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llow Your Heart RAW novel - Chapter (79)
마음이 이끄는 대로-79화(79/134)
#79.
엉엉 울던 이재가 진정되기까지 는 꽤 시간이 걸렸다.
눈물을 그 친 그녀는 민망한 둣 눈치를 보았으나,로더릭은 그녀가 귀여워 서 웃고 있었다.
“이재.”
“입에 잘 안 붙으시죠? 그냥 헤일리라고 부르셔도 돼요. 저는 그 이름도 편해요.”
하지만 로더릭은 다시 한번 그 녀를 불렀다.
“이재.”
“………….”
“예쁜 이름이네. 내가 간혹 실수하더라도,노력할 테니 조금만 이해해 줘라.”
“……그냥 콩알이라고 부르시든 가요.”
“그렇게도 부르고. 콩알하고 여우는 애칭이잖나. 넌 참 야멸차게 남편을 폐하라고밖에 안 부르더라.”
“………”
“부인께선 정말 내 이름은 한 번도 안 불러 줄 셈인가?”
로더릭이 계속 웃는 게 부끄러 워서 그녀는 시선을 살짝 피했다.
하지만 그는 아직도 물어보고 싶은 것들이 많이 남아 있었다.
“근데 너 몇 살이야?”
질문을 뱉고 나니 로더릭은 더욱 궁금해졌다.
스킨십에 바르르 떨었던 걸 생각하면 많이 어린 건가 싶어진다.
그런데 묘하게 초 연한 태도를 보면 생각보다 훨씬 많은 건가 싶기도 하다.
한편 이재는 쥐구멍이라도 있으 면 숨고 싶었다.
이렇게 따지고 들면 그를 기만한 게 한두 가지 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나이를 가지고 놀리기도 했었다.
“스물다섯이요.”
“나랑 그렇게 차이 많이 안 나네?”
로더릭은 기가 막혀서 웃었다. 이재는 민망해서 괜히 딴지를 걸었다.
“애 취급하신 적 없다더니 억울 하신가 봐요. 왜 그런 반응이세요.”
“그래도 어린 나이에 시집왔으니까 좀 안쓰럽게 생각한 건 있었지. 왕실이 만만한 곳은 아니니까. 처음엔 네가 날 많이 무서워 하는 것 같기도 했고.”
“………”
“근데 넌 그것 말고도 안쓰러울 때가 많은 사람이더라. 아,혹시 이런 말 기분 나쁜가?”
이재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저도 제가 박복한 건 알아요.”
“말 함부로 하는 거 아니라더니,그런 부정적인 말을 참 잘도 하시네.”
로더릭의 질문은 그 뒤로도 끊이지 않았다.
“그럼 너,죽으려고 했던 적도 없었다는 거지.”
“네. 누차 말씀드렸잖아요.”
“공작 딸도 아니라는 거지?”
“네.”
“이런,씨. 장인이라고 좀 봐줬는데,괜한 짓 했네.”
로더릭은 진짜 짜증 난다는 얼굴이었다.
사실 그는 가족과 관련해서 가장 꺼내고 싶은 질문이 하나 있었다.
어렸을 때 누가 혹시 널 많이 때렸냐고.
하지만 아무리 다 터놓기로 했어도 네가 막는 자세가 너무 익숙해 보이더라는 이야기를 할 수 는 없었다.
사실 그건 그 자리에 있던 기사들 모두가 동의하는 감상이었다.
거의 전문가 수준의 방어 자세였기 때문이다.
한참을 고심하던 로더릭은 결국 다른 질문으로 말을 돌렸다.
“네가 가끔 아팠던 건…… 나 때문에 그랬던 게 맞는 거고?”
꼬박꼬박 대답해 주던 그녀가 갑자기 입을 다물어 버리자,그는 인상을 찌푸렸다.
입이 어찌나 무거운지 감탄스럽 다 못해 치가 떨릴 지경이었다.
“야,콩알. 우리 이제는 좀 솔직해지자.”
“네. 뭐,폐하 때문이라기보다 는 폐하 주변에 안 좋은 기운들 때문에……”
“넌 대체 나를 어디까지 못난 자식으로 만들 생각이야? 앞으론 절대 그런 짓 하지 마. 난 네가 아프면서까지 그러는 거 싫어. 알아들었어?”
이재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지만, 로더릭의 표정이 점점 무서워지고 있었기 때문에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또 거짓말을 했다는 것 을 깨달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재는 왕이 잘못되는 것만큼은 두고 볼 수 없었다.
그녀는 자신 도 모르는 사이,그에게 너무 많은 것을 걸었다.
“그럼 너, 로렌스 좋아했던 것도 아니겠네?”
“….폐하는 아직도 그게 중요하세요?”
“어. 난 그게 제일 중요한데? 왜?”
이재는 어이가 없어서 웃음을 흘렸지만,로더릭은 지금 몹시 진심이었다.
“나 진짜 성질나서 눈 뒤집힐 뻔한 거 아나? 사실 너 몰래 몇 대 때렸어.”
이재는 깜짝 놀라서 그의 소매를 잡고 흔들었다.
“폐하! 왜 그렇게까지 하셨어요.”
“너 아직도 그 새끼 편…… 그 래,그건 내가 삽질했다.”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했잖아요.”
“몇 대 안 팼어.”
사실은 반쯤 죽여 놨지만,로더릭은 퉁명스럽게 말했다.
몇 대밖에 안 때린 건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그 몇 대가 너무 셌을 뿐이지.
“그 자식이 건방지게 찾아와서 사람을 살살 긁잖나.”
“………”
“사실 너랑 다룬 날도 그것 때문에 질투 나서 괜한 심술부린 거야.”
로더릭은 그녀를 힐끔 바라보았다.
“내가 멍청한 소리 한 건 인정하지만,더는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그랬었구나.”
비로소 상황을 알게 된 이재는 희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로 진심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고 나니 파르르 떤 게 더욱 창피했기 때문이다.
“나,너밖에 없어. 자꾸 집 나간다는 소리 좀 하지 마라. 또 그런 얘기 하면 나 진짜 울 거야.”
이재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지만,그간 속으로 끙끙 앓던 로더릭은 계속 확인받고 싶었다.
“너도 나 좋아하는 거 맞지?”
“네.”
“날 제일 좋아하는 거지.”
“네에.”
“로렌스한테는 마음 아예 없는 거고?”
그러자 이재는 말없이 웃음을 홀렸다.
그녀가 바로 대답하지 않자, 로더릭은 그걸 민감하게 알아챘다.
그는 대번에 인상을 찌푸렸다.
‘이건 또 무슨 상황이야. 왜 답이 재깍 안 나오지? 네가 여기 와서 처음 만난 남자는 나라면서.”
“………”
“그러고 보니까 너 로렌스 볼 때마다 울었네? 설마 그 자식이 정말로 마음에 든 건가?”
로더릭이 너무 서운해서 울컥하자, 이재는 그를 달래듯이 팔을 쓰다듬었다. 왜 울었냐니 참 설명하기 난처한 화제였다.
하지만 그녀는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더는 오해를 쌓고 싶지 않았고,사실은 왕에게 꼭 해 주고 싶은 말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폐하. 솔직하게 얘기해도 되나요?”
“어. 화 안 낼 테니까 그냥 솔직하게만 말해.”
이재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제 안에는 아직도 헤일리의 감정이 조금은 남아 있어요. 그래서 그 사람을 보면 슬폈던 거예요. 가끔은 동요하기도 하고, 애릇함도 느꼈고요.”
솔직하게 말하라고 했지만,막 상 이야기가 듣고 싶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자 로더릭은 인상을 썼다.
그녀는 희미한 미소를 머금었다.
“어떻게 들리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죽은 것들을 볼 수 있는 사람이잖아요.”
“응”
“그런데 살아 있는 사람이 영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사실……많지 않아요. 그래서 저는 페하를 만나기 전엔 자주 지곤 했어요. 아주 볼품없게. 진짜 초라하게.”
이재가 자신도 모르게 씁쓸한 얼굴을 하자,로더릭은 그녀의 손을 쥐었다. 이재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 손을 마주 잡았다.
이재는 곧 목소리에 기를 실었고, 그는 또 이상한 울림을 느꼈다.
“폐하,우리가 죽은 자들보다 조금이나마 나은 건 내일이 있다는 것 정도뿐이에요. 그걸 알아요, 그 목소리에 저항할 수 있습니다.”
그건 살아 있는 자들만이 가진 특권이었다.
원귀들의 시간은 과 거에 멈춰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재가 망자에게 자주 지곤 했던 이유는 그녀 또한 과거에 매몰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과거의 원망에 갇혀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 말은 미안하지만,헤일리의 시간은 지나가 버렸어요. 내일이 없잖아요. 저에게는 있는 거고요.”
“……응.”
“그럼 그 감정들도 같이 흘러가는 게 순리인 거예요. 전 그걸 폐하가 많이 도와준 것 같아요.”
당신이 나한테 새로운 시간을 열어 주어서.
내 인생에 말을 걸어 주어서. 나와 새로운 관계를 맺어 주어서.
“헤일리는 과거에 그 사람을 많 이 좋아했을 거예요. 그렇지만 저는 오늘도 내일도 페하를 좋아할 거예요. 그 사실을 의심하지 말아 달라고요.”
사정을 다 듣고 난 로더릭은 좀 머쪽한 얼굴이었다.
이런 식으 로 진심 어린 고백을 들을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이재는 눈썹 끝을 긁적이는 그 를 보며 빙긋 웃었다.
역시 별로 재미없는 이야기였죠? 묻자,로더릭은 그녀를 꼭 끌어안았다.
“폐하.”
“응”
“좀 창피하긴 하지만…… 저 하나만 더 말해도 될까요?”
“다 하라고 하고 싶은데 나 지 금 기분 엄청 좋으니까,분위기 깰 것 같으면 조금만 있다가 하고.”
그러자 이재는 잠시 머뭇거렸다.
하지만 그녀는 결국 입을 열었고,이어진 말을 들은 순간 로더릭은 멈칫하고 말았다.
“사실 저 지금 하고 싶어요.”
“어?”
“하고 싶다고요.”
잠시 침묵하던 그는 말했다.
“……목적어가 빠지지 않았나?”
“그것까진 좀 봐주시면 안 돼요? 전 나름 용기를 낸 건데요. 아, 혹시 정말 몰라서 물어보시는 건가요?”
로더릭은 얼굴에 열이 올라서 문지르다가 픽, 웃어 버렸다.
아내가 너무 귀여웠기 때문이다.
“야, 콩알.”
“네.”
“내가 나이가 몇 살인데, 그걸 못 알아듣겠냐? 한 번 더 듣고 싶으니까 괜히 이러는 거지.”
계속 얼굴을 문지르며 웃던 그는 그녀를 다시 부둥켜안았다.
“근데 너,지금 해도 괜찮은 건가?”
“뭐가요?”
“몸 안 좋을 거 아니야. 그날 피도 쏟았다면서.”
“쉴 만큼 쉬었어요. 혹시 폐하가 안 좋으신가요?”
이재가 금세 걱정스러워하자, 로더릭은 어처구니가 없는 얼굴을 했다.
“아,또 자존심이 상하려고 하네. 네 남편이 아주 건강하다는 걸 곧 확인시켜 줄게.”
그런데 사실 로더릭도 조금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는 부분은 있었다.
의원도,신관도 대답해 줄 수 없었기 때문에 그는 아내에게 물을 수밖에 없었다.
“근데 나 진짜로 지금 왜 이러는 건가?”
“뭐가요?”
“몸이 이상하게 너무 가볍다. 평소보다 훨씬 건강한 것 같은데.”
“그래요? ……어,그런 것 같네요? 근데 폐하는 원래도 눈에 띄게 건강한 사람이었어요. 보통 사람들은 폐하처럼 그렇게 몇 년이나 못 버려요.”
하지만 기가 평소보다 훨씬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왕의 기세는 지금 거칠 것이 없는 바다 같았다. 이재도 심각해졌다.
내가 역시 그날 너무 큰 걸 때려잡았나.
그간 몸에 축적됐던 귀 기가 함께 빠지면서 도화선이 된 것 같았다.
로더릭은 계속 의아해하며 물었다.
“그래서 왜 이러는 건데?”
“저도 정확한 건 모르겠는데요.”
“그걸 네가 모르면 누가 알아?”
그러자 이재는 그를 흘겨보며 웃었다.
“제가 모든 걸 안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저는 그냥 한 명의 먼지같은 인간에 지나지 않아요.”
“아,그런가. 우리 현명하신 왕후께서도 모르는 게 있으셨군. 아무튼 참 큰일이다.”
“뭐가요?”
“너무 건강해서 두어 번으로 끝낼 자신이 없어.”
이재의 얼굴은 뒤늦게 화끈 달아올랐다.
제가 용기가 너무 과했나 봐요. 소년왕이 정신 차리랄 때 차렸어야 했는데.
그리고 로더릭은 그 모습이 너무 예뻐서 씨익,웃으며 바라보았다.
들뜬 기분을 억누르는 게 쉽 지 않았다.
“난 사실 진작부터 하고 싶었는데,네가 많이 꺼리는 것 같아서 안 밀어낼 때까지 기다렸거든.”
“네. 그건 알아요.”
“근데 역시 아내 말 듣길 잘했어.”
“왜요?”
“하마터면 다른 여자 이름 부르면서 하는 천하의 개자식이 될 뻔했잖나.”
이재는 부끄럽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해서 고개를 푹,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