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llow Your Heart RAW novel - Chapter (93)
마음이 이끄는 대로-93화(93/134)
#93.
국왕의 서재는 평소와 부쩍 다른 분위기였다.
왕이 혼치 않은 변덕을 부렸기 때문이다.
지하 감옥에서 심문을 진행하겠다던 왕은 죄인들을 갑자기 서재로 끌고 오라고 지시했다.
로더릭은 아내를 지하 감옥 같 은 공간으로 데려가고 싶지 않았다.
물론 괜한 사람들을 번거롭게 만드는 지시였으나,그건 사실 무척 옳은 선택이었다.
그의 아내는 그런 음습한 기운에 민감한 영감의 소유자였기 때문이다.
이재가 국왕의 서재에 도착했을 때,왕은 복도에 미리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폐하.”
팔짱을 낀 채 벽에 비스듬히 기대 있던 로더릭은 몸을 바로 세웠다.
“왔어?”
“네,왜 나와 계셨어요?”
“……몰라서 묻냐?”
이재는 왜 또 저러지 하는 표정이었지만, 뒤따르던 시녀장은 속으로 웃었다.
거의 귀신의 경지에 도달해 있 는 데보라는 이유를 잘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서재 안에는 지금 중죄인들이 포박되어 있었다.
왕은 왕후가 위험한 곳에 혼자 들어오게 하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러니 문턱부터 에스코트를 하겠다고 굳이 저러고 복도에 서 있는거였다.
그러나 눈치가 귀신인 데보라조 차도 선뜻 이해할 수 없는 게 있 었다.
사실은 시녀장을 비롯한 성 사람들 모두가 그랬다.
그들은 왜 왕후가 죄인들의 얼굴을 봐야만 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그냥 물어본 건데,왜 이렇게 또 퉁명스러우시지.”
“내가 뭘.”
“아무튼 들어가요.”
국왕은 이재를 안아들고는 문을 열라며 턱짓을 했다.
문이 열리자 시녀들은 모르는 척 따라 들어가려 했지만, 곧바로 근위병들에 의해 제지당했다.
국왕과 왕후를 제외하고 출입할 수 있었던 건 오직 1기사단뿐이었다.
데보라는 그 자리에 서서 걱정스러운 얼굴로 왕후를 바라보았다.
이재는 괜찮다는 듯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고개를 끄덕여 주 었다.
서재 안은 무척이나 삼엄한 분위기였다.
서부군 병사들이 지은 죄가 반역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병사들의 무단이탈은 전시가 아 니면 금고형이나 벌금형 정도로 다스린다. 그러나 군영 내에 방화 를 한 것은 예외 없는 참수형이었다.
죄인들은 사지를 결박당한 채 무릎을 꿇고 있었고,열 명에 달 하는 기사들은 그들을 향해 날카로운 검 끝을 겨누고 있었다.
국왕은 그쪽을 힐긋 보고는 이재를 품에 안은 채 성큼성큼 걸었다.
이재는 방 안을 자세히 살피고자 계속 고개를 빼꼼 내밀었지만,이상하게 쉽지가 않았다.
그녀는 미간을 찌푸리며 인상을 썼다.
폐하,죄는 제가 아니라 저 사람들이 지었는데요. 왜 폐하는 저를 결박하고 계신 거죠?
결국 답답해진 그녀는 왕의 가슴팍을 작게 두드렸다.
“폐하,저 좀 내려 주세요.”
“안 돼. 기다려.”
국왕은 그녀의 뒤통수를 꾹꾹 눌렀다.
“아니,왜 이러세요? 놔주시라고요.”
“기다리라고. 네 남편은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끝났으니까. 자꾸 그렇게 고개 내밀지 마.”
이재는 황당해했지만, 지켜보던 기사들은 모두 왕의 의도를 파악 할 수 있었다.
왕은 지금 죄인들을 반쯤 둥진 채 걷고 있었다.
마치 흉악범들에 게서 왕후를 숨기는 것 같은 모양새였다.
그런데 저럴 거면 왜 굳이 왕후 폐하를 모셔 온 걸까. 저렇게 조그마한 사람을.
국왕은 결국 이재를 바닥에 내려 주기는 했다.
그러나 그의 이 상 행동은 그 뒤로도 계속되었다.
그가 왕후를 내려 준 위치가 죄 인들을 마주 볼지언정 그들과 가장 멀리 떨어진 방 끝이었던 것이다.
심지어 왕은 왕후를 반쯤 가리고 서 있었다.
“방금 뭐 하신 거예요?”
“우리 콩알의 안전거리 확보.”
이쯤 되니 기사들도 왕이 좀 과한 게 아닌가 생각할 정도였다.
죄인들에게 검을 겨누고 있는 자신들의 존재가 초라해질 지경이었다.
왕이 자신들의 실력을 전혀 못 믿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겨우 바닥에 발을 디딘 이재는 국왕을 원망스러운 둣 흘겨보았다.
하지만 국왕은 어느새 아랑곳 하지 않고 전방만 주시하고 있었다.
그는 사실 평소와 몹시 다른 기운을 느끼고 있었다.
이재가 도착하기 전에 먼저 와서 확인한 기운이었다.
왕은 물었다.
“그래서,어떤 것 같아?”
이재는 금세 눈을 가늘게 뜨며 날카롭게 만들었다.
그녀는 죄인 들의 어깨와 등 뒤 부근을 유심 히 살피다가 앞으로 나서려고 했다. 조금 더 가까이 가서 보고, 서재를 둘러보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로더릭은 그녀의 손목을 잡고 끌어왔다.
“그렇게 가지는 말고. 어떠냐고 물었잖아.”
“……폐하는 어떤 것 같으세요?”
로더릭은 즉답했다.
“이상한 것 같다.”
“……맞아요. 이상이 있어요.”
그러자 로더릭은 이재를 아예 자신의 둥 뒤로 보내 완전히 가리고 섰다.
그는 기사들에게 지시 했다.
“끌고 가라. 지하 감옥에 앉혀 놔.”
“안 돼요!”
이재는 왕의 소매 끝을 잡으며 거듭 고개를 저었다.
로더릭은 계속 모른 체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녀가 포기하지 않고 옷을 잡아 당기자,마지못해 고개를 기울여 주었다.
이재는 목소리를 낮추며 속삭이 둣 말했다.
“멸해야 돼요. 저걸 저대로 놔두실 셈이에요?”
로더릭은 미간을 좁혔다.
“네가 왜 그런 것까지 해야 하지? 확인했으니 된 거다. 이쯤 해 라.”
“………”
“이재. 네 말대로 너는 성자가 아니야. 무슨 세상 사람들을 전부 다 구할 작정인가?”
이재는 잠시 멈칫했다. 국왕의 말이 냉정하게 들려서가 아니었다. 그의 말이 그녀와 같은 길을 간 사람들이 해 준 조언과 너무 비슷한 탓이었다.
하지만 이재는 곧 다시 고개를 저었다.
“그래서가 아니에요. 폐하, 저 삿된 것들이 다른 사람한테 또 붙으면 어떡하실 거예요? 진짜 재수가 없으면 여기 남을 수도 있어요.”
제가 불쾌하실까 봐 늘 속으로만 생각하고 있었는데,폐하 서재도 터가 썩 좋진 않아요. 사실 터만 보면 폐하 방보다 나빠요.
소년왕께서 비범한 인물이었던 건 저도 알겠는데요. 소년왕도 한국에서 태어났더라면 틀림없이 부동산 사기를 당했을 거예요.
“그러니까 왜 저 사람들을 굳이 폐하 서재까지 데려오셨어요? 위험하게?”
이재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는 둣 묻자, 국왕은 그녀를 물끄 러미 바라보았다. 이어 푸른 눈동 자는 천장을 향했고,그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알아달라고 한 건 아니었는데, 괜한 짓을 했다는 둣 말하니 조금 억울한 기분이 들어서였다.
나도 널 그런 음침한 데로 데려가긴 싫어서 그랬다,왜.
“사람들 좀 내보내 주세요. 저 정말 금방 끝낼 수 있어요. 네?”
국왕을 올려다보던 이재는 왕이 대답하지 않자,기사들에게 나가보라고 열심히 신호를 보냈다.
그러나 기사들은 머뭇거리며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두 사람이 속삭이던 말들은 그들의 귀에까지 가닿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 구하고 국왕과 왕후가 지금 의견 대립을 겪고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원칙상 국왕의 명을 따라야 했 으나,왕은 한동안 묵묵부답이었다.
그러나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 국왕은 한숨을 쉬며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난처해하던 기사들은 기다렸다는 둣 서재를 빠져나갔다.
중죄인들이 있는 방에 둘만 남 겨 놓는 것이 마음에 걸렸으나, 국왕은 제정신만 유지한다면 걱정할 게 없는 사람이었다.
사실 제정신이 아닐 때마저도 걱정할 건 옆에 있는 사람들이었지, 국왕 이 아니었다.
왕이 서재 문을 연 것은 한 시 간쯤이 지나서였다.
그들이 문밖 으로 나서자 이상하게도 종이 타는 냄새가 풍겼다.
데보라는 깜짝 놀란 얼굴로 다가왔다.
왕후는 들어갈 때처럼 국 왕의 품에 안겨 있었다.
그런데 들어갈 때에 비해 몸이 축 늘어 져 있었고,안색 또한 조금 창백했던 것이다.
“왕후 폐하,혹시 어디 편찮으 십니까?”
그러자 대기하고 있던 다른 사람들도 하나둘씩 다가왔다.
이재 의 얼굴을 조심스레 살피던 시종 장은 말했다.
“의원을 불러올까요?”
“괜찮다.”
“괜찮아.”
국왕과 왕후의 대답이 동시에 나오자,사람들은 침묵했다.
로더릭은 왕후 처소로 걸음을 옮기려고 했다.
이번에 그의 뒤에 따라붙은 것은 국왕의 날개이자 친우인 기사단장이었다.
“폐하,죄인들은 어떻게 할까 요?”
“우선 지하 감옥으로 옮겨.”
“군법에 따라 즉결 처분하라 이르면 되겠습니까?”
이번에도 대답은 거의 동시에 나왔다.
“어어? 꼭 그렇게까지……”
“………”
“그럴 필요까진 없고,금고형 후에 전부 제대시켜.”
사람들의 표정은 몹시 괴상해졌다.
저게 뭐람. 혹시 두 분이 안에 서 말을 맞추고 나오셨나?
하지만 국왕과 왕후는 지금 둘이 무척 이상해 보인다는 걸 잘 모르는 것 같았다. 사람들의 반옹 을 신경 쓰는 기색이 전혀 아니 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치된 의견과 달리 두 사람은 극명하게 다른 온도를 보여 주고 있었다.
왕후는 좀 피곤한 기색이었지만 웃는 낯이었고, 국왕은 아주 멀쩡 했지만 상당히 저조한 표정이었다.
혹시 안에서 싸우신 건가?
비슷한 의혹을 느낀 제이드도 조심스럽게 돌려 가며 물었다.
“안에서 무슨 흉험한 일이라도 있으셨습니까?”
대답은 또다시 동시에 나왔다.
“아니? 아무 일도 없었는데? 왜?”
“………”
“하아……. 없었다고 치자.”
성 사람들은 비로소 어느 정도 확신을 얻었다.
싸웠다. 이건 싸운 거야. 그런 데 왕후 폐하가 또 이기고 만 거다.
하지만 사람들의 의혹은 쉬지 않고 자라났다.
싸운 것치고는 왕후를 대하는 국왕의 태도에 안타까움과 애정이 뚝뚝 묻어났기 때문이다.
“방으로 갈까?”
“네. 근데 걸어가도 되는데.”
“까불지 말고.”
“그런 거 아닌데.”
“아니긴 뭐가 아니야. 넌 진짜 방에 가서 보자. 이 협상은 파기다”
그러자 계속 웃고 있었던 이재는 어어? 하더니 납득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목소리를 죽였다.
“왜요. 코피 안 쏟았잖아요.”
“구역질을 그렇게 여러 번 할 정도라는 말은 없……! 하아. 그만하자.”
“그건 사실 굉장히 자연스러운 현상…… 저도 그만할게요.”
가까운 거리에서 유일하게 그 대화를 들은 제이드는 생각했다.
왜 두 분은 서로 할 말 다 하시고 그만하자고 하시는 거지요?
끝에 그 말만 붙이면 했던 말이 다 없어지는 겁니까?
그러나 한참 아옹다옹하던 국왕은 안쓰럽다는 듯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식사는 할 수 있겠어?”
“그럼요.”
로더릭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뒤 를 돌아보았다.
그는 시녀장에게 시선을 주며 말했다.
“식사는 왕후 침실에서 하겠다.”
“예,폐하.”
“왕후가 좀 피곤한 것 같으니까, 먹기 편한 걸로 준비시켜.”
“예,알겠습니다.”
국왕은 그대로 등을 돌려 왕후 궁으로 향했다.
뒤따르던 사람들 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시선만 교 환했다.
서재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한데,도무지 알 길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