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llow Your Heart RAW novel - Chapter (82)
마음이 이끄는 대로-82화(82/134)
#82.
이재는 방문을 빼꼼 열고 고개 를 내밀었다.
꼭 남의 방에 온 것 같은 태도였다.
로더릭도 꼭 자신의 방인 것처럼 고갯짓을 했다. 왔으면 얼른 침대로 오라는 신호였다.
“폐하. 왜 이렇게 일찍 오셨어요?”
“우리 콩알 보고 싶어서 일이 안 된다.”
어어? 그럼 안 될 텐데? 이재 는 웃음을 홀리며 안으로 들어섰다.
하지만 로더릭은 곧 한쪽 눈썹을 들어 올렸다.
그녀가 침대로 오지 않고,테이블 앞에 앉았기 때문이다.
이재는 테이블 위에서 뭔가를 정리하며, 종이에 메모를 하기 시작했다.
결국 로더릭은 침대에서 일어섰다.
이재에게 다가간 그는 그녀의 겨드랑이와 다리에 손을 끼워 넣고 들어 올렸다.
“으악! 뭐 하는 거예요.”
“안아서 옮겨 주길 기다리는 것 같길래.”
“그런 적 없는데요.”
그는 들은 척도 안 하고 그녀를 침대 위에 내려놓으며 따라 올라왔다.
굉장히 위험한 신호를 감지한 이재는 다시 침대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로더릭은 아내의 탈주를 아주 손쉽게 막았다.
그는 이재의 허리에 팔을 감고 질질 끌어왔다.
로더릭의 품에 안긴 그녀는 작은 손으로 가슴팍을 밀어내려고 애썼다.
“폐하,저 바쁘단 말이에요.”
로더릭은 의아한 얼굴이었다.
“바빠? 뭐가?”
“할 일이 많아요.”
“그러니까 뭐가. 누가 내 아내를 왕보다 바쁘게 만드는 건데.”
바로 너예요.
이재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사실은 할 일이 태산이었고, 뭐부터 해야 하는지가 유일한 고민일 뿐 이었다.
“일단은 부적을 좀 써야겠어요.”
국왕과 그녀의 방은 지난 일 이후로 결계가 모두 망가진 상태였다.
물론 국왕의 상태는 무척 좋았다.
너무 좋은 나머지 이재는 가끔 소년왕을 볼때의 기분마저 느끼고 있었다.
어지간한 원귀가 접근을 못 하는 것은 물론이고, 시시한 잡귀는 왕의 근처에 오면 스러지곤 했기 때문이다.
로더릭은 여전히 의아한 얼굴이었다.
“그거 전부 돌려줬잖아. 혹시 뭐가 빠졌나?”
이재는 난처한 웃음을 흘렸다.
누굴 탓하고 싶진 않았지만,지난 부적은 이미 쓰레기가 된 지 오래였다.
“부적은 원래 찢어지거나 훼손 되면 다시 사용 못 해요.”
“……그런 거였어?”
“네.”
기사들은 대체로 손놀림이 거친 자들이었다.
그 종이가 무엇인지도 알지 못했다.
적어도 파자한 한자 정도는 무사해야 쓸 수 있는데,벽에 붙어 있던 건 이미 너덜너덜해져서 회생 불능이었다.
그녀가 건질 수 있었던 건 함에 넣어 둔 것 정도 였다.
왕은 그녀의 말에 당황한 기색이었다.
처음 알게 된 사실이 낯설기도 했지만, 아내의 물건을 망가뜨렸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괜스레 미안해진 그는 눈썹 끝을 긁적였다.
“이재.”
“네?”
“제이드 발로 한 대 까 줄까?”
이재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왕을 바라보았다.
‘제이드를요? 갑자기 왜요?”
“네가 정성 들여 만들었는데 못 쓰게 만들었잖아.”
그녀는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참 이상한 소리를 하는구나,싶었기 때문이다.
침대 밖으로 탈주하기 위해 기회를 엿보던 그녀는 몸에 힘을 풀었다.
그리고 의아해하는 그의 양손을 잡았다.
“폐하. 제이드는 페하를 걱정해서 그런 거예요. 아시죠?”
“………”
“그런 사람은 인생에 두 번 만 나기 어려워요. 사실 어떤 사람한테는 한 번도 어렵고요. 또 어떤 사람은 그런 인연이 와도 알아채 질 못해서 지나치곤 해요.”
“………….”
“그걸 귀인이라고 합니다. 부적이야 또 쓰면 되는 거지만,폐하는 옆에 그런 사람이 있는 걸 감사하게 생각하셔야 해요.”
빙긋 웃는 이재의 얼굴에는 망가진 부적에 대한 어떠한 미련도없어 보였다.
오히려 전할 말을 다 하고 난 뿌듯함과 후련함만이 가득했다.
그래서 로더릭은 훨씬 더 미안해졌다.
“어쩌냐. 이렇게 착해서.”
“………”
“너도 참 큰일이다.”
“……전 그렇게 착한 인간이 아니라니까요.”
이재는 그런 말은 별로 듣고 싶지 않았다.
무안했던 그녀는 대충 대꾸하며 또 침대 밖으로 빠 져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로더릭은 그녀를 완전히 침대에 눕히고 그녀의 얼굴에 정신없이 키스를 퍼부었다.
그는 간 지러워서 몸을 잔뜩 움츠리고 있는 이재에게 말했다.
“무슨 말인지는 이해했어. 제이드가 나한테 중요한 사람인 것도 잘 알고 있고.”
“………”
“그런데 이재.”
‘…네.”
“내 귀인은 아마 너이지 싶다.”
이재는 그 말에 눈 끝을 접으 며 웃었다.
그러나 그녀는 미소 지으면서도 고개를 저었다. 자신은 국왕이나 기사단장처럼 거창한 기운을 품고 태어난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왕의 말이 뭉클하고 고맙긴 해서 그녀는 그를 마주 안았다.
이재는 결국 두 번의 탈주 시도 끝에 오늘의 할 일을 조금만 뒤로 미루기로 했다. 쌓아 둔 일감이 산더미 같긴 했지만, 신혼인데 이 정도 여유는 부려도 괜찮지 않을까.
그리고 살구색 여우를 꾀어내는 데 성공한 로더릭은 씨익,웃었다.
어찌나 자제심이 강한지 같이 노는 게 쉽지 않았다.
사실은 그런 점마저 좋아하고 있었다.
몹시 즐거운 기분으로 그녀를 감상하던 로더릭은 충동적으로 말을 홀렸다.
“너를 어떻게 매번 둘러업고 다닐 수도 없고.”
“………”
“우리 재주 많은 부인께선 여기서 좀 더 작아지는 재주 같은 건 없으신가?”
이재는 너무 어이가 없어서 그 를 흘겨보았다.
“그런 재주가 대체 어디 있어요. 들어 본 적도 없네요.”
“왜. 많이도 안 바란다. 넌 지금도 콩알이라 조금만 더 작아지면 충분히 주머니로 들어오지 싶은데.”
“………”
“그러지 말고 힘 좀 써 봐.”
이젠 안 작다고 말하기도 지쳐 가고 있었다.
이재는 그래요,한번 해 볼게요,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선선한 대답이 웃겨서 로더릭은 그녀를 끌어안은 채 살짝 흔들었다.
그리고 그가 자신을 칭칭 옭아 매며 다리를 올려놓자, 이재는 윽, 하며 인상을 찌푸렸다.
그녀 가 작다는 자각은 있어도 본인 체격이 얼마나 건장한지는 가끔 잊어버리는 것 같았다.
저기요. 폐하도 거울을 좀 보셔 야 할 것 같네요.
“폐하.”
“왜.”
“자꾸 그렇게 제 위에 다리 을 려놓으시면 전 무겁고 아파요.”
로더릭은 얼른 다리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이번에는 이재를 자기 몸 위에 눕히며,그녀의 가슴께를 꼭 끌어안았다. 새로운 자세였다.
이재는 이건 또 뭐지,싶어서 천장을 바라보며 눈을 깜빡거렸다.
왕은 베개와 담요에 이어 침대도 되어 줄 생각인 것 같았다.
“이제 좀 만족해?”
“아니요. 이 침대는 너무 딱딱 한 것 같아요.”
“아,이불은 무겁고,침대는 딱딱하고.”
“………”
“그냥 모르는 척 좀 안겨 줄 순 없나? 넌 남편 품이 그렇게 싫어?”
퉁명스럽게 말한 로더릭은 다시 한번 자세를 바꾸어 그녀를 자신의 위에 앉혀 놓았다.
이재는 그 의 단단한 가슴에 손을 얹고 그 를 내려다보았다. 불평스러운 말 과는 달리 그의 푸른 눈동자에는 즐거움만이 가득했다.
사실 이재는 요즘 힘 좋은 남 편이랑 사는 건 이런 거구나,느끼고 있었다. 획,하면 이 자세가 되어 있고,또 획,하면 저 자세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별반 힘을 들이지 않고도 그녀를 온갖 부끄러운 자세로 만들곤 했다.
이재는 그의 팔 힘에 의존해 침대 위를 날아다니는 기분이었다.
스스로 안 움직여도 되니 편 한 점은 있었다.
“이재.”
“네.”
“부인.”
“네에.”
“우리 한번 할까?”
이재는 금세 새초롬한 눈매를 하고 그를 흘겨보았다.
방에서 기 다리고 있던 저의가 의심스러워 졌기 때문이다.
“이럴 생각으로 일찍 오셨구 나?”
정답이었다.
“보고 싶어서 온 거라니까.”
복수 정답이었다.
이재는 잠시 고민했다.
왕은 요 즘 걸어 다닐 때마다 어깨로 원귀를 치고 다니는 수준이었다.
그 렇지만 그녀는 방을 계속 이 상 태로 두는 게 마음에 걸렸다.
혹시 그때보다 더 강력한 살이 날아온다면,이재는 이 다 무너진 결계로는 막을 자신이 없었다.
유비무환. 준비가 철저하면 근 심이 없다.
이재는 결국 유보적인 답변을 내어놓았다.
“어제도 했잖아요.”
“아아,어제 하면 오늘은 하면 안 된다는 불문율이 있었나 보 네.”
“이렇게 또 하나 배운다.”
물론 그런 불문율은 없었다. 하지만 이재는 자신이라도 이렇게 말하지 않으면 남편이 아침, 점심, 저녁으로 하려 든다는 걸 알고 있었다.
같은 침대를 쓰면서 저걸 그동안 어떻게 참았지,의구심이 들 정도였다.
혹시 신혼이라 유독 더 한 건가 싶었던 그녀는 물었다.
“근데 폐하. 원래 다들 이렇게 많이 하나요?”
로더릭은 어깨를 으쑥해 보였다.
“모르지, 뭐. 남의 침대 사정까지 알아서 뭐 하게. 관심 없다.”
“아니,저도 크게 관심이 있다 는 건 아닌데. ……그냥 좀 궁금 했어요.”
이재는 우물쭈물했고,로더릭은 픽 웃었다. 동글동글한 아내의 눈에 진짜로 궁금중이 깃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야,콩알.”
“네?”
“넌 다른 사람이랑 결혼한 게 아니고 나랑 결혼한 거야. 네 남편은 나라고.”
“………”
“그럼 우린 우리가 하고 싶을 때 하면 되는 거 아닌가? 뭐, 남들 평균 내서 딱 그만큼만 하고 싶어?”
수긍이 가는 말이라 그녀는 고 개를 끄덕였다.
로더릭은 그런 그 녀를 보며 씨익,웃었다.
그의 살구색 여우가 넘어오기 직전이라는 걸 느꼈기 때문이었다.
어찌나 똘망똘망하고 눈치가 빠른지 얕은수로 구슬리는 건 불가능했다.
거의 다 꼬여 냈다 싶었던 로 더릭은 확답을 받아 내기 위해 마지막 강수를 뒀다.
“그래서 정말 오늘은 안 할 거야? 할 생각 없으면 내려가고. 너,이러고 있는 거 아주 자극적이야.”
그러자 이재는 그를 빤히 바라 보았다. 사람을 꿰뚫어 보려는 시선이었다.
그녀는 곧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까요?”
그녀가 엉금엉금 기어서 내려가려고 하자,로더릭은 얼른 그녀의 골반을 붙잡았다.
“이씨. 그런다고 진짜 내려가냐? 한 치의 망설임이 없네.”
“그러니까 왜 사람을 떠봐요.”
이재가 배시시 웃자,로더릭은 깊은 한숨을 쉬었다.
진짜 예쁘고 얄밉고 돌아 버리겠다는 표정이 었다.
“그래서,이런 걸로 네 남편 약 올리면 재밌나 보지?”
“뭐,조금요?”
“그래. 너라도 재미있으면 된거지 싶다.”
몸을 들썩이며 웃던 이재는 달래듯이 그의 팔뚝을 살살 쓰다듬 었다.
“한 번만 할 거예요. 저도 하고 싶은데 다른 할 일이 있어서 그런 거니까 섭섭해하면 안 돼요.”
“뭐,이런 거 가지고 서운해. 그러기엔 난 너한테 숨 쉬듯이 차여 왔다.”
아니, 내가 또 언제 그렇게 사 람을 찼다고 저러지. 괜한 모함에
이재는 고개를 기우뚱했다.
그러고는 또다시 엉금엉금 기어서 내려가려고 했다.
하지만 로더릭은 이번에도 그녀 를 붙잡았다.
의아해하며 내려다보는 이재에게 그가 물었다.
“네가 위에서 해 볼래?”
계속 태평하게 있던 이재는 그 순간 눈에 띄게 움찔했다.
그녀가 너무 움찔하니까, 말을 꺼낸 로더릭도 멈칫했다.
그건 이쪽 방면에 가방끈이 짧은 그녀에게는 부담스러운 제안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무척 익숙한 자세이기도 했다.
왕이 자신을 위에 앉혀 놓고 얘기하는 걸 워낙 즐겨했기 때문이다.
이재는 그를 몹시 의심스럽게 바라보았다.
혹시 처음부터 이걸 노린 건가 싶었다.
“……폐하는 계획이 다 있으셨군요?”
“그럼. 왕이 큰 그림을 그려야지.”
“그런 그림까지 그릴 필요는 없지 않나요?”
“나도 그냥 갖다 붙인 거야.”
하지만 그는 결국 이재를 들어 직접 침대로 내려 주었다.
말은 안 해도 그녀의 얼굴에서 주저하 는 기색을 읽었기 때문이다.
로더릭은 속내를 들키고 무안해 하는 그녀가 귀여워서 조금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