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llow Your Heart RAW novel - Chapter (66)
마음이 이끄는 대로-66화(66/134)
#12장. 이 여우는 꼬리를 숨기지 못해서
#66.
「역사는 반드시 반복되리라. 힘의 균형이 그때까지 존재한다
– 후대 왕들에게 전하는 글 103페이지 중에서」
국왕은 턱을 관 채,보고를 듣고 있었다.
“보도르 왕국에서 평화 협정과 교역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보도르는 우리 남진 정책의 주요 대상국이 아닌가?”
“그렇습니다.”
로더릭은 흠, 하며 생각에 빠졌다.
카이엔과 보도르는 이미 몇 차례 무력 충돌이 있었다.
보도르 가 남부 국경과 인접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카이엔은 최근 서부 국경으로 인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요즘 같은 시기에 남진 정책에 매진하는 게 과연 옳을까.
로더릭은 이번에는 던컨 공작을 바라보았다.
게다가 남부에는 알버트 던컨이 가 있었다.
눈엣가시 같은 던컨들. 아, 물론 내 귀여운 작은 던컨은 빼고.
‘아예 전공을 세울 기회를 꺾어 버릴까.’
솔깃한 생각이었고,나름의 명분도 있었다.
서부에 집중해야 할 시기이니까.
잠시 고민하던 로더 릭은 말했다.
“그 부분은 속단하기 어렵군. 차후 따로 회의를 열어 각부와 논의하지. 그대들도 의견을 정리 해 와.”
“예,폐하.”
그는 발언을 이어 갔다.
“말이 나온 김에. 서부군 부대 장의 대장직 겸임을 면하고, 그 자리에는 2기사단장이 부임한다. 2기사단장직은 당분간 1기사단장이 함께 맡을것이다.”
귀족들은 옹성거렸다. 다소 사감이 개입된 임명이었기 때문이다.
기사단은 명백한 친왕파 세력이자, 국왕의 날개였다.
그러나 실력과 자격으로 봤을 때,손색이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카이엔에 그들만 한 무장과 전술가는 없었다.
왕의 말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왕제는 내가 잠시 귀환을 명했다.”
그러자 곧바로 반발이 일어났다.
원래 왕과 반왕파는 싸울 거리가 없으면,만들어서라도 싸우는 사이였다. 그런 면에서 이건 아주 훌륭한 소재였다.
“폐하,상대는 다이몬 재건군이지 않습니까. 카이엔 왕족이 국경에 가 있다는 건 상징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병사들의 사기 저하가 우려됩니다.”
틀린 말은 아니었기에 로더릭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영구히 귀환하라는 건 아니야.”
“………”
“왕제는 손꼽히는 학자다. 특히 전쟁사에는 조예가 깊지. 누구보다 국경 상황을 상세하게 기록했을 테니, 나는 그 의견을 직접 들어보고 싶다. 여기 왕제보다 상세하게 국경 상황에 대해 알려 줄 사람이 있나?”
“………”
“군부도 한번 대답해 봐. 내가 그대들이 올리는 보고가 마음에 안 든다는 이야기까지 해야겠나?”
“………”
“적어도 기본은 한 다음에 반론 하란 소리다. 안 그럼 나도 쓴소 리를 하게 되잖나.”
국왕은 회장을 한 번 둘러보았다. 발언을 기다리는 얼굴이었다.
그는 곧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회의는 여기까지 하지. 간다.”
국왕이 나간 회장 안은 응성거렸다.
그 한가운데에서 던컨 공작은 고요한 얼굴로 생각에 잠겨 있었다.
왕후를 발판 삼아 권력의 핵심에 올라서려던 계획은 멀어져 간다.
게다가 근래 정신적으로 안정된 국왕은 작정한 둣 반왕파를 찍어 누르고 있었다.
공작에게도 다른 타개책이 필요 했다. 그는 눈을 질끈 감았다.
호숫가에서 한 시간여 동안 명상을 하던 이재는 눈을 번쩍 떴다.
그리고 옆에 두둥실 떠 있는 소년왕에게 말했다.
“남편이 집착이 심한 것 같아요.”
대답이 없어서 오른쪽 위를 올려다보았을 때, 소년왕은 어깨를 떨며 웃음을 참고 있었다.
이재는 다시 고개를 정면으로 돌렸다.
그리고 멍하게 호수를 바라보며 말했다. 초점을 잃은 눈동자였다.
“요즘 좀 무서워요. 밤에 놔주질 않아요.”
-뜨겁네.
소년왕은 휘파람을 불었다.
그러자 자신을 부르는 줄 알았는지 옆에서 백마가 히히힘,거렸다.
“그런 의미가 아니고요. 제가 잘 때까지 저를 계속 보고 있어요. 가끔은 낮에도 일거리를 제 방에 가져와요. 낮잠을 자다가 일어나면, 폐하가 옆에 앉아서 저를 빤히 보고 있다니까요?”
그럴 때마다 이재는 흠칫흠칫했다.
이런 건 가위에 눌리는 거나 다름없었다.
-낮에도 너랑 같이 있고 싶었 나 보지. 좋을 때다.
이재는 그게 아니라는 둣 고개 를 저었다.
“그게 다가 아니에요. 약을 달이고 있으면 끝날 때까지 옆에서 보고 있다 가요. 그렇다고 뭐 엄청 말을 시키는 것도 아니고,혼자 생각에 잠겨서 절 물끄러미 보고만 있어요. 그 사람 왜 그러는 걸까요?”
제가 대체 뭘 잘못한 거죠?
전 관심 자체를 이번 생에 처음 받아 봐요. 그래서 이 정도까지는 솔직히 부담스럽거든요?
이재는 심각했지만,소년왕은 시큰둥했다.
-네가 알아서 해. 그걸 왜 나한테 말해.
“본인이 시아버지나 다름없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전 그럼 누구 한테 하소연하죠?”
-부부 사이의 일은 부부끼리 해결해야지. 그걸 왜 남한테 얘기 하고 있어.
그는 참 어리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러면서도 은근슬쩍 로더릭을 두둔했다.
-개가 한때 미친놈이긴 했어도 적어도 의처증은 아니야. 로더릭 그런 놈 아니다.
“제가 언제 의처증이랬나요? 가재는 게 편이라더니.”
-그건 무슨 뜻이지?
“가까운 사람끼리 편든다고요.”
하지만 이재가 당혹스러워하는 이유는 그런 게 아니었다.
그녀도 로더릭이랑 있으면 즐거웠다.
다만 그녀는 그로 인해 해야 할 일을 전혀 못 하고 있었다.
이재는 못내 아쉬운 둣 중얼거렸다.
“고지가 눈앞이었는데.”
두어 번만 나누어서 멸하면 방을 완전히 정화할 수 있었다.
그런데 늘 하고 싶은 대로 하라던 왕은 요즘 너무 완강했다.
로더릭은 이재에게는 완력을 행사하지 않는 남자였다.
사소한 장 난을 칠 때조차도 그랬다.
팔을 턱, 잡거나 다리를 거는 장난을 하고 나면,별게 아니어도 꼭 다시 들여다보는 자상함이 있 었다.
자기가 아주 살짝만 건드려도 얘는 다칠 수 있다는 의식을 늘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요즘은 힘을 행사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재가 침 대를 벗어날 기미가 보이면,부둥켜안고 절대로 놓아주지 않았던 것이다.
심지어 그는 이재가 물을 마시려고 일어나자, 물컵을 입에 대어 주었다.
이재는 그때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덕분에 그녀는 요즘 커 다란 맹수에게 포획된 어린 여우의 마음으로 살고 있었다.
“안 아픈데 자꾸 쉬래요. 난 안 졸린데 자꾸 자래. 이걸 어떻게 하면 좋죠?”
소년왕은 피식,웃었다. 그 역시도 한때 인간이었으나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나서일까.
그는 완성되지 못한 인간들의 사랑 놀음이 참 하찮지만 귀여웠다.
이재는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로 더릭이 아프지 않길 바라고 있었다.
하지만 로더릭은 자기가 조금 아프고 말지,이재가 뭔가를 희생하고 있다는 이 느낌이 싫은 거 였다. 그저 추측만으로도. 그저 직감만으로도.
강이재. 그리고 그 마음은 사실 너희 둘을 모두 강하게 만들고 있어.
소년왕은 눈앞의 인간이 그 명제를 알면서도,자신에게 닥친 상황은 잘 모르고 있다는 게 재미 있게 느껴졌다.
-강이재. 넌 문제가 그 방인 것 같아?
“무슨 뜻이에요?”
-거기 틀어막아서 될 것 같으 면, 로더릭은 다른 데서는 원령을 왜 달고 다니냐?
이재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아니까 굳이 하나하나 다 처리한 다음에 결계를 치려는 거예요. 아니면 저도 잠깐 쫓아낸 다음에 결계를 쳤겠죠.”
-음. 뭐, 나쁜 생각은 아닌데.
“그리고 방이라도 맑게 해 주면,잠은 편하게 잘 수 있을 거 아니에요. 사실 그 사람은 밤만 잘 보내도 원귀 때문에 한 번에 어떻게 될 사람은 아네요.”
소년왕은 그럼 뭐가 문제냐는 둣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럼 네 방에서 같이 자면 되지. 요새 그러고 있잖아. 로더릭이 아주 잘하고 있네.
“………”
-내 후손이어서가 아니라 블레이크 핏줄이 참 똑똑하거든. 애들이 날 닮아서 하나같이 촉이 좋아.
참 재수 없는 집안 자랑이었다.
잠시 입을 삐죽거리던 이재는 손톱 주변에 일어난 살을 뜯으며 말했다.
“제가 오래 못 살 수도 있는 거잖아요. 그럼 안전한 장소를 여러 개 만들어 놔야죠. 폐하가 제 방에서 계속 자리란 법도 없고요.”
그거야말로 재수 없는 소리였다.
-네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게 표가 나니까,로더릭이 너를 계속 싸고도는 거야. 네가 자꾸 보호 본능을 자극하고 있다는 거 모르겠어? 너도 이 상황에 책임이 아주 없진 않아.
그렇지만 소년왕은 힘내라는 듯 그녀의 등을 두어 번 쳤다.
이재는 왜인지 모르겠지만,자신이 소년왕의 동정심을 획득한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이 기세를 몰아 남편의 조상신에게 최대한 공손하게 웃으며 물었다.
“저기 근데요. 그럼 방 말고 또 뭐가 문제예요?”
제 남편은 대체 왜 아픈 거지요? 원래 운수 대통할 사람인데요.
이재는 착한 표정을 지으며 손 을 모았다.
하지만 오백 년 묵은 귀신은 역시 이런 얄팍한 수에 넘어가지 않았다.
-놀고 있네.
이재도 바로 나뭇가지를 주워 들었다.
“전 죽더라도 절대 인정머리 없는 귀신만큼은 되지 않을 거예요
-네가 내 입장 돼 봐라. 그게 맘처럼 되나.
“뭐, 그래도 오늘은 고충 상담 많이 해 줬으니까,좋은 주문 써 줄게요.”
이재는 흙바닥에 뭔가를 열심히 썼다.
이마에 땀방울까지 송골송 골 맺히고 있었다.
소년왕은 낯선 형태들이 궁금하긴 했는지 들여 다보았다.
-그건 뭔데.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주문이에요.”
신당 찾아오는 사람들한테는 제일 인기 많은 부적이에요.
사람에게 가장 간절하고 중요한 건 건강이란 방중이지요.
통계가 이렇게나 명확하게 증명 하고 있답니다.
하지만 눈앞의 존재는 인간이 아니었다.
-넌 나보고 대체 몇 살이나 더 살라는 거냐.
소년왕은 진짜 짜증 난다는 표정이었다. 그에게서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처음으로 그를 이겨 먹은 기분을 느낀 이재는 빙긋 웃 었다.
그리고 소년왕이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키자, 이재는 고개를 돌렸다.
멀리서 국왕 일행이 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