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llow Your Heart RAW novel - Chapter (69)
마음이 이끄는 대로-69화(69/134)
#69.
이재가 고개를 빼공 내밀자,사람들은 의아한 기색을 했다.
“왕후 페하, 또 무슨 일이세요?”
이재는 매우 조심스럽게 문을 닫았다. 덩달아 사람들도 굉장히 조심스러워졌다. 그녀는 한동안 기사들을 바라보기만 했다.
그렇게 대치 상태는 길어졌고, 사람들 의 불안감도 깊어만 갔다.
그때였다. 이재는 냅다 뛰기 시작했다. 그녀는 원래 가만히 있다가 뜬금없이 으아아! 하며 뛰쳐나가는 사람이었다.
문제는 보폭이 매우 좁았고, 기사들은 엄청난 운동 신경의 소유자였다는 것이다.
그들은 가벼운 아침 운동을 하는 기분으로 그녀의 옆에서 발맞추어 뛰었다. 아,이건 뒤로 뛰어도 속도를 맞출 수 있을 것 같은데.
하지만 이재는 매우 진지했다.
“따라오지 마.”
“어디 가시는 건데요?”
“그건 나도 알려 줄 수 없어.”
“네?”
“이건 매우 비밀스러운 일이거든 ”
“예?”
이재는 계속 다다다, 뛰었다. 기사들이 좀처럼 떨어질 것 같지않자 그녀는 말했다.
“술래잡기 중이야.”
“예?”
“폐하랑 술래잡기 중이라고. 술래잡기 몰라? 아,숨바꼭질이었나?”
기사들은 시선을 교환했다. 달밤에요?
“여기서 잡히면,다 끝이야. 우 리의 미래는 칠흑 같아진다고.”
“……숨바꼭질이 그 정도 일입니까.”
왕후가 확실히 어리긴 어리구나,기사들은 생각했다.
“비밀 지켜 줄 수 있지? 나 어 느 쪽으로 갔는지 말하면 안 돼? 사람은 진짜 입이 무거워야 하는 거야. 그럼 적어도 절반은 간 하아,특히……”
이재는 뛰다 말고 멈춰 섰다.
그리고 허리를 숙이며 양쪽 무릎 을 붙잡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저기,거기요,혹시 최근에 뭐 썼어? 서명……”
그거 잘못하면 풍비박산이야.
이재는 막 입 주변을 손으로 휘젓고 손사래를 치면서 입 밖으로 말하면 안 된다고 수어로만 알려 줬다. 무속인의 직업병이었다.
기사는 얼결에 고개를 대여섯 번 끄덕였다.
이재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시 뛰었다.
“그럼 가. 다시 자리로 가. 협, 나 말하면서 뛰기 힘들어.”
왕후가 호흡이 심하게 가빠오는 것 같자, 기사들은 홀린 둣이 멈추어섰다. 그러자 이재는 뜀박질에 더욱 가속도를 붙였다.
그녀가 향한 곳은 국왕의 침실이었다.
왕의 방문 앞을 지키고 있던 근위병들은 당황했다.
원칙적으로 국왕의 침실은 국왕의 허락 없이는 들어갈 수 없었다.
하지만 상대는 왕후였다. 그리고 살구색 여우는 이번에도 순진하기 짝이 없 는 외모를 내세워 말했다.
“수,숨바꼭질 중이야.”
“..예?”
“폐하가 곧 나를 잡으러 올 거야. 이걸 어떡하지? 너무…… 무섭네?”
“………”
“날 도와줄 순 없는 거겠지.”
병사들한테까지 이런 짐을 지울 수는 없었다.
이재는 결심한 둣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이 짐은 내가 다 끌어안고 갈게. 다들 날 기억해 줘.”
그녀는 쌩하니 문을 열고 들어 가 버렸다.
그리고 안에서 문을 걸어 잠갔다. 성공이었다.
벽면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은 곧 매서워졌다.
이재는 품 안에서 부적을 꺼내서 곧바로 영가에게 손을 뻗었다.
이재는 간밤에 자신의 침실로 돌아가지 못했다.
원귀를 셋 퇴치 했으나,아직 둘이 남아 있었다.
그녀도 안온한 곳에 가서 자고 싶었지만,저질러 놓고 보니 이상하게 원귀보다 왕이 무서웠던 것이다.
결국 그녀는 국왕의 침실에서 밤새 불안에 떨다가 잠들었다.
그리고 그녀가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이미 날이 밝아 있었다.
사 람들은 모두 벌을 받듯 고개를 조아리고 있었다.
그 중심에 국왕이 팔짱을 낀 채 서 있었다.
이재 는 흠칫하며 일어나 앉았다.
한쪽 눈썹을 들어 올린 국왕이 입을 뗐다.
“헤일리.”
“………”
‘헤일리?”
“………….”
“우리 대답 좀 하자.”
“……네.”
이재는 자신도 모르게 두 손을 공손히 모았다.
“내가 어제 저 문을 아주 부숴 버리려다가 너 혹시 잘까 봐 오늘의 태양이 똘 때까지 참았다.”
이재는 반사적으로 문가를 바라 보았다. 그런 것치고는 멀쩡했다.
“시종장이 열쇠를 가져왔지.”
“그랬군요.”
“널 잡았으니 이제 내가 숨으면 되는 건가?”
“……그러시겠어요?”
전 사실 잘 찾을 수 있어요.
그냥 지나다니는 잡귀 하나 붙잡고 물어보면 돼요.
이재는 비굴하게 웃으며 물었다.
울컥한 로더릭은 그녀의 이마를 검지로 톡 쳤다.
“지금 농담이 나오냐?”
“………….”
“남편이 욕실에 간 사이에 도망을 쳐? 얘,사람 제대로 비참하게 만드는 법을 아네.”
그러자 사람들은 큼,헛기침을 했다.
아니, 얼마나 힘들고 싫으셨으면. 어제 정말 절박해 보이셨는데.
사람들은 이 정도면 국왕도 자기 자신을 좀 되돌아볼 때가 아닌가 싶었다.
“넌 얌전한 척하다가 한 번씩 희한한 사고를 친다. 아기 여우인 줄 알았는데, 야생 여우였어.”
“전 원래 뜬금없이 으아아 뛰쳐 나가는 사람이라고 했잖아요.”
“지금 이게 칭찬인 줄 알아?”
이재는 더욱 공손하게 몸을 움 츠렸다.
로더릭은 깊은 한숨을 쉬 며 머리를 쓸어 올렸다.
그리고 침대에 앉더니 그녀의 이마를 손으로 짚어 보았다.
이재는 그가 뭘 하는지 잘 몰라서 멀뚱멀뚱 쳐다보기만 했다.
이어 로더릭은 그녀의 뺨,목덜미 같은 곳에 손등을 대어 보았다.
이재는 그제야 알았다. 그는 열은 없는지,몸이 찬 건 아닌지 걱정하고 있는 거였다.
“몸은”
“………….”
“해일리,몸은.”
“뭐가요.”
“……몸 괜찮아? 혹시 어디 아픈 데 없냐고.”
“그럼요. 그래 보이지 않나요?”
이재는 생각했다.
확실히 이 사람은 내가 여기에 오면 무슨 일이 생긴다는 사실을 짐작하고 있다. 그게 정확히 뭔지도 모르면서.
‘당신, 영안이 없어도 심안으로 핵심을 꿰뚫을 줄 아는 비범한 사람. 그렇지만 내 걱정은 하지 말아요. 나 아무렇지 않으니까. 나도 이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는 거였어요.’
이재를 하염없이 바라보던 로더릭은 곧 그녀를 끌어안았다.
그는 더 이상 말이 없었다.
하지만 이재는 그가 지금 슬퍼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희미하게 웃으며 위로하듯, 그의 등을 부드럽게 쓸어 주었다.
이재는 오전에 자신 앞으로 을라온 서류를 몇 건 처리했다.
그러고는 곧바로 산책에 나선 참이 었다.
시녀들은 왕후의 기분이 왜 저리 좋은지 알 수 없었다.
야반도주를 해 가며 믿을 수 없는 사고를 친 것치고 왕후는 상쾌해 보였다. 시녀장은 물었다.
“왕후 폐하,뭐 좋은 일 있으십 니까?”
“응?”
“발걸음이 가벼워 보이십니다.”
“……그래?”
이재는 갑자기 멈춰 서서 자신의 몸을 훌어봤다.
항상 몸가짐을 정갈하게 해야 하는데,여기 와서는 자꾸만 뛸 일이 생기는 것 같았다.
이러니 구도자들이 자꾸 속세를 떠나 은둔하는 거겠지.
이재는 발걸음에 다시 신중을 기했다.
하지만 그녀는 실제로 지 금 아주 상쾌했다.
원귀가 둘밖에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루면 다 처리하고 기운까지 정화할 수 있 을 것이다.
그런 다음에 촘촘한 결계를 치면 된다.
‘몸 괜찮아? 혹시 어디 아픈 데 없냐고.’
국왕은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이번엔 확실히 눈치챈 것 같았다.
그러나 이재는 그에게 정확한 걸 말해 줄 의사는 없었다.
특히 원귀에 대해서는 쭉 함구할 생각이 었다.
영안이 없는 사람들은 그런 세 계를 받아들일 수가 없기 때문이다.
네 어깨에 귀신 있어,그들은 너를 저주하고 있어,어떻게 생겼냐면…… 같은 말을 들으면 당연히 그 사람의 일상은 깨진다.
그러니 무속인들의 언어는 인간 의 삶에 반드시 영향을 끼친다.
그렇다면 우리의 삶을 조종하는 건 원귀일까,아니면 거기서 비롯 된 두려움일까.
이재는 화단에 앉아 호숫가를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시녀들과 기사들은 또 로렌스가 나타나지 않을까 다들 불안해했다.
왕후의 옛 애인은 왕후의 하루 일과를 꿰고 있는 것 같았다.
매번 정확한 시간에 나타나곤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왕후가 말을 섞지 않고, 매번 줄행랑을 쳤기 때문에 날이 갈수록 초췌해져 가고 있었다.
그러면 국왕은 또 그 소식을 전해 듣고 매우 분노했다. 둘 다 여자 하나 때문에 미친 남자들 같았다.
한 명은 퀭해져서 왕후 주위를 맴돌지,한 명은 눈에 광기가 뚝 뚝 떨어져서는 왕후를 품에 싸고 돌지,그 사이에서 왕후는 나무나 깎고 약을 달이고 있지. 이것은 혼돈이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오늘 왕후 를 찾아온 손님은 로렌스가 아니었다.
“어? 안녕하세요.”
“안녕하십니까. 화창한 오후입 니다.”
남자는 누가 봐도 무장이었지만, 이재에게 경례 대신 허리를 숙였다.
그가 카이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이재는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이국적인 외모의 사내,왕제와 늘 함께 다니는 벗이었다.
이재는 사내가 자리를 권해 주길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앉으실래요?”
“그럼 좀 실례하겠습니다.”
아이, 참. 별말씀을 다 하시네.
사내가 자리를 잡고 앉자,이재는 물었다.
“근데 저한테 뭐 하실 말씀 있으세요?”
“그렇다기보단 왕후 폐하가 좀 궁금해서요. 던컨가 출신이시라고 들었습니다.”
“예. 뭐,어쩌다 보니 그렇더라고요.”
그놈의 던컨.
그녀는 솔직히 이제 좀 지겨워지려고 했다.
하지만 사내는 빙긋 웃으며 자기를 소개했다.
“저는 레논 일리아스입니다.”
이재는 고개를 살짝 갸웃했다. 내가 저 이름을 어디서 들어 봤더라?
이건 헤일리의 기억인가?
이재 본인의 기억,헤일리의 기억, 여기 와서 새롭게 쌓은 지식.
그녀의 기억은 현재 엉망진창이었다.
“우리 혹시 전에 만난 적 있나요?”
로렌스가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 했던 사람들은 일순간 긴장했다.
왕후 폐하, 그 이성을 유혹하는 듯한 진부한 발언은 대체 뭐지?
하지만 가관인 건 남자도 마찬 가지였다.
“저 모르십니까.”
큰일 났다. 사람들은 하얗게 질려 갔다.
“음,죄송한데 잘은 모르겠는데요. 제가 기억력이 별로 좋지 않 아서요.”
“뭐,그러실 수도 있죠.”
레논은 차분하게 웃으며 호숫가 를 바라보았다.
그래서 이재도 다시 호숫가로 시선을 돌렸다.
“국경 상황은 많이 안 좋은가 요?”
“예. 뭐, 안정적이진 않습니다.”
이재의 안색은 걱정스러운 마음 에 어두워졌다.
그 모습을 유심히 바라보던 사내는 물었다.
“왕후 폐하께서는 서부 국경이 어떻게 될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이재는 한숨을 쉬며,다리를 주물럭거렸다.
“그걸 성에만 있는 제가 어떻게 알겠어요. 국경에 있다 오신 분들이 더 잘 아시겠죠.”
“왕후 페하는 아시지 않습니까.”
“……네?”
이재는 이 사람 뭐야,하는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 시선 을 마주하던 사내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저는 왕후 폐하라고 생각했는데. 뭐, 그럴 수 있죠.”
“………….”
“왕후 폐하,그렇다면 제가 던컨 공작을 만나 뵈어도 괜찮겠습니까. 주선을 부탁드립니다.”
이재는 잠시 침묵했다. 왜 만나겠다는 건지도 의아했지만,이런 말을 외부인에게 해도 될지 고민스러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는 결국 고개를 저었다.
“안 그러셨으면 좋겠는데요.”
“……어째서입니까.”
“제 입으로 이런 말 하기 뭐하지만,제 집안은 왕가와 척을 지고 있습니다. 물론 당신이 카이엔 귀족이 아니라는 것은 잘 알지만, 왕제의 친구 자격으로 와 있는 게 아닌가요?”
“………”
“당신이 공작을 만나는 것만으로도 왕제의 입장은 난처해집니다.”
그러자 레논은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였다. 모호한 표정이었다.
오랜 시간 침묵하던 그는 이재에게 말했다.
“왕후 폐하는 폐하의 편이시군요.”
뭔가 불온하게 느껴지는 말이었다.
이재는 그 이상한 기운을 예민하게 느꼈다.
그녀는 그것을 떨 쳐 내듯 힘주어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저는 폐하의 아군이고, 그 사람의 아내이자 그를 배신하지 않을 친구입니다.”
이재의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확신과 의지가 깃들어 있었다.
사내는 오랜 시간 그녀를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