거였다.
「499년 3월 16일
아버지에게 모든 것을 말해 볼까.
하지만 아버지가 내릴 선택이 나와 로렌스의 운명을 바꿔 줄 수는 없다.」
“결국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라는 얘긴가?”
이재는 얼마 전 생각을 고쳐먹었다.
헤일리는 어쩌면 글을 아주 잘 쓰는 사람이었을지도 모르겠다고.
이렇게 불친절하지만,끝까지 포기할 수 없는 글은 이재 인생에서 처음이었다.
그리고 이재는 또 한 가지 참사를 겪고 있었다.
이젠 헤일리의 일기가 와닿기까지 했던 것이다.
“선택이 운명을 바꿔 줄 수는 없다.”
그건 이재에게는 익숙한 말이었 고,사실은 아픔이었다.
인생의 사소한 화는 면할 수 있지만,자신의 생을 관통하는 큰 줄기는 바꿀 수 없다는 좌절감. 그녀는 심각한 얼굴로 턱을 된 채,생각에 잠겼다.
그때 시녀장이 조심스럽게 이재를 불렀다.
“왕후 페하.”
“응.”
“폐하께서 일 마치고,이쪽으로 오고 계십니다.”
“그래?”
“예,그리고 이거….”
“이게 뭔데?”
이재는 의아한 표정으로 시녀장이 건넨 종이를 받아 들었다.
내 용을 확인하던 그녀는 헛웃음을 홀려야 했다. 그건 귀족들로부터 온 서신이었다.
「왕후 폐하.
요즘 몸이 편찮으시다 들었는데,좀 어떠신지요.
심사가 고단하실 왕후 폐하께 이런 말씀까지 드려서는 안 되겠지만, 왕후 폐하와 나누던 환담이 무 척이나 그립습니다.
그때 왕후 폐하는 얼마나 봄바 람처럼 따스하셨던지요.
왕후 폐하 같은 분이 마음 상 하신 일이 있다면, 그건 무조건 공작이 잘못한 겁니다.
적어도 저흰 그렇게 결론을 내렸으니 슬퍼하지 마십시오.
서두가 길어졌습니다.
사실 제가 요즘 집안에 우환이 많아…….」
이재는 다음 편지를 펼쳤다.
「너무 민망하지만, 제 차남이 혼기를 넘겨서 올해는 꼭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이것은 마음의 편지이자,전화 신점의 카이엔 버전이었다.
계속 헛웃음을 홀리던 그녀는 국왕의 말이 떠올랐다.
‘며칠 미루면 그사이 누가 숨이라도 넘어가나? 그 정도로 급한 거면,편지로 적어서 날리라고 하든지.’
“농가성진.”
말이 씨가 된다더니.
그녀가 서신을 들고 난감해하고 있을 때,국왕은 들어왔다.
이재 는 원망과 반가움이 반씩 섞인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평소와 다른 기색을 느낀 로더릭은 물었다.
“왜 그렇게 봐? 자세히 보니 나, 또 되게 잘생겼나?”
이재는 홍,하며 그를 흘겨보았다.
“그런 얘기 아니고요.”
“그럼 뭐.”
“이걸 어쩌면 좋죠? 사람들이 정말로 저한테 편지를 날리기 시작했어요.”
그는 이재의 말을 듣자마자,곧 바로 종이를 획 뺏어 들었다.
내 용을 읽던 그도 헛웃음을 홀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정색했다.
“하아,이 한가한 놈들이 진짜……”
“폐하,무심코 한 말이 이렇게 현실로 이루어질 때가 있더라니까요? 그래서 죽을상이라는 말도 함부로 하면 안 되는 거예요.”
로더릭은 고개를 끄덕였다.
가끔은 농담처럼 느껴졌던 아내의 말은 언제부턴가 그렇지 않았다.
그는 서신을 대충 접어서 협탁에 툭, 던져 놓았다.
“아무튼 이건 무시해.”
“그래도 되는 걸까요.”
“그래,급하면 걔들이…… 아니, 말조심할게. 아내 말 들어야지.”
이재는 맑은 웃음을 터뜨렸다.
사실은 왕의 말처럼 적당히 무시 해야만 했다.
어떤 사람도 신은 아니었다. 영 안을 가진 자도 마찬가지였다.
이재 주변의 사람들은 늘 그녀에게 경고해 왔다. 네가 신이라도 된 것처럼 착각하지 말라고.
인생을 무속인의 단적인 말에 의존하기 시작하면 본인의 인생은 사라진다.
그런데 그녀는 곧 고개를 기옷거렸다.
국왕에게서 뭔가 이상한 점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의 기운이 평소와 약간 달랐다.
“폐하,어디 다녀오셨어요? 폐하 방에 다녀오셨나요?”
“아니. 왜?”
“그래요? 뭐지.”
“왜 습하지……”
이재는 무심결에 말을 홀렸다.
그리고 로더릭은 갑자기 그녀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녀의 말이 이상하게 의미심장하게 들렸기 때문이다. 방에 갔다 왔냐고? 어딜….
“헤일리. 그게 무슨 뜻이야?”
“아무것도 아니에요.”
이재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며,문가와 창가를 두리번거렸다.
국왕은 평소보다 딱히 많은 수의 원귀를 달고 오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하 감옥이라는 곳은 장 소 특성상 음기와 한이 서려 있을 수밖에 없는 곳이다.
그녀는 이제까지와 다른 그 이질적인 기운을 민감하게 느낀 것이다.
심각한 문제는 발견하지 못한 이재는 다시 로더릭을 바라보았다.
“근데 폐하,이제 저 다시 접견 하면 안 돼요?”
“안 돼.”
“왜요.”
“아픈 콩알은 더 쉬어야 해.”
“안 아픈데 왜 자꾸만 쉬라고 하세요? 절 환자라고 소문내실 셈인가요?”
그러나 늘 그녀의 말을 들어주던 로더릭도 이번에는 강경했다.
“까불지 말고 그냥 좀 쉬어라.”
“그럼 오늘은 폐하 방에서 자면 안 되나요? 저 이 방이 좀 지겨워요.”
로더릭은 어처구니가 없어서 웃었다. 방금 그 말이 거짓말이라는 건 너무 잘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녀가 이 방에 있을 때,편 해 보여서만은 아니었다.
왕후는 단지 어느 방이 지겹다고,어느 방이 좋다는 이유로 잠자리를 옮겨 다닐 만한 성격이 전혀 아니었다.
왜 이제까지 그걸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이재는 점점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강에 다녀온 이래,많은 수의 원귀를 퇴치하며 속도전을 벌이고 있었다.
원귀가 더 들어오 기 전에 빨리 끝을 보고,결계를 쳐야 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일까. 왕은 요즘 그 방에 가서 잘 생각이 통 없어 보였다.
이재는 간절한 얼굴로 로더릭의 대답을 기다렸다.
하지만 그는 검지로 이마를 꾹 눌러,이재를 눕혔다.
그리고 푸른 눈으로 그녀의 얼굴을 유심히 들여다봤다.
“너,안색이 많이 괜찮아지긴 했네.”
“역시 그렇죠? 저는 아픈 콩알이 아니라 아주 튼튼한 콩알이에요.”
로더릭은 마치 여우를 몰아넣듯 이재를 이 방에 며칠 잡아 놓았다.
그러자 그녀의 낯빛은 확실히 돌아왔다.
공작가 주치의도 그녀의 몸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말했다.
국 왕의 방에서는 늘 창백해지기 일쑤였는데.
심지어 그렇게 많은 피를 쏟았었는데.
로더릭은 그녀처럼 몸이 아프거나 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그 방의 어떤 불쾌감에 대해서는 상당히 잘 알고 있었다.
이재는 눈치를 보더니 다시 꾸물꾸물 일어났다.
거기 가서 자면 정말 안 되겠냐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로더릭 은 그런 그녀를 빤히 바라보았다.
늘 선선한 그의 아내가 한 번 씩 부리는 이해할 수 없는 고집.
그는 툭 던지듯이 말했다.
“해일리,사실 나 아파.”
그러자 이재는 움찔하며 놀랐다.
로더릭은 그 모습을 계속 유심히 바라보았다.
“어어,아프세요? 어디가?”
안절부절못하던 그녀는 그를 눕혔다.
그녀는 로더릭을 의심스러운 듯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곧 걱정스러운 얼굴로 몸 여기저기를 누르기 시작했다.
몸 은 괜찮아 보였으나,아까 느꼈던 미세한 기운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국왕의 방에 가겠다는 고집은 이미 깨끗이 접은 지 오래였다.
그리고 머리와 몸이 한결 편안 해지자,로더릭은 한숨을 쉬었다.
어떤 의원도 신관도 그의 병중을 낫게 하지 못했다.
그러나 왕후만 곁에 있으면 거짓말처럼 공기가 맑다.
이미 수십 차례 이런 이상한 감각을 겪어 왔다.
그렇다면 더 이상은 착각일 리 없었다.
로더릭의 확신은 굳어졌다.
자신의 방에는 자신이 모르는 뭔가가 있다.
그리고 왕후에게는…… 분명히 어떤 능력이 있다. 그게 정확히 뭘까.
그런데 동시에 그는 한 가지 착잡한 가능성에 사로잡히고 있 었다.
혹시 네가 알 수 없는 고집을 부리는 이유가.
이렇게 자주 아픈 이유가.
그런데도 자꾸만 거기 가겠다고 하는 이유가…… 설마 나 때문인 건가.
가능성만으로도 조금 아찔해서 그는 얼굴을 두어 번 문질렀다.
로더릭은 됐으니 그만하라며 이재의 손을 잡았다.
“괜찮으니까 빨리 자라.”
“괜찮아요? 아프다면서요.”
“마음이 아프다고. 난 몸이 아프다곤 안 했다.”
“그런 장난…… 치실 거예요? 놀랐잖아요. 진짜 괜찮으신 거죠?”
“그래.”
나는 괜찮아.
그러니까 넌 오늘 밤 나랑 같이 여기 있자.
그는 얼떨떨해하는 이재를 눕히며 뒤에서 꼭 끌어안았다.
그리고 살구색 머리카락과 귓가에 끊임없이 입을 맞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