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od Truck Owner Inside the Dungeon RAW novel - Chapter (128)
던전 안 푸드 트럭 사장님-127화(128/302)
던전 안 푸드 트럭 사장님 127화
“뭐라고?”
어렴풋이 들리던 목소리가 확실히 느껴졌다. 귓가에 속삭이는 목소리에 놀라 지은이 뒤를 돌아보았다.
어느새 자신의 뒤에 있었던 사람들이 모두 사라져 있었다. 심지어 까망이와 안전 영역조차 사라지고 온전히 문과 자신만 남아 있는 상황에 놓인 지은이 몸을 흠칫 떤 순간이었다.
‘이번에도 이용당하고.’
‘……’
‘배신당한다면?’
이번에도 이용당하고 배신당한다니. 영문을 알 수 없는 누군가의 목소리에 지은이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자신은 지금까지 이용당하고 배신당한 적이 없었다. 확실한 것은 자신을 흔들기 위한 이 목소리에서 신경을 끄고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균열을 봉인하겠어.”
[봉인하기 위해선 자물쇠를 채워야 합니다.] [자물쇠는 균열의 문을 봉인한 최초 봉인자만 설정 가능하며, 최초 봉인자 소유의 물건이라면 어떤 것이든 자물쇠로 지정할 수 있습니다.]‘자물쇠?’
최초 봉인자는 당연히 자신을 가리키는 말일 테고. 자물쇠를 채워야 한다는 시스템 알림에 주변을 둘러보던 지은의 눈에 환하게 빛나기 시작한 균열의 문손잡이가 들어왔다.
앞에서 봐도 옆에서 봐도 완벽한 자물쇠 모양으로 빛나고 있는 모습에 이곳에 자물쇠를 채우라는 뜻이라는 걸 알아챈 지은이 고민에 빠졌다.
자물쇠 모양의 그 어떤 물건도 갖고 있지 않았을 뿐더러, 정말로 말 그대로의 자물쇠를 채우라는 의미는 절대 아닐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자물쇠로 쓸 만한 걸…… 사야 하나?”
헌터 마켓에서 봉인용 아이템이라도 사야 할까 싶어 시스템창을 열었던 지은이 얼굴을 와락 구겼다.
시스템이 복구되면서 접속이 가능했던 헌터 마켓이 다시 열리지 않는 상황에 지은이 한숨을 내쉬고는 입고 있던 앞치마의 주머니를 뒤적였다.
넉넉한 깊이의 앞치마 주머니에서 달그락거리는 물건을 꺼내 든 지은이 눈을 가늘게 뜨고는 굳게 닫힌 문을 바라보았다.
어떤 형태의 물건이든 일단 최초 봉인자가 소유한 물건이라면 자물쇠로 사용이 가능하다고 했지만, 그래도 이건 좀 아닌 것 같았다.
“아무리 그래도 뒤집개는 조금…….”
앞치마에서 지은이 꺼내 든 것은 언제 넣어 뒀는지 기억조차 가물가물한 작은 플라스틱 뒤집개였다.
천 원 마트에서 색깔별로 구매했던 플라스틱 뒤집개 세트 중 연두색 뒤집개를 손에 들고 고민하던 것도 잠시. 가지고 있는 물건이 이것밖에 없었기에 일단 시도해 보기로 마음먹은 지은이 봉인을 위해 빛나고 있는 문을 향해 다가갔다.
[자물쇠로 사용할 아이템의 이름을 설정해 주십시오.] [자물쇠로 사용한 아이템의 이름을 입력하지 않으면 봉인은 절대 풀리지 않습니다. 이름 설정은 신중하게 해 주시길 바랍니다.]“오…….”
비밀번호를 설정하라는 말이나 다름없는 친절한 설명에 지은은 또다시 고민에 빠졌다.
어린 시절, 비밀번호를 생일로 설정했다가 모든 아이템을 탈탈 털린 채 기본 속옷만 입혀진 처참한 모습으로 마을에 서 있던 RPG 게임의 기억이 불현듯 떠올랐다.
나름 재미있게 했던 게임이었는데 비밀번호는 최대한 어렵게 설정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어차피 한 번 봉인하면 절대 봉인을 풀 이유가 없었다. 일반 균열도 아니고 상위 균열이니 더더욱 비밀번호를 어렵게 설정해야 했다. 문 너머에 있을 존재들이 절대 알아내지 못할 정말 하찮으면서도 특별한 비밀번호가 뭐가 있을지 생각하던 지은이 씨익 미소 지었다.
[‘다X소 주방 특별 할인전 뒤집개 삼색 세트 빨, 녹, 검’으로 자물쇠 이름을 설정하시겠습니까?]“네.”
[자물쇠 이름이 ‘다X소 주방 특별 할인전 뒤집개 삼색 세트 빨, 녹, 검’으로 설정되었습니다. 상위 균열이 봉인되었습니다!]보안 등급이 표시된다면 최고 등급은 가뿐히 넘을 비밀번호를 설정한 지은이 뿌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어차피 제정신이라면 절대 봉인을 풀지 않을 테니 비밀번호는 잊어버려도 상관없었다. 상위 균열을 봉인했다는 사실이 중요한 거였다.
이름이 지어진 뒤집개가 지은의 손에서 떠나 휘리릭 회전하며 환하게 빛나고 있는 자물쇠의 형상에 날아가 수직으로 꽂혔다. 그와 동시에 빛이 파앙! 하고 터져 나왔다.
<이미 한 번 실패한 과거를 되풀이하려 하는구나.>
‘당신, 대체 누구…….’
직감적으로 균열 밖으로 나간다는 것을 느낀 지은이 눈을 질끈 감았다.
희미해져 가는 의식의 끝자락에서 지은은 자신에게 속삭이는 목소리에게 말을 걸었지만. 되돌아오는 말은 없었다.
[상위 균열이 완전히 봉인되었습니다!] [믿을 수 없는 업적! 상위 균열을 봉인한 대한민국에 승전보가 울려 퍼집니다!]시스템 알림과 동시에 승전보를 알리는 팡파르가 폭죽과 함께 터져 나왔다.
균열 너머로 망설임 없이 손을 뻗어 문을 닫은 지은이 없어져 당황했던 사람들은, 검은 장막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며 떠오른 시스템 알림을 보며 얼떨떨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상위 균열이 발생한 장소라고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균열의 중심이었던 호텔을 제외하곤 아무 피해도 없는 상황.
던전화가 진행되어 완전히 사라져 버린 ‘S’ 호텔을 제외하면 균열 바깥은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었다.
놀랄 틈도 없이 시스템 알림이 몰아치고 있었다.
계속해서 나타나는 시스템 알림창의 내용을 확인한 주혁이 이내 기가 찬다는 듯 헛웃음을 터트리고는 중얼거렸다.
“대체 무슨 일을 벌이신겁니까, 지은 씨…….”
[상위 균열을 봉인한 토벌대의 공헌도를 산출 중입니다!] [공헌도 순위 산출 완료!]1위 : 민지은
2위 : 한그루
3위 : 송주혁 – 남운
[상위 균열을 봉인한 업적으로 국가 : 대한민국에 시스템이 개입할 권한이 상승했습니다.] [국가 : 대한민국이 최우선 관리 등급으로 승격했습니다!]쏟아지는 알림을 확인하며 주변을 둘러봤지만 지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인벤토리에 넣어 놨던 길드 내부망 핸드폰을 다급하게 꺼내 든 주혁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지은의 다이렉트 메시지였다.
[저 집에 왔어요.] [당분간 잠수 좀 탈게요. 안녕히 계세요.]메시지를 확인한 주혁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다행히 집으로 바로 이동했는지 당분간 잠수를 타겠다고 당당하게 선언한 지은의 메시지에 당황했지만, 벌떼처럼 몰려드는 기자들을 보며 주혁은 차라리 그게 낫겠다고 생각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 * *
대한민국 공식 헌터 커뮤니티 – 자유 게시판
[주간 인기 게시글] Page.1<주간 핫 토픽!>
1. 우리는 푸드 트럭의 시대에 살고 있다.[추천 999 / 비추 4 댓글 실시간 갱신 중!]
시스템 공식 인증 상위 균열 봉인 기여도 1위.
던전에서 직접 음식을 만들어 판매해 주시는 것도 모자라 친히 푸드 트럭을 끌고 균열 안을 오고 가시며 민간인을 구조하시고 완벽한 스킬 사용으로 균열 안에 신선한 랭커들을 배달하셔서 조기에 상위 균열 모가지 따 버린 푸드 트럭 사장님이라니. 가슴이 웅장해진다.
└ 222. 실시간으로 균열 안에 휘말린 민간인들 구출해 오는 거 TV 앞에서 숨죽이고 봤다. 무슨 스킬인지 모르겠는데 아무튼 구출된 민간인들 인터뷰 들어 보면 정말 장난 아니었다고 하더라.
└ 영상 첨부 [구출된 민간인들 인터뷰 모음.]
└ 진짜 요즘 뉴스 보면 푸드 트럭 사장님 인터뷰 따려고 방송국놈들이 혈안이 된 듯하던데.
└ ‘청와대 만찬 초대 – 국빈급 대우’ 기사 전문 보기 –[링크]
└ 국빈급 대우? ㅋㅋㅋㅋㅋㅋ어이가 없네. 헌터도 아니고 비전투 계열 각성자가 상위 균열 봉인 공헌도 1위를 시스템에게 공인받은 게 지금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더 보기]
└ ?? 뭐가 어이가 없음? 국빈급 대우 받는 게 맞는 거지.
└ [더 보기] 눌러 봐.
└ 국빈급 대우? ㅋㅋㅋㅋㅋㅋ 어이가 없네. 헌터도 아니고 비전투 계열 각성자가 상위 균열 봉인 공헌도 1위를 시스템에게 공인받은 게 지금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
정신 차려 정부야 국빈‘급’ 대우가 아니라 국빈이 납셨는데 사장님 집부터 청와대까지 레드 카펫 깔아 놓고 모시러 가도 모자랄 판에 지금 국빈‘급’ 대우? 눈치 챙겨 제발!
└ 다들 아직 국민 청원 동의 안 누름? 니들 미국에서 우리 사장님 모셔가려고 벌써부터 수 쓰고 있는 거 알고 인터넷 함?
주한미국대사관 제임스 딘, ‘미국과 한국은 최우선 국방 동맹국.’
– 미국 부통령 아놀드 트럼펫 방한 일정 조정 중. ‘방한의 궁극적인 목적은 양국의 발전과 우호 증진이어야 한다. 하지만 나는 한 명의 헌터로서 민지은 양부터 만나고 싶다.’
[청와대 국민 청원 게시판] [국민 영웅 민지은 님의 이민 금지법을 제정해 주세요.] – 참여 인원 306,222명전 세계 최초 상위 균열 봉인에 지대한 공을 세운 민지은 님의 이민 금지법을 강력히 건의합니다.
던전에서 음식이라 부를 수도 없는 건어물과 물, 그리고 포션만 먹고 살아가는 저희 헌터들에게 한 줄기 빛과 소금 같은 존재인 푸드 트럭 사장님입니다.
존재 자체로 미쳐 돌아가는 이 세상이 아직 살 만하다고 생각하게 되는 민지은 님을 행여 다른 나라가 채 가기 전에 이민 금지법을 제정하고 국보로 지정해서 지켜 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격하게 동의한다. 헬조선 난이도 못 버티고 이민 간 랭커들이 몇 명이냐?
└ 진짜 하다하다 이젠 청와대 국민 청원임? 진짜 가지가지 한다;;
└ 가지가지 하는 건 바로 너였고요.
└ 내 말은 세계 최초 시스템 공인 최우선 관리 국가로서의 에티튜드를 갖추는 게 어떻겠냐는 거야. 이렇게 청원만 올릴 게 아니라 헌터들 다 같이 들고일어나야 하지 않겠음? 정부가 우리에게 해 준 게 뭔데!
└ 건방진 양키놈들 퍼킹 고 홈.
└ 근데 우리 사장님 왜 균열 이후로 공식 활동이 없으시지? 청명 길드에서도 반응이 없고.
* * *
“……고개를 들고 다닐 수가 없어!”
전 세계에 던전이 발생한 지 20년. 그동안 한 번 발생할 때마다 천문학적인 재산 피해와 함께 끔찍할 정도의 인명 피해를 안긴 전 인류의 적이자 위협이던 균열.
그중에서도 전 세계 어디에도 없었던 상위 균열의 등장에서 부상자는 있었지만, 단 한 명의 인명 피해도 없이 그동안 발생했던 그 어느 균열보다 빠르고 깔끔하게 위기에서 벗어난 지금.
그동안 헌터 강대국이긴 했지만 균열이 4번이나 발생한 가장 위험한 나라. 대균열의 발생지이며, 지옥불 반도 코리아라고 불리던 한국의 위상은 끝을 모르고 치솟기 시작했다.
지금껏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균열 자체를 봉인해 버렸다는 엄청난 소식까지 전해지자 전 세계의 주목이 쏠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상위 균열을 자유롭게 오고 가며 민간인들을 최우선으로 구출해 내고, 그것도 모자라 헌터가 아닌 비전투 계열임에도 상위 균열을 봉인하는 데 가장 큰 업적을 남긴 지은을 보유하고 있는 대한민국.
K-한국인의 국뽕에 찬 찬양글과 함께 매일같이 쏟아지는 기사들, 뉴스, 헌터 게시판의 실시간 반응들을 보며 순식간에 범국민적 영웅으로 등극한 지은은 괴로움에 몸부림치고 있는 중이었다.
[한국이 균열을 봉-인하자 전 세계가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한국의 한마디에 벌벌 떠는 선진국들!] [다케시마? 아니죠, 자랑스런 우리 땅 독도입니다! 일본이 독도 소유권 논쟁 포기를 논의하기 시작한 이유? 대 헌터 시대의 종주국으로 우뚝 선 갓한민국의 위상!] [끊이지 않는 중국의 한국 눈치 보기! 넓은 중국을 지배했던 건 한민족? 충격!]이때다 싶어 한풀이라도 하듯 쏟아지는 국뽕의 바다에서 최종적으로 언급되는 건 바로 지은의 이름이었다.
졸지에 한국이 숨겨 놓은 최후의 비밀 병기가 되어 버린 지은은 셀프 자가 격리에 들어간 상태였다.
“어딜 돌아다니질 못하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