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llow Your Heart RAW novel - Chapter (85)
마음이 이끄는 대로-85화(85/134)
#85.
로더릭은 서재에 앉아 각종 서류들을 보고 있었다.
잠시 뒤 서 재로 찾아온 기사단장은 절도 있 고 우아한 경례를 올렸다.
“카이엔에 영광을.”
로더릭은 고개를 까딱하며 용건을 물었다.
“뭔가?”
“서부군 수뇌부로부터 서신이 도착했다 합니다. 아마 내일쯤 군부 쪽에서 따로 보고를 올릴 겁니다.”
“국경 상황은 어떻다던가?”
“근래에는 잠잠하다고 합니다.”
로더릭은 잠시 턱을 괴고 생각 에 잠겼다.
그는 얼마 전부터 한 가지 의심을 지울 수 없었다.
“기사단장.”
“예,폐하.”
“지난번과 같은 일은 반드시 또 일어난다. 일어나지 않게 미연에 방지하라는 뜻이 아니야.”
“그럼……”
“그런 일이 벌어진다는 전제를 깔아놓고 주시하라는 뜻이야.”
기사단장은 국왕의 말을 정확히 이해할 수 없었다.
왕후는 가끔 남이 이해할 수 없는 선문답을 할 때가 있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국왕도 같이 저러고 있었다.
“병사들이 문제를 일으키면 반드시 내 앞에 데려다 놓고.”
“예,그 부분은 2기사단장,아니,서부군 대장도 충분히 이해했 을 겁니다. 검만 잘 쓰는 게 아니 라 침착하고 제법 영리한 사람입니다.”
제이드는 자신이 직접 발탁한 기사단 출신 장성을 두둔했다.
지 난번에 왕이 지능 운운한 게 마 음에 많이 걸렸기 때문이다.
왕은 크게 담아 두진 않았는지 제이드의 평가에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보고는 여기에서 끝이 아니었다.
“그런데 폐하.”
“또 왜.”
제이드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심상치 않은 말의 간극을 느낀 로더릭은 들고 있던 서류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제이드를 빤 히 바라보았다.
“저,왕제께서……”
“말해.”
“서부군 대장에게 전갈을 보낼 때 전갈을 함께 보냈지 않습니까? 그런데 지금 군영에 안 계시답니다.”
로더릭은 한쪽 눈썹을 들어 올렸다.
“그게 무슨 이야기인가?”
“저와 군부에서 보낸 전갈이 도착한 날,갑자기 사라지셨답니다.”
로더릭의 얼굴은 심각해졌다.
군사들의 무단이탈은 중죄였다.
평상시에는 투옥과 벌금형 정도 로 끝나곤 했지만,전시에는 참형 이었다.
물론 에드거는 왕족이기에 서부 군 수뇌부는 그의 죄를 따져 물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왕제는 적어도 국왕에게는 보고를 했어야 했다.
“넌 그 얘기를 누구한테 들었지?”
“2기사단장,아니,서부군 대장이 저에게 별도로 전갈을 보내왔습니다.”
자칫하면 왕실의 추문이 될 만 한 사항이기 때문에 공적인 서신에는 적지 않은 것이다. 알려지면 반왕파의 좋은 먹잇감이 된다.
하지만 군영에는 보는 눈이 한 둘이 아니었다.
완전히 함구하기 란 어려울 것이다.
결국 서부군 대장은 보고와 함께 의견을 청해 온 것이다.
“지능이 떨어지는 건 아니었네. 오해한 건 미안하다고 전해 줘라.”
“예,근데 그걸 굳이……”
“왕제는 내가 은밀히 지시한 사항이 있어 잠시 자리를 비운 거다. 우선은 그렇게 정리하라고 해.”
“예,알겠습니다.”
“그래,나가 봐.”
기사단장은 다시 한번 각 잡힌 경례를 올렸지만, 로더릭은 이번에는 받아 주지 않았다. 머릿속이 여러모로 복잡했기 때문이다.
국왕은 팔짱을 낀 채 꽤 오랜 시간 번뇌에 사로잡혀 있었다.
왕제는 대체 왜 그랬을까.
그러나 아무리 고민해 보아도 해소할 수 없는 의문이었다.
시종장은 먼발치에 서서 그런 국왕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그는 국왕의 고뇌가 끝나기만을 기다 렸지만,날이 저물자 더 이상은 기다릴 수 없어 입을 뗐다.
“폐하,왕후 폐하께서 아까 전부터 침소 앞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래?”
무심결에 고개를 돌려 창밖을 본 로더릭은 혀를 찼다.
어느새 날이 완전히 어둑어둑해져 있었 기 때문이다.
“지금 가겠다.”
왕은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국왕의 방 앞에서는 실랑이가 한창이었다.
이재는 근위병들에게 항의 섞인 질문을 하고 있었다.
한껏 찡그린 얼굴이었지만,생김새가 너무 귀여워서일까. 병사들에게는 솔직히 투정처럼 들렸다.
“왜 안 들여보내 주는 거야?”
“폐하가 아무도 들이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나도?”
사실은 아무도 들이지 말라고 한 게 아니라,콕 집어 왕후 폐하를 들이지 말라고 하셨습니다만…… 그걸 저희가 어떻게 말하지요?
하지만 근위병들의 침묵에서 답변을 이해한 이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하네. 오늘 여기서 같이 자기로 했는데.”
그리고 왕후가 미간을 좁히며 물음표가 가득한 표정을 짓자,사람들은 한숨이 나올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원래 너무 귀여운 걸 보면 가끔 한숨이 나올 때가 있는 법이다.
확실히 던컨가 출신들이 외모가 출중하긴 하구나. 어떻게 사람이 인상을 써도 귀여울 수가 있지.
왕후는 고귀한 신분이었고,역사적으로 가장 고귀한 신분의 여인을 홈모한 기사들과 시종들은 늘 있어 왔다.
이번 대 왕후도 마찬가지였다.
얼마 전,이재가 아주 좋은 콧대라고,만나는 여자는 있냐고 물었던 기사가 이재에게 서약을 바치려 했다는 건 그녀 빼고 다 아 는 사실이었다.
제이드는 기사단을 탈단하겠다는 그의 말에 아무런 답변도 하지 않았다.
그저 한숨을 쉬며 한 대 세게 갈겼을 뿐이었다.
제이드는 그 한 대로 기사를 기절시켰다. 기사단장도 왕 못지 않은 기와 골상을 타고난 사람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국왕이 도착한 것은 근위병들이 넋을 잃고 왕후의 외모에 빠져있을 무렵이었다.
근위병들은 찔끔해서 시선을 피했고,이재는 금세 반가운 얼굴로 빙긋 웃었다.
“오셨어요?”
“그래. 많이 기다렸어? 늦어서 미안하다.”
평소라면 아니라고 대답했겠지만, 이재는 고개를 열심히 주억거렸다.
“폐하,왜 저 못 들어가게 하세요? 페하는 저 없을 때 막 제 방에 들어오시면서? 이건 너무 불공평하네요.”
얼마 전 둘은 몇 가지 약속을 했다.
이재가 하는 일을 방해하지 않을 것. 단,국왕이 보는 앞에서 할 것. 그리고 무리하지 않을 것.
코피라도 쏟는 날엔 이 협상은 무효였다.
그런데 로더릭은 저 꾀 많은 살구색 여우를 여전히 의심하고 있었다.
자신이 없는 데서 또 무 슨 일을 벌일 것 같았던 것이다.
코피로 파티를 열지나 않으면 다 행이었다.
“네가 나 없는 데서 쓰러지기라 도 하면 어떡하나. 적어도 내 눈 앞에서는 쓰러져야 내가 받아들기라도 하지.”
“………….”
“이 콩알만 한 머리통이 네 무르팍처럼 깨지기라도 하면,가장 불쌍한 사람은 나 아닌가?”
듣고 있던 시종들과 시녀들은 인상을 쓰면서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왕후는 물론 전적이 있긴 했다.
그렇지만 갑자기 쓰러질 정도로 허약한 사람도 아니었다.
그러나 왕후는 억울하지도 않은 지 왕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고 있었다.
“제가 완전히 신뢰를 잃었군요.”
“거짓말쟁이의 최후란 게 대체로 이래.”
이재는 고개를 끄덕이며 초연하게 말했다.
“이럴 때 쓰는 말이 있어요.”
“뭔데.”
“뿌린 대로 거둔다.”
“좋은 말이네. 근데 네가 자랑처럼 쓸 말은 아니지 싶다.”
로더릭은 근위병에게 고갯짓을 했고,굳게 닫혀 있던 왕의 방문은 열렸다.
그는 이재의 어깨에 팔을 두른 채 방 안으로 이끌었다.
이재는 습관적으로 벽면을 가장 먼저 살폈다. 이어 염라상의 상태를 확인했으며, 그런 뒤에는 천천 히 방을 둘러보았다.
방 안에는 잡귀 둘이 전부였다. 그런데 이 정도 잡귀는 어딜 가나 있는 것이고,왕의 방은 지금 일상적인 공간과 다를 바가 없었다.
이재는 참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지금쯤이면 왕이 무사하다는 걸 알 텐데. 더는 살을 날리지 않는 건가.
침대에 비스듬히 앉은 로더릭은 방 안을 두리번거리고 있는 이재 에게 물었다.
“어때?”
“폐하는 어떤 것 같으세요?”
“글쎄. 나야 모르지만,내 느낌 엔 아무 이상 없는 것 같은데.”
“……폐하도 그게 느껴지세요?”
“응”
이재는 고개를 끄덕였다.
“폐하는 확실히 보통 사람은 아 니에요.”
“딱히 칭찬처럼은 안 들리네.”
“칭찬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를 말한 거니까요.”
담담한 말에 로더릭은 피식, 웃 었다.
이재는 그 뒤로도 꽤 오랜 시간 방 안을 훌어보았다.
부적을 붙일 위치를 고민하기 위해서였다. 예전에야 숨길 수 있는 장소가 한정적이었지만,이제는 그렇지 않았다.
그녀는 결계의 모양을 고안하기 시작했다.
가장 견고하게 만들려면 어디가 좋을까. 역시 저 벽면이 우선이겠지. 음기가 가장 강하니까. 그다 음엔 창가,문. 침대 주변에도 꼭 있어야 하고.
이재가 집중하기 시작하자,로더릭은 입을 다물었다. 그는 아내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 숨소리마 저 죽인 채 바라보기만 했다.
그러나 왕의 의도와는 달리, 이 재는 그의 시선이 무척 신경 쓰 였다.
왕은 원래 존재감을 무시하기가 어려운 사람이었다. 본인이 농담을 좋아하기에 망정이지,안 그랬으면 어지간한 사람들은 눈 한 번 마주치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그녀는 결국 로더릭을 돌아보았다.
“왜 자꾸 쳐다보세요?”
“그냥.”
로더릭은 계속 말을 해도 되는건지 알 수 없어서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였다. 하지만 이재는 그를 빤히 보고 있었고,그는 다시 입을 열었다.
“오늘 예쁜 옷 입었네. 잘 어울린다.”
“그래요? 데보라가 골라 줬어요.”
참 뜬금 없는 말이었지만,이재는 고개를 숙여 자신이 입은 옷을 훑어보았다.
어깨와 쇄골이 드러난 하늘색 드레스는 그녀가 보기에도 예쁜 것 같았다.
“이런 것도 관심 있으셨나 봐 요. 마음에 드세요?”
“응. 사실 네가 입으면 다 좋지. 안에는 더 예쁜 옷 입었나?”
왕이 정말 예상치도 못한 순간에 혹,치고 들어오자 그녀는 몸서리를 쳤다.
“와,변태. 결혼하기 진짜 잘했어.”
폐하, 제가 지난번엔 패배를 시인했지만, 앞으로는 지지 않겠어요.
전 사실 아주 공격적인 콩알이 에요.
“혹시 궁금하세요?”
그녀는 동글동글한 눈을 샐쭉하게 뜨고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유부녀 콩알이 모처럼 힘을 내려고 하자,로더릭은 입안을 살짝 깨물었다. 쟤 또 난리 났네.
하지만 유부남도 머지않아 힘을 내기 시작했다. 만난 지는 서너 달에 지나지 않고, 부부 관계를 맺은 지는 더 얼마 안 되는 아내와 대화의 수위를 좀 높여 보기 위해서였다.
“내가 나이가 몇 살인데 네 속옷이나 궁금해서 이러겠냐.”
그러자 이재는 가느스름하니 떴던 눈을 다시 동그랗게 만들었다.
어? 아닌가요?
근데 왜 저는 섭섭해지려고 하 죠. 벌써 권태기가 오신 건가요.
“그럼요?”
“난 늘 더 안이 궁금한 거지.”
그러자 이재는 곧바로 손을 공손히 모았다.
“죄송해요. 제가 또 까불었네요. 요즘 자꾸 제 수준을 망각해 요.”
그녀가 몹시 정중히 인사를 하자 로더릭은 입가를 가리고, 꾹 참았던 웃음을 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