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llow Your Heart RAW novel - Chapter (97)
마음이 이끄는 대로-97화(97/134)
#97.
지켜보던 사람들은 눈을 질끈 감았고, 몸에 힘이 쭉 빠진 이재 는 완전히 뒤로 넘어가려 했다. 하지만 왕은 확실히 짐승 같은 반사 신경의 소유자였다.
그 찰나의 순간, 그는 이재의 뒤통수와 바닥 사이에 본인의 손을 밀어 넣었던 것이다.
간신히 머리를 찧는 것만큼은 막은 왕은 이재를 바로 앉혔다.
그리고 바닥을 굴러다니는 자잘 한 돌맹이들을 보며 말했다.
“아니,넌 왜 넘어져도 이런 데 넘어져.”
“제가 원래 박복……. 그래서 늘 조심해서 걷는데……”
이재는 중얼거리듯 말했으나, 로더릭은 그녀의 말이 잘 안 들 리는 것 같았다. 그는 그녀의 엉덩이 주변을 계속해서 매만지며 물었다.
“어떡해, 괜찮아? 좀 봐. 응?”
그러자 굳센 팔에 의지하고 있던 이재는 흠칫하며 그를 바라보았다.
몹시 황당하다는 얼굴이었다.
“폐하.”
“어,왜. 많이 아파? 한번 봐.”
“지금 야외에서 자꾸 어딜 보자고 하시는 거예요?”
“혹시 제가 생각하는 건 아니죠?”
국왕은 한참 뒤에야 상황을 깨 닫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사람들 은 시선을 피하며 딴청을 피우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왕이 왕후의 엉덩이를 어루만지다 못 해 주물럭거리는 것을 본 후였다.
왕은 본인 의도의 순수성을 주 장하듯 가장 유력한 환부에서 손 을 뗐다.
그러고는 연신 한숨을 쉬며 머리칼을 쓸어 올렸다.
어떻 게든 이성을 되찾아 보려는 몸부 림이었으나, 그는 금세 실패했다.
오히려 안도감과 함께 뒤늦은 화가 밀려와 버럭,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야,어지러운 것 같으면 얼른 날 불렀어야 할 거 아니야!”
“……그냥 엉덩방아 좀 찧은 거 예요.”
움찔하던 이재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러나 왕은 그계 더 마 음에 안 들어서 인상을 썼다.
“뭐 이렇게 태평해? 그러다 뒤통수 깨지는 거 몰라? 혹시 머리가 땅에 닿을 때까지 기다리는 중이었나?”
“………”
“그럼 난 너와 땅 사이에 끼어 든 게 되는 건가?”
“………”
“이씨. 나 심장 떨어지는 줄 알 았잖아.”
“아니,안 다쳤음 된 거지,왜 이렇게 또 흥분을 하고 그러시지.”
이재는 시종일관 무덤덤한 반응이었다. 물론 그녀도 놀랐지만, 당황하거나 제 발 저려 하면 왕이 더욱 울컥할 것 같았기 때문 이다.
그러나 태연한 척하고 있던 그녀는 이어진 말에 동글동글한 눈을 더욱 동그랗게 떴다.
“넌 네 말대로 아주 교활한 아기 여우였어. 어째 갈수록 수법이 정교해지네.”
“제가 뭘 어쨌는데요?”
“네가 지금 일단 저지르고 보자,한 걸 내가 모를 줄 알아?”
“………”
“뭘 했는지는 모르겠지만,너 지금 일부러 설명 안 해 준 거잖아.”
국왕도 감이 좋은 사람이었다. 아무 사특한 기운도 느끼지 못했지만,그는 이재가 단순히 활을 쏜 게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사실 그는 그녀의 표정만 봐도 어느 정도 거짓을 구분할 수 있었다.
이재는 꽤 정확한 상황 판단에 찔끔하며 시선을 피했고,그는 그 녀를 비난의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한 번만 더 이런 식으로 나오 면 저 활은 압수다.”
그러자 눈치를 살피고 있던 이재도 불만스러운 둣 볼을 부풀렸다.
저 활은 염라상을 이은 그녀 의 역작이었기 때문이다.
좋은 무 기만 취급하는 왕과 기사들의 눈 에는 초라할 것이나,저기엔 그녀 의 혼과 기가 담겨 있었다.
그러니 이런 식으로 가져갈 순 없었다.
왕은 이재의 표정을 보고는 코 웃음을 쳤다.
그가 손가락으로 뺨을 꾹 누르자, 붉은 입술 새로는 금세 푸시식,바람이 빠졌다.
“뭘 잘했다고 또 볼에 바람을 집어넣는데. 다람쥐야?”
그녀는 뾰로통하게 답했다.
“갈수록 하지 말라는 게 많아지는 것 같아서요.”
정답이었다.
“네가 갈수록 무리하고 있다는 생각은 안 드나 보지? 그것도 나 모르게?”
이 또한 정답이었다.
“이재. 난 너한테 무리한 일을 하지 말라고 부탁한 거지, 괜찮은 척 연기를 해 달라고 한 게 아니다.”
“어떻게 남편 마음을 이렇게 몰라?”
“왜 제가 모른다고 생각하세요?”
둘은 모두 불만 가득한 얼굴이 었다. 이 협상이 자신에게 불리하 다고 생각하는 건 양측이 마찬가 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협상은 잘 따져 보 면 모든 게 괴상했다.
협상이란 겉으로는 합의에 이르 는 과정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자신에게 유리한 결론을 내 기 위한 치열한 수 싸움인 것이다.
그런데 이재가 내세운 조건은 그녀가 하는 일을 막지 않는 것 이었다.
그 조건은 그녀에게 유리 한 게 아니라 궁극적으로 국왕을 위한 것이다.
국왕이 원하는 것은 의식을 그 가 보는 앞에서 하는 것,이재가 무리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건 결국 이재를 걱정하고 위하는 마음 때문이었다.
단서 조항도 괴상한 건 마찬가 지였다.
국왕은 그녀가 코피라도 쏟으면 이 협상은 파기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을 필요 이상으로 염려하면 이 협상은 파기라고 말했다.
시작부터 끝까지 자기 자신을 위한 조건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모두 상대를 위한 내용뿐 이었다.
그런데 원하는 바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바로 그 상대와 언쟁해 야 하니,싸움은 일어나려다가도 흐지부지되곤 했다.
오히려 더욱 애틋한 온도에서 종결되기 일쑤 였다.
그렇다면 이건 협상이 아니었다. 협상의 탈을 쓴 사랑과 걱정일 뿐이었다.
그리고 데보라와 기사들은 이 이상한 협상이 낳은 혼종 같은 결과를 있는 그대로 목격 중이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울지도 웃지 도 못하는 괴상한 표정이었다.
“계속 이렇게 걱정시켜라. 어?”
“아니,걱정 안 해도 된다니까요?”
“그걸 왜 네가 정해. 그리고 그게 내 맘대로 되나? 나 심장 떨 어질 뻔했다고 했잖아.”
“이런 유치한 말까지 하고 싶진 않았지만,폐하. 우리의 심장은 그렇게 쉽게 떨어지지 않아요.”
“아니야,한번 만져 봐. 진짜 없어진 것 같다.”
“와,나보다 더 유치해.”
“그렇다면 내가 이긴 거야.”
국왕과 왕후는 엄청나게 티격태 격하고 있었다.
그런데 둘은 열심 히 싸우면서도 서로를 꼭 끌어안고 아주 찰싹 달라붙어 있었다.
심지어 왕은 가끔 욱하다가도 걱정이 되는지 왕후의 엉치뼈 부근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어쩌면 이 상황은 훨씬 전부터 예견되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국 왕은 입으로는 툴툴대면서,손으 로는 열심히 고기를 썰어 주는 남편이었으니까.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은 생각했다.
저 부부는 저러다 조만간 싸우면서도 쪽쪽 입을 맞출 것 같았다.
국왕과 이재는 다소 조용한 분위기에서 식사를 마쳤다.
그녀가 식사 내내 점괘에 대해 생각하느 라 여념이 없었기 때문이다.
로더 릭은 또 이재가 입올 다물어 버 리자,연신 안색을 살폈다.
한결 같은 결말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이재의 처소로 돌아왔을 때, 그녀는 조금 당황하고 말았다. 이재를 침대 위에 앉 혀 놓은 왕이 그대로 방을 나가 버렸기 때문이다.
왜 갑자기 나가 는지 한 마디 설명조차 없었다.
그녀는 왕이 닫고 나간 문을 빤히 바라보았다.
“간 건가? 설마 진짜로 삐졌나?”
그런데 그녀의 남편은 매번 말로만 자기 삐쳤다고 하지, 실제로 그런 사람은 아니었다.
삐쳤다는 말은 오히려 화 안 났다거나 다 풀렸으니 신경 쓰지 말라는 뜻에 가까웠다.
계속 서운하다는 표를 내면서도 왕은 오늘 저녁 내내 그녀의 식사를 챙겨 주었던 것이다.
고개를 갸웃거리던 이재는 결국 침대에서 일어나 방문을 슬그머니 열었다. 살구색 여우는 동태를 살피고자 고개를 빼꼼 내밀었으나 눈에 띄게 움찔하고 말았다.
사라진 줄 알았던 국왕은 문 바로 앞에서 의원과 얘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등 뒤에서 문이 열리자 의아한 기색으로 돌아본 왕은 물었다.
“왜 나왔어?”
우물쭈물하던 이재는 중얼거리 둣 말했다.
“그냥…… 혹시 가신 건가 해서요.”
“아,내가 싫은 소리 좀 했다고 또 각방 운운하는 건가? 부인 무서워서 무슨 말을 못 하겠네.”
“아니, 그런 뜻은 아닌데요.”
로더릭은 픽,웃으며 그녀의 짧은 앞머리를 쓸어 넘겼다.
“농담이니까 들어가 있어. 금방 갈게.”
하지만 이재는 곧바로 들어가지 못하고 한동안 머뭇거렸다.
아무 리 봐도 저 의원은 지금 자신 때 문에 와 있는 것 같았다.
그녀는 왕의 등 뒤에 숨어서 옷자락을 스윽, 끌어당겼다.
그리 고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는 또 왜 그러냐는 듯 돌아 보며 허리를 숙였다.
“지금 뭐 하시는 건데요?”
“그냥 얘기 중이야.”
“……의원까진 괜찮은데요.”
“뭐가 괜찮아.”
아무리 그래도 의원한테 엉덩이가 깨질 뻔했다는 말을 하고 싶진 않단 말이에요.
꼬리뼈가 부서질 뻔했다는 말도 하고 싶지 않아요.
그러나 로더릭은 민망해하는 그 녀에게 태연하게 대꾸했다.
“상처 입은 몸은 의원과 약이 치료하는 거지. 상처 입은 마음이야 아내가 치료해 주겠지만.”
“……난 안 다쳤는데.”
“내가 언제 네 얘기랬나? 내 얘기야.”
“신경 쓰지 말고 들어가 있기나 해. 가서 쉬고 있어.”
로더릭은 이재를 그대로 방 안 으로 욱여넣고 문을 닫아 버렸다.
방에 오도카니 남겨진 이재는 고개를 가웃거렸다.
대체 될 어쩌 겠다고 저러는 건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곤혹스러워하며 뺨을 긁적이던 그녀는 다시 침대 쪽으 로 발을 옮겼다.
이재는 한동안 침대에 누워 눈 만 깜빡거렸다.
로더릭이 다시 방 안으로 들어온 건 심심해진 그녀 가 헤일리의 일기장을 펼쳐 들었을 때였다.
이재는 일기장을 가슴팍에 내려 놓고,남편을 향해 빙긋 미소 지 었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은 로더 릭이 침대 위로 올라오자,다소 의아해졌다.
분명 빈손으로 나갔던 남편이 손에 무언가를 들고 있었기 때문 이다.
“폐하,그게 뭐예요?”
이재는 의아해서 고개를 한쪽으 로 기울였다.
로더릭은 들고 온 작은 통을 침대 헤드에 올려놓았다.
남편이 갑자기 양어깨를 잡자, 그녀의 표정은 더욱 알쏭달쏭해 졌다.
그는 그대로 그녀를 반대로 엎어 놓았고,이재는 엎드린 채 고개를 쳐들었다.
그리고 이어진 말에 그녀의 얼굴은 충격에 휩싸였다.
“넘어진 데 좀 봐.”
“뭐라고요?”
“확인은 해 봐야 될 거 아냐. 내가 우리 콩알 때문에 성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지금 저 놀리려고 장난하는 거죠?”
아니면 피의 복수인가요? 제가 아까 그 정도로 많이 까불었나요?
왕은 그녀의 반문에 대답해 주 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손이 드레스 자락을 쥐고 들추려 하자,그녀는 벌떡 일어났다.
아무리 봐도 이건 장난이 아니 었고,그녀의 남편은 지금 순도 백 프로의 진심이었다.
당황한 이재는 허둥지둥 끝으로 피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