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llow Your Heart RAW novel - Chapter (65)
마음이 이끄는 대로-65화(65/134)
#65.
그 뒤로 로더릭과 이재는 치열하게 눈치 싸음을 벌였다.
이재는 이 방에서도 할 일이 있었다. 원귀를 새벽에 한둘씩 불러들여 잔혹하게 패는 건 몇 달간 이어진 그녀의 일과였다.
평소와 다른 건 로더릭 또한 그다지 잠을 청할 생각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또 말을 건다거나 이렇다 할 스킨십도 없었다.
로더릭은 그냥 아무 말도 안 하고 가만히 깨어 있었다.
그는 이재가 또 잠을 못 이루는 게 아닌지 마음이 쓰였을 뿐이었다.
결국 이재는 뒤를 힐끔 바라보 았다.
그리고 그의 푸른 눈과 마주치자 움찔했다.
로더릭은 픽, 웃으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만 자라,여우야.”
뭔가 굉장히 무안해진 이재는 다시 정면을 보았다.
그러다 조심 스럽게 물었다.
“폐하,잠이 안 오세요?”
“잠은 나 말고 네가 안 오지 싶다.”
또 한 번 무안해진 이재는 눈을 꼭 감았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이재는 혹시나 해서 다시 뒤를 힐끔 바라보았다.
그리고 푸른 눈 은 그때도 그녀를 말끄러미 보고있었다.
로더릭은 그녀의 이마에 쪽, 입을 맞추었다.
“자라. 제발 말 좀 듣자.”
그녀는 조금씩 무서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오늘따라 저한테 왜 이러시죠?
이재는 그 뒤로도 시간차를 두고 네댓 번 뒤를 돌아보았다.
그 때마다 로더릭은 뺨이며 관자놀 이에 입을 맞추며,몇 마디씩 했다.
‘자장가 불러 줘? 결국 왕한테 노래를 시키는 귀여운 짓까지 이 르렀네. 사실 언젠가 이렇게 될 줄 알고,연습은 했어. 수줍지만 들어 볼래?’
‘이러다 우리 왕후께서 좋아하시는 내일의 태양이 뜨겠어. 술이 필요한 거면 같이 마셔 주고.’
‘잔다며. 거짓말하면 엉덩이에 뿔 난다는 말 모르나? 확인할 생각을 하니 또 너무 설레네.’
‘잠이 안 와? 그런 거면 솔직히 말해. 내가 다른 방식으로 잠 잘 오게 해 줄게. 부부의 방식이 있지.’
이재는 점점 더 극도의 공포감을 느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뒤 를 돌아보았을 때,그녀는 참지 못하고 물었다.
“저기,근데 폐하는 왜 안 주무 시는 거죠?”
“네가 자꾸 눈 말똥말똥 뜨고 쳐다보는데, 내가 잘 수 있겠나?”
“………….”
“그렇게 예쁘게 쳐다보면, 나도 설레.”
“………….”
“책임져 줄 거 아니면 자라.”
그 말을 끝으로 이재는 완전히 포기하고 잠을 청했다. 결국 국왕과 왕후는 새벽 내내 이상한 짓을 반복하다가 나란히 선잠을 자고 말았다.
다음 날,먼저 눈을 뜬 것은 로더릭이었다. 심지어 꽤 이른 시간이었다.
요즘 생각이 많아서이기도 했지만,다른 이유가 하나 더 있었다.
강이재는 안 그래도 튼튼한 인간을 더 튼튼한 인간이 되도록 몸을 불사르고 있었다. 왕은 기본적으로 남들과 체력이 달랐다.
그는 새근새근 잠들어 있는 이재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얘는 이 방에서도 잠을 잘 못 자네. 못 자는 건지,안 자는 건 지.
넌 콩알만 한 게 뭐 이렇게 비밀이 많아.
나한테 안 털어놓을 거야? 자꾸 그렇게 꽁꽁 숨길 거냐고.
의문은 점점 깊어져 간다.
곰곰이 생각하던 그는 이재의 뺨을 몇 번 쓰다듬고는 시종장을 호출 했다.
“시종장,밖에 있나.”
“찾으셨습니까.”
문을 열고 들어온 시종장은 또 흠칫해서 고개를 조아렸다.
오늘 도 국왕이 왕후에게 팔베개를 해준 채,꼭 끌어안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종장은 몹시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저희에게 자꾸 이런 광경을 보여 주시는 의도가 뭐지요?
“내 방에 가면,침대맡에 조각상 두 동강 난 거 하나 있을 거야. 그것 좀 갖고 와 봐.”
“예,페하.”
왕후가 또 늦잠을 자고 있었지만,날은 이미 밝아 온 상태였다.
국왕은 왕후의 이불을 목까지 끌어 올리며,시종들과 시녀들의 출 입을 허락했다.
그리고 사람들은 국왕이 왕후를 이불째로 부둥켜안고 있는 모습을 힐끔거렸다.
시종장이 지하여장군을 들고 왔을 때,로더릭은 말없이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국왕이 아침부터 심각한 얼굴로 괴작을 들여다보자,사람들의 표정은 점점 괴상해져 갔다.
폐하가 대체 왜 저러시지.
시대를 역행한 건지,앞서간 건 지 알 수 없는 감각이라고 할 때는 언제고.
한참 동안 조각상을 보고 있던 로더릭은 시종장에게 말했다.
“시종장.”
“예,페하.”
“이거 어떻게 좀 붙여 볼 수 없을까.”
“………”
“왕후가 아무래도 이것 때문에 좀 맘 아파하는 것 같아.”
시종장은 흠칫했다.
“왕후 폐하께서…… 그러셨습니까?”
“볼 때마다 망가졌다고 얘기해서.”
“나도 잘은 모르겠지만 서운해 하는 것 같다.”
왕도 하달하기에 좀 사소한 이 야기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왕후가 속상해한다면 그는 어떻게든 해 주고 싶었다.
그리고 그 순간,의외로 분개하며 떨쳐 일어나는 사람들이 존재 했다.
왕후의 시녀들은 자신도 모르게 한 발 앞으로 나왔다.
우리 왕후 폐하가 지금 이것 때문에 맘이 아프신 거였나요? 그럼 폐하도 진작 말해 주셨어야 죠. 왜 가만히 계셨지요? 그럼 그 건 폐하가 잘못하신 겁니다.
로더릭은 의아한 표정으로 시녀 들을 바라보았으나,그들의 얼굴은 굉장히 진지하고 비장했다.
시녀들을 진두지휘하는 데보라 또한 자존심이 너무 상했다.
자신이 그걸 모르고 있었고,왕후가 자신에게 가장 먼저 알려 주지 않았다는 건 경력에 금이 가는 일이었다.
그녀는 일단 저쪽 의 수장인 시종장부터 노려보았다.
나서지 마. 이건 무조건 내 거니까. 여기다 뭐 얹을 생각 하지 말란 말이야.
데보라는 자기 소임을 다하기 위해 나서려고 했다.
하지만 시종 장에게는 국왕의 보좌라는 이점 과 국왕이 직접 하문했다는 상황적 유리함이 있었다. 그는 무척 온화한 목소리로 선수를 쳤다.
“폐하,이런 것은 아교풀로 붙이면 됩니다. 물론 형태는 처음처럼 보존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폐하도 그게 중해서 명하신 건 아니겠지요.”
국왕은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냥 소중히 간직하겠다는 걸 어떤 방식으로 전할 수 있는 지 고민했을 뿐이다.”
국왕이 왕후한테 엄청나게 진심 이라는 걸 확인한 사람들은 침묵했다.
로더릭은 이재의 동그란 이마를 매만지며,앞머리를 쓸어 넘겼다.
자상하고 부드러운 손길이었다.
“왕후,참 좋은 사람이다. 너희 도 다 알지.”
“……예,폐하.”
“잘 보필해라. 내 눈엔 아무래도 얘…… 아프다.”
“예,명심하겠습니다.”
그리고 그때,눈이 부셨는지 시끄러웠는지 살구색 여우는 얼굴을 찡그리기 시작했다. 로더릭은 그거 얼른 치우라고 시종장에게 눈짓했다.
시종장이 빠르게 방을 빠져나갔을 때, 이재는 눈을 비볐다.
“폐하,저 또 늦잠 잤나요?”
그러자 로더릭은 그녀의 정수리에 입을 맞추며 말했다.
“그런 거 아니야. 괜찮으니까 좀 더 자.”
“………”
“깨워 줄게. 우리 더 자자. 응?”
어지간하면 그냥 일어났을 테지만, 이재는 오랜만에 잠을 설친 상태였다.
살구색 여우는 눈을 계속 비볐다. 그리고 사방을 두리번 거렸다.
주변에 천적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여우는 이불안으로 쏘옥 들어가 버렸다.
오전에 왕후의 옛 친우와 접견을 마친 로더릭은 서재에 틀어박 혀 있었다. 국왕의 기분이 썩 좋 아 보이진 않았기 때문에 제이드는 망설였다.
“폐하.”
“왜. 말해.”
“2기사단 단장이 저와 부단장에게 업무 인계를 마쳤습니다.”
그들은 2기사단장을 서부군 대장으로 임명할 예정이었다.
로더릭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왕제는 잠시 들어오라고 해.”
“벌써 말입니까?”
“왕제는 계승 서열이 가장 높은 왕족이다. 언제까지 최전선에 있게 할 수도 없는 노릇이잖나.”
제이드는 좀 난감한 둣 물었다.
“공작이 또 물고 늘어지지 않겠습니까.”
“어차피 명분 싸음이야. 일단 들어와서 보고도 좀 하고 그러라고 해.”
“예,알겠습니다.”
“더 할 말 없으면 나가 봐.”
로더릭은 기사단장을 내보내는 김에 그냥 다 나가라고 손짓으로 내쫓았다. 사람들은 국왕이 요즘 정말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요즘 그의 생각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건,왕후였다.
헤일리. 네가 숨기고 있는 힘은 뭘까.
고심하던 로더릭은 자신의 서랍을 열었다.
왕후에 대한 보고서를 들여다보던 그는 이어 고서의 필사본을 꺼냈다.
「후대 왕들에게 전하는 글」이었다. 그는 천천히 책장을 넘겼다.
「3년 전쟁의 긴 시간 동안 두 가문은 자취를 감추었고,
세 가문은 연합국에 투항하여 카이엔 건국에 공헌하였다.
그들 둘의 이름은 일리아스,슈미트.
그들 셋의 이름은 멜런,러셀, 던컨.
블레이크 왕가의 힘. 풀고르, 성검.
일리아스의 힘은 에보카티오, 소환.
슈미트의 힘은 데팬시오,결계.
멜런의 힘은 엑소르키스무스, 영의 사멸.
러셀의 힘은 룸포, 파훼.
그리고 던컨의 힘은…….」
로더릭은 왕후를 사백여 년 전 대륙에서 사라진 힘과 연결시키려고 해봤다. 이런 생각까지 하게 된 건,그가 아내로 인해 겪는 감상이 너무 비현실적이었기 때 문이다.
하지만 그가 겪는 상황은 던컨 가에 대대로 내려오던 능력과도 맞지않다.
로더릭은 인상을 찌푸린 채 생각에 잠겼다.
백작가 둘째와의 접견은 아무런 소득 없이 끝났다.
타인의 입을 통해 듣는 왕후는 그의 살구색 여우가 아니었다.
언제나 그랬다. 그가 직접 보고 느낀 왕후만이 진짜였다.
그리고 그 순간 로더릭은 갑자기 무언가를 깨달았다.
여기에는 질문이 한 가지 더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너는…… 누구일까.
혹시 네가 던컨이 아니라면.
만약 그 질문을 추가한다면,이 그림은 어떻게 되는 걸까.
소환. 이건 일리아스의 힘인 건가.
하지만 선뜻 긍정하기 어려운 이야기였다.
사고로 기억을 일부 잃었을 가능성이 9할이라면, 다른 사람일 가능성은 1할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로더릭은 그 단 하나의 가능성을 완전히 무시할 수가 없었다.
오랜 시간 고뇌하던 그는 서류 들을 서랍에 다시 넣고,잠가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