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llow Your Heart RAW novel - Chapter (81)
마음이 이끄는 대로-81화(81/134)
#13장. 너에게만 진짜 나를 알려 줄게
#81.
「3년 전쟁이 격화되던 시점,
가장 먼저 연합군에 투항한 가문은 던컨이다.
그다음이 러셀,그리고 멜런.
던컨들은 절대 틀린 선택을 하지 않는다.
– 후대 왕들에게 전하는 글 25 페이지 중에서」
회의장에서는 군부의 보고가 한 창이었다.
“또 뚫릴 뻔했다?”
국왕은 이제 화도 안 난다는 얼굴이었다.
비스듬히 앉아 계속 말해 보라고 고개를 까딱일 뿐이었다.
지레 찔린 군부 귀족들은 그 표정이 오히려 경멸 같았다. 마치 어디까지 무능할 거냐고 말하는 것처럼. 사실이 그랬다.
“송구합니다. 보초병들이 또 성문을 열려고 했습니다. 이번엔 하나가 아닙니다.”
“서부군에는 지능이 모자란 자들만 모아 놓은 건가?”
로더릭은 마침내 얼굴을 찌푸리 고 말았다. 다들 헛기침이나 하며 시선을 피할 때,왕을 빤히 바라 볼 수 있는 사람은 제이드 정도 뿐이었다.
폐하,서부군엔 왕제도 가 계십니다. 폐하 동생이요.
인상을 쓴 로더릭은 뭔가를 이야기하려고 했다.
보초병들의 업 무 체계를 개편하라고 한 지가 언제인데 또 이런 일이 생겼냐는 문책이었다.
그런데 그는 잠시 멈칫하고 말 았다.
지금 그의 머릿속으로 이상한 직관 하나가 스쳐 지나갔기 때문이다.
“몇이었나? 보초병들 말이다.”
“당일 성곽을 담당하던 이들은 총 마혼이었고, 문제를 일으킨 보초병은 셋입니다. 셋 모두 한 조 였습니다.”
“심문은 해 보았나?”
“하긴 하였습니다만…… 제대로 실토한 것이 없다 합니다.”
군부 귀족의 목소리는 기어들어 가듯 점점 작아졌다.
자랑스레 보 고할 만한 사안이 아니었기 때문 이다.
하지만 로더릭은 고개를 짧게 끄덕이며 제법 선선한 태도로 말했다.
“데려와.”
“예?”
“전부 데려와서 내 앞에 앉혀 놓으라고.”
왕이 이상한 것을 요구하자,군부 귀족들은 난처한 얼굴이었다.
“폐하,군법에 따라 이미 즉결 처분하였습니다.”
로더릭은 이번에야말로 진짜 짜증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는 고개를 돌려 자신의 친우 쪽을 바라보았다.
서부군 대장인 2기사단장은 입단할 때부터 1기 사단장이 발탁한 이였기 때문이다.
“지능이 떨어지는 건 2기사단 장도 마찬가지였나 보네.”
“………”
“서부군 수뇌부는 아직도 뭐가 가장 중요한지 모르나?”
화살이 날아오자 제이드는 시선 을 회피했고,대신 답변한 것은 군부 총 책임자인 노귀족이었다.
“폐하,군율이 그러합니다. 병사들의 기강을 잡기 위해서는 본보기가 필요합니다. 게다가 꼭 제 정신이 아닌 것처럼 대화가 통하지 않는 상태였다고 합니다.”
그 말에 로더릭의 얼굴은 더욱 심각해졌다.
얼마 전까지는 매수라고 생각했지만,새로운 의심의 싹이 자라났기 때문이다.
저것은 혹시 자신이 겪었던 것과 비슷한 증상이 아닐까.
물론 말이 되지 않는 소리였다.
그런데 말이 안 되는 일들이 계속 일어나고 있다는 걸 중명해 준 사람이 있었다. 다름 아닌 자신의 아내였다.
이재는 누군가 왕에게 저주를 퍼붓고 있다고 말했다.
그녀는 그걸 가리켜 살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살을 날린 사람은 누 구일까. 던컨 공작일까.
국왕은 공작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평소 같았으면 말을 보탰을 던컨 공작은 어쩐 일로 깊은 생각에 잠겨 있다.
‘왕후한테 물어볼까.’
사실 이 문제를 의논하기 가장 좋은 상대는 왕후였다.
그런데 로더릭은 썩 내키지가 않았다.
아내한테 또 짐을 지우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누군가 당신을 저주한다며 서럽게 울던 모습이 자꾸만 아른거렸다.
그렇게까지 목 놓아 우는 것을 본 건 또 처음이었다.
왕은 언제부턴가 아내를 보면 그저 애잔하고 짠하기만 했다.
던컨일 때는 던컨이라서 애잔했다. 넌 무슨 잘못을 해서,내 편을 들면 가문을 배신할 운명을 타고난 걸까 싶어서.
던컨이 아닌 걸 알고 나니 다른 이유로 애잔해지고 말았다.
너ㄴ 왜 그런 능력을 가지고 나한테 와서 그 고생을 해야 했던걸까 싶어서.
이 결혼은 자신에게는 일생일대의 행운이었다. 아내가 아니었다면, 자신은 역사 속에 정사를 그르친 폭군으로 남았을 것이다.
하지만 과연 아내에게도 이 결혼이 행운이었을까.
한숨을 쉰 로더릭은 군부 쪽에 명했다.
“또 그런 일이 발생하면,즉결 처분 없이 성으로 압송해라. 내가 직접 심문하겠다.”
“폐하,다시는 이와 같은 일이 없게 할 것입니다.”
그러자 왕은 회의가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웃었다.
그게 전혀 좋은 의미가 아니라는 걸 보는 이들은 다 알 수 있었다.
먹이를 눈앞에 두고 물어뜯고 싶어 하는 육식 동물 같은 웃음이었다.
“그대가 나라면,그 말을 믿을 수 있겠나?”
“………”
“나는 기회를 계속 줬다. 그렇 다면 너희도 나한테 신뢰를 줬어야지.”
내 아내의 반만큼이라도 말이다.
“입이 있으면 아무나 대답을 해 봐라. 기회를 주면 신뢰로 갚는 게 주군과 가신 간의 도리가 아니었나?”
“………”
“여러 번 말하게 하지 말고,바로 전갈 띄워. 추후 이런 일이 발생하면 내가 심문하겠다고. 제이드, 왕제에게도 따로 전갈을 보내라.”
“예,폐하.”
왕은 예전처럼 격분하는 일이 없었고,그의 말은 차갑고도 이성적이었다.
회장 안의 귀족들은 생각했다.
폐하가 언제 저렇게까지 냉철해 지셨을까.
답은 하나였다. 국왕은 국혼 이 후로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버렸다. 왕후가 그러하듯이.
왕의 말에는 어느 하나 그른 것이 없었고, 누구도 입을 떼지 못했다.
회장 안에는 무거운 침묵 만이 감돌았다.
회의를 파하고,복도를 걷고 있 는 로더릭의 얼굴은 제법 평온했다. 그의 머릿속이 아까와는 다른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제이드에게 물었다.
“이재 지금 어딨나?”
“예?”
“왕후 어디 있냐고.”
사람들은 국왕이 왕후에게 향하리란 것쯤은 예상하고 있었다.
그 들이 당황했던 것은 왕후를 지칭 하는 단어가 몹시 낯설었기 때문이다.
제이드는 내가 지금 뭘 잘못 들었나 싶어 조심스럽게 되물었다.
“폐하,왕후 폐하의 존함은 그게 아니지 않습니까.”
하지만 국왕은 태연하기만 했다.
“애칭이야.”
“……저,송구하지만 애칭도 그게 아니지 않습니까.”
코,콩알하고 여우 아니었습니까?
궁금하시진 않겠지만 저희끼리는 인간 수면초,친왕파 단신 좌장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새 애칭이야. 예쁘지.”
“……예. 그런데 그게 무슨 뜻 입니까.”
“그러게. 그건 한번 물어봐야겠네.”
사람들은 완전히 할 말을 잃어 버렸고,로더릭은 그들의 얼굴을 보며 픽 웃었다.
왕후의 진짜 이름은 이재였다.
하지만 개명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왕후는 사실 헤일리가 아니라고 선포할 수는 더더욱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면 오히려 그 녀가 다치게 될 테니까.
왕후는 헤일리라는 이름도 좋다 고 말했지만,로더릭은 이런 식으로라도 그녀의 이름을 되찾아 주고 싶었다.
사실 왕이 잘못 생각하고 있는 부분도 있긴 했다.
무려 왕후의 이름이었다. 그게 헤일리가 됐든, 이재가 됐든 소리 내어 부를 수 있는 사람은 애초 부터 국왕밖에 없었다.
개명을 하 든,선포를 하든 그건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왕후는 어디 있는데.”
답변을 고한 것은 시종장이었다.
“사관한테 가셨답니다.”
“그래?”
로더릭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그 콩알만 한 게 또 무슨 짓을 하려고 이러는 건가 싶었다. 그러자 로더릭은 그녀가 또 안쓰 러워지고 말았다.
그는 이제는 알고 있었다. 그녀가 무엇 하나 본인을 위해 해 온 일이 없다는걸.
그녀 자신을 위한 유일한 소망이 딱 하나 있다면 아마도…….
‘……발길이 닿는 대로 떠돌아 다니고 싶었어요.’
그것 하나뿐일 것이다. 하지만 그 유일한 소망 하나를 들어줄 수가 없어서 그는 더 좋은 남편 이 되는 것은 포기하기로 했다.
나는 너 못 놔줘. 이제 너 혼자서는 절대 못 가.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로더릭은 기다리고 있던 시종들에게 말했다.
“왕후궁에서 기다리겠다.”
그러자 시종과 기사들이 동시에 움직이려 들었지만,그는 손을 저었다.
“따로 기별 안 해도 된다. 왕후 재촉하지 마라.”
제이드는 자신의 친우를 빤히 바라보았다.
워……. 갈수록 큰일이네.
왕후를 이쪽으로 끌어오라고 한 지 석 달이 조금 넘었다.
왕은 끌 려간 것은 당연하고,이미 그쪽에 영혼까지 팔아버린 지 오래였다.
제이드는 깨달음을 얻었다. 사랑이란 정적 가문이라는 장애물 정도는 우습게 뛰어넘을 수 있는 것이었다.
사관에게서 역사서를 몇 권 빌린 이재는 호숫가로 향했다.
특별 히 소년왕에게 할 말이 있어서는 아니었고,습관적인 산책로였다.
그녀는 화단에 우두커니 걸터앉아 책들을 대충 훌어보았다.
온통 알아볼 수 없는 문자투성이였다.
사관은 그냥 그런가 보다 하며 대장을 작성했으나,이재를 이상하게 생각한 건 오히려 시녀들이 었다. 국왕이 왕후에게 저 문자를 가르쳐 준 적이 없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재는 책장을 천천히 넘기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불립문자. 진리는 문자로 세우는 것이 아니다.”
그렇지만 사실 내 방에는 그 문자를 읽어 줄 고성능 리더기가 있지.
역시 사람은 머리를 써야 해.
소년왕이 모습을 드러낸 건 그 녀가 흐뭇하게 웃고 있을 때였다.
강대한 기운을 느낀 이재는 어깨 위를 힐끔 바라보았다.
그런데 소년왕은 평소와 다르게 그녀의 얼굴을 유심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왜 그래요? 제 얼굴에 뭐 묻었어요?”
이재는 금세 불안한 얼굴로 자신의 뺨을 매만졌다. 혹시 이 박복한 관상이 그새 더 나빠진 건가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년왕의 입에서는 그녀의 예상과 전혀 다른 말이 홀러 나왔다.
-너 얼굴 좋아졌다?
“제가요? 그런가요?”
-그래. 매일같이 죽상을 하고 앉아있더니만. 뭐 좋은 일이라도 있었나 보지?
딱히 그런 일은 없었는데.
이재는 고개를 저었으나,소년 왕은 피식 웃었다.
짓궂은 푸른 눈동자는 국왕을 연상시켰다. 그는 알 만하다는 둣 물었다.
-로더릭이 잘해 주냐?
“………”
-밤에 놔주긴 하고?
뜨끔해진 이재의 동공은 여기저기를 방황했다.
그게 설마 얼굴로도 표가 나나요? 이게 바로 선조들께서 말씀하신 음양오행의 이치인가?
그런데 사실은 성 사람들도 모두 느끼고 있는 부분이었다.
국왕과 왕후는 희한하게 한 사 람의 상태가 좋아지면 다른 한 사람의 상태는 나빠지곤 했다.
한 쪽이 멀쩡하면 다른 한쪽은 앓아 누웠다.
앓아누웠던 사람이 일어 나면 다른 사람은 또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데 요즘은 그 총량의 법칙을 위배하는 것처럼 둘 다 얼굴이 반질반질했다. 사실 가장 좋은 건 표정이었다.
당혹스러워하던 이재는 발끈했다.
“이건 예의가 아니에요. 귀신이라도 이러면 안 돼요. 남의 부부 사이에 필요 이상의 관심을 가지지 말란 말이에요.”
그녀가 이무지게 따졌지만,소년왕은 시큰둥했다.
-사이가 좋으면 좋은 거지,결 혼까지 해 놓고 별걸 다 창피해 하네.
이재는 할 말이 없어져서 괜히 잔잔한 호수만 뚫어져라 노려보 았다.
그러다 문득 생각나는 화제가 있어 냉큼 말을 돌려 버렸다.
“저기 근데요.”
-뭐.
“지난번에 페하한테 살을 날린 사람 있잖아요.”
-……..
“그건 누구예요?”
이젠 오히려 소년왕이 지긋지긋 하다는 표정이었다.
그만 포기할 때도 되지 않았냐는 의미였다.
-너도 참 보기보다 지독한 구석이 있다.
“이 정도도 없으면 산 사람이 어떻게 원귀랑 싸울까요.”
왕에게는 더 이상 이런 짓을 하지 않기로 약속했다.
하지만 이재는 그럴 수가 없었다. 그녀는 이게 끝이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재가 없앤 건 원귀 수십이었다.
잘 모르는 사람들은 그녀가 원귀를 멸하면서 공격을 했다고 생각하겠지만,그녀가 한 건 공격이 아니라 방어였다.
영산할매가 보았더라면 저 어설픈 년,하며 혀를 찼을 법한.
저주는 반드시 저주의 시전자를 찾아야한다. 그 정도로 강력한 살이라면, 날리고 있는 사람을 알아야만 끝을 볼 수 있는 것이다.
페하, 죄송해요. 제가 지난번에 또 거짓말을 했어요.
하지만 저는 이미 여기서 멈출 수가 없게 된 것 같아요. 그러기에는 제가 당신을 너무 좋아해요.
“이제 괜찮으니까 그냥 알려 주세요.”
“………”
“천기라서 알려 줄 수 없다고 하셨죠? 하지만 지난번에 보셨잖아요. 저는 어떤 벌도 감수할 준 비가 되어 있어요.”
“………”
“혹시 제가 너무 하찮아서 저 하나로는 대가를 치를 수 없는 건가요?”
가만히 듣고 있던 소년왕은 대 가라는 말에 비식거리며 웃었다.
그 웃음은 조소 같기도 했지만, 안타까움을 담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실제로 그랬다. 그에게 인간은 미력하고 어리석은 존재였지만, 동시에 안쓰럽고 사랑스러운 존재였다.
강이재.
바로 너로 대가를 치르게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라는 걸, 넌 알 수 없겠지.
난 로더릭의 수호령이고,로더릭이 바라는 건 그게 아니야.
그리고 소년왕을 바라보던 이재는 느꼈다.
저건 정말로 인간의 얼굴이 아니구나. 인간은 저렇게까지 여러가지 얼굴을 한 번에 가질 수가 없다.
그녀는 자신 주변을 휘몰아치는 강대한 기운에 넋을 잃고 그를 바라보았다.
신성한 공기는 성 안을 넓게 훑고 지나갔다.
마치 정화를 하는 것 같은 음직임이었다.
소년왕은 곧 그 비범한 기운을 거두며 먼 곳을 옹시했다.
-강이재.
“예.”
-다시는 같은 말 하지 않겠다. 천기를 이런 방법으로 알려고 들지 마. 그 벌은 네가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무거워.
그 벌은 너 혼자 받는 게 아니고,너는 여기서 죽어선 안 돼.
-그만 가 봐. 로더릭이 방에서 기다린다.
원하는 답변을 얻지 못한 이재는 한숨을 쉬며 시선을 떨구었다.
하지만 왕이 기다린다는 소리에 옷을 툭,툭 털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녀는 소년왕에게 공손히 허리를 숙였다. 간구하던 답은 아니었으나,그가 오늘도 자신의 편에서 조언을 해 주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