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od Truck Owner Inside the Dungeon RAW novel - Chapter (177)
던전 안 푸드 트럭 사장님-176화(177/302)
던전 안 푸드 트럭 사장님 176화
“세뇌의 공간은 정신 지배 계열의 마법입니다.”
스킬 이름부터가 세뇌의 공간으로 불길하게 느껴지기 짝이 없었다. 당연한 소리를 왜 반복하냐는 듯 지은이 주혁을 물끄러미 바라보자 그 눈빛을 느낀 주혁이 큼, 하고 헛기침을 하고는 말했다.
“정신 계열의 마법이 응당 그러하듯, 보통 마법에 걸린 대상자는 특수한 공간에 빠져 마법의 시전자가 원하는 목표를 달성할 때까지 나오지 못합니다.”
“…….”
주혁의 설명에 무언가를 떠올린 듯 지은의 표정이 차갑게 변했다.
이태백이 걸려 있던 환각 마법 속의 본가처럼, 마법에 걸린 대상자가 빠져나갈 수 없도록 마음속으로 원하는 것을 보여 주던 마법.
이태백의 경우에는 그것이 자신의 아내와 딸이 살아 있는 평범한 집안의 모습이었다. 지은이 어떤 것을 떠올렸는지 눈치챈 주혁이 단호하게 말했다.
“물론 이 경우에는 대상자의 정신을 완전히 무너트리기 위한 마법이니, 행복한 기억이 아닌 괴로운 허상이 반복될 겁니다.”
“괴롭겠네요.”
“세뇌의 공간은 침입자를 좌시하지 않습니다. 다 잡은 먹잇감을 놓치기 싫어하는 맹수처럼 침입자에게도 똑같은 고통을 선사합니다.”
주혁의 단호한 말투에 지은은 한그루에게 걸려 있는 환각이 침입자에게도 적용된다는 의미임을 깨닫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신 지배 계열 마법에 대한 저항이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지은이 저 공간에 들어간다면 그대로 왕린린의 숙주가 되어 버릴 것이 분명했다.
“그러니 지은 씨는 여기서 저놈과 함께 대기하시는…… 아니, 위험할지도 모르니 그냥 자가로 복귀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아, 그렇군요. 그런데 저는 들어갈 건데요?”
“네, 그럼 저희만…… 네?”
당연히 그렇게 하겠다고 할 줄 알았던 지은이 내뱉은 말에 주혁이 당황한 채 놀라 그녀를 바라보았다.
지금 지은이 들어가겠다고 한 게 정말 자신이 들은 게 맞는지 당황한 주혁에게 지은이 다시 한번 확실한 의사 표현을 했다.
“저도 저기 들어갈 거예요.”
“말도 안 되는 이야기입니다!”
주혁은 물론이고 남운도, 성진도, 이태서도, 유라도, 거기에 기생 마법에 당했던 한설아까지 지은의 말에 기절할 듯 놀라며 소리쳤다. 그럼에도 지은은 팔짱을 낀 채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을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해야 할 일이 있으니까요. 까망이도 있으니 걱정하지 말아요.”
지은의 언급에 기다렸다는 듯 등장한 까망이가 속사포처럼 말을 내뱉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짓이냐, 주인! 주인이 위험해질 뻔하지 않았나! 내가 주인 때문에 제 명에 못살겠다!>
“잘 해결됐잖아.”
<잘 해결됐잖아? 됐잖아? 지금 그게 문제냐! 주인이 저 녀석한테 목이 졸리고 있었는데도 나오지 말라고 하다니!>
기절한 왕린린을 가리키며 바락바락 소리를 치는 까망이는 정말로 화나 보였다. 지은이 스스로를 위험에 빠트리는 미끼가 되겠다고 했을 때 반대하던 일행들 중에서 가장 화를 낸 것도 까망이었다.
그럼에도 지은의 단호한 명령과도 같은 부탁에 결국 지은의 의사를 거스를 수 없었던 까망이가 이번에는 정말 참을 수 없다는 듯 소리쳤다.
<왜 너는 예전과 달라진 게 하나도 없는 것이냐! 도대체 왜! 이제 조금은 내려놓을 때도 됐거늘!>
“여기서 꺼낼 이야기는 아닌 것 같아. 내가 미안해.”
까망이의 입을 다급하게 막은 지은이 까망이의 등을 토닥이며 끌어안았다. 지은의 품에 안긴 까망이가 앞발을 휘둘러 지은의 어깨를 야속하다는 듯 두드렸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지은에게 진심으로 화를 내 본 적이 없었던 까망이가 홧김에 내뱉은 말은 지은의 가슴을 후벼 파기 충분했다.
기억하지 못하는 1회 차의 자신이 희생하고 난 뒤, 계약을 유지하겠다며 종속 선언까지 했던 까망이의 심정은 어땠을까.
그 절절한 까망이의 상실감을 모르는 바가 아니었다. 하지만 지은은 계속해서 위험 속으로 들어가야 할 이유가 있었다. 까망이의 등을 쓰다듬으며 눈을 질끈 감은 지은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미안해. 하지만 가만히 있지를 못하겠어.’
‘<주인?>’
‘난 저기에 꼭 가야 해.’
지은의 직접 교감을 듣던 까망이가 몸을 흠칫 떨었다. 지은이 허락함에 따라 그녀의 무의식이 까망이의 머릿속에 흘러들어오기 시작했다.
자신의 발아래에 무릎을 꿇고 바닥에 꽂힌 창을 잡은 채 눈을 감은 주혁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는 지은의 모습을 확인한 까망이가 놀라 소리쳤다.
‘<주인, 이건……!>’
‘요즘 이런 꿈을 꾸거든. 1회 차의 기억인가?’
‘<말도 안 되는 소리. 주인은 1회 차의 마지막을 보지 못했다.>’
‘그럼 이건 누구의 기억일까? 까망이 너의 기억일까?’
‘…….’
‘그것도 아니라면 신의 기억일까.’
지은의 상태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은 까망이가 고개를 들어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무언가를 결심한 듯 계단 아래를 바라보고 있던 지은이 몸을 날려 지하로 뛰어든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지은 씨!”
“아아아악! 지은아!”
멀어지는 비명과도 같은 외침 속에서 지은은 자신의 품에 매달린 까망이를 더욱 힘차게 끌어안았다. 동시에 지은의 앞에 펼쳐진 시스템 알림이 시끄럽게 경고음을 울리기 시작했다.
[시스템 알림 : 세뇌의 공간이 침입자를 식별했습니다!] [각성자의 상태 이상 내성 수치가 낮습니다! 세뇌의 공간이 침입자를 공격 대상으로 인지합니다!] [위험 알림! 위험 알림!] [각성자가 위험에 빠졌다고 판단되어 수호 결계가 작동됩니다!]다급한 시스템 알림을 확인하며 지은이 피식 웃으며 까망이에게 말했다.
“정말 위험한가 보네. 시스템이 이렇게 필사적인 건 처음 봤어.”
<……주인?>
“그래도 난 꼭 해야 할 일이 있어.”
<뭘 해야 하길래 이렇게 위험하게……!>
지은이 메고 있는 목걸이에서 환한 수호의 결계가 펼쳐지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정신이 세뇌의 공간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은 막을 수 없었는지, 지은은 자신의 눈꺼풀이 무겁게 감겨 오는 것을 느끼며 까망이에게 말했다.
“초대받지 않은 손님에게 추방령을 내릴 생각이라.”
<……!>
“그러니까, 이번에는 막지 말고 날 믿어 줘.”
이번에는 막지 말고 자신을 믿어 달라는 지은의 말에 까망이가 눈을 크게 떴다.
그렇게 말하는 지은의 말투가 지금까지의 그녀와는 전혀 다른 느낌을 가져다주었다. 1회 차의 지은을 다시 만난 것 같은 충격에 까망이가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그녀는 세뇌의 공간에 자신의 무의식을 던져 넣은 지 오래였다.
* * *
“여기는…….”
어두컴컴하던 시야가 밝아져 오는 것을 느끼며 다시 눈을 떴을 때, 시각보다 먼저 코를 찌르는 매캐한 연기 냄새가 느껴졌다. 눈을 완전히 뜬 지은이 주변을 돌아보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제대로 찾아온 것 같네.”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마치 종말의 순간이 닥친다면 바로 이런 모습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황량해진 주변이었다. 넓은 도로 위에서 삐걱대는 이정표가 지금 자신이 서 있는 장소가 서울 한복판이라는 사실을 알려 주었다.
높은 건물들엔 마치 스펀지처럼 구멍이 숭숭 뚫려 있었다. 인간이 주인이던 건물들은 이미 몬스터들의 부화장이 되어 버린 지 오래였다. 끊임없이 피어오르는 자욱한 검은 연기의 틈 사이로 몬스터들이 고개를 내밀었다.
키드와 조우하고, 1회 차의 기억을 엿보게 된 이후로 지은은 요즘 눈을 감으면 떠오르는 단편적인 기억들에 시달리고 있었다.
처음은 완전히 무너져 내린 건물들의 잔해 속에서 멍하니 서 있는 자신의 모습. 자신의 앞에 저마다의 무기를 손에서 차마 놓지 못한 채 쓰러져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짧게 스쳐 지나갔다.
마치 자신을 지키려다가 쓰러진 것처럼 자신의 주위에 진형을 갖췄던 모습 그대로 차가운 바닥에 무릎을 꿇거나, 몸을 누인 사람들.
가려진 그 사람들의 얼굴을 확인하지 못했지만, 지은은 이것이 1회 차의 기억이라 생각했다. 주기적이지 않았지만 가끔 꾸는 꿈속에서 지은은 이 장면이 계속해서 자신의 시점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얼굴을 확인할 수 없는 수많은 사람들의 죽음을 앞에 두고 지은은 자신의 손에 들려 있는 새하얀 검을 내려다보기도 했고, 수많은 비행형 몬스터들이 구름을 뚫고 활강하는 모습을 바라보기도 했다.
무엇을 암시하는 것일까. 마치 이번에도 똑같은 결말을 맞이하게 되리라는 것처럼 의도를 알 수 없는 꿈속에서 지은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이윽고 보이지 않았던 얼굴들이 지금 자신의 주변을 채우고 있는 사람들의 얼굴로 변해갈 때까지도 지은은 꿈속에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내가 직접 왔어.”
주변에 아무런 인기척도 없었지만, 지은은 마치 누군가가 들으라는 듯 목소리를 높여 소리쳤다.
유일하게 살아 있는 인간인 지은의 외침에도 몬스터들은 그녀에게 섣불리 다가오지 않았다. 이 공간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알고 있는 듯한 몬스터들의 모습에 지은이 손을 내려다보았다.
꿈속에서 봤던 것처럼 새하얀 빛을 뿜어내는 검이 어느새 손에 들어와 있었다. 검 손잡이를 꽈악 쥔 지은이 검을 눈앞에 들어 올리고는 자신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무수한 몬스터들에게 걸어가기 시작했다.
차박, 차박.
발밑에 고인 액체가 물인지, 피인지 신경 쓰지 않았다. 결연한 얼굴을 하고 오직 검을 손에 든 채 지은은 몬스터들을 신경조차 쓰지 않고 앞으로만 걸어갔다. 검에서 새하얀 빛이 뿜어져 나와 지은에게 차마 달려들지 못하고 주춤대는 몬스터들을 순식간에 가루로 만들어 냈다.
“허튼수작 부리지 마.”
그런 몬스터들을 무심한 얼굴로 바라보며 지은이 되뇌었다. 자신이 가장 두려워하는 공간을 펼쳐 내 정신을 무너트리는 세뇌의 공간 속에서 지은은 정신이 흐릿해지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뚜렷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 공간의 주인은 지은이 아니었다.
그 사실을 지은은 이미 잘 알고 있었기에, 이 무의식의 주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면 될 뿐이었다.
“아무것도 못 할 거면서.”
그 말과 동시에 주변을 가득 메웠던 몬스터들이 모습을 바꾸었다. 순식간에 자신의 주변에 참혹한 모습으로 쓰러져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등장했다.
주혁과 유라, 성진을 비롯해 남운과 이태서는 물론이고 나운과 수영, 새봄을 비롯한 따뜻한 미소로 자신을 아껴 주는 것이 생생하게 느껴졌던 소중한 청명 길드원들. 모두가 하나같이 주위에 붉은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모습에도 지은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말했다.
“소용없어.”
이 모든 것이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는 사실을 지은은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누군가가 자신에게 보여 주려는 의도가 분명했던 꿈속의 공간에서 정신이 좀먹어 가는 듯한 기분을 느꼈던 지은은 이 공간에 직접 찾아오기로 마음먹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꿈속에서 누군가가 펼쳐 내는 기억들을 바라보고만 있을 생각은 전혀 없었다.
마치 자신을 쥐고 흔들기 위해 억지로 괴로운 표정을 짓고 있던 모두의 얼굴이 소용없다는 그녀의 말에 연기가 되어 사라져 갔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들고 있던 검을 세로로 세운 지은이 중얼거렸다.
“그러니 허튼수작 부리지마. 지난번과는 다르게 난 더 이상 혼자가 아니니까.”
번쩍!
들고 있던 검에서 환한 빛이 뿜어져 나옴과 동시에 마치 거대한 유리벽이 깨져 나가듯 눈앞에 펼쳐져 있던 검은 공간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지은이 확신을 담아 이어 말했다.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지난 회차에서도 난 혼자가 아니었을 거야. 너랑은 다르게.”
[건방진…….]산산이 깨져 나가는 공간 속에서 희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의 주인을 향해 꺾이지 않을 의지를 담아 지은이 명령했다.
“그러니 되지도 않는 정신 공격은 집어치우고 내 머릿속에서 사라져.”
그것은 창조의 대리자가 지난 회차를 통틀어 신에게 처음으로 선포한 명백한 추방령이었다.