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od Truck Owner Inside the Dungeon RAW novel - Chapter (134)
던전 안 푸드 트럭 사장님-133화(134/302)
던전 안 푸드 트럭 사장님 133화
정곡을 찔렸는지 손사래를 치며 이태서의 말을 애써 부인하던 국회 의원들이 어색하게 헛기침을 하며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 휩쓸린 게 한두 번이 아닌 듯 이태서의 노련한 밀고 당기기에 지은은 박수를 칠 뻔한 손을 어색하게 내리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웬만한 정치인 뺨치게 간을 보네.’
여, 야가 합심해서 대통령과 함께 국제적 위상이니, 선진 국가의 모범이니 하며 강조하는 것을 보니 지은도 짚이는 게 있긴 했다.
“파병은 안 갑니다.”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정치인들이 언제 이야기를 꺼낼까, 하며 눈치를 보고 있던 주제를 시원하게 거절한 이태서가 느긋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말했다.
“일본? 미국? 중국? 어디든 균열이 나타날 때가 됐긴 했지. 어딥니까?”
“실은 미국에서 지원을 요청했습니다.”
“……세상에.”
다 알고 있다는 듯 느긋한 이태서의 말을 들은 대통령의 입에서 결국 이 자리에 길드 연합의 주축인 청명 길드와 태백 길드의 대표 격을 불러낸 이유가 나왔다.
그리고 이건 지은 역시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던 일이기도 했다. 지은은 눈치를 보고 있는 국회 의원들의 얼굴을 보며 주혁에게서 받은 메시지의 내용을 떠올렸다.
[아무리 세대가 변했다고 하지만, 미국이 저렇게 대놓고 국제 사회에서 우리나라를 치켜올리는 데는 이유가 분명 있을 겁니다.]아니나 다를까, 파병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 대통령의 말에 헌터계의 고인물들의 촉을 무조건 믿어야겠다고 생각한 지은이 테이블 밑으로 자신의 발을 툭툭 건드리는 이태서에게 고개를 돌렸다가 눈을 질끈 감았다.
‘아, 못 볼 거 봤어…….’
이태서 팬들이라면 난리가 났을 장면이었겠지만, 꺼림칙하게 느껴지는 대상의 윙크를 눈앞에서 마주한 지은은 온몸에 소름이 끼친다는 게 무슨 느낌인지 절실히 느껴야 했다.
연기를 시작한다는 신호인건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영 마음에 들지 않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눈을 감은 채 고개를 끄덕이는 지은의 신호를 알아들었다는 뜻으로 잘 이해한 이태서가 거만하게 다리를 꼬며 한층 낮아진 톤으로 연기를 시작했다.
“미국? 그쪽 헌터가 우리보다 두 배는 많을 텐데 왜 우리가 자원봉사를 가야 하지?”
“이태서 헌터! 이 무슨 말버릇…….”
“꼰대 기질들 또 나오셨군.”
“뭐! 꼰대 기질이라니, 새파랗게 젊은 놈이!”
“분위기 파악이 안 되나 본데.”
버럭 소리를 지르는 의원들이 가소롭다는 듯 머리를 쓸어 넘긴 이태서의 등 뒤로 여러 개의 마법구가 떠올랐다.
혼비백산하게 국회 의원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자 청와대의 경호원들이 다급하게 만찬 테이블 주위로 몰려들었다.
“여기서 내 마법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이 있나?”
수많은 경호원들에게 둘러싸였음에도 커피 잔을 들고 있는 태연한 모습 그대로 주위를 둘러본 이태서가 피식 웃음 지었다.
그 웃음이 가지고 있는 의미를 모를 리 없는 경호원들의 몸이 흠칫 굳었다. 경호원들 모두 이름난 헌터들이었지만, 대마법사인 이태서의 마법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좀처럼 성급하게 움직이지 못했다.
‘이걸 어떻게 맞춰서 연기를 하라고!’
이태서가 윙크로 연기의 시작을 알렸으니, 최대한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며 어떤 일이 일어나도 가만히 앉아만 있자! 라고 생각했던 지은이었다.
그러나 사태가 이 지경까지 오자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할지 막막해 그냥 앉아만 있었더니, 지은도 이태서만큼이나 어마어마한 능력을 숨기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효과를 불러일으켰다.
“가만히들 있게.”
무거운 분위기를 깨고 입을 연 것은 제자리에 그대로 앉아 평온한 얼굴을 하고 있던 대통령 김연수였다.
“이태서 헌터, 갑자기 이야기를 꺼내서 미안합니다. 우리가 너무 급했습니다.”
“흠.”
“그러니 일단 마법을 거둬 주시지요. 저 같은 일반인은 견디고 있기가 어렵습니다.”
부드럽게 말을 했지만, 단호한 대통령의 말에 이태서가 혀를 한 번 차고는 이내 기운을 풀었다. 덩달아 잔뜩 긴장했던 지은도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언제 그랬냐는 듯 빤히 앞을 바라보았다.
“높으신 분들께서 그동안 서로 물고 뜯기만 하시더니, 이렇게 사이좋은 모습도 보여 주실 줄 몰랐습니다.”
“상위 균열을 봉인한 대한민국의 지원을 바란다고 백악관에서 직접 요청해 왔습니다.”
“백악관…….”
화이트 하우스. 청와대도 모자라서 미국의 백악관이 거론되자 지은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 자체만으로도 놀라운데, 미국에서 직접 지원을 바란다는 공식 요청이 있었다는 말에 당황하던 찰나.
이태서가 ‘그래서 뭐 어쩌라고?’라는 표정으로 대통령을 바라보며 말했다.
“미국에도 상위 균열이 터졌습니까?”
“그렇습니다.”
“상위 균열엔 우리들이 들어갈 방법을 찾지 못해서, 아쉽지만 지원을 가 봤자 할 수 있는 게 없을 거라고 전해 주시길.”
“헌터님들이 아닙니다.”
“설마…….”
이야기를 나누던 두 사람이 말을 멈추고 지은을 빤히 바라보았다.
머릿속으로 ‘빨리 여기서 벗어나 어디든 가고 싶다.’라는 생각만 하고 있었던 지은이 자신을 가리키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왜 갑자기 말씀들을 멈추시는…….”
“이번 상위 균열 봉인의 기여도 1위인 민지은 양의 지원을 바란다는 미국의 공식 요청이 있었습니다.”
“네에? 말도 안 돼요!”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리에 지은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여기서 벗어나서 어디든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그 어디든이 미국이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당황한 지은이 손을 저으며 말을 이었다.
“제가 어떻게 미국을 가요!”
“못 가실 이유라도?”
지은의 당황한 모습에 장난기가 발동했는지 방금 전까지 아군이었던 이태서가 곧바로 적군으로 돌아섰다. 뭐가 문제냐는 듯한 이태서의 물음에 지은이 황당하다는 듯 그를 째려보았다. 지은의 이글거리는 눈빛에도 여유롭게 웃어 보인 이태서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확실히 그 누구도 들어가지 못했던 상위 균열 내부를 자유롭게 오고 갈 수 있는 능력이라면 도움이 되기 충분하겠죠.”
“이봐요, 이태서 씨…….”
“그런데, 설마 무료 봉사를 하라는 건 아니시겠죠.”
이태서가 닫혀 있는 만찬장의 문을 손으로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국회의 대표라고 하실 수 있으신 분들이 모여서 능력이 출중한 각성자를 핍박하는 모습은 썩 좋지 않을 것 같습니다만.”
“…….”
“언론으로 찍어 누를 생각하지 마시고, 우리끼리 이야기해 보시는 건 어떠실까요.”
이태서가 문을 가리키자 대통령은 물론이고 국회 의원들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그런 정치인들의 반응을 보며 지은은 문밖에서 대기 중인 기자들을 떠올렸다. 만찬 이후에 간단한 기자 회견이 진행될 거란 안내는 이미 받았다.
그러나 만약 이태서가 파병에 대해 미리 언급하지 않은 상태에서 파병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면?
기자들의 질문에 대답을 해도 문제였고, 안 해도 문제였다.
파병을 거절한다면 국익을 위한 파병을 본인들의 안위를 위해 거절한다는 자극적인 기사가 쏟아질 것이고, 어쩔 수 없이 파병에 대해 조금이라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면 이때다 싶어 지은을 쥐고 흔들 것이 분명했다.
이태서가 산뜻하게 입을 열었다.
“배우신 분들이잖아요, 다들?”
* * *
기자 회견은 취소되었다. 무공 훈장 수여를 끝으로 공식 일정을 마무리하고 미리 대기하고 있던 리무진에 탑승하려던 지은은, 자신 몫의 차에 따라 탑승하는 이태서를 흘겨보면서도 자리를 비켜 주며 말했다.
“처음부터 알고 있었죠.”
“어떤 것 말씀입니까?”
“기자 회견장에서 파병에 대한 이야기를 꺼낼 줄 알고 있었냐는 말이에요.”
자신의 말에 부정하지 않는 이태서를 바라보던 지은이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도와줘서 고마워요.”
“별 말씀을. 판을 깔아 주니 실속 있게 잘 챙기시던데.”
이태서의 능글맞은 말에도 지은은 고개를 끄덕일 뿐 그의 말을 부정하진 않았다. 대통령과 국회 의원들의 앞에서 연기를 하며 판을 깔아 준 이태서가 고마울 따름이었다.
기자 회견장에서 생각지도 않았던 질문에 곤경에 처할 뻔했던 자신을 도와줬고, 덕분에 원하던 것도 얻어 냈으니까.
“파병을 간다고 대답할 줄은 몰랐는데.”
“처음부터 속이려고 했던 건 괘씸하지만, 그래도 우리나라에 큰 도움도 될 것 같고, 어렸을 때부터 원하던 목표도 이룰 수 있었으니까요.”
“목표?”
“균열에 휘말린 사람들을 위한 복지요.”
갓난아기였을 적 균열의 진압에 스스로를 희생하신 1세대 헌터였던 부모님을 사진으로밖에 볼 수 없었던 지은은, 납골당에 가서 부모님을 만나고 올 때마다 부모님이 살아 계셨으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하곤 했다.
돌아가신 날조차 제대로 파악할 수 없어 희생자를 기리는 합동 제사일을 기일로 알고 살았던 지은이었다.
물론 외할머니가 부모님을 대신해 너무나 큰 사랑을 베풀어 주셨지만, 그런 외할머니까지 돌아가시고 혼자가 되었을 때 지은은 참 힘들게 살았다.
외할머니가 지은의 앞으로 모아 두신 돈이 있었지만, 정식 상속을 받은 건 성인이 된 이후였다. 있는지도 몰랐던 할머니와도 절연한 외삼촌이 서류상 보호자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혼자가 될 손녀의 돈을 노리는 외삼촌을 외할머니가 단호하게 끊어 내신 덕분에 성인이 된 후 유산을 조금이나마 받을 수 있었지만, 그 전까지는 국가로부터 최소한의 지원도 받지 못했다.
국가 유공자에게 주어지는 기초 연금으로는 외할머니의 병원비도, 약값도 대기 빠듯했다. 외할머니가 모아 놨던 돈을 도박으로 탕진했던 외삼촌은 2번째 균열에 휘말려 행방불명되었다. 있으나 마나한 유일한 일가친척은 그렇게 지은이 어렸을때 완전히 사라졌다.
‘부모님이 대균열 때 돌아가시고 어렸을 때부터 혼자 자라신 걸로 아는데요! 민지은 씨, 지금 심정이 어떠십니까!’
힘들진 않았지만, 그래도 외롭게 살았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뒤 혼자가 되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가장 따뜻하고 보람차게 기억되어야 할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 동안 흔한 친구조차 제대로 만들지 못했다.
친구라고 생각했던 무리들에게 이용당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에도 지은은 그렇게 슬프진 않았다. 애초에 출발점부터 다르다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지금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었고, 자신을 응원해 주며 진심으로 대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가득했다.
“전 운이 좋았다고 생각해요.”
“운 말입니까?”
“네, 운이요. 이런 능력을 가지게 된 것도 운이죠. 좋아하던 일을 통해 보람을 찾고 제 주변에 좋은 사람들도 가득하게 되었으니까요.”
“…….”
“정말 어렸을 때는 ‘난 왜 이렇게 불행할까?’하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어요. 웃긴 이야기지만, 세상에 나 혼자 남아 있는 기분이랄까.”
더 말해 보라는 듯 눈을 감고 가만히 듣고 있는 이태서의 얼굴을 잠시 바라보던 지은이 피식 웃음을 짓고는 말했다.
“이태서 씨도 알잖아요. 세상에 혼자 남겨져 있는 기분.”
“그게 무슨…….”
“거실에 불도 안 켜고 가만히 있어 본 적 있죠? 저도 그랬거든요. 집에 아무도 없는데 누군가 불을 켜고 나를 찾아 주지 않을까, 하는 마음. 아침이 오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 불이 켜져도 집 안에 혼자라는 걸 인정하기 싫어하던 그런 거 있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