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llow Your Heart RAW novel - Chapter (76)
마음이 이끄는 대로-76화(76/134)
#76.
눈을 뜬 로더릭은 낯선 천장에 눈썹을 치켜올렸다.
그 밤 이후, 기사단은 국왕과 왕후의 거처를 임의로라도 옮길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마주한 광경이 너무나 기괴했기 때문이다.
왕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의 안색은 다들 어두웠다.
특히 기사단 장의 낯빛이 가장 좋지 않았다.
그리고 국왕이 눈을 뜨자,기사 단장은 얼른 다가섰다.
“폐하! 괜찮으십니까?”
“뭐가. 그 전에 내가 왜 여기 있는지 설명 좀 하지?”
“며칠간 의식불명이셨습니다.”
“……내가?”
로더릭은 굉장히 황당하다는 얼굴로 되물었다.
의원이 치명적인 이상은 없다고 했는데,일어나질 않으셔서 걱정했습니다. ……각혈도 하셨습니다.”
로더릭은 그 말에 곧바로 침대에서 일어나 앉았다.
하지만 몸에 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오히려 이상하게 가볍다는 느낌이 든다. 기감이 활발해진 느낌.
그 모습을 초조하게 바라보던 제이드는 말했다.
“폐하,긴히 보고드릴 게 있습니다. 폐하께서 꼭 아셔야 하는 일입니다.”
“………”
“사람들을 좀 물려 주실 수 있겠습니까. 왕후 폐하에 관한 일입니다.”
그 말에 로더릭은 바로 턱짓을 했다. 다 나가라는 뜻이었다.
기사단장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방을 빠져나갔다.
“뭔데. 해 봐.”
하지만 그는 선뜻 입을 열지 못했다.
그 밤,매캐한 냄새와 함께 비릿한 냄새까지 감지한 기사단장은 용서를 구하며 문을 열었다.
그때 그가 마주한 광경은 기사인 그에게도 소름 끼치는 것이었다.
국왕과 왕후는 나란히 입가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그런데 왕후는 엉망이 된 옷차림을 하고서도 방 한가운데에서 정좌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울면서 웃고 있었다.
손가락은 얼마나 깨물었는지 너덜너덜해져 있었고,바닥에는 피로 뭔가를 쓴 자국이 가득했다.
제이드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었다.
“왕후 폐하가 그날 밤,페하를 찾아오셨습니다. 왕후 폐하가 들어가시기 전까지 두 분 다 괜찮으셨습니다. 제 눈으로 확인했습니다.”
“………”
“그런데 뭔가 타는 냄새가 나서 문을 열었을 때는 두 분 다 피를 홀리고 계셨습니다.”
“왕후가 또 피를 쏟았단 말인가? 헤일리는 지금 괜찮아?”
로더릭은 너무 깜짝 놀라서 왕후에게 가려고 했다.
왕은 이 순 간에도 오직 왕후의 안위에만 관 심이 있었다.
하지만 기사단장은 왜인지 고개를 저으며 만류했다.
“왕후 폐하께서도 처소를 잠시 옮기셨습니다. 안전상의 사유라고 설명해 드리긴 했습니다만,사실은 제가 수색을 위해 임의로 그렇게 했습니다.”
“..수색?”
로더릭은 멈칫했다. 제이드는 들고 있던 것들을 내밀었다.
“폐하께서 의식이 돌아오지 않 으셔서 어쩔 수 없었습니다. 독단적으로 행동한 처벌은 달게 받겠습니다.”
“이게 대체 뭔가?”
제이드는 마른침을 삼킨 뒤,입 을 열었다.
“그날 밤,왕후 폐하께서 방을 걸어 잠그고 뭔가를 계속 태우셨습니다. 이게 남은 조각입니다. 그리고 이건 왕후 폐하와 폐하의 방에서 발견된 것들입니다.”
“………”
“제 눈에는 매우 유사한 형태로 보입니다.”
“………”
“액자나 가구 뒤편,보석함 같 은 곳에 숨겨져 있었습니다.”
그건 부적 뭉치였다. 로더릭의 얼굴 또한 심각해졌다.
왕은 사실 그 문양이 매우 낯익었다. 왕후가 준 손수건과 그녀의 나무 팔찌에서 본 적이 있었 기 때문이다.
로더릭은 제이드가 말하고자 하 는 바를 이해했다.
이것은 먼 옛날,대륙을 지배했던 다이몬의 사술일지도 모른다.
대륙인들은 건국 신화 속의 허황 된 이야기라고 믿지만,사실은 실존했던 힘.
기사단장과 방향은 전혀 달랐지만, 왕도 비슷한 의구심을 가지고 있었다.
“……헤일리는 어떻게 하고 있는데. 내 아내 많이 아픈가?”
“왕후 폐하는 괜찮으십니다. 하루 정도 자리에 누워 계셨지만, 의식은 잃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로더릭이 무언으로 재촉하자 머뭇거리던 제이드는 말했다.
“폐하,그날 왕후 폐하의 상태가 너무 이상하셨습니다. 의복은 다 찢어진 상태이고,손가락은 깨무셨는지 피가……”
“그게 무슨……”
“의원이 이미 치료는 했습니다.”
로더릭은 이마를 감싸 쥐었다. 그는 바로 왕후에게 가려고 했다.
하지만 제이드는 다시 한번 강하게 만류했다.
제이드는 한 가지 의심을 품고 있었다. 왕후가 국왕을 해하려다가 마음을 바꾼 것은 아닐까,하 는 식의 의심이었다.
그날 왕후의 태도는 하나같이 이상했고, 문을 열고 들어온 그에게 왕후가 한 이야기가 있었다.
피를 홀리고 있는 국왕을 본 제이드가 안색을 굳히자,그녀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을 하고 말했다.
‘폐하는 괜찮아. 귀기, 아니, 독기가 빠져나가고 있어서 그래. 며칠 내로 일어나실 거야.’
제이드는 정확한 정황을 알 수 는 없었다.
하지만 그 어지러운 방 안 풍경이 왕후 때문이라는 것까지 부정할 수는 없었다.
“폐하. 왕후 폐하는 던컨입니다. 그리고 왕후 폐하가 들어가신 뒤, 폐하의 상태는 나빠졌고 방의 상태는 엉망이 되었습니다.”
“………”
“게다가 폐하의 방에서 발견된 그 이상한 종이는 왕후 페하께서 직접 태우신 겁니다.”
기사단장의 의심은 너무도 타당 하고 합리적이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하던 로더릭은 고개를 저었다.
친우의 말처럼 의혹은 여전히 존재했다.
하지만 그는 이제 그러한 가능성 때문에 자신의 마음까지 부정하는 비겁한 남자가 되고 싶지 않았다.
자신의 마음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뚜렷했다.
“제이드.”
“………….”
“넌 아직도 모르겠나?”
“………….”
“왕후는 절대로 나를 배신할 사 람이 아니다.”
그리고 왕후는 사실 던컨이 아닐지도 몰라.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왕후가 던컨이든,아니든 그런 건 나한테 조금의 문제도 되지 않는다는 거다.
아내가 누구든,어디에서 왔든, 뭘 숨기고 있든…… 나는 상관없다.
“그리고 난 사실 이제는 왕후가 나를 배신해도 괜찮다.”
“폐하!”
제이드는 절규하듯 외쳤지만, 로더릭의 태도는 확고했다.
“왕후는 나한테 그래도 되는 유일한 사람이다. 만에 하나 그런 일이 있더라도 끝까지 사랑하고 보호해 줄 거다.”
“……폐하.”
“왕후 방에 데려다줘. 난 내 방에 잠시 들렀다 가겠다.”
로더릭은 기사단장의 어깨를 두 드린 뒤,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는 확실하게 느낄 수있었다.
몸이 가볍다. 모든 공기의 흐름 마저 느껴지는 것 같다.
왜 이러 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그는 언제부턴가 점점 예리하게 기를 감지하고 있었다.
그 사실은 방에 도착했을 때,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방 의 기운이 또 달라져 있었기 때문이다.
안정된 느낌은 사라졌지만, 예전처럼 불길하지도 않다.
왕은 이제 남들보다 비현실적이지만,훨씬 정확한 판단을 할 수있었다.
그날 밤, 무슨 문제가 생겼고 왕후는 그걸 알고 달려온 것이다.
‘오늘도 좋은 꿈 꾸셔야 해요.’
로더릭은 자신을 뒤따르던 사람들에게 말했다.
“해하려던 게 아니라 지켜 준 거다. 나를.”
사람들은 고개를 수그렸고,로 더릭은 천천히 방을 둘러보았다.
제이드는 부적을 제외하고는 방을 거의 그대로 보존했다.
국왕도 확인해야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침대맡에 다가간 로더릭은 조각 상을 집어 들었다.
장승은 미세하 게 금이 가 있었다.
참 이상한 일이지. 또 그런 일 이 있을까 봐 목재를 다 바꾸었는데. 조각한 지 며칠 만에 또 이렇게 되었다고.
그렇다면 이건 그냥 조각상이 아니었던 거다.
조각상을 침대맡에 내려놓은 그는 이번에는 나뭇가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사람들은 쉽게 알아보지 못했지만, 왕족인 그는 한눈에 알아보았다.
아서의 숲에 있는 나무다.
‘그 자그마한 게 거기까지 달려갔다 온 건가. 아직 다 낫지도 않은 다리로.’
그런데 왕은 왕후가 왜 그랬는 지도 알 것 같았다.
그녀는 그를 아서의 숲에 보내고 싶어서 조바심을 낼 때가 있었다.
본인이 아플 때는 꼭 아서의 숲에 가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때 그녀는 절박해 보였다.
왕실의 역사는 물론,던컨가의 역사도 잘 모르면서 숲에 대해서는 뭔가를 알고 있는 것이다.
신성한 힘이 왕가를 수호한다는 선대왕들의 유훈.
한숨을 쉰 로더릭은 방을 나서 려고 했다.
왕후가 너무나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걸음을 옮기려던 로더릭 은 멈칫하며 방바닥을 바라보아야만 했다.
바닥에는 핏자국이 낭 자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그건 그냥 핏자국이 아니었다.
로더릭은 그 문양마저도 익숙했다.
왕후가 가끔 나뭇가지로 흙바닥에 그리던 문양들이었다.
그것 마저 흙장난이 아니었다는 걸 깨달은 그는 정말로 울고 싶어졌다.
로더릭은 눈가를 가렸다.
“너는 대체 나를 얼마나 못난 새끼로 만들려고.”
밤새 자기 손가락을 깨물어서 이걸 쓴 것이다.
지켜 주고 싶어서.
하지만 이러 면 너는 아팠을 텐데. 그 쪼끄만 한 게,바보같이.
그녀의 얼굴을 지금 당장 보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로더릭은 이재에게 가려고 했다. 하지만 그때였다.
“왕후 폐하께서 방에 안 계십니다!”
“뭐?”
얼굴을 굳힌 로더릭은 더 캐묻 지도 않고 달려 나갔다.
이재는 기력이 많이 쇠한 상태였다.
난생처음 보는 악귀를 멸하고, 방에 진을 그렸기 때문이다.
끝내 쓰러지지 않은 것은 원치 않게 치러 온 수많은 평가전 때문이었다.
할매, 역시 인생은 실전인가 봐 요.
그거야말로 실력 향상의 밑거름인 거죠.
그런데 왜죠? 저는 이 실전 경 험이 썩 기쁘지가 않군요.
이재는 사실 조금 심란했다. 함의 상태가 걱정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사들은 안전상의 사유라며, 잠시 이곳에 계셔 달라는 말 만 반복했다.
사실 이재도 가망은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악귀는 강했고, 그녀는 이미 국왕의 방에서 너무 오랜 시간을 보낸 후였다.
이재는 우울해졌다. 어쩌면 이 것은 감금일지도 몰라.
그녀도 눈칫밥 깨나 먹어 본 사람이었고,돌아가는 상황을 보아 하니 그랬다.
그러나 그녀도 이해는 하고 있었다.
그날 자신이 남들 눈에 어 떻게 보였을지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리란 걸 알면 서도 할 수밖에 없었다. 후회는 없었다.
이 방은 결계도 부적도 없었고, 장승도 없다.
하지만 아무 의욕도 생기지 않아서 이재는 누워만 있었다.
내가 심적으로 지치긴 했구나, 그런 생각을 하며 그녀는 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