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od Truck Owner Inside the Dungeon RAW novel - Chapter (129)
던전 안 푸드 트럭 사장님-128화(129/302)
던전 안 푸드 트럭 사장님 128화
국가적 위상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지만, 땅이 좁은 건 어쩔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 좁은 서울 바닥에서 이미 뉴스에 얼굴이 팔릴 대로 팔린 지은을 못 알아보는 사람도 없었다.
잠깐 마트에 장을 보러 나갔을 때에도 어떻게 알고 찾아왔는지 미리 잠복해 있던 기자들이 둘러싸는 통에 마트 푸드 코너에서 장을 보는 평범한 일상도 즐기지 못하게 된 지금, 가장답답한 건 지은이었다.
“해야 할 일이 산더미인데 어떡하지?”
푹신한 베개에 얼굴을 파묻은 지은이 한숨을 내쉬었다. 당장 머릿속에 떠오르는 시급한 문제들만 해도 한가득인데 셀프 자가 격리에 빠져 있다니.
길드 내부망은 지은의 당부를 알아들은 주혁의 조치로 잠잠했지만, 원래 사용하던 핸드폰으론 어떻게 번호를 알아냈는지 국회 의원들이나 정부 단체의 연락이 쏟아지고 있었다.
주민 등록의 나라 대한민국.
무등록이 판치는 외국에서야 비밀 단체나 범죄자들이 판을 치지만, 주민 등록도 모자라서 각성자 등록까지 철저하게 하는 대한민국에선 범죄자들의 비밀 기지까지 세금 고지서가 날아갈 가능성이 충분했다. 이런 대한민국에서 지은의 번호를 알아내는 것은 손쉬운 일이었다.
“각성자 등록만 조금 늦게 했더라도!”
이제 와서 성실한 한국인이었던 자신의 행동을 후회해 본들 어쩔 수 없었다. 각성자 등록을 미뤄도 된다고 했던 주혁의 말을 듣지 않은 것이 이렇게 후회될 수가 없었다.
지은이 침대 위에서 몸부림을 치는 것을 그루밍을 하며 바라보던 까망이가 말했다
<그렇다고 이렇게 집에만 있을 거냥?>
“아니, 일단 만날 사람은 만나야 하는데.”
<누구부터 만날 거냥?>
“아무래도 회귀자님부터 만나 봐야겠지?”
만나 봐야 할 사람은 두 명이었다. 그 두 명이 다들 평범하지 않다는 것이 문제였지만.
한 명은 자신이 실패한 세계에서 회귀해 왔다는 회귀자이고, 한 명은 꺼림칙하지만 같은 편이라고 믿고 싶은 마나 소울이 두 개인 대마법사.
그중에서 지은이 가장 먼저 만나 보기로 결심한 사람은 남운이었다.
그가 자신을 지칭하던 호칭인 대리자는 까망이에게도 확인받은 것이나 다름없는 상태였기도 했고, 회귀해 온 그가 말하는 실패한 세상이 어떻게 실패했는지도 궁금했다.
그 실패한 세상에서 지은은 자신이 어떤 역할을 하고 있었기에 자신을 찾아 회귀했다는 말을 했을까, 한참을 고민해 봤지만 떠오르는 것은 없었다.
“좋아! 결심했어!”
누워 있던 지은이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며 소리치고는 시스템창을 열었다.
한 번 맺은 파티는 영원한 파티라는 명목하에 A조의 파티는 계속 유지되고 있는 상태였다. 파티창을 열어 채팅을 확인한 지은은 오늘도 어김없이 올라와 있는 하소연의 헌터 게시판 링크글을 애써 무시하고는 남운에게 개인 메시지를 보냈다.
‘만나요, 우리.’
이른 아침이었기에 답장이 곧바로 올 거란 생각은 안 했던 지은은 메시지를 보내지자마자 곧바로 답장이 왔다는 알림에 놀라야 했다.
‘어디서 만날까요, 우리.’
기다렸다는 듯 도착한 남운의 답장을 바라보던 지은이 결연한 표정으로 메시지를 보냈다.
‘저희 집 앞 카페에서 봐요.’
* * *
학창 시절부터 자주 다니던 카페에 들어서며 지은이 모자를 더욱 푹 눌러썼다. 안경까지 끼고 나름대로 변장을 한 지은은 자신의 뒤를 졸졸 쫓아오는 몇몇 기자들의 인기척을 느끼고 길드에 지원을 요청해 놓은 상태였다.
전화번호를 알아내 개인적으로 연락하는 것은 어찌어찌 참을 수 있었다. 그냥 바로바로 차단을 하면 될 일이었기에 그 정도까진 넘어갈 수 있었지만, 지난번 ‘마트에서 장을 보고 있는 민지은 씨.’라는 제목으로 기사가 난, 이른바 ‘마트 기자 회견’ 사건 이후로 참고 참던 지은의 화가 폭발했다.
예전에도 이미 헌터들 사이에서 이름과 얼굴이 팔리긴 했지만, 그래도 거리에서 알아보는 사람은 적었다. 새삼 매스컴의 힘을 느끼며 지금 국민들의 최고 관심 인물이 된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궁금해하는 건 백 번 양보해서 이해할 수 있다 쳐도 그래도 이건 너무한 수준이었다.
다행히 길드에서 먼저 나서서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하지 말라.’는 강력한 권고를 했고, 지은이 집 밖을 못 다닐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국민 영웅을 위해 자중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그러나 몇몇 악성 기자들은 지은의 뒤를 꾸준히 밟으며 파파라치처럼 지은의 사생활을 캐려고 했다.
애초에 길드에 가입하는 조건으로 지은을 던전 안에서뿐만 아니라 밖에서도 지켜 주겠다는 주혁의 맹세대로 호위 팀이 즉각 출동한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호위 팀들의 적극적인 가드로 이제 어느 정도 개인 활동이 가능해진 지은은 커피를 주문하다가 전봇대 뒤에서 자신의 사진을 찍던 기자 한 명이 호위 팀에 의해 끌려가는 모습을 보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주문한 커피를 받아 카페의 가장 안쪽 자리에 앉은 지은이 커피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고는 푹신한 소파에 등을 기댔다. 모락모락 따뜻한 김이 올라오는 향긋한 커피 향을 즐기던 지은이 딸랑, 하는 소리를 내며 열린 카페 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카페에 들어선 남운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지은과 시선을 마주치고는 활짝 미소 지었다. 곧바로 자신의 앞에 뛰듯 걸어와 의자를 빼고 앉은 남운을 보며 지은이 황당하다는 듯 시계를 확인하고는 말했다.
“왜 이렇게 빨리 왔어요?”
오랜만의 외출에 혼자서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기러 일부러 약속 시간보다 한 시간이나 일찍 나왔던 지은이었다.
남운이 시내로 거처를 옮기며 마련한 집은 지은의 집에서 한참이나 떨어져 있었는데, 서울의 교통 상황을 고려해 보면 사실상 약속 장소를 말해 주자마자 출발한 거나 다름없었다.
놀란 지은의 표정을 뒤로하고 쓰고 있던 모자를 벗어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남운이 대답을 회피하며 말했다.
“이런 카페는 처음인데, 여기는 뭐가 맛있습니까?”
“바닐라라떼요.”
“그럼 저도 그걸로 하겠습니다.”
“주문은 셀프예요. 가서 하고 오세요.”
“아, 그렇죠.”
지은에게 추천받은 바닐라라떼를 주문하고 돌아온 남운이 다시 의자에 앉으며 뭐라 입을 열려는 것을 손을 들어 저지한 지은이 말했다.
“어차피 받아 오셔야 할 텐데. 일단 커피부터 받아 오고 이야기해요, 우리.”
“네?”
“중요한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흐름이 끊기면 안 좋잖아요.”
“아, 그렇죠.”
지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한 남운의 얼굴엔 미소가 가득했다. 하지만 지은은 초조하게 떨고 있는 그의 다리와 가만히 놔두질 못하는 그의 손을 바라보고는 여유롭게 커피를 홀짝이며 생각했다.
‘불안해하고 있네.’
이유는 모르겠지만, 지금 남운은 초조해 보이는 것을 넘어서 어딘가 불안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수십 마리의 몬스터가 바로 코앞까지 달려와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검을 잡고 있던 것과는 다르게 자신의 앞에서 초조한 기색을 드러내고 있는 남운의 모습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주문한 커피가 나왔다는 사장님의 말에 튕기듯 자리에서 일어난 남운이 커피를 가져와 다시 지은의 앞에 앉았다.
“자, 그럼 자칭 회귀자님.”
테이블 위에 소리 차단 마법이 인챈트된 아이템을 올려 둔 지은이 남운을 지그시 바라보며 말했다.
“저에게 어디까지 말해 줄 수 있어요?”
“……인과율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선 어디까지든.”
“인과율이요?”
“아무것도 듣지 못했습니까?”
질문을 한 것은 지은 본인이었는데 자신의 질문을 질문으로 되물어 오는 남운의 말에 지은이 생각에 잠겼다.
지금 상황에서 본인에게 아무것도 말해 주지 않았냐는 남운의 질문에 해당하는 대상은 단 하나, 까망이뿐이었다.
“까망이도 제가 대리자라고 하긴 했어요.”
“까망…… 이요?”
“제 정령이요. 창조의 정령인데, 제가 이름을 붙여 준 거예요.”
“창조의 정령의 이름이 까망이라…….”
말도 안 된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남운이 헛기침을 했다. 자신의 네이밍 센스가 눈앞에서 부정당하는 것 같은 반응에 기분이 오묘해진 지은이 눈을 가늘게 뜨고 책상을 팡! 하고 내리치고는 말했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잖아요?”
“네, 그렇죠.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문제죠.”
자신의 말에 맞장구를 치긴 했지만, 어딘지 모르게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못하는 태도에 지은이 남운을 흘겨보았다. 그런 지은의 시선을 애써 피하던 남운이 커피를 쭉 들이켜고는 입을 열었다.
“말씀드렸듯, 저는 실패한 세상에서 당신을 찾기 위해 시간을 거슬러 온 회귀자입니다.”
“회귀하기 전의 세상이 어떻게 됐길래 실패한 세상이라고 하는 거예요?”
“아무것도 남지 않았습니다.”
“네?”
“아무것도.”
그렇게 말하는 남운의 얼굴에 짙은 그늘이 졌다. 진심으로 분한 듯 주먹을 꽈악 쥔 채로 고개를 숙이고 몸을 부르르 떠는 그에게 뭐라 해야 할지 몰라 지은이 말을 골랐다.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어 지은과 눈을 마주친 남운이 말했다.
“모든 게 무너졌습니다. 지상의 모든 곳에 던전이 태어났고, 우린 그걸 막지 못했어요.”
“세상에…….”
“처음부터 무너진 것은 아닙니다. 우리에겐 유일한 존재가 있었거든요.”
“그게 설마…….”
“우리는 그 사람을 가리켜 이렇게 불렀습니다. 이 저주받은 세계를 구원하기 위해 태어난 대리자.”
“…….”
“그 유일한 대리자의 권능은…… 균열의 봉인.”
“잠깐, 잠깐만요.”
“지은 씨가 성공한 균열의 봉인 말입니다.”
“이해가 안 돼요!”
알 수 없는 설명을 쏟아 내려 하는 남운을 지은이 손을 들어 저지했다.
균열을 봉인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라는 말을 들은 직후, 지은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그리고 그런 지은이 느끼고 있는 위화감을 눈치챈 것은 남운도 마찬가지였다.
눈치챘을 뿐만이 아니었다. 오히려 확신을 가진 눈빛으로 자신의 시선을 피하는 지은의 얼굴을 똑바로 응시하며 남운이 그녀가 애써 가로막은 말을 꺼냈다.
“균열을 봉인하는 건 지금까지 그 누구도 성공하지 못했던 일입니다.”
상위 균열을 봉인하기 직전, 문을 직접 닫아 보자고 말을 꺼냈던 것은 지은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자리에 있던 그 누구도 균열 너머로 선뜻 손을 뻗는 것을 시도하지 못하고 있었던 그때. 지은은 귓가에 계속해서 속삭이던 목소리를 쫓아 자신도 모르게 문 앞에 섰다.
아무렇지 않게 손을 뻗어 균열의 문을 닫았을 때 들려왔던 목소리가 떠올랐다.
이번에도 이용당하고 배신당하며 이미 한 번 실패한 과거를 되풀이하려 하냐는 누군가의 물음.
마치 자신이 균열을 봉인하는 것을 막으려는 듯 부정적으로 속삭이던 그 목소리.
“제가 균열을 봉인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죠? 그러지 않고서야…….”
“처음 봤습니다.”
“네?”
“말 그대로입니다. 지은 씨는 지난 세상에선 저와 만난 적이 없거든요. 지은 씨도, 하소연 씨도.”
“……지난 세상에선 없었던 제가 이번 세상에선 존재해서 눈치챘다는 건가요?”
“네, 그렇습니다.”
“그럴 리가…… 아무리 그래도 남운 씨가 모든 사람을 만나 본 건 아니잖아요? 어떻게 제가 균열을 봉인할 수 있는걸 알고 있었던 것처럼 행동할 수 있죠?”
균열을 닫기 위해 문으로 다가가는 자신을 가로막는 주혁을 막아선 것은 바로 남운이었다. 확신에 찬 목소리로 무슨 결과가 나오든 받아들이면 된다고 말했던 그였다.
“마지막 기회였거든요.”
“네?”
“전 고작 한 번 회귀한 게 아닙니다.”
“뭐라고요?”
“지은 씨, 당신을 찾기 위해 나는 9번을 회귀해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