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llow Your Heart RAW novel - Chapter (7)
마음이 이끄는 대로-7화(7/134)
#7.
이재는 차를 홀짝거리며 왕을 살폈다.
그는 차를 딱 한 모금만 음미 하고는 아까부터 계속 빤히 이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시선이 너무 부담스러워 이재는 조금 눈치를 보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비스듬히 앉은 로더릭이 물었다.
“헤일리 던컨.”
“네?”
“너,무슨 생각이지?”
“……이 차 마음에 안 드세요?”
이재는 다시 한번 차를 마셨지만,그녀도 솔직히 별로 맛은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시녀장과 정말 손발이 맞는 건 지는 조금 더 긴 시간을 두고 재고해 봐야겠다.
“아니. 네가 왜 이러나 싶어서.”
“………”
“그리고 차는 내가 아니라 네 입맛에 안 맞는 것 같은데.”
순간 찻물을 뱉을 뻔했지만 이재는 꾹 참고 목으로 넘겼다.
“제 기호까지도 폐하께서 판단 하시면 저는……”
로더릭은 다행히도 그 농담에 피식 웃었다.
재 또 거짓말하네,같은 눈빛을 하고 있었지만 확실히 농담을 싫어하는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검은 머리칼을 쓸어 올리는 그는 몹시 피곤해 보였고, 어딘가를 다친 맹수 같았다.
게다가 지금도 원귀들은 국왕과 이재가 조금 떨어지기가 무섭게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그에 따라 왕의 신경도 조금씩 예민해져 갔다.
‘진짜 신경 쓰이게 하는 사람이네.’
초조한 눈으로 그 광경을 바라 보던 이재는 쓰게 웃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체감하지 못 하겠지만, 눈에 이딴 게 보이는 건 너무 피곤한 일이었다.
‘그래,스쳐 지나갈 사람은 아니잖아. 이건 너를 위한 거야,강 이재. 그러니까 한 번만.’
애써 합리화한 이재는 곧 자리 에서 일어나 왕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녀가 자신의 옆자리에 슬 그머니 앉자 로더릭은 한쪽 눈썹을 치켜올렸다.
이재가 힐끔 올려다보자 그가 물었다.
왜.
그렇게 물으면 딱히 할 말은 없었다.
하지만 이재는 로더릭의 주변을 배회하던 원령들이 자신을 저주하며 멀어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녀는 자신을 비스듬히 내려다보고 있는 그에게 물었다.
“최근에 많이 못 주무셨어요?”
“응. 조금.”
“………”
“그래 보이나?”
이재는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사실 많이요.”
다시 정면을 보며 얕은 한숨을 쉰 그녀는 잠시 머뭇거렸다.
그러다가 무릎 위에 아무렇게나 올려놓은 그의 손을 살짝 잡았다.
그걸 보다 못해서 제이드는 눈을 질끈 감았다.
너무 나가셨다 싶었던 것이다. 국왕은 던컨가에 적잖은 반감이 있었고,왕과 왕후가 첫날밤 아무 일도 없었다는 건 왕후궁 시녀들의 입에서 흘러나온 중론이었다.
왕후의 잠옷 상태가 말도 못하게 이상했지만,몸이나 시트 상태는 한없이 건조하기만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둘은 결혼 첫날 이후로는 단 한 번도 같은 장소에서 잠든 적이 없었다.
그러나 이재는 당연히 다정하게 손이나 잡자고 이러는 게 아니었다.
그녀는 지금 무속인 내지는 의료인 비슷한 관점을 고수하고 있었다.
하지만 전자처럼 보이는 편이 차라리 나은 건지는 그녀도 잘 모르겠다.
손바닥 어딘가를 꾹 누른 이재는 힐끔 로더릭의 눈치를 봤다.
로더릭은 이번에야말로 정말 어이가 없었지만, 뿌리칠까 봐 다소 위축된 왕후의 앳된 얼굴 때문에 찡그리며 웃었다.
“너 뭐 해.”
그는 다행히 손을 떨쳐 내지는 않았고,이재는 작게 안도했다.
역시 법적 배우자의 손을 막 뿌리칠 정도로 개차반은 아닌 것 같았다.
“제가 해 봤는데 이렇게 하면 잠이 잘 와요.”
“………”
“저도 불면증이…… 있었을 거예요.”
로더릭은 삐딱하게 웃었다. 어쩐지 이번에는 왕후가 거짓임을 감추려는 노력조차 체념한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재는 사람 몸에 기가 흐르는 통로를 정말로 잘 알고 있었다.
오랜 시간 기가 쇠한 사람들은 절대로 원귀를 이겨 낼 수 없으며,사실은 신당을 찾아도 바로 굿을 할 수 없다.
이런 건 언제나 잡일을 도맡아 한 이재의 몫이었다.
왕이 가만히 있자,그녀는 이번에는 조심스럽게 손을 어깨로 뻗어 어딘가를 다시 한번 꾹 눌렀다.
그리고 차례로 몸을 꾹꾹 눌러 가며 확인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굳이 손부터 짚은 건 함부로 목같은 곳을 눌렀다가 헤일리의 목이 뎅겅 잘릴 거란 우려를 떨쳐 버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재는 왕이 멀쩡할 때의 모습을 그다지 본 적이 없었으니까.
그리고 국왕은 이제 왜냐고 물을 생각도 없는 것 같았다.
그저 왕후가 작은 손으로 하는 짓을 어처구니없다는 둣 빤히 보고만있었다.
“혹시 아프세요?”
“아니. 그렇진 않아.”
“너무 아프면 말하세요.”
“그래,너무 고맙네.”
로더릭은 대답을 하면서도 피식 웃었다.
그리고 지켜보는 사람들의 표정은 기묘해졌다.
사실 그들은 무척 불안했다.
국왕은 아주 조금 거슬리는 게 있어도 잔혹해졌고,때로는 딱히 거슬리는 일이 없을 때도 잔혹해 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재는 혼자서 무척 진지했다. 그날 밤 그를 침대에 눕히면서 느꼈던 것을 이번에는 더 확실하게 느꼈기 때문이다.
이 사람 정말 타고난 기가 있는 사람이구나.
널리 이름을 알린 사람,대업을 이룰 운명을 타고난 사람,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형세다.
이런 사람은 대체로 원귀와 얽힐 일이 없는데.
얼마나 못된 짓을 하고 살았길래 저런 게 자꾸 달라붙지.
그러나 수년 동안 안 좋은 것들에 시달린 결과,그의 기는 얽혀 있고 또 막혀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기운이 강한 사람들은 그 통로가 막혀버리면 훨씬 위험했다. 반신불수가 되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그런 사람들은 감히 자신이 손을 대지도 못했고,꼼짝없이 영산 할매의 몫이었다.
이재는 그의 척추와 날개뼈 사이 어딘가를 꾹 눌렀다.
“음”
로더릭이 낮은 음성을 내자 그녀는 곧바로 목과 귀 사이를 꾹 눌렀다.
그리고 속으로 끊임없이 읊조렸다. 결. 결.
‘됐다.’
막혀 있던 기가 순환하자 로더릭은 오히려 탈력감을 느끼는 둣 했다.
추운 곳에 있다가 막 따뜻 한 방 안으로 들어온 사람처럼.
사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원귀가 붙어 있다가 멀어진 그 순간,이미 기절했어야 옳았다.
이재는 반쯤 잠든 그의 어깨를 재빨리 끌어와 자신의 무릎 위에 눕혔다.
“으음”
로더릭은 그 뒤로도 두어 번 불분명한 소리를 홀렸다.
국왕이 무심결에 낸 소리들은 사실 조금 이상하게 들렸다.
나른 하고 기분 좋은 신음이 어떤 행위를 연상시켰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건 무척이나 건전하고 자연스러운 것이었고,로더릭의 미간 사이를 누르는 그녀는 이제 땀까지 뻘뻘 쏟을 정도로 열심히 하고 있었다.
마침내 국왕이 고른 숨소리를 내며 완전히 잠이 들었을 때,이재는 넋이 나간 얼굴로 소파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하아……”
이번 생은 이렇게 남에게 봉사 하는 삶을 살라고,신이 여분으로 수명을 조금 더 주신 건가.
하지만 이 또한 완벽한 해결은 아니었다.
왕은 그저 이 상황을 견딜 기력을 조금 더 얻었을 뿐이다.
‘미안해요. 나는 이 정도밖엔 못해 줄 것 같아요.’
한편, 또 어떤 유혈 사태가 날 지 몰라서 마음을 졸이고 있던 제이드는 쭈삣거리며 다가왔다.
그는 국왕이 잠든 모습을 신기한 둣 바라보았다. 불과 반 시간 전까지만 해도 미쳐 날뛰던 맹수는 지금은 순한 양이 되어 있었다.
구석에 찌그러져 있던 왕의 시종들 또한 어깨너머로 그 모습을 힐끔거리고 있었다.
“지금 정말 주무시는 겁니까?”
“……그런 것 같은데.”
“………”
“뭐,원래 피로할 때 주물러 주면 시원한 거니까. 많이 피곤하셨나 봐.”
말을 하면서도 이재는 이게 썩 자연스러워 보이진 않으리란 걸 잘 알았다.
하지만 제이드는 그것보다는 다른 부분을 말하고 싶은 것 같았다.
“최근 며칠간 제대로 못 주무셨 거든요. 원래도 불면중이 좀 있으신데 요즘 많이 예민하셔서……”
기사단장이 아까 있었던 폭력 사태에 대해 최대한 완곡하게 변명하자,이재는 그냥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불편한 상황에 직면 해 있는 건 서로가 다 매한가지였다.
“……사람이 좀 예민할 때가 있지.”
“………”
“괜찮아. 나는 크게 놀라진 않았어.”
“……예.”
“그런데 아까 나간 사람은 괜찮을까?”
이재는 뒤늦게 좀 신경이 쓰여서 물었다.
그녀야 사정을 알지만 어떻게 해도 좋은 소문은 안 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제이드는 그저 한숨을 쉴 뿐이었다.
어느덧 다가온 시종장은 깊게 잠든 국왕의 몸에 부드러운 재질의 담요를 덮었다.
그리고 잠시 뒤,데보라 또한 소파 가까이로 다가왔다.
이재는 데보라가 시종장을 죽일 둣이 노려보자 의아한 얼굴을 했다.
그러나 표정을 싹 바꾼 데보라는 이재에게 물었다.
“왕후 폐하도 담요 갖다드릴까요?”
그제야 본인의 잘못을 깨달은 시종장이 아차, 하는 얼굴을 했지만 이재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차 다 마셨으니까 난 가 봐야지.”
그리고 이재는 매우 신중한 태도로 왕의 머리 밑에서 무릎을 빼려고 했다.
쉽사리 깰 것 같지는 않았지만, 그의 숙면을 방해하고 싶지않았기 때문이다.
로더릭은 그녀의 의도대로 쉽사리 깨지는 않았다.
다만 그는 이재가 조금씩 멀어지자 몸을 살짝 뒤척였다.
그는 그녀의 허리께 옷자락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그녀의 품 쪽 으로 조금 더 파고들었다.
으음, 하는 낮은 목소리는 이번에도 무의식중에 홀러나왔다.
사람들 사이에서는 다시 한번 깊은 정적이 감돌았다.
다들 어색한 표정이었다.
이게 그런 성애의 몸짓이라고 생각했으면, 이재도 다른 사람들처럼 쑥스러워했을 것이다.
물론 그녀도 불편하기는 했다. 하지만 그런 의미가 아니라는 걸 잘 알기 때문에 이재는 크게 개의치 않으려고 노력했다.
로더릭은 그냥 본능적으로 맑은 기운을 찾아서 움켜쥐었을 뿐이었다. 그녀가 소지한 부적 때문에. 혹은 정결한 기운 때문에.
이성이 살아 있다면 이러지 않았겠지만,오랜 시간 음습한 기운에 시달려 온 로더릭의 신체는 무의식중에 편안한 곳을 찾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그걸 모른다는 게 너무 큰 문제이기는 했다.
이재는 오묘한 표정을 하고 있는 시녀장에게 손을 뻗었다.
“……나도 담요 주는 게 좋을 것 같은데.”
그러자 시종장이 금세 담요를 가져와 시녀장에게 건넸다.
도도 하게 그것을 받아 든 데보라는 꼼꼼한 손길로 이재의 몸에 둘렀다.
이재는 지난번처럼 심한 구토감을 느끼거나 하지는 않았다. 막힌 기가 지나야 할 통로를 누르는 건 일종의 기술이고 지식이니까.
그러나 꽤 오랜 시간 집중했던 그녀는 오늘도 깊은 피로감을 느꼈다.
역시 이런 사람들과 얽히면 인생은 고단해졌다.
이재는 담요에 몸을 푹 파묻고 눈을 감았다.
복부에 느껴지는 더운 숨이나 자꾸만 허리를 움켜쥐는 손이 신경 쓰여서 몸을 비틀고 싶은 충동을 가끔 느꼈지만,그녀는 속으 로 되뇌었다.
이 사람은 환자다. 남편이기는 한데,그래도 일단은 환자다.
그러면 긍홀히 여겨야 하잖아. 좋은 생각. 착한 생각.
내 안의 음란 마귀야,물러가라.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재는 로더릭 못지않게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