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llow Your Heart RAW novel - Chapter (78)
마음이 이끄는 대로-78화(78/134)
#78.
잔뜩 긴장한 왕후궁 시녀들은 이재를 정말 푹 삶으려고 들었다.
왕후가 감기에 들면 국왕이 정말 로 자신들의 목을 칠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재는 대충 다 씻었다 싶을 때,시녀들을 뿌리치고 대욕탕을 뛰쳐나왔다.
그녀는 왕이 오기 전에 재빨리 확인해야 할 것 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흘 만에 자신의 방에 돌아온 이재는 결계가 다 망가져 버린 것을 느꼈다.
그녀는 괴로운 얼굴로 금이 간 함을 쓰다듬었다.
“미안해. 정말로 미안해.”
죄책감에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순간이었다.
숨어 있던 함의 정령은 잔뜩 토라진 얼굴로 엉금엉금 기어 나왔다.
“어어? 어?”
“세상에,너 무사했구나!”
이재는 놀라고 반가운 마음에 정령을 덤석 끌어안으려고 했다.
하지만 정령은 어깨를 획,틀며 그 손길을 피했다. 앙칼진 태도였다.
-이재 미워.
“……미안해. 잘못했어.”
하지만 정령은 쉽게 풀릴 기미가 없었다.
뺨을 잔뜩 부풀린 채, 씩씩거리던 정령은 빽! 소리를 질렀다.
-거짓말쟁이! 바로 온다고 했으면서!
-거짓말했으니까 이재는 코가 자랄 거야.
“그게 사정이 좀…… 아니,그냥 내가 미안해.”
-그런데 정말 그렇게만 하면 나도 코가 생길 수 있어?
이재는 정령이 귀여웠지만,너무 미안해서 웃음을 꾹 참았다.
하지만 그녀는 곧 의아해졌다. 분명 결계가 사라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정령의 상태는 너 무나 멀쩡해 보였다.
그녀는 쭈벳거리며 물었다.
“근데 저기,너 어떻게 괜찮은 거야?”
-흥. 안 알려 줄 거야. 난 앞으로 이재한테 거짓말만 할 거야.
정령은 계속 둥을 돌리며 대답하지 않으려고 했다.
이재는 지은 죄가 있어 쩔쩔매면서 정령을 달랬다.
“그러지 마. 넌 지금이 가장 귀엽단 말이야. 솔직하게 얘기해 주라.”
“응? 한 번만 용서해 줘. 내가 네 집에 또 기원을 불어넣어 줄게.”
정령은 그 말에 솔깃한 것 같 았다.
그녀가 아이 어르듯 살살 비위를 맞추자,정령은 결국 못 이긴 척 입을 열었다.
-저 못생긴 게 지켜 줬어.
“응?”
-저게 이재처럼 갑자기 으아아’ 했다고.
정령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건 아교풀로 붙여진 지하여장군이었다.
이재의 표정은 심각해졌다.
그녀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한 번 찢어진 부적은 이어 붙여도 효험이 없다. 조각상도 마찬 가지여야만 했다.
“어떻게 그런 거지.”
고개를 가웃거리던 이재는 이번 에는 함을 열었다.
결계는 사라졌지만,함 안에는 부적들이 있으니 그것 때문에 무사한 건가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은 텅 비어 있었다.
“어어? 왜 하나도 없지.”
부적이 효과를 발했다면,하다 못해 타다 남은 흔적이라도 있어야 했다.
이재는 의아한 얼굴로 정령을 내려다보았다.
정령은 그 새 마음이 다 풀어졌는지 그녀의 다리에 찰싹 달라붙어 있었다.
이재가 뭔가를 물으려고 했을 때였다.
국왕은 기별도 따로 하지 않고, 그녀의 방문을 열었다.
이재는 몹시 어색한 미소를 지었지만, 로더릭은 그녀를 뻔히 바라볼 뿐이었다.
이어 함을 힐끗 바라본 그는 성큼성큼 걸어왔다.
로더릭은 침대에 앉으며 뭔가를 툭, 집어 던졌다.
함과 그들의 방 에서 뜯어낸 부적 뭉치였다.
“이거 찾나?”
“폐,폐하.”
이재의 얼굴은 새하얗게 질렸지만, 로더릭은 태연하기만 했다.
그는 옆에 와서 앉으라고 고갯짓 을 했다.
“말해라. 뭐든 다 믿어 줄 수 있다.”
하지만 이재는 다소 겁을 집어먹은 얼굴로 입술을 깨물었다.
국왕이 던져 놓은 부적 뭉치들 사이엔 다른 종이도 한 장 섞여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여섯 가지 버킷리스트였다.
폐하의 침실에 가 볼 것,성 안의 원귀들을 퇴마하기,소년귀 등 자신이 손수 적은 글을 본 순간 그녀는 이 상황을 피해 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더 이상은 거짓을 말할 수 없 다는 것도.
이재는 국왕 앞에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그걸 본 로더릭은 너무나 기가 막혀서 하,헛웃음을 지었다.
속 이 울렁거리는 기분이었다. 그는 몹시 불쾌한 얼굴로 말했다.
“내가 너한테 말을 하라고 했지, 언제 무릎을 꿇으라고 했나?”
“………”
“일어나. 네가 무릎을 꿇어도 되는 사람은 카이엔 내에 아무도 없다.”
하지만 이재는 고개를 푹,숙이고 있을 뿐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그간 거짓말을 해 가며 이 나라 국왕을 기만했다고 생각했다. 거짓말은 계속 또 다른 거짓말을 낳기만 했다.
그녀는 던컨이 아니었고,국혼은 시작부터 잘못된 것이었다.
왕이 처음 그녀에게 끌린 것 또한 자연스러운 감정이 아니었다.
단지 그녀가 그의 정신을 편 안하게 해 주었기 때문이었다.
이재는 그걸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선을 그어 줄 수가 없었다.
그녀는 너무나 외로웠고,자신에 게 잘해 주는 왕이 좋았기 때문이다.
한편 이재가 움직일 기미가 없자, 한숨을 쉰 로더릭은 그녀를 직접 일으켜 세웠다.
하지만 그의 아내는 고집스럽게도 또다시 무릎을 꿇고 있었다.
넌 뭐 그렇게 죽을죄를 지었다고, 항상 사과부터 하는 걸까. 착잡한 얼굴로 머리를 쓸어 올리던 로더릭은 말했다.
“너,이름이 이재야?”
이재는 흠칫하며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눈동자에 당혹감이 가득했다.
“그,그걸 폐하가 어떻게……”
“뭘 그렇게 놀라. 알아봐 달라 고 조각상에다 써 놓은 거 아닌가?”
물론 그런 바람이 없었다고 하면 거짓이었다.
그러나 왕이 정말로 알아철 거라고 생각해 본 적 도 없었다.
본인은 잘 깨닫지 못했지만, 이재는 지금껏 너무나 많은 단서를 홀려왔다. 게다가 왕은 그녀에게 엄청나게 관심이 많았고,굉장히 명석한 사람이었다. 그는 한참 전 부터 그녀가 헤일리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의심을 가져 왔다.
로더릭은 당황한 이재를 보며 피식 웃었다.
“부인,이제 내 옆에 와서 앉아줄 마음이 좀 생기셨나?”
“………”
“그 자세가 편한 거라면 존중은 하겠는데, 보는 내 마음이 찢어질 것 같으니까 그쯤 하고 올라와 앉지?”
결국 이재는 우물쭈물하면서도 침대로 와 앉았다.
하지만 이 여 우는 잔뜩 겁을 먹었는지, 그에게서 세 뼘 정도 떨어진 곳에 자리 를 잡았다.
로더릭은 곧바로 그녀의 등 뒤로 가서 작은 몸을 끌어안았다.
그러자 그녀가 계속 떨고 있는 게 느껴졌다.
그는 살구색 머리칼을 자상하게 쓰다듬으며,뺨에 입 을 맞추었다.
“내가 아직도 너한테 신뢰를 못 주나 보다. 미안하다.”
“……그런 거 아니에요.”
로더릭은 그녀를 안심시키기 위 해 끊임없이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나는 너랑 있으면 정신이 맑아 지고 마음이 편해진다. 왜 그렇다고 생각해?”
이재는 시선을 떨구었다. 모든것을 솔직하게 말해 줘야 할 때 였다.
“제가 모자란 재주로 폐하에게서 삿된 것들을 몰아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니. 그런 게 아니야.”
“………”
“이건 내가 너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이재는 힐끔 뒤를 바라보았다. 왕의 푸른 눈이 웃고 있었다.
“너, 날 자꾸 아서의 숲에 보내려고 한 것도 그것 때문이지?”
“……예.”
로더릭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거기에 가면 정신이 맑아 지는 것쯤은 느꼈어.”
“………”
“그런데 나는 늘 너랑 같이 가고 싶었어. 혼자서는 가고 싶지 않았다.”
네가 나한테 가라고 하는 곳들 은 다 좋았지만,너와 같이 가고 싶었고.
네가 너 혼자서 가겠다고 하는 장소는 싫었지만, 혼자 있게 하고 싶지 않았어. 나는 너랑 함께 있고 싶었어. 그게 어디든.”
“………….”
“너한테 해가 갈 일은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잖아. 떨지 말고, 날 조금만 더 믿어 줘라.”
“………”
“네가 어떤 말을 하든 나는 너에게 등 돌리지 않는다.”
이재는 문득 스스로가 부끄럽게 느껴져서 고개를 푹,숙였다.
그 녀가 눈물을 글썽이자 웃게 해 주고 싶었던 로더릭은 장난기 어린 어조로 말했다.
“너나 나 버리지 마라. 난 너랑 지독하게 얽히고 싶으니까.”
“……폐하는 좋은 남편이에요.”
“그래,알면 잘하자.”
결국 그녀는 픽,웃었다. 로더릭은 궁금한 둣 물었다.
“너, 다이몬 사람이 맞긴 한 건가?”
그러자 이재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응?’하는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아니요? 저는 대한민국 사람인데요.
이재가 고개를 젓자,로더릭은 빨리 털어놔 보라는 둣 턱을 까딱였다.
“저도 다른 건 잘 모르겠고요. 전 한 번 죽긴 했는데 눈을 떴을 때는 이 몸이었어요. 그게 폐하가 공작가에 찾아오셨던 날이고요. 헤일리는 아마도 투신했을 때 죽은 것 같아요.”
“………”
“뭐, 절 미친 사람이라고 생각 하셔도 좋아요.”
로더릭은 아직도 자신감 없는 목소리로 눈치를 보고 있는 아내를 보며 피식 웃었다.
“넌 그래서 사람들이 날 미친 사람이라고 할 때,정말 내가 미쳤다고 생각했나?”
“아니요.”
“나도 마찬가지다. 헤일리,아니,이재. 오래전에 사라진 힘이지만,대륙에는 그런 기이한 일들이 존재했었다. 카이엔은 그 사술들을 깨고 성검의 가호 아래 세워진 나라다.”
그러나 이재의 낯빛은 어두웠다. 그녀는 며칠 전의 일로 확신하게 되었다.
누군가가 그에게 계속 살을 날리고 있었다.
“아니요. 사라지지 않은 것 같아요”
이재는 돌아앉으며 그를 꼭 끌 어안았다.
로더릭은 아내가 혼치 않은 어리광을 부리는 줄 알고, 웃음을 홀리며 마주 안았다.
“폐하.”
“응”
“폐하를 처음 본 날,저는 사실 무서웠어요. 피하고 싶었어요.”
“내 첫인상이 많이 별로였다는 건 충분히 알았다.”
로더릭은 입맛이 무척 썼다.
한참 생각하고 나니 무려 첫 만남 에 나랑 결혼할래,죽을래를 시전 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재는 고개를 저었다.
“그런 말을 하고 싶은 게 아니고요. 폐하 주변에 원한을 가진 존재들이 득실대면서 폐하한테 말을 걸고 있었거든요. 사실 가끔 들리신 적 있죠?”
로더릭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폐하는 그것 때문에 폭군 소리를 들으셨던 거예요. 이미 짐작하고 계시지만 저는 그런 삿된 걸 볼 수 있고 몰아낼 수도 있어요. 정말 미력하지만요.”
그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바보야. 왜 그런 얘길 너 혼자 품고 있었어.”
“처음부터 말씀드렸으면, 믿어 주셨을 건가요?”
로더릭도 선뜻 긍정할 수 없었다. 그가 이재의 말을 믿게 된 건 그게 상식적이어서가 아니라,그 녀라는 사람에게 신뢰가 쌓였기때문이었다.
“그리고 폐하,원래 이런 이야기는 절대 함부로 하는 게 아니에요. 제가 말해 봐야 사람들이 보이지도 않는 적과 싸울 수는 없는 거잖아요. 사람은 근원을 알 수 없는 악의에는 저항할 수가 없어요. 그럴 거면 차라리 모르고 있는 게 이기는 방법일 수도 있는 거예요.”
“………”
“저는 사람들이 그런 것에 지는 게 싫어요.”
하지만 가만히 듣고 있던 로더 릭은 말했다.
“그럼 네가 혼자 아프잖아. 너만 외롭잖아.”
“……제가 아픈 게 나아요.”
한때 이 아픔을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던 못난 마음을 들킨 것 같다.
이재는 고개를 떨구었지만,이내 속상해서 눈물을 글썽였다.
그 에게는 이런 흉험한 일들을 끝까 지 알려 주고 싶지 않았다.
힘닿는 데까지 도와서 그의 일상을 지켜 주고 싶었다.
하지만 누군가 분명한 의도를 갖고 그를 공격하고 있다면,왕은 알아야 했다. 하고 싶지 않은 말을 하게 된 이재는 울먹거렸다.
“폐하. 누군가 당신이 죽기를 바라고 있어요. 당신이 아프길 바라고,잘못되길 바라고 있어요.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는 하나도 모르면서 계속…… 저주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너무 억울해서 결국 아이처럼 눈물을 쏟았다.
그리고 가슴팍이 천천히 젖어 들자,로더릭은 심장이 몹시 아려 왔다.
아내는 자신 때문에 툭하면 쓰러지고 피를 쏟았다.
그걸 알아 주기는커녕 오랜 시간 의심해 왔다.
그런데 그녀는 지금 누군가 그를 저주한다는 사실 때문에 서러워하고 대신 아파하고 있었다. 내 말에 상처받지 말라며 계속 끌어 안고 있었다.
너는 대체 왜 이렇게까지 귀중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걸까.
그는 이재를 품에서 억지로 떼어 내고 양 뺨을 움켜쥐었다.
그 리고 이재와 눈을 맞추며, 그녀의 젖은 볼을 조심스럽게 닦았다.
“그랬어? 괜찮아.”
“폐하.”
“사람들이 뭐라고 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면서. 저주하고 싶으면 열심히 하라고 해.”
로더릭은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 지었다.
“너만 나를 믿어 주면 된다. 그럼 얼마든지 이길 수 있어.”
“………”
“그러니까 울지 마라. 맘 아프다.”
하지만 그 순간 이재는 더욱 크게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난처해진 로더릭은 한숨을 쉬둣 웃으며 그녀를 다시 끌어안았다.
그 리고 뚝 그치라고, 이재의 등을 계속 다독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