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llow Your Heart RAW novel - Chapter (67)
마음이 이끄는 대로-67화(67/134)
#67.
“헤일리.”
“네.”
이재가 눈 끝을 접고 웃자,로더릭은 바로 입술부터 갖다 댔다.
회의 내내 경직되었던 마음은 왕후를 보자마자 부드럽게 풀어진다.
살 것 같았다.
가볍게 입을 맞추는 줄 알고 응하던 이재는 깊어지는 입맞춤 때문에 풀밭에 털썩 누워 버렸다.
여우는 무거운 맹수에게 깔려서 버둥거렸다. 그러나 바르작거리던 여우는 금세 숨통이 끊긴 듯했다. 팔이 축,늘어졌기 때문이다.
모두는 애도했다. 왕후 폐하, 돌아가신 겁니까.
그리고 한참 뒤 일어났을 때, 그녀는 온 얼굴이 번질번질했다.
주변 사람들은 차마 눈 둘 곳을 찾지 못했다.
로더릭이 나타나면 늘 사라졌던 소년왕은 얄립게도 그 광경을 구경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또 휘파 람을 불고 있었다. 백마도 히히 힝, 거렸다.
그는 좋을 때다,외모와 어울리지 않는 노인네 같은 말을 하며 사라졌다.
이재는 이잇,하며 소매로 얼굴을 닦았다.
“이게 뭐예요.”
로더릭은 손가락으로 그녀의 팔 목을 슬쩍 거둬 냈다.
그리고 자신의 소매로 얼굴을 닦아 주었다.
“미안. 얼굴이 하도 작아서 한 입 거리도 안 되네.”
“………”
“삐쳤어?”
“아니요. 너무 변태 같은 소리라서 순간 받아칠 말이 생각나지 않았어요.”
“그건 좀 실망스럽네. 분발하자.”
이재가 웃음을 홀리자,로더릭 은 등 뒤에서 그녀를 꼭 끌어안았다.
그리고 아기 요람처럼 좌우로 흔들었다.
“오늘도 물 보고 있었어?”
“네.”
“네가 작아지는 느낌이 들어서 좋았어?”
아이 취급하는 말투가 조금 쑥 스러웠지만, 이재는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로더릭은 짓궂게 말했다.
“근데 너는 원래도 이렇게 짧고 쪼끄마한데. 여기서 더 작아지면 없어지지 싶다.”
“………”
“내가 우리 콩알 못 찾으면 어 떡하지. 그럼 우리 콩알 서러워서 엉엉 울겠지? 지금도 한참 아래 있어서 가끔 안 보이는데.”
이재는 윽,뒤를 돌아보며 과장 된 시선으로 그를 흘겼다.
그러자 로더릭은 기다리고 있었다는 둣 쪽, 입을 맞추며 즐겁게 웃었다.
이재는 금방 다시 시선을 호수로 돌렸지만, 로더릭은 그 뒤로도 계속 그녀에게 지분거렸다.
너무나 작은 손을 만지작거려 본다. 기대감을 갖고 풍성한 살구색 머리칼을 거둬 내 본다. 그러자 하얀 목덜미가 드러났다.
그는 거기에 코를 묻고 숨을 들이마셨다. 그러자 깊은 숲에 들어가야만 느낄 수 있을 것 같은 향이 났다. 상쾌하고 싱그러운 공기.
국왕은 사실 알고 있었다.
나한테 약은 필요 없어. 몸의 병도,마음의 병도 너로 치료하면 돼.
로더릭이 계속해서 숨을 들이 마시자,하얀 살결은 결국 오돌토돌, 올라왔다. 로더릭은 그녀가 아닌 척 무덤덤하게 눈을 내리깔고 있는 게 귀여웠다.
그는 그 목덜미를 잘근잘근 깨물고 흡입했다.
가느다란 허리를 꼭 끌어안으며 어깨,턱선,목의 가장 여린 살에 키스를 흩뿌리자, 서로가 달아오르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재는 바닥만 보며,조용히 속삭였다.
“폐하.”
로더릭은 이번에는 그녀의 귓바 퀴를 살짝 할으며 속삭였다.
“옹. 왜.”
로더릭이 슬쩍 봤을 때,그녀는 눈을 접고 입꼬리를 올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심장이 너무나 두근거렸다.
하지만 이재는 다시 한번 속삭였다.
“이제 그만하세요.”
“왜. 혹시 싫었어?”
“그건 아닌데요. 사람들 지금 민망해하잖아요.”
그는 못 들은 척,그녀의 턱을 잡아 자신 쪽으로 가져왔다.
앙증 맞은 아랫입술을 몇 번 깨물자, 이재는 잠시 가만히 있었다.
하지 만 그녀는 이내 그의 가슴을 살짝 밀어냈다.
“폐하.”
“또 왜.”
“식사는 하셨어요?”
“………….”
“저 배고파요.”
로더릭은 몸을 들썩이며 웃었다.
“우리 여우가 이제 고급 기술을 쓰네.”
그는 결국 자리에서 먼저 일어나 이재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가. 아내를 굶기는 못난 남편이 될 순 없지.”
이재는 손끝을 살짝 잡았지만, 로더릭은 그 손을 다시 고쳐 잡았다.
로더릭은 오늘도 이재의 식사를 이것저것 자상하게 챙겨 주었다.
사실 이재는 워낙 소식하던 습관이 있어 뭘 많이 먹는 게 잘 안 됐다.
국왕도 그걸 뻔히 보았을 텐데,그는 요즘 이것도 먹여 보고 저것도 먹여 보고 있었다. 그러다가도 혼자 뭔가를 한참 생각하곤 했다.
앞접시에 수북하게 쌓이는 음식들이 난감해서 이재는 말했다.
“폐하,저는 이렇게 많이는 못 먹어요.”
“알아.”
“아는데 저한테 자꾸 왜 이러세요.”
“내 여우를 피둥피둥 살찌워서 조만간 잡아먹으려고.”
짐승 같은 농담에 사람들은 조금 무안해했지만, 로더릭은 태연하게 식사를 더 권했다.
“좀 더 먹어.”
“식사가 넘어가겠어요?”
“농담이니까 먹기나 해.”
“농담 아니었잖아요.”
“들켰네.”
이재는 결국 웃음을 홀렸다.
그녀는 성의를 봐서 이것저것 조금 씩 입에 대고 있었다.
로더릭은 그런 그녀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이재의 음료 잔을 응시하던 로더 릭은 자기도 한 모금 마셔보았다.
그는 이재의 컵을 시종에게 건 네며 말했다.
“이거 말고 다른 거 가져와 봐. 우리 왕후께서는 단 거 안 좋아 하신다.”
로더릭은 이재가 자신을 힐끔거리는 것을 보더니 피식 웃었다.
그리고 입 모양으로 말했다.
이럼 되지?
되긴 뭐가 돼요.
이재는 요즘 확실히 국왕이 이상하다고 생각 했다.
원래도 그런 경향은 있었지 만 관심이 지나치고, 너무 잘해 준다.
그런데 그는 가끔 그녀를 유심히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 있 기도 했다.
이재가 시종이 새로 내온 음료 를 마시고 있을 때였다.
로더릭은 툭,던지듯이 말했다.
“너,벨파스턴 공동묘지에 꽃 보냈다면서.”
그녀는 마시던 음료를 큼,뱉을 뻔하다가 간신히 삼켰다.
이재는 그를 원망스럽게 바라보았다.
꼭 뭘 마시고 있을 때 곤란한 이야기를 꺼내곤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건 심술이 분명했다.
실제로 로더릭은 이재를 놀리려는 의도가 다분하긴 했다.
이재는 시녀장을 빤히 바라보았다. 데보라는 자기는 정말 모르는 일이라고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원래 국왕이란 마음만 먹으면 성 안에서 일어난 일을 모르기도 어려운 자리였다.
“요즘 저를 감시하시는 건지, 사육하시는 건지 햇갈리네요.”
“모함이 심하네. 둘 다 아니고, 그냥 좋아하는 거야.”
아니요. 셋 다 맞는 것 같은데
이재는 조금 불퉁하게 물었다.
“저는 사생활이 없는 건가요?”
“아아,사생활. 좋은 말이네.”
“………”
“우리 왕후는 참 비밀이 많은 사람이지.”
그러자 이재는 멈칫하며 로더릭 을 바라보았고, 그도 이재를 마주 보고 있었다.
그의 명정하고 푸른 눈이 웃고 있다. 많은 의미가 깃든 미소였다.
이재는 그 시선을 금세 피해 버렸으나,로더릭은 그 모습까지 면밀히 살피며 생각했다.
너는 내가 좋다면서 왜 이렇게 숨기는 게 많은 걸까.
내가 아직도 너한테 믿음을 못 주는 걸까.
로더릭은 모르는 척 말을 돌렸다.
“그건 혹시 내가 모르는 또 다른 과거의 남자인가?”
“그게 무슨 소리예요.’
“나도 왕후께 못 받아 본 꽃을 받은 그 행운의 주인공은 누구냐고.”
이재는 조금 난처해서 뺨을 긁적였다.
그리고 그녀가 답변에 시간을 끌자,로더릭은 한쪽 눈썹을 들어 올렸다.
“뭐야,진짜 맞아? 왜 생각을 해.”
“폐하. 옛 애인이 고인이 됐으면 제가 받을 상처는 어쩌려고 이렇게 들쑤시세요?”
“….진짜야?”
“아닌 거 뻔히 아시면서 왜 물어보세요.”
“그러게. 가능성만으로 머리가 도네.”
이재는 웃음을 홀렸다.
난감해 하던 그녀는 원래 하던 대로 적당한 진실을 섞어서 답변했다.
“그냥 제가 예전에 신세 졌던 사람이에요.”
하지만 그건 괜찮은 답변이 아 닌 듯했다.
어이가 없다는 둣 로더릭이 헛웃음을 홀렸기 때문이다.
“네가?”
“네.”
“헤일리. 던컨가는 카이엔 최고 권세가다. 그런데 네가 빈민가 부랑자한테까지 신세를 질 일이 있었나?”
로더릭의 질문은 예리했다.
그는 본래 왕후가 보고서와 좀 다른 면모를 보여도 이쯤 하지, 하며 넘어가곤 했다. 그녀가 곤란해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도 집요해질 수밖에 없었다.
국왕은 요즘 저 입 무거운 살구색 여우를 산 채로 잡기 위해 열심히 덫을 놓고 있었다.
그리고 이재는 벨파스턴이라는 지명이 왜 헤일리의 기억에 없는 지 깨달았다. 헤일리는 부잣집 출신이고,그런 사람들은 대체로 빈민가에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그녀는 잠시 고민했지만,크게 변명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전 더욱 값진 도움을 받은 거 아닐까요?”
“그니까 어떤 도음을 받았는데. 나도 아내 사생활 좀 알자.”
국왕이 자꾸만 추궁하자,이재는 또 잠시 생각에 잠겼다.
살짝 미간을 찌푸린 채 고민하던 그녀는 대답했다.
“음,제가요. 먼저 그 사람한테 사소한 도움을 주고 싶었거든요.”
“………….”
“근데 폐하. 저는 사실 가끔은 확신이 없어요. 쓸데없는 짓이라는 마음이 들 때가 있거든요.”
“………….”
“하지만 그 사람은 그게 가치 없는 일이 아니었다는 걸 알게 해 줬어요. 그렇다면 도움은 오히려 제가 받은 거예요.”
“………….”
“별거 아니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로더릭은 할 말이 없어져서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곧 한 숨을 쉬며 머리를 쓸어 올렸다.
눈앞의 여우가 이 중요한 시점에 선문답을 하며 또 사람을 홀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추궁할 의지가 많이 꺾인 로더릭은 말을 돌렸다.
“헤일리. 갑자기 궁금해진 건데,난 대체 네 몇 번째 남자냐.”
“사실 전 얘기할 것도 없는데. 폐하는 원래 과거를 좀 중요하게 생각하고 그런 편이세요?”
그러자 로더릭은 어린 아내 말하는 게 기가 막혀서 픽,웃었다.
“아니. 하지만 정리 못한 과거는 과거가 아니지. 그건 현재다.”
옳은 말이었기에 이재는 고개를 끄덕였다.
과거는 당사자와 시간, 그 쌍방의 협조가 있어야만 정리 할 수 있었다.
아무리 시간이 홀 러도 당사자가 손에서 놓지 못하 면, 그건 과거가 아니었다.
“너 잊그제 또 로렌스 보고 뛰었다면서.”
이재를 빤히 바라보던 로더릭은 이번엔 아무 잘못 없는 기사단장을 바라보았다.
“제이드.”
“예,폐하.”
“왕후가 저 짧은 다리로 뛰다가 넘어지기라도 하면,그 자식은 내가 꼭 다리 하나 부러뜨리겠다고 전해라.”
“……예,폐하.”
제이드는 내가 정말 이런 것까지 대답해야 하나 싶긴 했지만, 잠자코 고개를 숙였다.
이재도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딱히 변명할 말도 없어서 그냥 식사를 재개했다. 나도 모르겠다, 될 대로 되라,하는 표정이었다.
그래서 로더릭은 한 번 더 심술을 부렸다.
“조만간 왕제가 귀환할 거야.”
“벌써요?”
“잠시 보고차.”
이재는 아아,고개를 끄덕였다.
“반응이 건조하네.”
“제가요?”
“응. 너 왕제 좋아하잖아.”
“……제가요?”
“옹. 너 잘생긴 남자 좋아하잖아.”
“제가요?”
시비도 이런 시비가 없었다. 이재는 정말 어처구니가 없어서 포크를 내려놓고 웃어 버렸다.
로더 릭은 또 그 눈웃음을 홀린 듯이 바라보았다.
“아까부터 왜 그러시는지 모르 겠지만,저 얹힐 것 같아요.”
그러자 로더릭은 얼른 포크를 다시 쥐여 주었다.
“어,미안. 그만할게.”
이재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식사를 재개했다.
그녀 같은 사람들은 가끔 남의 운을 보지만,자신의 앞날은 정확히 보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재는 생각 했다.
앞으로 자신의 인생에 국왕 같은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쓸쓸했던 내 인생에 말을 붙여 준 사람.
이 끝이 언제 올지는 하늘에게 맡기겠다.
하지만 무속인의 기운을 업고 태어난 이재는 강하게 직감했다.
자신에게 이 사람 이후는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