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llow Your Heart RAW novel - Chapter (94)
마음이 이끄는 대로-94화(94/134)
#94.
간단한 식사를 마친 뒤,두 사 람은 일찌감치 침대에 누웠다.
너,방에서 보자고 한 것치고 왕은 이렇다 할 말은 없었다.
이재는 오히려 그게 더 신경이 쓰 였다.
그의 기분이 저조하다는 방증 같았기 때문이다.
“폐하.”
“왜.”
“그냥요.”
“그럼 자라.”
“잠 안 오는데.”
오늘 본 병사들의 상태는 사실 심각했다.
풀어 주었으면 헛소리를 늘어놓거나, 폭력적인 행동을 일삼으려 들었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지독한 원귀가 총 다섯이나 붙어 있었다.
그러니 상태가 심각한 게 정상 이었다.
그런 원귀를 수십이나 달고 다녔으면서 이성을 찾아온 왕이 이상한 사람일 뿐이지.
그리고 이재는 오늘 자신의 퇴마에 무척 만족하고 있었다.
눈부 시게 진보한 실력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헛구역질 몇 번 한 건 아주 양호한 결과였다.
그런데 원인을 알고 난 이후, 왕은 계속 예민하게만 반응하고 있었다.
그는 퇴마 내내 옆에 서서 병사들에게 검을 겨누고 있었 는데,이재는 원귀보다 남편에게 서린 한기가 더 무서웠다.
“폐하,기분이 안 좋으세요?”
“그런 거 아니니까 빨리 자.”
이재는 눈치를 보다가 그의 옆 구리를 살짝 찔렀다.
그러자 로더릭은 픽,웃으며 그녀의 눈을 손 바닥으로 덮었다.
“아픈 콩알,까불지 말고 자랄 때 자.”
이재는 그의 손을 냉큼 치우며 말했다.
“저 안 아픈데요. 저도 제 건강을 중명해 볼까요?”
“어떻게?”
“저 지금 하고 싶어요.”
“……미치겠다,진짜.”
어이가 없는 둣 웃던 로더릭은 팔베개를 해 주던 팔을 빼내고, 그녀의 머리 뒤에 베개를 끼워 넣었다. 그러고는 그녀를 둥지고 돌아누웠다.
이재는 이상하게 서운해서 그 등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제가 폐하를 등지고 누울 때마다, 폐하는 항상 이런 기분인가
그런데 참 넓은 어깨네요.
이재는 이번에는 그의 둥을 콕, 콕 찔렀다.
날개뼈 밑도 한 번 콕 찔러 보았다.
그러자 둥 근육이 거칠게 꿈틀 하는 게 고스란히 보였다.
“그렇게 찌르지 좀 마.”
“왜요. 제가 싫어지셨어요?”
“하아. 얘가 또 가만있는 사람을 미치게 하네.”
한숨을 쉰 로더릭은 손을 둥 뒤로 뻗어 이재의 손목을 낚아챘다.
그리고 이런 앙큼한 짓을 못 하게 자신의 앞으로 끌어왔다.
하지만 이재에게는 손이 하나 더 있었다.
그녀는 손가락을 구부려 그의 둥을 살살 긁었다.
“하고 싶은데.”
“지금 하면 나도 한 번으로 못 끝낸다.”
“………”
“너 피곤한데 밤새 괴롭히고 싶 지 않으니까,그냥 좀 자. 남편 파렴치한 만들지 말고.”
“……괜찮은데. 나도 좋은데.”
왕은 너무 어이가 없어서 헛웃 음을 홀렸다.
저 여우는 꼭 이렇게 사람이 심란할 때만 바싹 와서 엉겨 붙 었다.
알고 저런다는 것에도,기 분을 풀어 주고 싶어서 저런다는 것에도 전 재산을 걸 수 있었다.
로더릭은 다시 그녀를 마주 보 고 누웠다. 겁도 없이 그를 도발 했지만,이재는 막상 푸른 눈동자가 자신을 뚫어져라 주시하자 찔끔했다.
로더릭은 그 모습을 보고 픽 웃었다.
“너는 아까부터 진짜 안 되겠 다, 그냥 꽁꽁 묶어 놔야지.”
그는 이재를 품에 욱여넣고 두 팔로 옭아했다.
이재는 가슴팍에 코를 부딪혀 콧잔등을 살짝 찡그 렸다.
버둥거리던 그녀는 겨우 고 개를 쳐들고 그의 턱을 바라보며 말했다.
“묶어 놓는다는 게 이런 거였어요?”
“그럼 내가 뭐,널 밧줄로 묶어 놓기라도 할 줄 알았냐?”
“………”
“날 아주 더러운 놈으로 봤나 보네.”
그런 것은 아니지만,폐하. 이 렇게 묶이는 거라면 저도 코피를 한 번쯤은 더 쏟아도 밑질 게 없 는 것 같…… 아니에요.
농가성진. 항상 말조심해야죠.
로더릭은 이재를 꽉 옭아맸던 팔에 힘을 풀었다.
그리고 비스듬 히 턱을 괴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는 오늘도 웃기고,귀엽고,애잔하고를 다 해내고 있는 아내를 빤히 보며 물었다.
“그래서 뭐,넌 나랑 하루에 몇 번이나 해 주시려고 사람을 이렇게 도발하는데.”
이재는 오랜만에 점잖게 있는 남편을 자극한 죄로 또 한 번 협상 테이블에 앉아야 했다.
그녀는 눈을 여기저기 굴리다가 결혼 초 에 나눴던 말을 떠올리고 물었다.
“하루 몇 번? 이번엔 며칠에 한 번 아니고요?”
“너랑 협상할 때는 무조건 크게 불러야 한다는 걸 배웠지. 어차피 갈수록 내가 불리해지더라고.”
두 사람은 동시에 웃음을 터뜨 렸다.
그는 이재의 등을 가볍게 토닥이며 말했다.
“아무튼 오늘은 일단 자. 내일 너 몸 상태 좀 본 다음에 놀자.”
이재는 고개를 끄덕이며 눈을 감았다. 탈 많은 하루였지만,서로 웃는 얼굴을 보았으니 기분 좋게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재는 정신없이 자고 있었다. 왕에게는 괜찮다고 말했지만,오 랜만에 기를 쏟아부은 건 사실이 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는 갑자기 눈을 번 쩍 떴다.
방금 전 소름 끼치는 웃 음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착각이 아니었다.
지금 섬뜩한 귀기가 이 방을 향해 몰려온다.
그런데 서둘러 일어나려던 이재는 움찔하고 말았다.
그녀보다 먼저 일어난 왕이 가만히 앉아 창가 쪽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페하?”
그러자 로더릭은 고개를 돌려 이재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잠시 생각하던 그는 물었다.
“지금 이게…… 그 상황이 맞는 건가?”
국왕은 잘 모르겠다는 둣 고개를 조금 기울였다.
확신이 없는 어조였지만 그래서일까. 그는 딱히 다급해 보이지도 않았다.
그는 답을 구하듯 다시 한번 이재에게 물었다.
“맞아?”
“……네.”
그런데 그걸 어떻게 저보다도 빨리 아신 거죠.
이재는 의아했지만,곧 정신을 차렸다.
그녀는 얼른 일어나 나무 함 앞으로 달려갔다.
그녀가 뚜껑을 열자,정령은 고개를 쑤욱 내 밀었다.
-이재,이게 또 무슨 일이야?
“들어가. 나오지 말고 숨어 있어.”
이재는 다급하게 부적 뭉치를 뒤적거리며 쓸 만한 것들을 골랐다.
그러다 갑자기 머뭇거리며, 손을 멈추고 말았다.
그녀의 머릿속으로 한 가지 의혹이 스쳐 지나갔다.
‘왜 잠잠하다가 이런 날에 살을 날리는 걸까.’
이재는 몸 안에 남은 기를 한 껏 끌어모아 보았다.
역시 낮에 너무 많은 기를 소진할 탓일까. 그녀의 몸은 원귀와 싸우기 적합 한 상태는 아니었다.
확실히 이건 성이 돌아가는 사 정을 잘 아는 사람이 날리는 살 같다. 아니,어쩌면 본인이 불러 낸 영들이 소멸한 것을 느끼고 절호의 기회를 노린 것일지 모른다. 이것은 결국 원귀와의 싸음이 아니라, 그 뒤에 서 있는 인간과
의 싸옴이니까.
이재의 의식은 가지를 치며 복잡하게 흘러갔다.
하지만 더 이상 단서를 찾으며,지체하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입술을 꽉 깨문 이재는 정리한 부적들과 촛대를 들고 창가를 향해 돌아섰다.
그리고 그 순간 그녀는 소스라 치게 놀라고 말았다.
국왕이 어느 새 창가에 비스듬히 서 있었기 때문이다.
“폐하! 지금 거기서 뭐 하시는 거예요?”
“왜.”
“떨어지세요. 가운데로 오세요.”
이재는 그의 소매 끝을 붙잡고 안쪽으로 당겼으나,그는 옴직이지 않았다. 그저 알 수 없는 눈으 로 창밖을 응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재는 황당하기도 하고 당혹스 럽기도 해서 말을 잃었다.
물론 그녀도 알고 있었다.
국왕은 언제부턴가 이런 기운을 예리하게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창밖을 바라보아 도 지금 그의 눈에 보이는 건 아 름다운 밤하늘뿐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저렇게 태연할 수 있는 건, 저 끔찍한 모습까진 보이지 않기 때문일까.
하지만 몰려오는 원귀의 숫자는 많았고,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저들의 기세는 이재가 낮에 멸한 것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강력했다.
이재는 다시 한번 왕을 뒤로 끌어오려고 했다.
“폐하……?”
그녀는 왕의 팔을 잡았으나,또 한 번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몇 번이나 입술을 달싹이던 이재의 눈은 흔들렸다.
지금 그의 신체에서 평소보다 강한 기가 들끓고있는 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저렇게 사나운 기운을 몸에 품고도, 왕의 푸른 눈은 명 정하기만 했다.
난세가 오면 깨어난다던 왕가를 수호하는 신성한 힘.
그 강대한 기운은 아직 발화점을 만나지 못해 왕의 주변만을 휘감고 있었다.
몰려오던 새카만 악귀들은 이재 가 만든 결계와 국왕 앞에 멈춰 섰다.
그들은 선뜻 결계를 찢을 엄두를 내진 못했으나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로더릭은 미간을 좁히며 이재를 바라보았다.
“괜찮은 거 아닌가?”
“………”
“아직 아닌 건가. 사실 난 잘 모르겠다.”
머뭇거리던 이재는 고개를 저었다.
“아직은…… 아녜요.”
그때 였다.
어디선가 푸른빛이 서서히 밀려 오기 시작했다.
그 빛은 방 안을 한 바퀴 안온하게 휘감더니 창밖 으로 향했다.
마치 그릇을 가득 채운 맑은 물이 넘쳐흐르듯이.
국왕과 이재는 방을 둘러보다가 동시에 어느 한 지점을 바라보았다.
그건 두 사람의 마음이 깃들어 있는 조각상, 지하여장군, 이재였다.
이재는 정말 한숨이 나올 것같은 기분을 느꼈다.
‘정령의 말이 진짜였구나. 저 망가진 조각상에 정말로…… 영험한 기운이 깃들어 있어.’
먼저 움직인 건 국왕이었다.
그는 아교풀로 붙여진 조각상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잘 모르겠다는 둣 연신 고개를 기곳거리던 왕은 이내 피식,웃었다.
그러고 는 장승을 가져와 창가에 올려놓 았다.
“폐하,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이게 아니었나? 난 그런 것 같길래.”
“……혹시 뭐가 보여서 자꾸 이러시는 건가요.”
가슴이 철렁한 이재는 걱정스럽 게 물었으나,로더릭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안 보여. 그렇지만 느껴진다.” 꼭 네 마음처럼.
널 만난 뒤로. 네가 나를 구한 뒤로.
로더릭은 이재를 가만히 바라보 았고,그녀는 여러 번 고개를 끄덕였다.
결계는 조금도 훼손되지 않았 고, 이 공간은 영험한 기운이 휘감고 있었다. 그리고 옆에는 사람이 나란히 서 있다.
이 싸움은 언제부턴가 둘 중 누구에게도 외롭지 않았다.
이재는 쐐기를 박기 위해 결계로 손을 뻗었고,그 어느 때보다 안정적으로 자신의 기를 홀려 보 냈다.
그녀는 입술을 달싹이며 진언을 읊조렸다.
‘절전지훈. 화살이 모이면 그때 부턴 부러뜨리기 어렵다.’
‘서로 간의 믿음은 옴직일 수 없는 진리. 그 믿음으로 일어선 인간은 물러나지도,무릎 꿇지도 않는다.’
마침내 이재가 손끝에서 기를 거두었을 때,어둠은 조금씩 옅어 지고 있었다.
이재는 가늘게 떨리는 손을 내렸고,그들은 한동안 어떠한 말도 할 수가 없어 그대로 서 있었다.
그러다 두 사람은 동시에 우뚝 서 있는 조각상을 내려다보았다.
국왕은 오랜만에 못생긴 조각상의 코를 손가락으로 톡,건드렸다.
‘이재. 네가 어떤 마음으로 이 걸 깎았을지를 생각하면 사실 난 아직도 마음이 아프다.’
이재는 아교풀이 덕지덕지 붙어있는 모양새를 보며 눈을 내리깔았다.
‘보잘것없는 실력으로 깎은 조 각상에 이런 기운이 깃든 건,당신이 이 마음을 초라하다 말하지 않고 귀하게 여겨 주었기 때문에.’
국왕은 조각상이 꼭 사람이라도 되는 것처럼 쓰다듬으며 검지로 살살 간지럽혔다. 장난을 거는 둣 한 손길이 다정했다.
그는 눈을 내리깔고 있는 이재를 힐끔 바라 보았다.
“부인. 이게 정말 그냥 조각상이 아니었네. 사실 얼마 전부터 짐작은 하고 있었는데.”
이재가 대답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자,그는 물었다.
“지금 무슨 생각 해?”
“아무 생각 안 해요.”
로더릭은 또 거짓말이라고 생각 했지만,굳이 캐묻진 않았다.
이 번엔 이재가 그를 힐끔 보며 물었다.
“폐하는 무슨 생각 하시는데요?”
“나는 미안하다는 생각.”
“갑자기 왜요?”
“언젠가 네 작품 세계를 인정받는 날이 오기를 기원하겠다고,왜 내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지 않았나.”
이재는 피식, 웃었다.
“요즘 생각하는 건데,그걸 인정해야 할 사람은 나 하나뿐이었다.”
“..가끔 보면 참 별걸 다 마음에 담아 두는 것 같네요. 저도 장난은 다 구분할 줄 알아요.”
이재는 그러지 말라는 둣 그의 팔뚝을 두어 번 쓸었다.
이어 로더릭이 ‘몸은 괜찮아?’ 물었고,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창가에 턱을 괴었다. 그러자 그는 등 뒤에서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 았다.
이재는 어둠이 서서히 물러가는 풍경을 영안으로 바라보았다.
로더릭은 비록 그 풍경을 볼 수는 없었지만,오랜 시간 그녀와 함께 느껴 보았다.
둘 모두에게 인상적인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