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od Truck Owner Inside the Dungeon RAW novel - Chapter (157)
던전 안 푸드 트럭 사장님-156화(157/302)
던전 안 푸드 트럭 사장님 156화
“이그니스라니…….”
난데없이 자신의 앞에 나타난 이그니스의 모습에 하소연이 말도 안 된다는 듯 황망하게 중얼거렸다. 타오르는 불의 왕관을 쓰고 있는 외양뿐만이 아니라 정령사의 본능적인 기질이 눈앞에 있는 게 틀림없는 불의 정령왕이라는 것을 알려 주고 있었다.
[너에게 익숙한 기운이 느껴지는구나.]무슨 기운이 느껴진다는 건지 모르겠지만, 정령왕이 직접 자신에게 말을 거는 이 말도 안 되는 상황 자체가 놀라워 뭐라 대답하지 못하던 하소연은 이어지는 이그니스의 말에 입을 떡 하고 벌려야 했다.
[너, 푸드 트럭 사장과 무슨 사이지?]“푸드 트럭 사장이요? 지은이?”
[그래, 지은이라고 했던가. 그 아이와 무슨 사이냐? 좋은 기운이 느껴지는구나. 시간이 없다. 나와 계약하겠느냐?]“계약이요?”
[그래, 일단 가면서 설명해 주마! 어서 내 손을 잡아라!]말로만 듣던 정령왕과의 계약.
던전이 열린 지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상급 정령과 계약을 한 정령사는 있었어도 정령왕과 계약을 한 정령사는 없었다.
어떤 기연도, 각성도 없이 정령왕이 직접 행차해 시간이 없다며 계약을 하자는 상황.
그러나 ‘소고기 사 줄 테니까 가자.’도 아니고 ‘시간이 없으니 가면서 설명하지! 일단 차에 타라!’와 같은 말은 영화나 드라마, 애니메이션을 조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절대 거절할 수 없는 강렬한 대사였다.
망설임 없이 손을 뻗어 이그니스의 손을 맞잡자마자 하소연은 자신의 마나가 꿈틀대는 것을 느꼈다. 정령사로서 몸 안에 잠재되어 있던 기운이 손끝, 발끝까지 쭈욱 퍼져 나가는 느낌.
정령왕의 순수한 마나가 몸 안에 가득 들어차는 게 느껴졌다.
[불의 정령왕 이그니스와의 교감이 성공했습니다!]– 칭호 : ‘정령왕의 계약자’를 최초로 획득했습니다!
– 불 계열 정령의 소환이 자유자재로 가능해집니다.
– 소환 가능 정령 : 불의 하급 정령 샐러맨더, 불의 중급 정령 이프리트, 불의 상급 정령 피닉스
– 현신 가능 정령 : 불의 정령왕 이그니스
– 대업적을 달성한 보상으로 최대 마나가 200 퍼센트 상승합니다!
“허어억!”
단지 계약을 했을 뿐인데 최대 마나가 200퍼센트 상승했다. 하급 정령사는 별 볼일 없다고 하지만 중급 정령사 이상부터는 대 몬스터전에서 엄청난 효과를 발휘했다.
마나 회복력 옵션이 붙은 장비와 아이템, 아티팩트로 둘둘 무장한 채 후방에서 마치 공장에서 물건을 찍어 내듯 정령을 소환하는 이른바 물량전이 가능해진다.
중급 정령 정도만 되어도 상위 던전의 몬스터들과 대등하게 싸울 수 있었다. 몬스터 웨이브나 균열에서 쏟아지는 몬스터들을 상대하는데 마나가 빵빵한 정령사는 있으면 있을수록 아주 든든한 존재였다.
중급 정령사들도 그런데 하물며 정령왕과 계약한 마스터급 정령사의 화력은 어떨까.
무려 200 퍼센트나 상승한 마나와 함께 정령왕의 마나까지 동시에 느껴졌다. 숨 쉬는 공기조차 달라진 것 같은 기분. 얼떨떨한 표정으로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던 하소연이 주먹을 불끈 쥐고는 이그니스에게 말했다.
“시간이 없다고 하셨지 않나요? 저흰 어디로 가는 거죠, 정령왕님!”
[응? 아, 어…… 그게 말이다.]방금 전까지 하소연을 재촉하던 이그니스가 갑자기 당황한 표정을 지어 보이더니 이내 왕관을 긁적이기 시작했다.
그런 이그니스의 반응을 보며 상급 정령들을 펑펑 소환하는 대물량전, 대화력전을 기대하고 있던 하소연은 뭔가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눈치챘다.
“왜 그러시는…….”
[어, 급한 줄 알았는데. 어찌어찌 잘 해결됐나 봐?]“…….”
[우리는 안 가도 될 거 같은데?]정말로 당황했는지 이그니스가 살짝 말을 저는 것이 느껴졌다. 하소연은 순간적으로 엄습하는 싸한 기운에 필사적으로 소리쳤다.
“그래도 계약은 못 무르시는 거 아시죠!”
[…….]“이미 도장 끝! 정령왕과 계약한 최초의 정령사 칭호도 받았습니다! 낙장불입! 땡땡땡!”
[어, 그게 그러니까. 잠깐만 계약자, 진정하고…….]“아악! 엄마가 일찍 들어오라고 했는데, 난 죽었다!”
행여나 이그니스가 계약을 물러 달라고 할까 봐 하소연이 선택한 것은 바로 36계 줄행랑이었다.
아르바이트 끝나면 곧장 집으로 들어오라던 어머니의 말이 이렇게 달갑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저 멀리 타오르는 가로등 불빛을 받으며 순식간에 뛰어가 버리는 자신의 계약자를 한심하게 바라본 이그니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중얼거렸다.
오랜만에 인간계에 현신한 이그니스였다. 거기에 얼마 만에 정령왕인 자신을 품고도 남을 정도의 재능을 지닌 정령사를 만났는지 몰랐다. 그 덕분에 이그니스는 자신의 귓가에 울리는 아실리아의 잔소리조차 흥겹게 느껴질 정도였다.
[적어도 심심하지는 않겠구나.]* * *
[보스 몬스터 : 타락한 빛의 정령왕 아실리아가 정화되었습니다!]“뭐, 뭐야?”
얼굴도 보여 주지 않은 보스 몬스터가 정화되었다는 알림에 긴장하고 있던 모든 헌터들의 머리 위로 물음표가 떠올랐다.
“아, 까망이가…….”
상처가 거의 치료되고 정신을 차린 지은이 힘겹게 몸을 일으키며 중얼거렸다. 까망이가 어떻게든 아실리아에게 씌워져 있던 타락의 기운을 벗겨 낸 것 같았다. 까망이에게 숨겨진 비장의 수라도 있었던 걸까.
“괜찮아, 지은아?”
완전히 정신을 차린 지은을 부축하며 유라가 걱정스럽다는 얼굴로 말했다. 궁금한 것이 너무나 많았지만 일단 궁금증은 뒤로 미뤄 두고 일단은 절대 안정이 필요했다.
균열의 보스 몬스터가 사라진 지금. 이제 더 이상의 몬스터 웨이브는 없을 테고,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균열은 사라질 것이다.
“송주혁, 이건 어디로 간 거야…….”
“여기 있다.”
유라가 주혁의 이름을 부르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주혁이 문밖으로 나오며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무표정하게 대꾸했다.
그런 표정과는 다르게 얼굴이 피떡이 되어서 기절한 남자를 묶은 채로 질질 끌고 들어온 그가 정신을 차린 지은의 모습을 확인하고는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괜찮으십니까, 지은 씨?”
“네…… 최성찬을 잡아 온 건가요?”
“네, 제가 잡아 왔습니다. 어떻게 처리할까요?”
“그 전에, 저 문으로 어떻게 들어간 거예요?”
침착한 척하고 있지만 지은은 지금 매우 놀란 상태였다.
그도 그럴 것이 균열 안으로 모두를 데리고 들어갈 수 있었던 [열려라 신비의 문!] 스킬과는 다르게, 균열 내부에서 대리자의 공간으로 이동하는 문은 오직 자신만이 출입할 수 있었다.
그러나 주혁이 최성찬을 끌고 왔다는 것은, 그가 그 문을 통해 나간 것도 모자라서 자신이 함정에 빠졌던 4층 던전에까지 다녀왔다는 뜻이었다.
“어떻게…….”
“지은 씨가 그렇게 쓰러지고 나니 눈에 보이는 게 없더군요.”
“…….”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제대로 설명할 순 없지만. 한 가지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지은 씨가 가는 길이라면 저도 함께 갈 수 있다는 겁니다.”
“세상에…….”
“저에게 지은 씨는 이 빌어먹을 던전의 끝을 반드시 함께 확인할 소중한 동료니까요.”
던전의 끝을 보겠다는 주혁의 신념이 얼마나 강한지는 지은도 익히 잘 알았다. 그렇다고 해서 자신의 스킬에 간섭까지 할 수 있었을 줄이야.
그 순간, 지은은 그동안 애매하게 느껴지던 창조의 권능에 대한 실마리가 보이는 듯했다.
‘설마…….’
강한 의지로 꺾이지 않는 신념. 그것을 뒷받침할 행동력까지. 기적을 만들어 낸다는 마법도 역시 인간이 만들어 낸 창조의 영역이다.
각성자들에게 부여되는 각양각색의 권능들.
그 권능들에 얽힌 비밀이 혹시 인간의 ‘의지’와 관련이 있다면?
만약 정말 그렇다면, 1회 차의 대리자였던 지은은 어떠한 이유로 그 의지를 상실한 것이 분명했다.
처음 균열을 봉인했을 때 들려오던 목소리.
‘이번에는 끝까지 인간들의 편에 설 텐가? 어리석은 대리자여.’
‘이번에도 이용당하고.’
‘배신당한다면?’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정체를 알 수 없는 이 목소리의 주인은 틀림없이 신일 터였다. 신에게 타락의 권능을 부여받은 키드의 능력이 균열을 일으키는 것이었다면, 그 능력을 막을 사람은 1회 차엔 오직 자신뿐이었으니까.
‘그리고 아마 난 그땐 이 사람들과 함께하지 않았겠지.’
남운도 1회 차에 발생했던 최초의 상위 균열의 생존자가 지은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고는 9회 차가 되어서야 자신을 찾아냈다.
1회 차를 제외하고는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은 자신은 과연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균열 안으로 들어올 때마다 머릿속에 마치 뿌연 안개라도 낀 듯 답답함이 몰려오는 건 무슨 이유일까.
그리고 그런 지은의 생각을 뒷받침하듯 주혁이 기절한 최성찬을 바라보며 말을 꺼냈다.
“로스웰 키드, 그의 능력은 던전과 지상을 잇는 것.”
“……혹시나 했는데 정말이군요.”
“던전의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고, 자신이 원하는 던전을 어느 나라에서든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한국 던전에서 토벌되었던 빛의 정령왕을 미국에서 다시 보스 몬스터로 소환한 키드였다. 어느 정도의 능력인지 도통 가늠할 순 없지만, 적어도 신의 그림자인 키드의 권능의 핵심은 바로 던전에 있을 터였다.
그리고 이번에 소환한 빛의 정령왕을 통해 다음 키드의 목표가 무엇일지는 이미 확실해진 상태였다.
“대지의 정령왕…….”
드루이얼을 부탁한다는 아실리아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리는 듯했다. 이미 소멸되었던 아실리아까지 다시 이용하기 위해 봉인시킨 것이 정말로 신의 만행이라면. 그리고 그것을 자신의 계약자에게 직접 알려 주었다면?
대지의 정령왕 역시 소멸된 것이 아니라 타락의 권능에 물든 채 봉인되었을 것이었다. 당연히 키드의 계획에 대지의 정령왕 역시 포함되어 있을 터.
[타락한 풍요의 대지] 던전의 위치를 떠올린 지은의 얼굴이 차갑게 변했다.“1층…… 1층이에요!”
레벨이 낮은 헌터들이 가장 많은 1층 던전. 그곳에 키드의 마수가 뻗친다면 얼마나 많은 헌터들의 피가 흐를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그 사실을 깨달은 지은이 몸을 흠칫 떨자 주혁이 눈을 감고 뭔가를 느끼려는 듯 집중하더니 잠시 뒤 눈을 뜨고는 말했다.
“걱정하지 마시길. 지금 키드는 움직이지 않고 있습니다.”
“네? 그걸 주혁 씨가 어떻게 아세요?”
“느껴지거든요.”
“……뭐가요?”
“키드의 움직임이 저에게 느껴집니다. 어디로 이동하는지, 지금 어디에 숨어 있는지 전부요.”
<그것이 바로 구도자의 진짜 능력이다. 당분간 그림자는 제대로 움직일 수 없을 테다.>
주혁의 말과 함께 까망이가 지은의 앞에 나타나며 말했다. 왠지 모르게 씁쓸한 표정을 지어 보이고 있는 까망이와 눈이 마주쳤다. 지은은 자신에게 직접 교감으로 말을 거는 까망이의 목소리를 들으며 잠이 쏟아지는 것을 느꼈다.
‘<처음부터 주인이 계획했었던 퍼즐들이 이제 하나씩 맞춰지고 있으니.>’
‘퍼즐? 무슨 말이야?’
‘<일단 조금 자라, 주인. 몸이 많이 상했다.>’
까망이의 말이 끝남과 함께 시야가 흐려졌다. 지은은 눈을 감기 전 마지막으로 까망이의 희미한 목소리를 들었다.
‘<너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너의 계획.>’
이윽고 완전히 눈이 감기고, 지은은 자신의 의식이 어디론가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