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llow Your Heart RAW novel - Chapter (83)
마음이 이끄는 대로-83화(83/134)
#83.
깜빡 잠들었던 이재가 눈을 뜬 건 목덜미에 느껴지는 간지러운 감촉 때문이었다. 국왕은 팔베개를 해 준 채 그녀를 끌어안고 있었고,목에 얼굴을 파묻고 있었다.
그는 이재의 체향에 푹 빠져서 몇 번이고 흡입했다.
“윽,또 뭐 하는 거예요.”
“심신 안정 중이야. 아, 수양이라고 했나?”
로더릭은 그녀 덕분에 정신이 맑아졌다는 확답을 들은 뒤로는 저런 농담을 하곤 했다. 정말 아무데나 다 써먹곤 했던 것이다.
“……그런 거 아니라니까.”
“아니긴 뭐가 아니야.”
“그냥 부적이랑 진언 때문에 그런 거라고요.”
“참 이상하네. 내가 이러고 있 으면 마음이 편해진다는데,왜 내 마음까지 네가 판단하지?”
“………….”
“네 취향은 나보고 판단하지 말랬으면서.”
로더릭은 그녀의 나무 팔찌를 힐긋 바라보며 대꾸했다.
할 말이 없어진 이재는 가만히 있었고,그 는 급소를 내어 준 여우를 보며 음흉하게 웃었다.
그는 다시 이재의 목덜미에 코를 파묻고 체향을 흡입했다.
정말 안정제라도 된다는 듯한 태도였다.
이재는 너무 간지러워서 몸을 떨었다.
왜 꼭 저기에 대고 숨을 쉬는 걸까. 거기만 향이 다른가?
그녀는 사실 아직도 이런 쾌락 이 낯설었다. 몰랐던 감각들이 깨 어나는 기분은 아찔했고,가끔은 두려울 정도였다. 절제라는 건 어 느 순간 저 멀리 사라져 버리고 자꾸만 욕망에 무너지곤 한다.
이재는 궁금했다.
세상 사람들은 지금껏 다들 이렇게 사랑을 나누어 왔던 걸까? 서로에 대한 뜨거운 열망을 가지 고, 다른 것은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는 것처럼?
결국 이 간지러운 감각을 참을 수 없었던 이재는 몸을 돌려 그를 밀어냈다.
“그만해요. 기분 이상하단 말이 에요.”
“몰랐어? 이건 너 기분 이상하라고 하는 거야.”
왕이 또 놀리기 시작하자,이재는 그를 흘겨보았다.
“와. 방금 전엔 폐하 마음 편안 하려고 하는 거라더니. 말이 금세 바뀌시네요?”
“………….”
“사실 저도 믿진 않았어요.”
로더릭은 입가를 가린 채 웃음 을 홀렸다.
그도 그만 놀려야 한 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살 구색 여우가 분개하는 모습이 너 무 귀여웠기 때문이다.
그는 이재를 끌어안으며 입술을 포개려고 들었고,그녀는 가슴팍을 밀어내며 방어에 나섰다.
“어어,어어? 하지 마세요? 그럴 기분 아니에요.”
“그럼 그럴 기분으로 만들어 줄 게. 나 노력할게. 잘할 수 있어.”
이재는 너무 어이가 없어서 순 간적으로 헛웃음을 홀리고 말았다.
그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곧 바로 입술을 베어 물었다.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를 입맞춤이었다.
아내가 저녁에 중요한 일 이 있다고 하니 그는 관계 후의 아쉬움을 키스로 계속 달래고 있었다. 이 정도면 그냥 한 번 더 하는 게 낫지 않았을까,하는 의문은 둘 다 갖고 있었다.
로더릭은 한참 동안 혀를 얽다 가 떨어졌다.
그리고 타액으로 범 벅이 된 그녀의 입술을 엄지로 훔쳤다.
“솔직히 말해 봐.”
“뭘요?”
“네 타액에도 뭔가 효능이 있는 거지?”
아니, 이건 또 무슨 소리야.
이재는 작은 주먹을 불끈 쥐고 파르르 떨었다.
“그런 게 대체 어딨어요?”
“아니야,잘 생각해 봐. 있을 거야.”
“없다니까요!”
이재가 발끈했지만,로더릭은 능청스럽게 말했다.
“이상하다. 왜 없을까? 키스만 하면 기분이 날아갈 것 같은데. 막 힘이 불끈불끈 나는데. 맞는 것 같은데.”
“눈물도 그런 것 같고.”
“뭐,그것도 그런 것 같네.”
그는 아직 젖어 있는 그녀의 눈가를 한 번 쓸고,입가를 다시 훔쳤다.
그리고 시선을 슬쩍 내렸다가 원위치했다.
이재의 시선도 무심결에 따라 내려갔다.
그의 눈이 향했던 곳을 알아챈 그녀는 더는 견딜 수 없었다.
“으아아,폐하,제발 그만해요.”
여우는 결국 포효하고 말았다.
그러나 얼굴을 가리고 숨어서 하 는 포효에는 야성이 없었다.
“뭘 그만해.”
“변태같이 아까부터 계속 무슨 소리를 하는 거예요.”
로더릭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부인께선 날 너무 과소평가하시네. 네 남편은 변태 같은 게 아니야. 그냥 변태지.”
“그렇게 쉽게 인정하지…… 말아 주시겠어요?”
이재는 울상이 된 얼굴로 이불을 끌어 올리며 숨었다.
그녀도 어지간한 농담은 다 받 아칠 수 있었다. 하지만 남편은 침대에서만큼은 어지간하지 않았다. 그녀보다 훨씬 수위가 높았던것이다.
평상시에는 전부 다 져 주면서 또 이럴 때는 져 주는 법이 없었다.
로더릭은 이불을 슬쩍 들추며 물었다.
“왜 또 숨어? 너도 유부녀라 이런 건 부끄럽지 않다면서.”
“아니에요. 잘못했어요. 이 입 이 주제를 모르고 까불었네요.”
“편하게 까불어라. 나도 분발할 게.”
이재는 이를 악물었다.
“폐하는 여기서 더 분발하면 안 된다고 제가 분명히 말…… 했잖아요?”
“왜 그 뒤는 빼먹지? 그렇지만 나는 분발할 거라고도 말했잖아?”
“이런 상상력에 한계란 없는 거다.”
그가 쉬지 않고 놀리자,이재는 결국 참지 못하고 단단한 팔뚝을 손바닥으로 찰싹 때렸다.
그러자 로더릭은 과장되게 윽,하는 소리 를 냈다.
“이젠 막 때린다?”
“………….”
“아프셨냐고도 안 물어보냐?”
“폐하,상식적으로 그게 아프겠어요?”
로더릭은 감탄했다.
“아,발전 속도가 눈이 부시네.”
“………….”
“내 부인이 이 정도라고 자랑하고 싶다.”
이재는 입을 꾹 다물었고,웃음 을 홀리던 로더릭은 그녀의 관자 놀이와 뺨에 초옥, 입을 맞추었다. 그는 아까부터 계속 이렇게 놀리고,달래고,뽀뽀하기를 반복 하고 있었다.
아내가 좋아서 어쩔 줄 모르겠다는 태도였다.
키스 세례에 눈가를 찡그리던 이재는 생각했다.
이런게 바로 단맛과 짠맛의조화라는 거군요. 폐하한테는 심술과 다정함이 공존하고 있어요.
휴,근데 어찜 좋아. 너무 자상해서 저렇게 놀리는데도 화가 안 나.
조금 샐쭉한 얼굴을 하고 있던 살구색 여우는 결국 본인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어를 시도했다. 도피 였다.
“저 다시 잘 거니까 한 시간 있다가 깨워 주세요. 아니,데보라한테 전해 주세요.”
고개를 끄덕인 그녀는 이불을 다시 뒤집어쓰고 완전히 숨어 버 렸다.
국왕은 그걸 몹시 귀여운 둣 보고 있다가 그녀를 이불째로 품에 넣었다.
여우를 따라 굴속으로 파고들고 싶었지만 그럼 자제할 자신이 없었다.
피식 웃던 그는 이불을 살짝 들추어 여우의 숨구멍만 열어 주었다.
밤새 부적을 쓰고 자신의 침실 에 결계를 친 이재는 늦잠을 자는 중이었다. 새벽같이 찾아온 로 더릭은 그녀를 유심히 들여다보다가 혀를 찼다.
지난밤,둘은 오랜 시간 실랑이 를 벌였다.
‘근데 너 그거 쓰면 또 며칠 앓아눕는 거 아닌가?’
‘쓰는 것 정도는 괜찮아요. 사용할 일이 없길 바랄 뿐이에요.’
‘정말 괜찮은 거지? 이번에도 거짓말이면 화낼 거다.’
‘괜찮다니까요.’
‘……그냥 안 하면 안 될까?’
‘아이, 참. 신경 쓰이니까 나가 계세요. 아니, 오늘 하루만 다른 데서 주무세요.’
이재는 강경한 태도로 그에게 부적 몇 장을 쥐여 주었고,부부는 결국 각방을 썼다.
로더릭은 근심스러웠지만,그녀 가 거듭 괜찮다고 하니 그런가 보다 하고 내버려 두었다. 그는 이런 부분에 전혀 아는 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와서 보니 그녀는 또 거짓말을 한 것 같았다.
정말 아 무렇지도 않은 거라면 얼굴이 또 이렇게 창백할 리 없었다.
“너를 정말 어떡하면 좋냐.”
그는 침대맡에 앉아 그녀의 숨소리에 귀 기울였다.
혹시 또 몸 이 차가운가 싶어서 여기저기에 손등을 대어 보기도 했다.
그러다 이내 작은 손을 잡았다.
이재는 수면 중에 누가 깍지를 끼자 화들짝 놀라며,눈을 떴다. 그 모습이 꼭 자다 경기하는 어 린애 같았다. 어리둥절해하던 그 녀는 범인이 자신의 남편이라는 걸 알고 응얼거렸다.
“왜 잘 자는 사람을 건드리고 그러세요.”
“놀랐어? 미안.”
이재는 대답 대신 그의 손등에 얼굴을 비비며 파묻었다.
로더릭 은 그녀가 칭얼거리자 낮은 웃음 소리를 홀렸다.
잠투정하는 아기 여우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상은 건드리지 말라는 호소였다.
“걱정돼서 그랬다. 더 자.”
“……아니,일어날 거예요.”
“그러지 말고 조금만 더 자자. 응?”
“………….”
“괜찮아. 더 자.”
로더릭은 이재의 가슴께를 토닥 였다.
그리고 마침내 이재가 규칙 적인 숨소리를 내자,그는 그녀의 머리 뒤에 조심스럽게 베개를 넣 어 주었다.
그는 색색거리는 이재를 내려다 보다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 녀의 상태가 정말로 평소와 다르 다는 걸 느꼈기 때문이다.
기감이 발달한 아내를 재우는 건 사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애초에 잠도 많지 않았고,한번 깨 면 다시 잠을 청하는 일도 드물었다.
그녀는 새벽같이 일어나면 명상 으로 하루를 시작하곤 했다. 일찍 일어나서 본인 몸과 마음을 정결히 해야 한다는 신념이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금세 다시 잠이 들고 베개를 끼워 넣어도 모른다.
그렇 다면 이건 몸이 안 좋은 게 확실 했다.
‘거짓말 좀 하지 말랬더니,말 참 안 듣네.”
로더릭은 마음이 몹시 좋지 않 았다. 그녀가 또 거짓말을 해서는 아니었다.
아내를 방패로 삼는 무능한 남편이 된 기분 때문이었다.
광중 때문에 폭군 소리를 들으 며 하루하루 망가져 갈 때도 이런 참담한 기분은 아니었다. 그는 아내가 자신을 대신해 고생을 자처하려 드는 이 상황이 훨씬 참 기 힘들었다.
로더릭은 그녀의 머리칼을 정돈 하고 이마에 입을 맞춘 뒤,침대 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천천히 방을 둘러보았다.
더 이상은 감출 필요가 없어졌 기 때문일까. 이재는 보이는 곳곳 에 부적을 붙여 놓았다.
그는 그 문양을 하나하나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여전히 그 의미룰 알 수는 없었지만,방의 기운이 안정되었다는 것만큼은 그도 느낄 수 있었다.
로더릭은 고개를 끄덕이며 이번 에는 테이블로 향했다.
테이블 위에는 이재의 최근 관 심사들이 잔뜩 놓여 있었다.
그는 그것을 하나씩 들추어 보았다. 왕족들에게만 전해지는 고서의 필사본,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는 부적들,다섯 자루의 조각도와 깎다 만 조각상, 그리고 헤일리 던컨의 일기장까지.
‘열 권도 넘는다고 했던 것 같 은데. 왜 이것밖에 없지.’
그건 지난 삼 년간의 일기장이 었다.
나머지는 모두 서재에 가 있었고,이재가 자꾸 최근 삼 년의 일기장만 들여다보는 이유는 그 시간이 붕 떠 있었기 때문이다.
의아해하던 로더릭은 일기장을 들고 다시 침대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