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od Truck Owner Inside the Dungeon RAW novel - Chapter (150)
던전 안 푸드 트럭 사장님-149화(150/302)
던전 안 푸드 트럭 사장님 149화
“아으윽…….”
높은 곳에서 떨어졌지만, 지옥주에서 습득한 낙법 덕인지 순간적으로 엄청난 고통이 느껴지긴 했지만 그래도 정신을 잃지는 않았다. 지은이 바닥을 기듯이 몸을 움직이다 자신의 상태를 확인해 보기 위해 스탯창을 열었다.
“레벨을 올려놔서 다행이다…….”
몸은 멀쩡했지만 충격 탓에 기력이 많이 깎여 있었다. 낙법 덕분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동안 열심히 레벨 업을 한 덕분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지은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지옥주에서 레벨에 맞는 몬스터를 일주일 동안 때려잡고, 한국에서 발생했던 상위 균열에서 커피를 팔며 레벨 업을 하고, 이번 파병에서도 경험치 3배 부스터를 사용한 덕분에 지은은 지금 25레벨을 돌파한 상태였다.
확연히 늘어난 기력 덕분에 즉사를 면했다. 이래서 레벨이 높은 각성자들은 화물 트럭에 치여도 죽지 않는다는 말을 실감한 지은이 이어지는 시스템 알림창에 고개를 번쩍 들었다.
[던전 4층 타락한 신전에 입장했습니다!]“어?”
청명 길드와의 토벌 도중 빛줄기가 새겨진 비석을 발견했던 [타락한 신전].
다시금 타락한 신전에 입장했다는 시스템 알림을 확인한 지은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분명 방금 전까지 미국의 상위 균열에 있었던 자신이 어떻게 한국의 4층 던전에 입장했는지 이해가 좀처럼 되지 않았다.
“말도 안 돼.”
던전은 나라마다 존재했다. 그 어떤 나라의 어떤 던전에도 같은 구역은 없고, 나라별로 던전을 개척한 정도도 당연히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키드의 권능이 분명한 그림자 손아귀에 끌려 들어온 곳이 다름 아닌 한국의 4층 던전이라는 사실에 지은이 놀라 몸을 일으켰다.
무슨 상황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시스템창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때때로 산출 오류가 나오긴 하지만, 틀림없이 시스템창에서 지금 자신이 있는 곳이 4층 던전이라고 알려 준 지금, 지은은 무방비로 던전에 들어와 있는 상태나 다름없었다.
다급하게 푸드 트럭을 소환해 안전 영역을 확보하려던 지은의 앞에 환한 빛이 점멸했다.
번쩍.
“태양의 비석?”
어두컴컴하던 던전 안에 빛과 함께 나타난 것은 틀림없는 비석이었다.
토벌전 당시 봤던 비석에는 알아볼 수 없는 글자와 함께 선명하게 빛나는 태양 그림이 커다랗게 새겨져 있었다. 다시 만난 비석에선 실제로 환한 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빛의 영향인지 주변에 몰려들었던 몬스터들이 일제히 물러나는 광경을 보며, 지은이 푸드 트럭을 소환하는 것도 잊고 비석에 손을 댄 순간이었다.
우르르르릉!
땅이 울리는 소리와 함께 비석이 더욱 환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비석을 만지자마자 더욱 격렬하게 반응하는 주변에 지은이 놀라 몸을 흠칫 떨었다.
주변의 몬스터들조차 이미 다 사라져 버린 지금, 빛이 나던 비석이 흔들리더니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쩌저저적!
“뭐…… 뭐야?”
너무나 선명하게 들려오는 비석이 갈라지는 소리.
황급히 비석에서 손을 뗀 지은이 눈앞에 펼쳐지는 광경을 믿을 수 없다는 듯 멍하니 바라보았다. 거대한 비석의 중앙부부터 시작된 균열이 빠르게 비석 전체에 번져 가기 시작했다.
이윽고 쩡! 하는 소리와 함께 좌우로 비석이 정확히 반절로 갈라졌다. 갈라진 비석의 땅 밑에서 솟아오른 것은 온몸에 검은빛을 두르고 있는 정령이었다.
“타락의 기운!”
정령의 몸에 둘러진 것은 틀림없는 타락의 기운이었다. 눈을 감고 있던 인간형의 정령의 눈이, 순간 번쩍하고 뜨였다.
텅 비어 있는 정령의 눈.
놀라 뒷걸음질 치고 있던 지은과 눈을 마주친 정령의 몸에서 곧바로 작은 정령들이 퐁퐁 솟아나기 시작했다.
“빛의 하급 정령…….”
타락의 기운을 두르고 있는 검은 정령에게서 태어난 것은 빛의 하급 정령 위스프였다.
본래의 하얀빛이 아닌 검은빛을 두르고 있는 위스프들과 함께 선명하게 떠오르는 시스템창을 확인한 지은의 눈이 크게 떠졌다.
[잠들어 있던 빛의 정령왕 아실리아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각성자의 레벨에 비해 현격한 차이가 나는 대상을 조우했습니다!]“빛의 정령왕…….”
타락한 빛의 정령왕 아실리아.
틀림없이 4층에서 청명 길드의 손에 의해 소멸되었다던 빛의 정령왕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여성체의 모습을 하고 있는 아실리아는 검은 사슬에 온몸이 묶인 채 눈을 뜨고 지은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믿을 수 없는 광경에 지은의 사고가 정지했다. 분명 토벌되었던 보스 몬스터가 어떻게 다시 던전 안에 모습을 드러낸 것인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
“토벌되었던 게 아니었어?”
잠들어 있었다는 시스템 알림과는 달리, 검은 사슬에 의해 온몸이 묶여 있는 아실리아의 모습은 누가 봐도 누군가가 강제로 묶어 놓은 모습이었다.
아실리아의 몸에서 새로이 태어난 작은 어린아이 형상의 위스프들은 타락의 기운이 둘러져 있었음에도 지은에게 다가오는 몬스터들을 향해 빛줄기를 쏘아 내기 시작했다.
“나를 지켜 주는 거야?”
마치 자신의 말을 알아듣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이던 위스프들이 주위로 몰려드는 신비한 광경에 지은이 손을 뻗었다.
손바닥 위에 포르르 날아온 위스프가 지은의 손가락을 만지며 까르륵대기 시작했다. 보기만 해도 흐뭇해지는 광경에 지은의 얼굴이 헤실헤실 풀어지던 찰나였다.
“정령과 교감하는 인간이라…… 진짜였군.”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남자의 목소리에 놀란 지은이 뒤를 바라보았다. 짧은 단검을 손에 든 채 걸어온 남자의 얼굴을 확인한 그녀가 중얼거렸다.
“최성찬 헌터…….”
최성찬. 온건파인 이태백과의 싸움에서 밀려 미국으로 망명한 한국의 1세대 대표 랭커였다. 한때 과격파의 수장이기도 했던 남자이자, 이태백의 아내였던 정해연 여사와 그 딸인 이태린을 무참히 살해한 남자.
“당신이 어떻게 여기에…….”
복수에 눈이 돌아간 이태백에게 밀려 목숨만 부지한 채 미국으로 망명한 뒤 행적을 감췄던 1급 수배범 최성찬의 얼굴을 지은이 모를 리 없었다.
미국으로 망명했던 그가 갑자기 나타난 지금, 지은은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눈치챌 수 있었다.
“당신, 키드와 한패군요!”
버럭 소리를 지르는 지은의 기운을 읽었는지, 까르륵대며 몰려들었던 위스프들이 작은 날개를 일제히 펼치며 지은과 최성찬의 사이를 가로막았다.
“안 돼!”
그런 위스프들을 급하게 저지하려던 순간,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진 최성찬이 위스프들을 향해 단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단검에 찔리면서도 필사적으로 지은을 지키려는 듯 전혀 물러서지 않고 최성찬을 막아 내려던 위스프들이 힘없이 가루가 되어 흩어져 갔다.
위스프들이 저렇게 시간을 벌어 주고 있을 때 빠져나가야 했다. 무슨 능력을 썼는지는 모르지만 키드의 알 수 없는 이 권능을 알려야 했고, 거기에 대리자의 공간에 남아 키드와 싸우고 있을 까망이를 생각해서라도 일단 지은은 빠르게 일행들에게 합류해야만 했다.
검은 사슬에 몸이 묶인 채 꼼짝 못 하고 있는 빛의 정령왕 아실리아는 물론이고 빛의 정령들이 마음에 걸렸지만 지은은 이 공간을 빠져나갈 수 있는 비장의 스킬을 사용했다.
[스킬 : 방문 판매 대상자 ‘송주혁’] [스킬이 발동합…….]“어딜.”
푸욱!
수많은 위스프들을 순식간에 베어 넘기고 지은의 등 뒤로 돌아온 최성찬의 단검이 지은의 옆구리를 베어 냈다. 방문 판매 스킬을 사용해 주혁에게 이동하려던 지은이 순간 선명하게 느껴지는 홧홧한 고통에 비명을 질렀다.
“아아아악!”
처음으로 느껴 보는 고통. 단검이 베고 지나간 자리에서 붉은 피가 흘러나왔다. 피가 묻은 단검을 만지작거리던 최성찬이 고통에 차마 서 있지 못하고 바닥에 쓰러진 지은의 앞에 쪼그려 앉아 말했다.
“암살자 앞에서 그렇게 대놓고 스킬을 사용하면 쓰나.”
스킬이 발동할 때의 마나의 흐름을 읽을 수 있는 암살자 클래스의 고유 스킬 [마나 감지]를 사용해 방문 판매 스킬이 발동하기도 전에 지은을 공격한 것이었다.
스킬이 끊어진 여파로 찾아온 마나 역류 증상은 물론이고 옆구리를 크게 베인 지은이 고통에 몸부림을 쳤다.
“아흑…….”
처음으로 느껴 보는 마나 역류 증상. 마법진이 필요한 마법사들의 마법과는 달리 지은의 스킬은 즉시 발동 스킬이었다.
그런 즉시 발동 스킬을 끊어 내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바로 스킬이 발동되기 직전 사용자에게 직접적인 대미지를 주는 것이었다.
[각성자의 기력이 위험 수준에 도달했습니다! 빠른 치료가 필요합니다!]“어떻게…….”
“만나자마자 도망칠 거라고 경고해 줬거든. 쥐새끼처럼 잘 도망치는 아가씨라던데.”
“왜 이런 짓을…….”
“네 피가 조금 필요했거든.”
단검에 베인 지은이 쓰러져 있는 바닥에 붉은 피가 스며들기 시작했다.
아득해져 가는 의식 속. 식은땀을 흘리며 피가 철철 흐르고 있는 자신의 옆구리에 아티팩트를 들이미는 최성찬의 알 수 없는 행동에 지은이 이를 악물었다.
‘내 피가 왜…….’
문자 그대로 자신의 피가 필요했다는 의미인 듯, 수통 모양의 아티팩트가 자신의 피를 끌어당기는 모습을 내려다보며 지은이 입술을 깨물었다.
이대로 가다간 정말로 죽는다. 오랜 세월이 지났다고는 하지만 최성찬은 살인도 서슴지 않고 저질렀던 1급 범죄자였다.
피가 계속해서 아티팩트로 빨려 들어갈 때마다 자신의 기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시스템 알림창이 울려 퍼졌다. 마나 역류의 영향인지 아무리 힘을 줘 보려고 해도 도저히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스킬을 사용해 빠르게 도망쳐 보려고 해도 마찬가지였다.
기력이 너무 많이 떨어진 상태여서인지 스킬이 좀처럼 발동되지 않고 있었다. 스킬을 사용하려는 속셈을 다 알고 있다는 듯 지은의 피를 잔뜩 머금은 아티팩트를 들고 일어선 최성찬이 그녀의 피를 단검에 가득 묻히고는 말했다.
“벌써 죽은 거 아니지? 재미없잖아.”
“당신, 무슨 짓을 하려고…….”
“날 버린 조국에 선물을 하려고.”
“선, 물?”
지은의 말에 씨익 웃음을 지어 보인 최성찬이 걸어간 곳은 비석의 앞이었다.
온몸이 묶여 있는 빛의 정령왕 아실리아의 앞에 최성찬이 섰다. 그가 지은의 피가 묻어 있는 단검을 망설임 없이 아실리아의 몸에 찔러 넣었다.
“안 돼!”
아실리아의 몸에 단검이 깊숙이 박혔다. 단검에 맺혀 있던 지은의 피가 검날을 타고 흘러내려 아실리아의 몸에 닿았다.
그와 함께 공허하게 비어 있던 아실리아의 눈에 검은 기운이 맺혀 들기 시작했다.
[잠들어 있던 빛의 정령왕 아실리아가 강제로 눈을 뜹니다!]“나의 조국에 신의 축복이 있으라!”
아실리아의 눈이 검은색으로 채워지는 모습에 씨익 웃어 보인 최성찬이 단검을 뽑아 들고는 자신의 손바닥을 망설임 없이 그었다.
손바닥을 타고 흘러내리는 피는 붉은색이 아닌 검은색이었다.
기괴한 광경을 안간힘을 쓰며 바라보던 지은은 저 검은 피에서 느껴지는 것이 타락의 기운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당신들, 신과 계약을…… 신과 계약을 했군요!”
신의 축복을 부르짖는 최성찬의 모습과 그에게서 선명히 느껴지는 타락의 기운.
그제야 지은은 신에게 다른 계약자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째서 자신에게 균열을 봉인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음에도 이전 세상이 멸망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지은의 심정을 대변하듯 절망적인 시스템 메시지가 선명하게 떠올랐다.
[빛의 정령왕 아실리아가 또다시 타락에 빠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