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llow Your Heart RAW novel - Chapter (72)
마음이 이끄는 대로-72화(72/134)
#72.
이재와 다툰 다음 날,로더릭은 이재를 찾아왔다.
사과를 하기 위 해서였다. 하지만 시녀장은 만류 했다.
‘왕후 폐하께서 몸이 좋지 않으 십니다.’
‘헤일리가? 어디가? 얼마나?’
너무 놀란 왕은 그대로 문을 열고 들어가려고 했다.
하지만 시녀장은 황급히 말했다.
“혼자 있고 싶으시답니다.”
“……네가 지금 감히 나를 막는 건가?”
데보라는 무릎을 꿇고 넙죽 엎드렸다.
‘절대 아닙니다. 페하께서 들어 가시겠다고 하면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카이엔에 아무도 없습니다. 저는 그저 왕후 폐하의 뜻이 그러하다는 말씀을 폐하께도 올렸을 뿐입니다.”
“……의원은?”
“………”
“안 다녀간 건가?”
‘아픈 건 맞는 건가?’
복잡한 감정이 들었다.
거부당한 서운함과 아픈 건 아닌 둣하니 다행이라는 안도감.
그는 망설였지만,끝내 문을 열지 못하고 돌아섰다.
하지만 같은 일이 며칠간 반복되었을 때,로더릭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은 상황이 심각해 지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오늘도 어김없이 찾아온 왕은 방문을 두드렸다.
“헤일리. 얘기 좀 해.”
묵묵부답이다.
이쯤되면 안에 사람이 있긴 한 건가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
“그럼 대답이라도 해라. 얼굴은 안 보여 줘도 되니까.”
왕은 애가 탔다.
“헤일리, 어디 아픈 건 아니지? …알았으니까 괜찮으면 목소리만 들려줘.”
그냥 돌아가려던 왕은 다시 돌아서서 말했다.
“내가 잘못했다. 미안하다. 사과할 기회라도 줘라. …얼굴 많이 보고 싶어.”
사람들은 숙연해져서 고개를 조아렸다.
국왕은 열리지 않는 문을 향해 간절하게 구애하는 사람 같 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왕후는 응답이 없었다.
로더릭은 데보라에게 물 었다.
“왕후,식사는 잘하고 있나?”
“……예,괜찮으십니다.”
“어디 아픈 데는 없고?”
“……예.”
로더릭은 고개를 끄덕였다.
한편, 그 시각 이재는 방 안에서 조각에 몰두하고 있었다.
함의 정령은 테이블 위로 올라와서 그녀를 구경하고 있었고,로더릭의
목소리는 안에까지 닿았다.
이재 는 그 목소리를 들으며 한숨을 쉬었다.
그럼에도 조각도를 쥔 손 은 쉴 새 없이 움직였다.
“내가 왜 그렇게 발끈했을까? 보기 흉하게. 결국 지나면 이렇게 후회할걸. 말을 더 조심해야 하는 데, 노력해도 잘 안 돼.”
-그럼 얼굴을 보고 화해하면 되잖아.
-인간들은 악수라는 걸 하잖아.
널 해칠 생각이 없다는 뜻이래. 이재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맞아. 그런데 못 보겠어. 나는 아직 마음이 너무…… 슬 퍼.”
함의 정령은 같이 슬퍼했다.
-이재는 왜 슬퍼.
“내가 못났다는 걸 인정하는 게 힘들어. 그렇지만 다 내 잘못이라고 생각하고 나면 편해져.”
-이재가 편해졌을 때 편한 대 로 하면 돼.
이재는 슬픈 눈으로 고개를 떨구었다.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 그녀는 계속 나무를 깎았다.
왕의 방에 새로 놓아 줄 천하대장군과 지하여 장군이었다.
이 능력을 죽을 때까지 원망했다.
하지만 그녀가 남을 위해 할 수 있는 건 결국 이런 것뿐이었다.
그게 그녀의 유일한 방법이었다. 이재는 틈이 날 때마다 부적 을 썼다.
우리의 미래는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그녀는 가끔 앞날을 보지만,그런 거대한 미래를 볼 수 있는 능력까지는 없었다. 그 한계를 처음부터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자꾸만 드는 직감은 자신이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인세의 관점을 하나 더 보태면 그들은 헤어질 수도 있다.
이재는 기가 죽어 있었지만,혹여 자신이 그 미래에 없더라도 왕만은 늘 괜찮기를 바랐다.
-난 계속 이재 편이야.
“너 코만 없을 뿐이지,굉장히 똑똑하고 착한 아이였구나?”
-그럼!
“내가 살던 곳에는 한 가지 동화가 있었어.”
– 뭔데?
“거짓말을 하면 코가 자란다는 동화야.”
-정말?
“옹. 그런데 너는 코가 없는 게 매력이니까, 나처럼 거짓말하면 안 돼?”
-응! 알았어! 난 거짓말 안 해!
난 코가 없는 게 매력이니까!
함의 정령은 으쑥하며 좋아했다.
이재는 그런 정령을 보며 미소 지었다. 그리고 묵묵히 자신의 최선을 다해 장승을 깎았다.
왕후가 방에서 나온 건 나흘 만이었다.
장승과 부적을 품고 나 온 이재는 데보라에게 먼저 물었다.
“폐하 회의 가셨어?”
“예,지금 막 들어가셨습니다.”
“얼마나 걸릴까?”
“보통 두어 시간은 걸리시지만…… 말씀 올릴까요? 분명 바로 오실겁니다.”
데보라는 머뭇거리다가 덧붙였다. 왕후도 알 필요가 있었다.
“왕후 폐하, 폐하께서 매일같이 두세 번씩 오셨습니다. ……정말 진심으로 걱정하셨습니다.”
이재는 고민했지만,곧 고개를 저었다.
“혹시 내가 나온 걸 모르게 해줄 수는 없을까? 알리지 말아 줘.”
데보라를 비롯한 시녀들은 왕후 가 정말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그 들은 모두 왕후와 운명을 함께한 사람들이었지만,그 운은 왕과도 함께하고 있다는 게 명백한 사실이었다.
사람들은 가끔 왕후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데보라는 말했다.
“왕후 폐하,모시겠습니다.”
이재는 국왕의 방문 앞에서만큼은 난관을 맞이할 줄 알았다.
지 난번에 본의 아니게 골탕 먹인 꼴이 되었기 때문이다. 좀 겸연쩍 기도 했고,미안하기도 했다.
그녀는 예전처럼 자신 있게 문을 밀고 들어가지는 못했다.
우물쭈물하던 이재는 물었다.
“나,들어가도 괜찮을까.”
그런데 병사들은 별말 없이 방 문을 열어 주었다.
다들 그 정도 눈은 있었다.
국왕은 매일같이 왕후의 안부를 묻고,틈만 나면 왕후 얘기를 했다.
지금은 오히려 왕후의 출입을 막 는 것이 파직의 지름길이었다.
그렇게 방 안에 들어온 이재는 여기저기를 둘러보았다.
이건 신령이 도운 결과일까. 원귀는 오늘 도 둘밖에 없었다.
일단 손을 모으고 감사를 표한 이재는 뒤를 돌아서 염라상을 바라보았다.
“넌 역시 내 인생의 역작이 맞아. 확실히 무섭게 생기면 다들 좀 움찔하나봐. 중요한 건 기선 제압이거든.”
이재는 고생했다며, 염라상을 몇 번이나 쓰다듬었다.
그리고 평소처럼 침대맡에 다가 선 그녀는 말을 잃고 말았다.
두 동강이 나 있던 지하여장군이 우뚝 서 있다.
이상한 걸로 붙여진 지하여장군은 더 흉물스럽고 몹시 우스꽝스러웠다.
하지만 이재의 눈에는 순식간에 눈물이 차올랐다.
“뭐 하자는 거야.”
이건 이렇게 해도 힘이 없어요.
어차피 쓸모없는 건데,다 망가져 버린 건데 당신은 왜 이런 짓을 했어요?
“내가 이런 건 버리라고 했잖아요.”
이재는 자꾸만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국왕은 조각상이 망가져도 버릴 수가 없었다.
아내의 소중한 정성 이 들어갔기 때문이다. 이재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도 이제는 망가 진 조각상을 쓰레기처럼 버릴 수가 없었다.
여기에 국왕의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금이 간 천하대장군과 이재를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며칠간 열심히 깎은 조각상들을 빈자리에 놓았다.
“당신은 반드시 괜찮을 거예요. 제가 항상 간절히 바라고 있으니까요.”
폐하. 설령 언젠가 당신이 저를 버릴 수도 있겠지요.
저는 그 자괴감과 분노 때문에 제 지난 인생을 망치고 말았습니다. 그렇지만 더는 아무도 원망하 지 않으려고요. 그것은 누구 한 명의 잘못이 아닙니다.
한 가지 분명한 건,제가 어떤 순간에도 당신을 배반하지 않을 당신의 친구라는 사실입니다.
제 외로웠던 인생에 끊임없이 말을 걸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한동안 쓸쓸한 얼굴로 웃던 이재는 장승에 기원을 불어넣었다.
그리고 곧 벽면을 바라보았다.
왕후가 방 밖으로 나왔다는 소식은 국왕에게도 전해졌다.
데보라는 이 쥐새끼를 잡기 위해 온 갖 인맥을 총동원하고 있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성의 주인이 왕이었기 때문이다.
회의 중 귀엣말을 전해 들은 로더릭은 되물었다.
“헤일리가?”
로더릭은 너무 좋아했다. 그러면서도 걱정했다.
“왕후 혹시 아픈 데는 없나?”
“예,괜찮아 보이신답니다.”
“그래,알았어.”
하지만 국정에 대해 논의하다 말고,국왕은 갑자기 제이드를 손짓으로 불렀다.
“의원을 대기시켜 놓을 순 없을 까.”
로더릭은 안절부절못하면서 아내를 어떻게 의원에게 보일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진찰받는 걸 꺼려하니,같이 받자고 할까. 아니면 신전에 가자고 할까. 뭘 먹을까,뭘 해 주면 좋아할까.
그렇지만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아내는 조각과 약초 재배 말고는 좋아하는 게 없는 사람이었다. 사실 이제는 그것도 좋아해서 하는 건지 모호했다.
조각,약초 재배,약 달이기,아서의 숲,국왕의 방,호숫가 산책.
거기에 그녀가 온전히 자신만을 위해 한 일은 뭐가 있는가.
그렇지만 이것저것 궁리하는 왕의 얼굴에는 설렘이 가득했다.
귀족들은 왜 저렇게 왕이 만면에 웃음을 띠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국왕은 평소보다 빠르게 회의를 마무리하고 본인 방으로 향했다.
하지만 방은 텅 비어 있었다.
“왕후 왜 없어?”
로더릭은 허무해졌다.
“조금 전에 가셨습니다.”
그는 인상을 쓰며 다그쳤다.
“내가 잘 붙잡아 두라고 하지않았나.”
“저희도 그러고자 했는데,가시겠다고 고집하시는 걸 어떻게 할 수가…… 왕후 폐하께서 너무 완강하셔서…… 송구합니다.”
가끔씩 나오는 왕후의 이상한 고집은 이미 유명했다.
아무도 납득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왕 앞이라 사람들은 고개를 수그 렸다.
로더릭은 착잡해하며,자신 의 방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그녀 가 항상 힐끔거리던 벽면을 바라 보았다.
언제나처럼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 순간, 로더릭은 뭔가를 예민하게 느꼈다.
‘이상하다.’
방이 편안하다. 확실히 기운이 안정되어 있다.
그건 왕가의 핏줄이자 검도를 걸은 자로서의 직감이었다.
“너 여기서 또 뭘 하고 갔구나.”
말을 하기가 무섭게 미미하게 탄내가 났다.
왕후가 자고 가면,가끔 나던 냄새다.
사람들은 왕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지만,왕의 얼굴은 무서울 만치 굳어 있었다.
“지금 바로 왕후에게 의원을 보내라.”
“예?”
“빨리. 왕후가 거절해도 반드시 상태를 확인해라. 왕명이다.”
국왕은 강한 어조로 말했지만, 사람들은 그 목소리에 어딘가 떨림이 느껴진다고 생각했다.
그 중거로 로더릭은 침대에 털썩 앉으 며, 이마를 매만졌다.
왕은 침대맡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조각상은 바뀌어 있었다.
“내가 분명히 내 거…… 허락 없이 네 마음대로 하지 말라고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말끔하게 깎인 새로운 조각상을 소중하게 만지작거렸다.
조각상은 더 이상 흉물스럽지도 우스꽝스럽지도 않았다.
그저 슬프고 사랑스러웠다.
‘좀 잘 주무셨으면 싶어서 만들어 봤어요.’
‘아주 가끔은 타인의 진심어린 기원이 폐하를 지킬 때도 있을 거예요.’
헤일리, 나는 사실 너에게 사죄 하고 싶다. 한때 너를 의심해서 너무나 미안하다고.
너무 애틋하고 소중한 너의 마 음. 아무리 상처받아도 꺾지 않는 너의 진심 어린 기원.
잔인한 세상에 수없이 걷어차였겠지.
난 저항하지 못하니 제발 나를 때리지 말아 달라고 옹송그리며 얼굴을 가렸던 거지.
하지만 내가 말하고 싶은 건 너는 너무 귀중하고 존귀한 사람 이라는 거다.
로더릭은 울고 싶은 기분이었다.
그는 조각상의 여기저기를 들여 다보았다. 그리고 밑바닥에서 무언가를 발견했다.
왕후가 붙인 이름이 조각상의 바닥 면에 아주 조그맣게 각인되어 있었다.
그 작고 희미한 글자 에서는 왕후의 마음이 느껴졌다.
너무나 쓰고 싶었던 이기적인 마음과 사람들이 몰랐으면 하는 이타적인 마음. 그 사이에서 희생하고,상처받고 있는 건…… 한 명의 사람.
세계는 크고, 자신은 먼지라고 말했었다.
하지만 그러기에 아내의 마음은 너무나도 넓었다.
“해일리.”
로더릭은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이번에는 지하여장군을 뒤집어 보았다. 로더릭의 목소리는 조금 가라앉았다.
하지만 그의 손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이재.”
로더릭의 푸른 눈은 반짝였다. 가슴에서 뭔가가 자꾸 올라왔다.
하지만 그는 다시 한번 힘주어서 분명하게 말했다.
“이재.”
갑자기 머릿속에서 뭔가가 맞춰 지는 듯했다.
풀리지 않던 문제들이 떠오르며 순식간에 답을 찾아 간다.
“이게…… 너인 건가.”
그러나 희열감을 느끼던 그의 눈동자에는 점점 슬픔이 들어찼다.
망가져 버린 조각상을 보며 서러워하던 얼굴이 떠올랐다.
너 정말 괜찮은 건가.
분명 아팠을 텐데. 이런 비밀을 혼자 품고 많이 외로웠을 텐데.
그런데 너는 어떻게 나 같은 놈을 좋아한다고 말해 줄 수 있 었던 건가.
“미안하다.”
로더릭은 떨리는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